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03화 (703/892)

703화. 은환(*隱患: 잠복한 위험)

계연과 처음 남도현성에 왔을 때, 종이학은 이곳이 아주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그러니 이씨 일가처럼 집안에 땅굴을 만드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듯하나 이곳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전쟁터에서 이득을 좀 얻어보려고 저마다 종군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편, 고요한 거리에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일렬로 서서 벽에 딱 붙어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 등 뒤나 허리춤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아주 민첩하게 걸으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종이학은 공중에서 천천히 그들을 뒤쫓았다.

약 반각(半刻) 뒤, 관아 근처에 도착한 이들은 등불이 켜진 한 담장 너머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는 짧은 비명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주 잠시뿐이었고, 사위는 곧바로 다시 고요해졌다.

종이학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날아가 보니, 바로 남도현성의 감옥이 있는 곳이었다. 감옥의 문 앞에는 이미 관차 두 명이 땅에 쓰러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내들이 어둠을 헤치고 감옥 안으로 들어가니, 곳곳에 악취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형님, 좀 어떻습니까?”

“큰형님! 대체 어쩌다 이리되셨습니까!”

“형님! 저 금수만도 못한 놈들! 제가 전부 죽여버리겠습니다!”

감옥 안에서 사내들의 잔뜩 억눌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이학이 감옥 깊은 곳으로 날아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 감방 안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온몸이 피와 농창(*膿瘡: 종기 따위가 오래되어서 살 속 깊이 헐고 표면에는 고름이 고이거나 딱지가 앉는 부스럼)으로 뒤덮인 남자가 침상 위에 엎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서는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났는데, 밀폐된 공간인 만큼 그 냄새가 더욱 역하게 느껴졌다.

“네 이놈! 감히 우리 형님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다니!”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이렇게 소리치며 옥졸의 목을 꽉 움켜잡았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무쇠로 된 집게 같아, 옥졸의 얼굴이 일시에 붉어지더니 숨이 턱 막혔다.

“어,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소인, 소인은 정말로 서(徐)씨 어르신을 다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서씨 어르신은 전선의 영웅이신데, 소인이 어찌 감히…….”

“흥, 어서 이 문이나 열어라!”

남자가 옥졸을 감방문 앞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켁켁…… 켁……. 예, 예. 소인, 당장 문을 열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저는 정말로 서씨 어르신을 다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옥졸은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끌러, 그중 열쇠 하나를 찾아내서는 감방문에 걸린 자물쇠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아, 옥졸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이 긴장해서 열쇠를 잘못 찾았다며 연신 사죄했다.

“바, 밖에 누구시오…… 덕, 덕성(德盛)이냐…… 너희들…….”

이때, 감방 안에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울리며 죽은 듯이 누워있던 남자가 정신을 차린 듯이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바깥에 있던 사내들이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형님!”

“형님! 저희 왔습니다, 저희가 곧 여기서 빼내 드릴게요!”

“큰형님, 저희가 너무 늦게 와서 그간 형님께서 고초가 많으셨지요!”

감방 안에 있던 남자가 힘들게 머리를 들어 올리자, 산발이 된 머리카락 사이로 촛불 아래 선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은 감방의 자물쇠를 열려고 애쓰는 옥졸의 목에 칼을 갖다 대고 서 있었다.

그때 마침 자물쇠가 철컥 열렸다.

“어르신, 문을 열었습니다. 저…….”

옥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옥졸의 가슴팍에서 칼날이 쑥 튀어나왔다. 그는 고통과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다른 남자들은 이때 자물쇠에 걸쳐진 쇠사슬을 풀며 막 문을 열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안쪽에 있던 남자가 돌연 이렇게 소리쳤다.

“오…… 오지 마라! 들어오지 마!”

그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자, 들어오려던 이들이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큰형님, 저희입니다!”

“형님, 형님을 여기서 빼내려고 저희가 왔습니다!”

안쪽에 있던 남자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바깥으로 휘두르면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안다, 나도 알아. 그래도, 들어오지 마라. 어서 가.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좋다. 그리고 이 감옥은 전부 태워, 태워야 한다. 나도 함께 말이다! 뭔가가 내장 안에 파고들고 있어……. 나, 나도 뭔지 모르겠으니, 태워야 한다, 여길 전부 태워…….”

“형님, 알겠으니 일단 여길 먼저 나갑시다. 까딱 잘못하면 발각될지도 몰라요!”

“그래. 일단 형님부터 데리고 가자!”

그들은 조금도 꺼리는 기색 없이 온몸에서 고름과 악취를 내뿜는 남자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갔다.

종이학은 그들을 따라 감옥을 나선 뒤 얼마간 그 뒤를 따라갔다. 공중에서 잠시 망설이던 종이학은 잠시 후 성 밖으로 날아가더니, 계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이때, 계연은 이미 잠이 든 뒤였다. 하지만 본인이 유몽술을 처음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인지, 계연은 자주 이 술법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꿈에서 여전히 생생히 주위를 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꿈속이 무척 생생하다고 느끼지만, 이는 그들이 꿈을 꾸고 있는 걸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계연은 꿈속에서도 수행을 닦을 정도인 만큼, 뭔가를 생생하게 느낄 때가 드물었다. 때로 계연은 일부러 그런 감각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계연이 한참 곤히 자고 있을 때, 종이학이 날개를 펄럭여 빠른 속도로 계연이 있는 언덕으로 날아왔다. 계연이 누운 커다란 돌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금갑은 고개를 들어 올리거나, 종이학을 향해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을 뿐, 종이학이 날아와도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종이학은 가볍게 암석 위에 내려앉은 뒤, 날개로 살짝 계연의 이마를 쳤다. 그러자 계연이 눈을 뜨고는 달빛처럼 희뿌연 두 눈으로 종이학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종이학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종이학의 목 위가 다시 희미한 빛으로 덮이더니, 종이학은 생생한 홍정학(*紅頂鶴: 머리에 빨간 반점을 가진 하얀색의 학)으로 변했다.

“까악-!”

“오, 이제 소리도 낼 줄 아는구나?”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기쁜 듯이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미소가 걷히더니 무척 엄숙한 표정으로 변했다. 종이학이 학 부리에서 눈곱보다 조금 더 큰 이상한 벌레를 뱉어냈기 때문이었다.

계연은 자면서 몸에 쌓인 눈을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털어낸 뒤, 괴이하고 자그마한 벌레를 집어 들었다. 계연의 눈에는 그 벌레가 꽤 또렷하게 보였는데, 보아하니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해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벌레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계연은 벌레에게서 시선을 옮겨 옆에 있는 종이학을 향해 물었다.

“어디서 잡아 온 거지?”

종이학은 계연의 어깨에 올라앉더니, 한쪽 날개로 멀리 현성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남도현성?”

“꾸륵…….”

계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접어 점을 쳐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암석 아래에 앉아 있던 금갑도 그의 뒤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미쳤다고밖엔 할 말이 없구나!”

낮게 읊조린 후, 계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어깨 위의 종이학에게 말했다.

“앞으로 뭔지 모르는 것은 먹지 말아라.”

그러고는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라 남도현성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갑도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이들의 시야에 주변의 광경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갔다.

종이학을 어깨에 달고 있는 계연과 붉은 얼굴의 금갑은 순식간에 남도현성 남문(南門)의 성루 위에 도착해 있었다.

마침 간밤 내내 내리던 눈이 멈추고 먹구름도 많이 흩어진 뒤라 밝은 달이 성안의 풍경을 환히 비추었다.

계연은 법안을 크게 열어 성안을 훑어본 뒤, 금갑과 함께 흩날리는 연기로 변하여 멀리 성 북쪽의 한 거리 끝자락에 내려섰다.

계연의 눈앞에 나타난 이들은 야행복을 입고 각종 무기를 지닌 한 무리의 사내들이었다. 그중 두 사람은 의식을 잃은 듯한 남자를 함께 부축했는데, 남자는 온몸이 지저분했고 피부에 고름이 찬 농창을 달고 있었다. 그들은 경계를 잔뜩 세운 채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려는 중이었다.

그들 중 전방을 주시하는 책임을 맡은 남자는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은 장삼을 입고서 한쪽 팔을 뒷짐 진 채 서 있었고, 체격이 우람한 다른 한 사람은 철탑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추격병이다!”

사실 맨 앞에 선 사내가 이렇게 알릴 필요도 없이, 이미 다른 이들도 계연과 금갑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린 뒤였다.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는 각자 무기를 손에 들고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뿐인가?”

“방심해선 안 돼, 저 두 사람은 척 봐도 고수 같아!”

“어쩌지?”

“어쩔 수 없지, 저자들은 경공 실력이 뛰어난 듯하니, 어차피 죽이지 않으면 우리도 달아날 수 없다. 너희 둘이 형님을 살피고, 우리가 저자들을 상대하자!”

“예!”

“덤벼라!”

챙, 챙, 챙-!

그들은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곧장 무기를 뽑아 들더니 계연과 금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든 과정이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여러분, 잠시만요.”

계연이 손을 들어 올리자, 칼을 뽑고 덤벼들던 사내들의 동작이 일순 멈췄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무기를 거둬들이지 않았고, 이들은 다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계연은 한쪽으로 몸을 휙 피하자, 세 자루의 칼과 두 자루의 검이 동시에 허공을 그었다. 그들의 칼날은 계연에게서 단지 한두 치(약 3~6cm) 정도 떨어진 아슬아슬한 곳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 커다란 칼날이 다시 한번 떨어져 내리는 순간, 굵은 팔 하나가 칼날을 향해 뻗어왔다.

퍼억-!

금갑이 커다란 칼을 움켜쥐자, 칼을 휘두르던 사내는 아무리 애를 써도 칼을 움직이거나 빼낼 수 없었다. 칼날은 마치 그대로 녹아 철탑과 한 몸이 되어버린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계모(某)는 여러분을 추격해온 게 아닙니다.”

계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한 뒤 금갑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금갑이 칼날을 쥐고 있던 손을 확 풀었다. 그러자 칼을 쥐고 있던 사내가 비틀거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그럼 당신은 누구요? 왜 우리를 막아선 것이오?”

계연은 두 남자의 부축을 받는 죄수복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남자 때문에 온 거예요.”

“그러고도 우리를 추격한 게 아니라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다시 한번 흥분하기 시작했으나 곧장 무기를 휘두르지는 않았다. 서생처럼 보이는 눈앞의 남자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건장한 체격을 지닌 거한의 실력이 남다른 듯했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몸에 난 농창은 일반적인 게 아니라, 삿된 술법에 당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그의 몸을 벌레에게 먹여서 충인(蟲人)을 만들어내려 한 거죠. 지금 저자는 온몸이 수천수만 마리의 벌레들에게 뜯어먹히고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울 거예요. 저 사람을 부축하던 두 분도 이미 충역(蟲疫)이 옮은 상태고요.”

“허?”

“뭐라고요?”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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