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7화. 신무애의 맹세 (2)
“이건……? 선생님?”
계연은 신무애를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유명정당에서 관직을 내린 뒤, 그 귀신으로 하여 한 지방의 성황신이 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신무애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형증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건 성주께서 한 지역의 귀왕(鬼王)이 되어, 모든 부(府)와 주(州)의 저승을 통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 말에 계연이 살며시 고개를 내젓자, 흥분에 차 있던 신무애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지는 계연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어찌 부와 주 정도를 통괄하는 귀왕으로 끝나겠어요? 이 일은 만약 성사되기만 하면, 지역 경계의 구분이나 속세의 화복(禍福)과 상관없이 음양을 다스릴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는 유명제군(*幽冥帝君: 모든 저승을 다스리는 제왕을 뜻함)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지요! 어쩌면 대정국의 황제가 봉선(*封禪: 고대 중국에서, 흙을 쌓아 단(壇)을 만든 뒤 황제가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던 일)할 때 이름을 하나 더 해야 할지도 모르죠.”
신무애는 더는 마음에 차오르는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뒤로 두 발짝 물러나 장읍례를 올린 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계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은혜, 신무애는 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께서 무슨 일이든 분부만 내리시면, 이 신무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완수해낼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도 정도(正道)의 뜻을 계승하여 음양의 이치를 지키겠습니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긴다면, 평생 득도하지 못하고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저를 지켜보고, 해와 달이 제 맹세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쿠구구궁……!
그러자 유명귀부뿐만 아니라 무애귀성 전체가 가볍게 흔들리며, 귀성을 뒤덮은 어두운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였다. 이에 성안의 귀신들이 모두 이 알 수 없는 변화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몇 초 뒤, 조금 전의 소동은 마치 착각이었다는 듯 귀성 전체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계연은 신무애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손을 뻗어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사리에 밝은 이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죠. 이런 맹세를 할 정도라면, 저도 성주의 진심을 믿겠습니다.”
사실 덕행으로 따지자면 신무애는 계연이 아는 귀신 중 중하(中下) 정도에 속할 것이다. 성황신과 각 기관의 대신(大神) 중에는 신무애보다 덕행이 출중한 자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들은 정통 신도(神道)에 속해 있는 데다, 받는 제약이 너무 커 자신의 이런 계획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에 더해, 현재의 무애귀성 같은 곳은 정말이지 찾기 힘들었다. 신무애는 옳고 그름을 똑똑히 구분할 수 있고 재능도 출중했으며, 천 년간 닦은 수행이 있어 계연이 본 귀신 가운데 가장 높은 도행을 지닌 자였다. 순수한 귀신이 수행만으로는 한 부(府)의 성황신을 압도할 정도이니, 그를 귀재(鬼才)라고 칭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앞서 말한 이런 갖가지 이유로 인해, 신무애의 머리 위로 이런 횡재가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계연에게 있어서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신무애가 이런 맹세를 내뱉자마자, 무애귀성의 모든 이가 진동을 느꼈으니 이는 그의 맹세가 진실임을 뜻했다. 계연은 무척 흡족해했고, 신무애는 여전히 감격을 누르지 못하고 있을 때, 계연의 소매 속에서 아득하지만 약간 갈라지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훗……! 하하하……. 하늘과 땅이 지켜보고, 해와 달이 맹세의 증인이 될 것이라? 그럼 뭘 하나, 하늘과 땅은 요원하고 생멸(*生滅: 우주 만물의 생겨남과 없어짐)이 반복되며 해와 달은 네 사정을 봐줄 수도 있는데. 너, 내 앞에서도 감히 그 맹세를 할 수 있겠느냐?”
계연은 갑작스레 변하는 안색을 숨기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그의 이런 표정 변화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 경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치구나!’
계연의 안색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으나, 마음속에 일어난 동요는 작지 않았다.
‘해치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그림은 두루마리 그대로 돌돌 말린 상태고, 그도 그림에 법력을 주입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소매 속은 또 다른 건곤(*乾坤: 하늘과 땅, 천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해치가 별안간 그 속에서 바깥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소매 속 주머니에 넣은 <검의첩>의 작은 글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검의첩>은 자신의 옷 안에 정말로 보관하고 있었고, 어떤 금제도 걸지 않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치 그림은 완전히 달랐다.
‘설마 해치가 자신의 소매 속 건곤에서도 외부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단 말인가?’
“선생님, 방금 누가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아무래도, 그것이, 선생님의 소매 속에서 들려온 것 같았습니다만…….”
계연은 천천히 심호흡을 내쉰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소매 속으로 손을 넣어 돌돌 말린 족자 하나를 꺼냈다.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방금 목소리를 낸 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계연의 어깨 위에 있던 종이학, 신무애를 비롯한 귀신들, 심지어는 한 금갑 역사마저 계연이 천천히 그림을 여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족자 위에는 괴이한 모습의 맹수가 그려져 있을 뿐, 어떤 특이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계연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절대 착각이 아님을 알았다. 과연,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림 위의 해치가 약간 뻣뻣하게 눈동자를 움직이더니 신무애를 주시했다. 그러고는 무척 부자연스럽게 입을 위아래로 움직이자, 조금 전에 들렸던 것과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은 귀신아, 감히 내 앞에서 그 맹세를 다시 할 수 있겠느냐?”
다른 이들의 눈에 그림 위 맹수의 모습은 약간 모호하게 보였고, 어떤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마자 듣는 이들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뒤이어 귀신들은 내부의 음기가 그의 영향을 받아 어지럽게 요동치는 것을 깨달았다.
신무애는 해치가 자신을 직시하자, 귀신으로서 오래도록 느끼지 못했던 오싹함을 느꼈다. 뒤이어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해지며, 귀신들과 여섯 명의 금갑 신장들도 모두 사라진 듯했고, 심지어는 계연의 존재감도 무척 희미해졌다.
그 짧은 순간이 신무애에게는 아득히 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 괴이쩍은 감각을 애써 떨쳐낸 뒤, 아직 두려움이 남은 얼굴로 계연에게 물었다.
“계 선생님, 그림 위에 그려진 게 대체 무엇입니까? 생기도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사기(死氣)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원래 신무애는 이것이 어떤 부적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부적같이 보이지는 않아 계연이 설명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신무애의 물음에 계연은 마음속으로 이미 생각을 끝낸 참이었으므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림 속에 있는 것은 상고 시대의 신수인 해치예요. 용맹한 동물이며 공정함의 상징이기도 하죠…….”
계연이 말을 멈춘 뒤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해치를 바라보자,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해치도 신무애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쌍의 회백색의 눈이 그림 속에 그려진 해치의 눈과 마주쳤다.
“계연, 그간 내가 여기에 머물면서 네 도움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귀신이 비범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시야가 좁고 안목이 얕아 네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네가 생각하는 것을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러니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내가 보증을 해주면 어떻겠느냐?”
계연의 깊게 침잠한 두 눈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림 속 해치의 두 눈도 그려진 것이었으므로, 마치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계연이 돌연 웃으며 물었다.
“정신을 차린 지가 얼마나 된 건가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네가 그 나라에서 유유자적하게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이미 깨어나 있었지. 그런데 모습을 드러낼 적당한 시기를 찾지 못해, 한번 눈을 뜨고는 혹시 네가 발견할까 봐 계속 잠든 척하고 있었다.”
해치의 목소리는 무척 엄숙하여, 듣고만 있어도 마음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듯했다. 신무애 등의 귀신들은 마치 관아의 재판장에 선 일반 백성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한편 계연은 해치가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태도를 밝힌 것처럼 느껴졌다.
이에 계연은 잠시 주저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부탁드리지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다시 신무애를 향해 물었다.
“신 성주, 지위가 높을수록 져야 하는 책임도 큰 법이에요. 이견 없으시죠?”
“그럴 리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신무애는 사리 분별이 정확하고 빠른 자였다. 소위 상고 시대의 신수가 무엇인지 그는 잘 몰랐지만, 해치와 계 선생님의 대화만 들어도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미 맹세를 했지만, 그는 다시 한번 해치와 계연이 있는 쪽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것은 계연을 향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해치에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계 선생님께서 무슨 일이든 분부만 내리시면, 이 신무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완수해낼 것입니다. 앞으로는 정도(正道)의 뜻을 계승하여, 음양의 이치를 지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약 이를 어기면, 평생 득도하지 못하고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만약 이 맹세를 훼손한다면…….”
“내가 너를 먹어 치우는 게 어떠냐?”
해치가 신무애의 말을 끊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신무애는 주저하는 기색 없이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만약 이 맹세를 훼손한다면, 해치께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두 번째 맹세를 할 때는 아무런 특이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신무애의 앞에 점점이 빛이 떠오르더니, 빛나는 글자가 되었다. 그것은 방금 신무애가 뱉은 맹세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뒤이어 그 글자들은 연기처럼 천천히 해치 그림 속으로 날아가더니, 곧 해치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후, 해치 그림은 다시 조용해졌다. 계연은 그림을 들어 올려 잠시 바라보더니, 해치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꽤 새침한 구석이 있네.’
계연은 해치에 대한 경계심이 약간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처음만큼 무겁지는 않게 되었다. 그는 다시 그림을 잘 말아 소매 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신무애와 귀신들을 바라보니, 그들이 쭈뼛쭈뼛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해치는 공명정대한 신수예요. 신 성주께서 두 번이나 맹세를 한 것만으로도 진심은 충분히 보였으니, 너무 큰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이제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시면 돼요. 앞으로는 성안의 귀신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실 때에요. 두 나라의 전쟁이 그리 오래 이어지진 않을 테니까요. 때가 되면 곳곳의 저승으로 보낼 수 있게, 도장을 이용해 적당한 이에게 직위를 내려야 해요.”
계연의 말을 들은 대전 안의 귀신들이 즉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이 일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 오래 귀신으로 살았으니, 누가 신령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