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화. 괴이한 벌레
쿠웅……!
마침내 상자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땅에 닿자, 이를 옮기던 두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게가 엄청나네. 하마터면 일어서지도 못할뻔했군!”
“그러니까요. 안에 물건이 잔뜩 들어있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소릴. 안에 좋은 물건이 적지 않거든요!”
아래쪽 땅굴에 있던 사람들이 위로 기어 올라오니, 한 사람이 아니라 총 네 사람이었다. 보아하니 다른 세 사람은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오자, 젊은이가 촛대를 높이 들어 올렸고 남은 이들은 상자를 둘러싸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았다.
“와아…….”
“이게 다 얼마야…….”
“그러니까 말이야, 여태 살면서 이렇게 많은 값진 물건들은 본 적도 없군…….”
상자 안에는 각양각색의 장신구, 꿰미로 묶인 동전과 한 무더기의 은자, 잘 접힌 비단옷, 옥과 마노가 박힌 허리띠,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은제, 동제, 옥 장식품들이 들어있었다. 게다가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단검 몇 자루도 보였다.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식견이 넓어지는군!”
“하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듣자 하니, 이건 그저 일반적인 부호 집안에서 가져온 거라더군요. 그것도 몇 사람과 함께 나눈 게 여기 이 상자랍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땅굴에서 노끈을 받아 상자에 꿰었던 남자였다. 그는 말하면서도 내내 목 뒤쪽을 긁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저도 모르게 상자 안으로 손을 뻗어, 그 안의 보배들을 만지작거렸다. 한쪽에 있던 부인은 금으로 된 비녀를 머리에 꽂아보며 황홀한 듯이 웃었다.
“며칠 있으면 아마 이(李)씨 집안에서 또 물건을 좀 더 보내올 거예요. 그것까지 잘 받아서 적당한 마차를 구한 뒤, 북쪽에 있는 큰 도시로 가서 손을 털면 큰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대정국의 통보(*通寶: 엽전 따위의 화폐에 새겨 통화(通貨)라는 뜻을 나타내던 말)는 우리가 녹여서 좀 쓰고, 남은 건 잘 보관하는 게 좋겠어요.”
“어째서?”
노인이 이렇게 묻자, 땅굴에서 기어 나온 남자가 다른 세 명의 동료들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李) 숙부님, 이씨 집안에서 지금 전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실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부 뒤로 물건을 빼돌리는 중이거든요…….”
남자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연신 목덜미 뒤로 손을 넣어 긁적였다. 이를 본 노인이 다른 세 사람을 살펴보니, 그중 두 사람도 몸을 긁적이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허리춤에 손을 넣어 배를 긁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등을 긁고 있었다. 그때 세 번째 남자가 옷 위로 허벅지 바깥쪽을 긁다가 성에 차지 않았는데 결국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긁기 시작했다.
“그렇게들 가려운가?”
그러자 몸을 긁적이던 이들이 동작을 딱 멈추더니, 우두머리인 남자가 조금 웃음기를 거둔 채 대답했다.
“요즘 계속 몸이 간지럽더라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비슷해요. 꼭 몸에 이가 돌아다니는 것처럼요.”
남자가 이렇게 말하며 손이 닿지 않는 등 뒤를 긁으려고 애를 쓰자,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한걸음 가까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자자, 내가 긁어주겠네.”
그러고는 남자의 옷 뒤로 손을 넣어 척추 가운데 부분으로 뻗으니, 그 위로 오톨도톨 작게 돋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여기지?”
“예, 예, 바로 거깁니다. 거기, 허…… 시원하다…….”
노인이 그 부근을 잠시 긁어주다 손을 빼보니, 자신의 손, 특히 손톱 사이에서 악취가 났다.
“아이고, 냄새야. 자네들 제발 자주 씻고 좀 다니게. 이왕 돌아왔으니 서둘러 돌아가려 하지 말고, 해가 뜨길 기다렸다가 가게. 아옥(阿玉)에게 뜨거운 물을 한 솥 끓이게 할 테니 목욕도 좀 하고. 군영에 급히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저희 군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서 규율이 그리 엄격하지 않거든요. 여기서 좀 쉬다가 가도 별일 없을 겁니다. 점호 때는 이씨 집안 사람들이 둘러대 주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술이랑 음식 좀 내주십시오, 숙부님!”
그러자 노인이 웃으며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를 말인가? 이순자(二順子)는 별일 없겠지?”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숙부님한테 잘 준비하고 계시라고 전한 게 답니다. 이번 일로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으니까요.”
“하하하, 그건 당연하지. 그리고 자네, 이제 아옥을 맞아들여야지?”
“그건…… 하하하…….”
“하하하하…….”
“아이, 아버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다. 노인은 남자와 함께 땅굴에서 올라온 다른 세 남자를 보더니, 마찬가지로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을 위해서도 내가 좋은 낭자를 찾아봐 주겠네. 이제 돈도 있겠다, 걱정할 게 없지. 자, 자, 일단 여기부터 정리한 다음 어서 주방으로 가세. 술과 고기를 데우고 있거든!”
이때 사당의 대들보 위에는 대체 언제 들어왔는지 종이학이 가만히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종이학은 원래 이 집안사람들이 깊은 밤에 수상쩍게 움직이며 사당에 들어가는 걸 보고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종이학의 시선은 땅굴에서 올라온 네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한편 아래쪽의 사람들은 상자를 땅굴 아래에 되돌려 놓고 목판을 옮겨 바닥을 잘 덮은 뒤에 촛불을 끄고는 차례로 사당을 떠났다.
문이 닫히기 직전, 종이학이 마치 가벼운 한 줄기 바람처럼 휙 날아가더니 한쪽 날개로 노인의 손을 스쳤다. 그러자 새까만 실선 같은 것이 노인의 손에서 튕겨 나왔다.
그것이 어두운 담벼락 쪽으로 날아가자, 종이학은 벌레를 발견한 새처럼 즉시 뒤쫓아갔다. 담장 모서리에서 한참을 탐색하던 종이학은 곧이어 작은 풀뿌리를 향해 번개처럼 돌진했다. 종이학은 양쪽 날개로 무언가를 단단히 눌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도망치는 쥐를 잡은 고양이 같았다.
종이학의 두 날개 아래에는 거의 눈곱만한 크기의 무언가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종이학의 날개는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아래도 푹신한 흙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종이학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날개 아래의 검은 그림자는 몸을 빼내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러자 종이학이 고개를 살짝 모로 하여 조심스럽게 날개 아래의 그것을 관찰했다. 그러다 한참 후, 학은 돌연 날개 한쪽을 들어 올리더니 아래로 내리쳤다.
종이학은 연이어 일고여덟 번을 내리친 뒤 살며시 고개를 꺾어 날개 아래의 검은 것을 바라보았다. 눈곱보다 조금 더 큰 그것은 이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안심한 종이학이 날개를 열어 보니, 벼룩같이 작은 괴이한 벌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저택의 주방 쪽에서 새로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잔뜩 소리 죽인 웃음소리와 사람들이 무언가를 씹고 삼키는 소리였다.
그러자 고개를 들어 주방 쪽을 바라보던 종이학의 머리가 희미한 빛에 휩싸이더니, 목 위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학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만 실제 크기보다 아주아주 작았을 뿐이었다.
“까악-!”
학의 입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나와 주위에 울려 퍼지자, 주방에서 들리던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단번에 조용해졌다.
종이학은 부리를 이용해 괴이한 벌레를 물고는 날개를 몇 번 파닥여 날아올랐다. 그런 뒤 저택의 주방으로 날아가 지붕과 벽 사이의 틈으로 들어갔다.
그때 주방 문이 끼익 열리더니, 이씨 노인이 촛대를 들고나와 정원을 비추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버지, 밖에 뭐예요?”
“숙부님, 조금 전에 들린 게 대체 무슨 소리죠?”
노인은 촛불을 사방에 비추며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 소리 같긴 했는데. 아마 봄이 되니 어느 새가 배가 고파 우리 정원에 떨어진 모양이다. 별일 아니야, 어쨌든 절대 사람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됐죠. 자자, 어서 가서 다시 식사합시다.”
그들은 다시 안심하며 주방으로 돌아갔고, 노인은 문을 닫기 전에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했다. 자신들이 큰 재물을 얻은 걸 누군가 알아차린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주방 안에서는 총 아홉 명의 사람들이 8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기분이 들떠 보였고, 음식과 술은 모두 뜨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또한 주방 안에는 숯불이 피어오르고 있어 무척 따스해 보였다.
종이학은 주방의 대들보 위에 앉아 진지하게 아래쪽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학은 모든 이들의 행동을 눈에 담고 있었지만, 학이 가장 중점을 두고 관찰하는 대상은 다섯 명이었다. 바로 땅굴에서 올라온 네 사람과 이 집안의 노인이었다.
네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인 남자는 등을 열 번도 넘게 긁은 후에도 계속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종이학도 날개를 뻗어 자신의 등 뒤를 긁적여 보았으나, 아무 느낌이 없어 학은 곧 흥미를 잃고 말았다. 한편 아래쪽의 분위기는 계속해서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이고, 그것참. 자네들 냄새가 엄청나구먼! 자자, 건배하세.”
“하하하하, 그나마 아직 신이라도 신고 있지, 벗으면 더 날걸요! 한번 보여드릴까요?”
“됐네, 됐어. 밥 먹는 중이지 않은가!”
“하하하하……!”
“너는 발 냄새도 나랑 비등비등하면서 뭘 웃어!”
노인은 자신의 잔에 든 술을 한입 마신 후, 왼손으로 오른손을 긁적이면서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이순자네까지 전부 돌아오고 나면, 우리도 앞으로 편하게 살 수 있겠군.”
“맞습니다, 그런데 숙부님, 이씨 집안에서 말하기를 최대한 준비를 단단히 해놓으라고 했어요.”
“왜지? 전방의 상황이 정말로 그렇게 안 좋은가? 언제나 승전을 거두지 않았나?”
네 사람이 침묵에 잠기자,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일시에 가라앉았다. 잠시 뒤 우두머리인 남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정확한 상황은 저도 잘 모르지만, 듣기로 저희보다 전방에 있는 군영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또 그 선사(仙師)라는 이들도 아무래도 심상치 않고요.”
“맞아, 맞아. 어떤 선사들은 말로만 선사지, 전혀 신선 같아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아예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쉬…….”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겁낼 게 뭐 있나? 얼마 전에 군영에 들어온 그 두 사람도 생긴 게 꼭 해골 같아서, 그날 밤 내내 악몽을 꾸었지 뭔가. 꿈에서 내 온몸을 벌레들이 잔뜩 뒤덮었는데, 어휴.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하하하, 알겠네, 알겠어. 듣는 나도 소름이 돋는구먼. 어서 들게, 어차피 자네들은 금방 돌아올 테니, 전쟁은 그자들더러 하라고 하지!”
“맞습니다! 자, 어서 술이나 마십시다!”
“자, 건배!”
종이학은 이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방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밖으로 휙 날아갔다. 하지만 아래쪽에서 먹고 마시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