소설리스트

난가기연-696화 (696/892)

696화. 신무애의 맹세 (1)

하지만 계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손을 뻗어 어깨 위의 종이학을 살짝 두드린 뒤 신무애를 향해 말했다.

“이 종이학은 예전에 제가 무료할 때 한번 만들어본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영성(靈性)이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부족함을 타고나긴 했지만, 득도할 만한 잠재력이 있어요.”

이에 신무애는 계연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종이학을 바라보다가, 저 새는 영성을 지녔다는 말 정도로 표현하기에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이 종이학은 이름이 있습니까? 신 모(某)가 방금 이 새를 자세히 보고 싶어 잡으려다가, 아무래도 화나게 한 것 같아 사과하고 싶습니다.”

계연은 아직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었으므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옥회산 도우들이 전에 학 동자(鶴童子)라고 부른 적이 있으니, 그렇게 부르면 될 것 같네요.”

신무애는 그 말을 듣고는 종이학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모가 방금 학 동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귀성 안의 제사용품으로 만들어진 종이 공예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여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에 학 동자께 사과드리니, 부디 너그럽게 양해해 주십시오!”

이렇게 사과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진심이 느껴져, 종이학은 기분이 흡족해졌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학 동자’라는 칭호가 무척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사람이 읍을 하듯 두 날개를 앞으로 모으고는 이해한다는 뜻을 전했다.

계연은 이를 보고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다행히 웃지 않을 수 있었다.

신무애는 예를 거둔 뒤 소매 속에서 금빛 문서 한 다발을 꺼내 두 손으로 계연에게 건넸다.

“계 선생님, 이것이 최근 며칠간 모은 것들입니다. 아, 그중에는 받은 이가 주동적으로 갖고 온 것도 있습니다. 제가 군사들을 이끌고 간 곳 중에는 이미 텅 비어 있는 곳도 있었는데, 여전히 적지 않은 이들이 여전히 조월국 송씨 황제에게 의탁하러 간 것으로 보입니다.”

계연은 손에 든 종이들을 보고 있다가, 그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결과네요. 비록 삿된 마음을 품은 이들을 모두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 금빛 문서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굳이 조월국이라는 배에 오르겠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죠.”

“참, 선생님. 조월국 송씨 황제가 이곳 무애성에 사자(使者)를 보내 제 의도를 알아보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성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음.”

계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신무애를 향해 물었다.

“사자로 온 이가 보통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수행자였나요? 성지를 갖고 왔었나요?”

“선생께 아룁니다. 총 세 명이 왔는데, 둘은 사람이고 한 명은 요괴였습니다만 그들 모두 수행자였습니다. 성지는 없었습니다.”

계연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조월국 황제가 기백이 좀 모자란 듯하다고 생각하고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선생님, 조월국 내부는 대략 정리가 된 듯하나, 아직 깊이 은둔해있는 요사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병력에 손실을 보긴 했지만, 귀군(鬼軍)의 사기가 한창 고양되어 있으니, 다시 전투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계연이 고개를 돌려 회백색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신무애가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귀군에 병력 손실이 있긴 하지만, 많은 귀신이 이 기회를 통해 적지 않은 원기를 흡수했겠지요. 모든 일은 과유불급이니, 너무 지나치면 귀성(鬼性)에도 영향이 있을 거예요. 정통 저승의 귀차(*鬼差: 성황신 아래에서 일하는 하급 귀신 관리)들이 이런 방식을 통해 힘을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비록 적지 않은 귀성의 병력이 깎여나갔다고 해도, 그 대부분은 모두 가장 낮은 계급인 귀졸이었고, 오히려 진정 주력이 되는 이들은 이번 기회로 수행을 한 단계 끌어올렸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귀신들은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이득을 얻게 되자 또다시 원기를 흡수할 욕심이 나는 게 당연했다.

계연은 다시 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신 성주는 이제 막 유명정당을 다스리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이 자리를 최대한 빨리 공고히 다지고 싶을 거예요. 또한 유능한 수하들을 얻고 싶기도 할 테니, 이런 일들에 대해 모르는 척해주고 싶겠죠. 하지만 이런 작은 이익을 따르는 것은 잠깐은 그게 좋아 보일지 모르나, 결코 오래 가는 방법은 아니에요. 남들 앞에 떳떳하고 광명정대하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정점에 설 수 없어요. 바른 기운을 따르면 언젠가 귀신이 될 수도 있지만, 이익만 좇다가는 사도(邪道)에 가까워지게 될 거예요. 만약 무애귀성의 귀신들의 포부가 겨우 그 정도라면, 그런 자들이 과연 이 유명정당에 어울릴까요?”

“예!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신무애는 황공함과 감격이 섞인 얼굴로 그의 말에 동의하며, 더는 그런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고뇌하거나 풀죽은 기색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계연의 말을 통해 그는 유명정당이 그저 한 부(府)의 성황 노릇을 하는 걸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죠. 제가 할 말이 있으니 성안의 수행이 출중한 귀신들을 모아주세요.”

말을 마친 계연은 곧장 뜰을 나섰고, 신무애도 “예.”하고 대답한 뒤 그 뒤를 따랐다. 별실 바깥에 서 있던 금갑 역사도 계연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잠시 후, 유명귀부의 중앙에 자리한 정청(正廳)에서는 귀성의 요직을 맡은 귀신들이 차례로 도착하고 있었다. 거대한 금갑 역사 다섯 명은 밖에 줄지어 서 있다가, 계연이 오는 것을 보고는 동시에 양손을 맞잡으며 이구동성으로 인사했다.

“주인님!”

“성주 대인, 계 선생님!”

다른 귀신들도 계연과 신무애를 향해 예를 취했다. 그들은 계연의 어깨 위에 앉은 종이학에 호기심을 느꼈으나 차마 그게 무엇인지 묻지는 못했다. 계연과 신무애가 정청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귀신들도 두 사람을 따라 안으로 향했다.

그 사이 계연은 모든 귀장과 귀성의 관원들을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그들은 신무애처럼 요마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굳이 원기를 흡수하지는 않은 듯, 스스로 착실히 수행을 닦고 있었다.

계연과 신무애는 정청의 상석에 앉았고, 금갑 역사 여섯 명은 좌우로 셋씩 위엄있는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귀기(鬼氣)가 음산한 유명귀부에 양기를 더해 주었다.

이곳에 모인 귀신들은 거의 전부 군관의 차림을 했고, 신무애만이 검은 장포에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성주인 신무애를 비롯한 이들이 모두 긴장한 듯 엄숙한 표정을 한 것을 보고 계연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나쁜 소식을 전하려는 게 아니니,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이번에 요사한 존재들을 섬멸하고 속세의 정도(正道)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여러분의 수행에도 많은 이점이 있었을 거예요. 이번 일을 통해 저승뿐만 아니라 요괴들 그리고 마도(魔道), 사도(邪道)에도 무애귀성의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까요.”

그 말에 자리한 귀신들은 모두 기분이 고양되었다. 계연의 말처럼 최근 그들도 그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귀신이라고 하면 두려워하거나, 정도(正道)든 사도(邪道)든 모두 떠도는 넋들이 자리 잡은 무애귀성을 낮잡아 보았다. 하지만 조월국을 비롯한 근방의 수행계에서는 최근 자신들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모(某)가 생각하는 무애귀성은 단순한 군영이 아니에요. 정도를 일으켜 세우는 데에는 귀군의 출정도 필요하지만, 문치(*文治: 학문과 법령으로 세상을 다스림)도 빠질 수 없어요.”

“저, 계 선생님. 문치라 하심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물은 이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형증이었다. 바로 신무애에게 유일하게 유명정당의 도장으로 책봉을 받은 음수(*陰帥: 귀군을 통솔하는 원수)였다.

계연은 나름대로 생각에 잠긴 듯한 신무애를 바라보더니, 다시 다른 귀신들을 향해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음양(陰陽), 속보(速報), 양원(良愿), 차과(蹉過), 문서(文書), 형옥(刑獄), 공조(功曹), 장안(掌案), 검부(檢簿), 학정(學政), 전적(典籍), 벌악(罰惡), 주복(注福) 등, 저승 각 기관을 본뜨면 될 거예요. 조병(操兵), 연무(演武), 통군(統軍), 정벌(征伐) 등의 직무는 잠시 보류해도 되고, 혹은 여기 있는 원수와 귀장들이 맡아 보셔도 되고요. 더 나아가…….”

계연은 거기서 돌연 말을 멈추더니, 신무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 나아가 불안정한 저승과 접촉하여 서로 안정을 꾀하며 협력할 수도 있겠지요. 또 저승의 길끼리 통하도록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신무애는 자기가 한번 죽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심장이 터져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애써 흥분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저승의 길을 통하게 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계연은 잠시 생각해 본 뒤, 숨김없이 자신이 아는 대로 말했다.

“제가 전에 저승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저승 땅은 변화가 많은 곳이에요. 매번 성황신이 교체될 때마다, 옛 성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또 다른 귀성(鬼城)을 짓기도 하거든요. 이런 새로운 성이 생길 때마다 옛 성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저승의 구역이 늘어나기만 하죠. 이로 인해 저승은 관할해야 할 구역이 늘어나는 부담을 지게 되죠. 하지만 이 일에 숨겨진 내막은 아마 그리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아는 게 그리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추론을 해볼 수는 있어요. 지금 조월국 곳곳의 저승은 거의 무너진 상태고, 성황신은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는 진작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죠. 후에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반드시 새로운 귀신이 생겨날 거예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소매를 휘두르자, 소매 속에서 필묵과 종이, 벼루가 날아왔다. 그러자 계연은 낭호필을 손에 쥐고서 선지 위에 선을 하나 죽 그었다. 그러고는 아래로 지명들을 하나씩 차례로 적고는, 각 성과 그 아래 부에 속한 저승을 적었다. 수많은 선이 이어진 가장 상단에는 ‘유명정당’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신무애는 주먹을 꽉 쥔 채, 격랑이 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초연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하지만 자리한 모든 귀신은 신무애가 흥분한 것을 알아보고는, 계 선생님께서 적으시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성주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했다.

한참 뒤, 초안이 완성되자 계연은 귀신들을 손짓하며 불렀다.

“자, 모두 가까이 와서 보세요.”

귀장 등의 귀신들은 서로 한번 어리둥절한 듯 눈빛을 나누더니, 상석의 네모난 탁자 앞으로 모여들었다. 양쪽의 금갑 역사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측 맨 첫 번째에 서 있는 금갑 역사가 미세하게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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