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화. 먹성이 좋아서요 (1)
계연은 해가 떠오르는 시각에 곧장 귀성을 떠났다. 그의 걸음은 바람을 몰거나 구름을 타지 않아도 나는 듯이 빨랐다. 아직 조월국과 대정국의 백성들이 보기에 양국의 전쟁은 어찌 될지 모르는 미지수였으나, 계연이 보기에는 이미 결말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귀군(鬼軍)이 조월국의 요사한 이들을 정벌할 때 아무런 변수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애귀성의 위치는 조월국의 남쪽에 치우쳐 있었으므로, 대정국의 국경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조월국의 군대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계연은 일부러 큰길을 피해 다녔다. 꼭 들러야 하는 목적지는 없었으므로 그는 잠시 조월국 곳곳을 좀 둘러볼 예정이었다. 일단은 예전에 갔었던 남도현에 다시 한번 가볼 생각이었다.
수면을 밟으며 작은 강을 건넌 계연은 이때 민감한 후각으로 멀리서 날아오는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 사실 죽은 이들이 먹는 음식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그러니 귀성에 있을 때 그는 줄곧 차만 마신 상태였다. 그런데 이 향긋한 냄새를 맡자 계연의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이에 그가 방향을 돌려 맛있는 냄새를 따라 강물 위를 걸어가니 곧 작은 숲이 보였다. 얼마 후 숲을 통과한 그는 세 사람이 강변에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멧돼지를 굽고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구냐?”
세 사람 중 기골이 장대한 한 남자가 고개를 들어 숲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 안에서 푸른 장삼을 입은 선생이 걸어 나오자, 다른 두 사람도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세 분, 제가 마침 배가 고팠는데, 이 근처를 지나다가 요리 냄새를 맡고는 참지 못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저…… 혹시 제게도 고기를 조금만 나눠주실 수 있을는지요? 돈은 충분히 내겠습니다.”
세 사람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이들이 아니었다. 이런 황야에서 숲을 헤치고 나타난 사람이, 머리카락도 흐트러지지 않고 옷에도 먼지 하나 없었으니 척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다만 계연의 모습과 그의 인상은 꽤 쉽게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 편이었다.
세 사람은 작은 소리로 잠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가운데에서 고기를 굽던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 멧돼지는 고기만 해도 수십 근은 될 테니, 어차피 우리 세 사람이 다 먹지 못할 양입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고기가 익을 테니, 선생께서 꺼리지 않으신다면 여기 와서 함께 앉으십시오. 불도 좀 쬐시고요. 고기가 익으면 함께 드시지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계연은 이렇게 승낙하고는 가까이 다가가 세 사람을 향해 간단히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제 성은 계씨입니다. 함께 앉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계연이 이렇게 인사하자 세 사람도 그에게 정중히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하지만 가문을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만약 다른 이들이었다면 이 상황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계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돌덩이를 찾고는 그것을 들고 와 모닥불 옆에 내려놓은 뒤 그 위에 앉았다.
계연이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 고기를 굽던 남자를 포함한 세 사람이 모두 그를 은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계연은 무슨 무기를 지닌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황야를 지나면서 보따리나 짐도 없는 것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계연이 개의치 않고 편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계연 가까이 앉은 한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이렇게 황량한 곳에서 보통 사람의 걸음이라면 며칠이 걸려도 마을이나 성에 도착하지 못할 겁니다. 길을 잃기도 쉽고요. 그런데 선생께서는 어찌 보따리조차 없으신 것이 행색이 무척 단출하군요.”
계연은 그들이 경계를 내려놓지 않은 걸 알았지만, 이는 인지상정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펴 보이며 웃었다.
“안심하세요. 제가 무공을 좀 하긴 하나, 그렇다고 마적이나 도둑은 절대 아닙니다. 짐에는 원래도 먹을거리만 들어있었는데, 식량이 다 떨어지니 천을 접어서 소매 안에 넣어둔 것뿐이에요. 자, 보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오른쪽 소매에서 반듯하게 접힌 천을 꺼냈다. 그것을 활짝 펴니 그 안에서 전병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세 사람의 기색이 그제야 좀 누그러졌다. 다른 사내가 웃으며 계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선생께서 무슨 마적이나 도둑이라고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마적이었으면, 일찍이 대군을 따라 대정국과 싸우러 갔겠지요. 거기서 얻는 이득이 도적질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하니까요.”
그러자 계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월국 군영 내부가 아주 혼란스럽다더니,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정국이 정말 그렇게 부유하단 말입니까? 다들 그곳이 살기 힘든 척박한 곳이라, 백성들이 전부 굶주리고 있다고 하던데요. 대체 거기서 무슨 이득을 얻는다는 거죠?”
세 사람 중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젊은이가 이렇게 묻자, 고기를 굽던 베옷을 입은 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흥, 원래는 나도 그게 사실인 줄 알았지. 하지만 알고 보니 대정국 백성들은 우리보다 더 좋은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야. 전에는 우리가 전부 속은 거야!”
“그렇군요……. 선생님, 보아하니 글을 읽으신 분 같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때 계연의 모든 주의는 모닥불 위의 멧돼지에 쏠려 있었다. 그는 냄새만 맡아도 어디가 덜 구워졌는지, 얼마나 더 구워야 가장 맛있게 될지 알 수 있었다. 이때 옆에서 젊은이가 이렇게 묻자, 계연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사람은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공평하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는 말이 있지요. 또한 비교하지 않으면 해를 입을 일도 없다는 말도 있고요. 이 두 가지 말 모두 이 일에 대입해 볼 수 있죠. 조정에서는 백성들 사이에 소란이 이는 걸 방지하고자 했고, 대정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일반 백성들로서는 진상을 알 수가 없던 것이죠…… 아, 이제 돌리세요. 등 쪽이 아직 덜 구워졌어요. 거길 좀 더 구워야 해요.”
고기를 굽던 남자는 조금 어리둥절했으나, 무의식적으로 계연이 말한 대로 움직였다.
“홀로 이 황야를 지나던 걸 보니, 어디로 서둘러 가던 길이신가 보죠?”
다시 자신을 탐색하는 듯한 물음에 계연은 되는대로 대답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친우를 방문하는 건 아니실 테고요. 요즘 이 근방에는 사는 사람이 없거든요. 성묘하러 오는 이들은 가끔 있지만요.”
그가 이렇게 알아서 구실을 찾아주니 계연은 속으로 흡족해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도 마찬가지로 세 사람에게 여기에 온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굳이 그런 것을 물어 반감을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마디씩 주고받다 보니 계연은 그들이 자신에 대한 경계심을 거의 내려놓고 이제야 조금 가까워지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이렇게 세상이 어수선한 때에는 낯선 이와 거리를 좁히기 쉽지 않은 법이었다.
“됐군, 이제 소금만 뿌리면 먹을 수 있겠어!”
돼지를 굽던 남자는 모두에게 이 희소식을 전한 후, 등짐에서 작은 죽통(竹筒)을 꺼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고 안에서 소금을 집어 잘 구워진 돼지 위에 살살 뿌렸다.
그 뒤 남자는 작은 칼을 꺼내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처음 잘라낸 고기를 대나무 꼬치에 꽂아 계연에게 건넸다.
“자, 선생님, 먼저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계연은 조심스럽게 꼬치를 받아 “그럼 먼저 먹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고기를 입에 넣었다. 고기에서는 전혀 잡내가 나지 않았고 육즙이 뚝뚝 흘러나왔다.
계연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다른 세 사람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도 각자 칼을 꺼내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기가 아직 너무 뜨거운 탓에, 후후 불기만 할 뿐 입을 댈 수가 없었다.
시기는 이미 초봄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해서, 이렇게 모닥불을 에워싸고 고기를 구워 먹으니 분위기가 무척 그럴듯했다. 계연은 이렇듯 호탕하게 고기를 뜯어 먹은 지 너무 오래된 나머지, 그만 눈 깜짝할 사이에 고기를 다 먹고 대나무 꼬치만 남은 상태였다.
그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어 잠시 망설이다 어색한 태도로 물었다.
“저, 조금만 더 먹어도 괜찮을까요?”
세 사람이 고개를 들어 보니 계연이 정말로 고기를 전부 다 먹은 게 보였다. 그 고기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엄청나게 뜨거웠는데 벌써 다 먹은 것이다.
“네, 편한 대로 하시지요. 칼은 고기에 꽂혀 있으니, 원하시는 만큼 잘라가십시오.”
“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동의를 구한 계연은 곧장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에 칼을 대어, 자신 쪽에 가까운 갈비뼈 부위를 잘라냈다. 뼈 앞뒤로 적지 않은 살이 붙어 있었다.
“이게 빠지면 섭섭하죠!”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갈비뼈를 쥐고는 왼손을 소매 속에 넣어 연잎으로 감싼 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그것을 땅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 열자마자, 알싸한 매운 향기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계연이 매운 가루를 돼지 갈빗대 위에 뿌리자, 고기 위로 김이 솟아오르며 더욱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가 갈비를 한쪽 뜯어낸 뒤 맛있게 뜯어먹자, 지켜보던 세 사람은 침이 마구 솟아나는 걸 느꼈다.
“하하하, 세 분도 맛보고 싶으시면 가져가서 뿌려 보세요. 이 가루는 귀한 것이니 아껴서 음미하셔야 해요!”
계연이 가루가 든 연잎을 세 사람 가까이 건네자, 진작 군침을 흘리던 그들은 당연히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그럼 저희도 맛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도 좀 줘 보게.”
매콤한 맛에 완전히 매료된 그들은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분위기도 전보다 친근해졌다.
세 사람은 곧이어 이 계 선생이 정말 잘 먹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뿐 아니라 학식과 연륜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무슨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든 계연은 언제나 논리정연한 말을 보탤 수 있었다. 위로는 국가 대사에서부터 아래로는 자질구레한 백성들의 생활에 대해 그는 무척 일리 있고 현명한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아는 게 많으시고 식견도 넓으시니, 이 전쟁이 언제쯤 끝날지 예측할 수 있으십니까? 또 우리 조월국이 이길 수 있겠는지요?”
계연은 웃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손에 든 갈빗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위부터 아래까지 조금의 살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발라먹었다. 그런데도 그의 먹는 모습은 조금도 추접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입안의 고기를 삼킨 후에야 계연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길어져도 10년 정도로 길어지진 않을 거예요. 또한 지금 상황으로 보면 조월국이 질 게 분명해 보이고요. 조월국 군사들이 국경선을 넘어 퇴각하기 시작하면, 대정국 대군이 추격해올 것이고 그럼 대세는 그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할 거예요.”
“예?”
“설마요, 너무 성급한 말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형세는 저희 쪽이 훨씬 우세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군영에는 법사나 선사들도 아주 많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듣자 하니 그 선사들은 바람과 비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대단한 분들이라던데요!”
조월국의 일반 백성들은 대정국에 대해 무슨 큰 원한을 품고 있지는 않았고, 오히려 황족인 송씨들이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계연의 말을 들으니 그래도 마음이 조금 불편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