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화. 금갑을병정무기(金甲乙丙丁戊己)
계연의 말을 들은 금갑은 그것을 명령으로 받아들였는지, 곧이어 온몸의 기운을 터트렸다. 주위에도 폭발적인 기운의 변화가 일어났다.
쿠웅-!
마치 거대한 북이 울리기라도 하듯이 마음이 떨려왔다.
다음 순간, 금갑의 몸 위로 은은한 금빛이 점점 밝게 빛나더니, 뼈와 근육이 금속성의 물질과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금갑은 다시 그렇게 금갑 역사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계연의 긴 머리카락만 바람에 나부꼈을 뿐 계연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금갑 역사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무척 위엄 넘친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법력이 어떻게 흐르고 움직이는지 잘 느껴보렴. 정확히 말하면 네 몸에 대고 부적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지. 자, 이제 집중해라.”
계연은 그렇게 말한 뒤, 금갑이 준비할 수 있도록 몇 초의 간격을 둔 뒤 다시 멀찍이서 그의 이마에 대고 손가락을 뻗었다.
다음 순간, 금갑의 모습이 다시 한번 변하기 시작하더니,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거친 베옷을 입은 불그스름한 피부의 우람한 사내로 변했다.
이때 금갑은 전처럼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살피려 하지 않고,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계연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한참 뒤 금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계연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다, 다시 해보자. 날 때부터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금갑은 잔뜩 긴장한 몸으로 다시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계연이 별 기대나 부담 없이 마음을 편히 먹었다고 해서, 그도 그렇다는 뜻은 아니었다. 실은 지금 금갑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부담감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뒤, 다시 변신하기 시작했다…….
계연은 무척 인내심 있게 거의 반나절 동안 셀 수 없이 이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어떠냐?”
금갑은 잠시 침묵하더니, 계연의 물음에 답하지 않을 수 없어 사실대로 대답했다.
“주인님,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일 처음에 변했을 때랑 비교하면, 조금 진보가 있는 것 같니?”
금갑은 미간을 찡그린 채 한참을 생각하다가 우물우물 말했다.
“별로…… 진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금갑의 머리 위에 앉은 종이학이 날개를 펴더니, 가볍게 그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계연은 마침내 마음을 내려놓고는 그를 이렇게 위로했다.
“앞으로 자주 해보면 되겠지. 앞으로는 이런 모습으로 나를 따라다니렴. 보고 들은 게 많아지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계연은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 금갑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실은 그와 동시에 금갑의 머리 위에 앉은 종이학을 살피고 있었다.
금갑을 위로한 종이학의 몸 위로 희미한 빛이 생기더니, 학의 날개에 깃털이 돋아나는 변화가 생겨났으나 금방 사라져버렸다.
“꽤 금방 배웠구나. 아직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금갑의 머리 위에 앉은 종이학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종이학은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리며 날아오르지 못하더니,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다 계연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계연은 종이학을 잘 접어 다시 품 안의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그러고는 금갑을 한번 바라본 뒤, 걸음을 옮겨 동북쪽으로 걸어갔다. 금갑은 겉모습만 변했을 뿐 다른 부분은 마찬가지여서, 곧장 계연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계연이 걷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비록 보기에는 유유자적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한 걸음 만에 아주 먼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어서 축지법과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금갑은 가볍게 계연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금갑의 이런 모습은 조금 전 배움의 속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예전에 계연이 처음으로 조월국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연은 여전히 곳곳에서 황폐해진 마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애귀성과 거리가 아직 가까운 덕분에, 이런 황야를 거닐어도 사기(死氣)나 귀기(鬼氣)가 도사린 곳은 없었고, 심지어는 떠도는 넋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금갑을 가르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했기 때문에, 어느덧 날이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계연이 눈앞의 작은 언덕에 오르니 저 멀리 별빛과는 다른 희미한 빛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그것은 땅과 가까울수록 붉은 불길처럼 보였다. 바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의 등불과 사람이 내뿜는 화기(火氣)가 섞인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저곳이 바로 남도현인 모양이었다.
계연은 자신이 오른 작은 언덕을 둘러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하하, 또 여기네. 예전에도 여기서 그 무지막지한 소 요괴를 만났었지. 그러고 보니 요즘 그 둘은 어찌 지내고 있으려나. 오늘 밤에는 여기서 쉬도록 하자.”
시간이 이미 늦은 만큼 계연은 곧장 현성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바위를 찾아 그 위에 올라가서는 머리에 팔을 대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금갑은 그가 누운 바위 옆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워보렴. 눕는 게 어려우면 앉아도 된다. 이 세상에 서서 눈을 뜬 채로 쉬는 사람은 없으니까.”
“주인님, 금갑은 휴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휴식이 필요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배우라는 뜻이었지.”
금갑이 그 말에 살짝 허리를 구부리더니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대답과 동시에 곧장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았다. 이는 그가 세상에 태어나 의식이 생긴 이래, 아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앉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뜬 채 조금도 깜빡이지 않았다.
“휴, 아직 멀었구나…….”
계연이 깊이 탄식하자 그의 가슴팍 언저리의 옷자락이 살짝 부풀어 오르더니, 다시 깨어난 종이학이 주머니에서 나와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날개를 펄럭여 날아오른 뒤 자기가 어디 있는지 보려는 듯이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자신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계연을 보고는 안심하고 멀리 날아갔다.
계연이 편평한 바위 위에 누워 별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곁눈질로 살피니, 종이학은 이미 멀리 날아가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종이학은 몸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고 머리도 영민한 데다, 영각(靈覺)이 아주 뛰어나 계연도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때 머리 위로 구름이 모여들더니 찬란하던 별빛이 천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늦은 밤이 되자 아주 작은 눈송이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 초봄에 거의 마지막으로 내리는 눈발일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계연은 서서히 잠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는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로 삼아 제 팔에 머리를 누인 채 잠에 빠져들었다. 바위 아래의 금갑은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로, 뻣뻣이 상체를 세운 채 위엄 넘치는 눈빛으로 전방을 직시하고 있었다. 설령 눈보라가 몰아쳐도 그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편, 날아간 종이학은 당연히 남도현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사람은 가장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자, 관찰하기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게다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언제나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있었다.
남도현성은 언제나 이 근방 수백 리 내에서 비교적 번화한 성이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었으나,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 도시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이때 시각은 이미 깊은 밤이라 남도현성의 보통 백성들은 일찍 잠이 든 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도현 전체가 잠들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와 정반대로, 어느 곳이든 사람이 밀집해 사는 곳이면 그렇듯이, 남들이 잠든 시각에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남도현성의 남쪽 성벽 근처에는 비교적 큰 저택이 하나 자리해 있었는데, 담장으로 둘러싸인 저택 내부에는 커다란 건물이 몇 채나 세워졌고 집안에 사당 또한 갖춰져 있었다.
이때 저택 안은 켜진 등불 하나 없이 어두웠으나, 집안사람 중에는 잠든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겉옷만 벗은 채 침상 위에 누워있었는데, 이때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겉옷을 걸치고 방문을 나섰다.
거의 모든 방문이 비슷한 순간에 열리며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오늘은 밤이 되자마자 환하게 비추던 별빛이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바깥이 무척 어둑어둑했으므로 집안사람들은 어두운 길을 더듬어가며 사당으로 향했다. 모든 이들이 사당 안으로 들어오자,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가볍게 사당의 문을 닫았다.
“자, 어서 등을 붙여라.”
“예!”
한 젊은이가 가져온 화절자를 꺼내더니 몇 번 만에 불씨를 붙였다. 그러고는 사당에 놓인 한 촛대 위에 불씨를 붙였다. 그러자 사당 한구석이 불빛에 의해 뿌옇게 밝아졌다. 사당은 창문이 없이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안에 불빛이 켜진 것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지붕의 기와 틈이나 문틈에서나 살짝 빛이 비칠 뿐이었다.
“자, 뒤쪽으로 가자.”
6,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사람들을 이끌고 위패가 놓인 벽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부삽을 바닥의 어느 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런 뒤 그가 아래를 향해 살짝 힘을 주자, 단단한 목판이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좀 도와주거라!”
노인과 한 중년의 남자가 함께 바닥에 꿇어앉더니, 단단한 목판의 양쪽에 자리 잡고 “하나, 둘, 셋!”하고 센 뒤, 둔중한 목판을 함께 들어 한쪽으로 옮겼다.
목판이 치워진 아래쪽으로 시커멓고 커다란 공간이 드러났다. 촛대를 들고 있던 젊은이가 불을 안쪽을 향해 비추자, 폭이 좁고 길게 난 땅굴이 드러났다.
딩딩-!
“어이, 이제 올라와도 되네!”
노인이 땅굴의 돌벽을 삽으로 두어 번 내려친 뒤 이렇게 소리치자, 그의 목소리가 땅굴 깊은 곳까지 전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무거운 물건을 끄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불빛 아래 가장 먼저 땅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팔 하나 정도 너비에 중간 크기 정도의 나무 상자였다. 그 상자 아래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이것 좀 끌어 올려 주시오! 아이고, 무거워라!”
“빨리! 막대기랑 노끈을 가져오너라.”
노인이 옆 사람에게 이렇게 분부하자, 한 부인이 두 번 묶어 알맞게 준비해 놓은 삼으로 된 굵은 노끈을 건넸고, 또 다른 이가 둥글게 깎인 나무 막대를 가져왔다.
노인이 노끈을 구멍으로 내려보내기 전까지, 아래에 있던 남자는 쉬지 않고 옷 사이로 손을 넣어 몸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러다 노끈이 내려오자 남자는 재빨리 상자 양쪽을 노끈의 매듭 두 개에 맞춰 끼웠다. 위쪽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막대기에 노끈 양쪽을 단단히 묶은 뒤였다.
“되었소. 들어 올리시오!”
“알겠네!”
노인은 나이가 적지 않았으나 힘이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는 중년의 남자와 함께 앞뒤로 바닥에 꿇어앉아 막대기 양쪽을 한쪽씩 어깨 위에 지었다.
“하나, 둘, 셋! 읏차…….”
끼이익……!
노끈이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노인과 중년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상자가 조금씩 땅굴 입구에서 움직이더니 지면 위로 들어 올려졌다. 아래에 있던 사람은 행여나 상자가 떨어질까 봐 상자 아래쪽을 받친 채 함께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