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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00화 (700/892)

700화.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십시오

계연이 들고 온 것을 하나씩 나눠주니, 딱 알맞게도 한 사람당 하나씩 들게 되었다. 계연이 첫 술통의 마개를 뽑자 술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술의 이름은 대교주(大窖酒)로, 천보국의 술인데 도수가 높고 맛이 깔끔해서 구하기 힘든 좋은 술이에요. 여기서는 특히나 더 구하기 힘들지요. 물건은 드물수록 귀하다는 말도 있으니, 이것으로 오늘 돼지고기값을 치르겠습니다, 하하하!”

“옳습니다, 이런 곳에 앉아 마시는 술 한 근은 금 한 냥과 같지요!”

세 사람이 각자 받은 술의 마개를 뽑자, 그윽한 향기가 대나무의 맑은 향기와 섞여 맡기만 해도 취하는 듯했다. 게다가 이 죽통은 어찌 된 일인지 꼭 새로 베어낸 것 같았다.

“그럼 성의를 표하기 위해 제가 먼저 마시겠습니다!”

계연은 사실 이미 유혹을 참지 못하고, 수풀 속에서 천두호를 꺼내자마자 여러 입 마신 뒤였다. 그가 죽통을 입에 대고 술을 들이켜자, 다른 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침이 나와 각자 죽통을 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독주가 목구멍을 넘어가며 화끈한 느낌과 함께 뱃속이 뜨끈해지며 온몸에서 땀이 났다.

“허, 대단히 좋은 술이군요!”

“정말 좋은 술입니다!”

“아주 맛있습니다!”

그들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으므로 계연도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동안 저도 모르게 약간 뻣뻣해져 있던 신경줄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세 사람은 남은 돼지고기를 작은 칼로 조금씩 잘라내, 술과 함께 곁들여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먹는 것은 또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그들은 점차 담도 커지고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계연이 죽통 안의 술을 거의 비울 때쯤, 이제 막 삼 분의 일 정도를 마신 가장 나이 많은 남자가 전의 화제를 이어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선생님께선 학식이 깊고 견식도 넓으시니, 저희 세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계연은 술을 한입 머금고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저희는 이미 조월국에 큰 변고가 닥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모두 평범한 사냥꾼일 뿐으로, 크게 바라는 것은 없고 그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만이 소원일 뿐입니다.”

그러자 계연이 머금은 술을 삼키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쉽지요. 조월국 군영에 가서 종군할 생각은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착실히 살면 됩니다. 세 분의 능력이라면 절대 굶어 죽진 않을 테니까요.”

“그것이…….”

세 사람은 저마다 겸연쩍은 기색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저희도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닙니다. 그저, 선생님께서 조월국의 패배를 예측하신 후에는 더욱 입을 떼기가 어려워서…….”

“맞습니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이리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저희는 절대 종군하러 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돼지고기도 거의 바닥이 났다. 계연은 사실 이 세 사람이 무슨 일로 이곳을 지나는 건지 진작 알고 있었다. 죽통 안의 술이 바닥나자,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자락을 툭툭 털더니 세 사람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잘 먹고 잘 마셨네요. 술도 충분히 마시고 고기도 배부르게 먹었으니,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아, 참. 서남쪽 산을 넘으려거든 협곡의 작은 길로는 가지 마세요. 요괴가 살거든요. 남쪽 숲을 통과해 평원으로 가시려거든 밤에는 움직이지 마세요. 음기가 강하고 귀신들이 나타날지 모르니, 최대한 낮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통과하세요. 그럼,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 선생님, 이렇게 그냥 가시는 겁니까…….”

“선생님,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세 사람 중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연을 만류했고, 중간에 앉아있던 남자는 뒤쪽에 있던 짐에서 무언가 들어있는 기름종이를 꺼내 그 안에 있던 건량(*乾糧: 먼 길을 가는데 가지고 다니기 쉽게 만든 양식)을 전부 행낭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 다음 돼지머리에 남은 커다란 고기를 얼른 잘라 기름종이 안에 넣고 잘 감싼 뒤 계연에게 건넸다.

“저도 선생님께서 비범하신 분이라는 건 알지만, 저희에게는 마땅히 드릴 만한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소소한 마음이니 받아 주시지요!”

남자가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넨 기름종이를 본 계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든 다음 오른손 소매 안에서 푸른 과실 세 개를 꺼냈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요. 저도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느글거리던 참이거든요. 이 대추는 상쾌하고 달짝지근하니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서 먹기에 아주 좋지요. 하나씩 드세요.”

대추를 나눠준 계연은 그들이 준 기름종이를 들고서 강기슭에서 멀리 떨어진 동북쪽으로 떠나갔다. 계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고기를 건넨 남자가 갑자기 허벅다리를 내리치며 말했다.

“어이쿠! 이런 바보들 같으니. 이름도 성도 말씀드리지 않았군! 어쩐지 선생님께서 우리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시더라니!”

“아이고!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느라 그걸 잊었군!”

두 사람이 뒤늦게 후회하는 것을 본 젊은이가 얼른 이렇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얼른 쫓아갈까요?”

“휴, 됐다, 됐어. 어차피 쫓아가지 못할 거다.”

남자는 깊이 후회하며 손에 든 대추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상쾌한 향기가 입안으로 퍼지며, 술기운마저 그 대추 향에 모두 흩어지는 듯했다.

* * *

한편 계연은 이때 이미 먼 거리를 이동해 있었으므로, 세 사람이 쫓아왔다 해도 결코 따라잡지 못했을 터였다. 그는 아직 열기가 느껴지는 기름종이를 손에 든 채 만지작거리다가 웃으며 소매 안에 잘 넣었다.

황야의 강기슭에서 먹은 식사는 그야말로 배불리 먹고 호쾌히 마신 한 끼였다. 이는 계연에게 있어 조월국 백성들의 생각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원래부터 조월국 내부의 사정을 알아보려 했었는데, 조월국 도성의 조정 상황이나 책봉을 받은 소위 선사나 법사들보다는 민심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넓은 황야에는 당연히 민가가 전혀 없었지만, 계연은 원하기만 하면 곧장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굳이 서두르려 하지 않았다.

모호하게 보이는 풍경조차 이 순간 계연이 느끼는 호젓함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비록 대정국과 조월국이 현재 국가의 운명을 건 생사의 결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자연 만물에게 사람은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다.

때는 아직 초봄으로 찬 기운이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지만, 계연은 마른 가지와 버석한 흙에서 생기가 돋아나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새로운 봄이 시작되려고 하는 것이다.

소화도 시킬 겸 황야를 여유롭게 걷던 계연은 수풀이 그리 무성하지 않은 숲에 들어섰다. 이곳의 나무들은 크고 높았지만, 시야는 앞뒤로 뻥 뚫려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적당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은 계연은 앉으려 하지 않고, 소매 안에서 사람 형상의 부적을 꺼내어 앞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빛이 금가루처럼 반짝이더니 눈앞에 거대한 체격의 금갑 역사가 나타났다.

주위 곳곳을 날아다니며 바삐 움직이던 종이학은 금갑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보자마자 멀리서부터 돌아와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주인님!”

금갑 역사는 여전히 예를 올리는 데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계연은 금갑 역사의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돌기 시작했다.

“네 상황이 조금 특수하긴 하나, 이미 영지를 얻었으니 이렇게 계속 소매 속에 넣고 다닐 수는 없겠지. 너는 글자들과 달리, 부적으로 있을 때는 아무런 지각이 없으니까.”

얼마 전 유명귀부 안에서 계연은 이 금갑 역사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었다. 비록 신무애를 비롯한 귀신들에게 금갑 신장은 여전히 준엄하고 냉정해 보였으나, 계연은 금갑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주인으로서 당연히 그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금갑 역사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 동안 거의 모든 일에 대해 무관심했으나,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만은 확실했다.

계연은 금갑 역사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다시 그를 마주 보고 서더니 그의 붉은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먼저 네게 이름부터 지어주는 게 좋겠구나. 금갑(金甲)이라고 부르는 게 어떠냐?”

종이학은 계연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내려 금갑 역사를 바라보았다. 금갑 역사는 고개를 숙여 계연을 향해 예를 올리더니,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게 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러자 계연은 그의 이름을 너무 되는 대로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이 이름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금갑 역사의 반응은 담담했지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오르락내리락 편차가 심해 나름대로 기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금갑 역사의 이름으로는 딱이야. 이 뒤로는 갑을병정(甲乙丙丁) 이렇게 내려가면 되겠지. 정말 잘 지었어.’

계연은 이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아래턱을 긁적이며 금갑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때 금갑 역사의 머리 위에 앉은 종이학은 계속해서 날개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어 계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너를 잊은 게 아니야. 네 이름은 계속해서 학동아(鶴童兒)로 부르자꾸나. 이후에 이름이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되거든, 끝의 ‘아(*兒: 어린아이)’ 자를 떼면 되겠지.”

계연은 다시 한번 금갑 역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느낌을 잘 기억해 두어라.”

계연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 손가락을 금갑 역사의 이마를 향해 멀찍이 뻗었다. 그러자 희미한 법광(法光)이 금갑 역사의 이마를 향해 쏘아지더니, 그의 외형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키가 더 작아지고, 입고 있던 금갑이 모호해졌으며 불그스름하던 피부색도 연해지기 시작했다. 변화한 후에도 여전히 피부가 붉긴 했지만, 이전처럼 사람이 아닌 티가 날 정도로 붉진 않았다.

계연이 손을 거두자, 눈앞에 서 있는 것은 계연보다 머리 반 개 정도가 더 크고, 거친 베옷을 걸친 불그스름한 얼굴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체격은 여전히 크고 건장하여,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상당했다.

종이학은 금갑 역사가 변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계연의 어깨로 옮겨와 있었다. 그렇게 종이학은 금갑 역사가 변하는 것을 지켜보다 끝이 나자 즉시 계연의 어깨에서 내려와 금갑 역사를 둘러싸고 빙빙 돌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아 금갑의 목을 콕콕 쪼았다.

이때 금갑은 평소보다 좀 더 동작이 풍부해져, 고개를 내려 자기 자신을 살펴보기도 하고 손을 뻗어 이리저리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금갑이 주먹을 쥐자 근육과 뼈에서 우두둑, 단단히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다시 고개를 내려 제 어깨 위에 앉은 종이학을 바라보았다.

“어떠냐? 얼마만큼 기억했지?”

계연이 이렇게 묻자 금갑이 일순간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계연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다시 해보자. 우선 마음속으로 지금의 모습을 떠올린 뒤, 온몸의 힘을 이끌어 내보렴.”

계연은 조금도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그는 사실 처음부터 금갑 역사가 배움에 그리 소질이 없으리란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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