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화. 먹성이 좋아서요 (2)
계연은 손에 든 갈빗대를 붓으로 삼아 땅바닥에 동그라미를 몇 개 그리며 이렇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쪽과 서쪽에는 각기 다른 부족들이 살고, 남쪽과 북쪽은 도적이 들끓어 민풍이 흉흉하며 도성에 송씨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조월군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각계의 선사, 마적, 산적, 민병, 역부(*役夫: 군역을 치르기 위해 동원된 백성) 등으로 내부가 단합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태죠. 함께 도모할 이익이 있다면 늑대 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지만, 큰 타격을 입어 무너지기 시작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이들은 소위 선사라는 이들과 황족인 송씨 뿐이에요.”
계연은 다시 갈빗대로 중앙에 있는 커다란 원을 가리키더니, 호기심 어린 얼굴을 한 세 사람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적의 계책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장 상책(上策)이고, 그다음이 적의 동맹을 차단하는 것이며, 그다음은 무력으로 적을 격파하는 것이며, 가장 하책(下策)은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한 구절)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정군에는 전쟁에 뛰어난 장수가 있고, 계책과 모략에 능한 무관이 있으니, 그들이 조월국 땅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조월국 스스로 무너지게 할 계책이 많고 많지요.”
말을 마친 계연은 마지막 남은 갈빗대를 다시 뜯어먹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멍하니 바닥에 그려진 낙서를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그 위로 전쟁의 불길이 솟구치는 듯했다. 이에 놀란 세 사람이 고개를 마구 흔드니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낙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기를 굽던 남자는 계연이 갈빗대를 다 끝내고도 여전히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얼른 자기들 쪽에 있는 갈빗대를 잘라내어 계연에게 건넸다.
“선생님, 어차피 저희는 갈빗살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선생님께서 더 드실 수 있으시다면 이것도 마저 드시지요.”
“하하, 마침 부족했는데 잘됐네요. 고맙습니다!”
계연은 전혀 사양하는 기색 없이 다시 갈빗대를 받아, 그 위에 매운 가루를 뿌려가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은 천두호를 꺼내기 적절치 않아 계연은 그것이 좀 아쉬웠다. 술과 함께 곁들이면 훨씬 맛있을 테니 말이다.
세 사람은 언젠가부터 먹던 동작을 멈췄는데, 계연이 갈빗대를 두 개쯤 먹자 중간에 앉은 남자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계 선생님,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만약 대정국이 조월국에 침입해오면,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 노략질을 할까요? 듣기로 제주에서는…….”
이때 세 사람이 계연을 대하는 태도는 처음과 비교해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태도뿐 아니라 사용하는 말도 더욱 공손해졌다. 남자는 말을 끝맺지는 않았지만,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계연은 음식이 입에 든 채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기를 다 씹어 삼킨 후에야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세 분, 저게 무슨 별이지요?”
이에 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계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별 무리가 떠 있었는데, 그중 유달리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있었다. 지금 처한 상황이 남다르기 때문인지, 그들은 모두 이 정오의 시각에 왜 별이 보이는지를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
“북두칠성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건 그중에서 네 번째 별이고요……. 이름이 뭐더라?”
“내가 알지! 네 번째 별은 문곡성(文曲星)이야! 선생님, 맞지요?”
세 사람이 계연을 바라보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네 번째 별의 이름은 천권(天權)인데, 일반적으로 문곡성이라 불리지요. 여러분께서는 대정국에 현덕(賢德)하기로 이름난 대학자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그러자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윤 공?”
“맞아요, 윤 공이에요.”
계연은 그들이 모두 윤재성을 알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세 사람의 말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 되었다. 먼저 왼쪽에 앉은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윤 공은 이미 세상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리고 윤 공은 책 속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아닌가? 윤 공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있습니까?”
“맞아요, 문인들이 만들어낸 인물 아닙니까?”
“하하하하…….”
계연은 다리를 내리치며 한참을 웃다가 겨우 멈췄다. 그는 오늘 자기가 대체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계연은 이 세 사람은 참으로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윤 공의 이름은 윤재성으로, 대정국 계주 영안현 사람이에요. 원덕 연간에 과거에 삼원급제 했으며, 원덕제의 중용을 받아 완주로 내려간 뒤에는 부패한 관리들을 척결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지요……. 후에는 도성으로 부임하여 유명한 책들을 펴냈고 간신의 무리들을 몰아냈어요. 현재 관직은 상서령(*尙書令: 상서성(尙書省)의 우두머리)이며 당금 대정국 황제의 스승으로, 나라 안의 모든 이들 중 그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고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 어디든 그의 학식과 인품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어요. 그는 대략 이런 사람이고, 아직 건강히 살아 있답니다…….”
계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윤 공이 있는 데다, 대정군의 장수가 그의 둘째 아들이라 하니, 그들이 조월국에 들어온다 해도 백성들을 사사로이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진 않을 거예요.”
타닥!
살을 깔끔하게 발라 먹은 뼈가 계연의 발치로 떨어지며, 다른 갈비뼈들과 부딪혀 소리를 냈다.
계연은 긴 설명을 쏟아내는 동안 갈빗대 전체를 전부 먹어 치웠고, 그의 발치에는 어느새 수많은 뼈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소리에 세 사람이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계연의 발치에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다시 한쪽에 놓인 구운 돼지를 살펴보니 돼지의 고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먹성이 좀 좋아서요, 하하하…….”
세 사람은 계연의 발치에 쌓인 뼈를 바라보며, 먹성이 좋아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이 멧돼지는 작은 크기가 아니었고, 뼈를 제외해도 최소한 수십 근(斤)의 고기가 나오는 크기였다. 구운 후에 수분이 빠진다고 해도 여전히 적지 않은 양이었고, 그들 세 사람이 먹은 양은 많아 봐야 채 10근(6kg)도 되지 않을 터였다.
세 사람은 편평한 계연의 배를 바라보며 황당함을 느꼈다. 그때 계연 가까이 앉은 사내가 얼른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선생님께서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어차피 익힌 고기이니 먹어버리는 게 제일 좋지요.”
누가 봐도 그들 중 우두머리이자 고기 굽는 걸 책임지던 남자는 옆에 있던 젊은이가 막 입을 떼려 하자, 먼저 모닥불의 멧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습니다, 선생님께서 잘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참, 여기에 아직 앞다리는 건드리지도 않은 채이니, 더 드시고 싶으시다면 이것도 마저 드시지요.”
멧돼지를 묶은 지지대 위에는 아직도 돼지머리와 앞다리 한쪽, 고기가 잔뜩 달린 등뼈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계연은 계속해서 먹을 수 있었으나, 돼지를 반 정도 먹어 치우자 이제는 그리 아쉽지 않았으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미 충분히 먹었어요. 이렇게 먹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세 분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가 웃으며 손을 털자 손에 묻어 있는 기름기 등이 전부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이며 손톱에는 조금의 기름기나 고기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런 뒤 계연은 소매 속으로 손을 넣어 은자 두 덩이를 꺼냈다.
“요리까지 마친 돼지고기는 값을 얼마나 쳐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계연은 이 세 사람이 원래는 고기를 구워 먹은 뒤, 갖고 다니기 편하도록 말려서 가져가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적당히 한 끼 먹은 정도였으면 다른 이들도 그를 대접한 셈 칠 수도 있었으나, 자기가 그만 너무 많이 먹어버린 탓에 그렇게 맨입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계연이 은자를 꺼내 들자, 나이가 좀 더 든 두 사내가 즉시 고개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건 못 받습니다! 선생님처럼 학식이 높으신 분께 멧돼지 한 마리 값으로 가르침을 받았으니 충분합니다! 맷돼지는 어디서나 또 잡을 수 있지만, 선생님의 금언(*金言: 삶의 본보기가 되는 귀중한 어구)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계 선생님. 고작해야 멧돼지일 뿐인데요. 오히려 대접이 소홀해 그것이 부끄럽습니다. 일찍이 선생님을 만날 것을 알았다면, 어제 그렇게 술을 다 마시지 않았을 텐데요! 그저 술이 없는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참, 여기 아직 등뼈와 앞다리, 머리가 남았으니 드시고 싶은 대로 드십시오!”
상대가 돈도 받으려 하지 않고 술이 없는 것만을 아쉬워하자, 계연은 결국 자기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께서 말하지 않았으면 저도 잊을 뻔했네요! 실은 저쪽 수풀에 제가 놓고 온 짐이 있어요. 이런 외지에서는 아무래도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 들고 오지 않았거든요. 처음에 세 분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부디 널리 이해해 주세요. 거기에 좋은 술이 있으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면 금방 갖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중간에 앉은 남자가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편히 갔다 오십시오. 만약 무게가 무거우면 제가 함께 가서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제가 가져올 수 있어요!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계연은 몸을 돌려 곧장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계연의 모습이 수풀 사이로 사라지자, 내내 입을 떼지 못했던 젊은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님들, 저 계 선생님이 먹성이 커도 너무 크지 않습니까, 저 돼지는 우리가 열흘은 먹을 수 있는 양이었는데요. 돼지를 거의 다 해치웠으니 돈을 내시겠다는데 왜 받지 않으신 겁니까? 들고 계신 은자를 보니 반 냥은 족히 될 텐데요?”
두 사람은 계연이 사라진 수풀 쪽을 흘끗 보더니 다시 젊은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고기를 굽던 남자가 웃으며 젊은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소제(小齊)야, 보통 사람이 고기를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더냐?”
그러자 젊은이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죠!”
“그럼 내가 묻겠다. 방금 계 선생님이 윤 공의 이야기할 때, 무슨 별이 윤 공을 뜻한다고 했지?”
젊은이가 미간을 찡그리더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문곡성이요, 그게 왜요? 별을 가리키며 저희에게 보여주기까지 하셨지요.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다른 한 사내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소제야, 계 선생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보여주었었지? 내가 잊어먹은 것 같아 그러니, 다시 보여줄 수 있겠느냐?”
“그걸 벌써 잊었다고요? 이렇게…….”
젊은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키다가 돌연 동작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까지 살짝 벌리고 있었다. 손가락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별이…….”
“하하, 소제야, 이런 쨍한 대낮에 어떻게 별이 보이겠느냐?”
“그런데 방금 계 선생님께서는…….”
젊은이는 말을 잇다 말고 곧 무언가 깨달은 듯 경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기를 굽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젊은이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렸다.
“소제야, 너 이놈, 아직 덜 여물었구나. 계 선생님은 학식이 깊고 태도도 고상하니 절대 범속한 분이 아니시다.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 저분을 공손히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세 사람이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노라니, 계연이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고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끈으로 묶인 푸른 죽통 몇 개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이 아마 술이 담긴 술병인 듯했다.
“자자, 여러분께서 제게 고기를 대접해주셨으니, 이번엔 제가 술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술이군요, 잘됐습니다!”
“하하하, 어서 이리 앉으십시오, 선생님. 이 돼지고기는 술이랑 먹어야 제일 맛있는 법이지요!”
세 사람은 친근한 태도로 계연을 도와 죽통을 옮기면서 어서 그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