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04화 (704/892)

704화. 충역(蟲疫)

계연이 죄수복을 입은 남자 가까이 다가가자, 곁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무기로 그를 겨눴다. 그들은 계연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연과 죄수복을 입은 남자를 계속해서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결코 물러설 뜻은 없어 보였다.

“저 사람을 깨운 후에 직접 말하게 하면 되겠네요. 두 분, 그 사람을 바닥에 내려놓아 주세요.”

남자를 부축하던 두 사람은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로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그중 우두머리인 큰 칼을 든 남자는 감옥에서 자기 형님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잠시 주저하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말대로 해라.”

그래서 그들은 죄수복을 입은 남자를 조심스레 담장에 기대 앉혔다. 계연은 그를 가로막고 서 있던 남자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악취가 코를 찌르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겉으로 드러난 남자의 발목, 손목, 심지어는 가슴 부근과 목 등에도 모두 농창이 가득 자라난 것이 보였다. 그중 적지 않은 농창은 이미 터져 있었다. 그나마 얼굴은 괜찮은 듯했으나, 아래턱에 이미 새로운 농창이 자라고 있었다.

계연이 손을 뻗어 남자의 이마에 살짝 갖다 대자, 한 줄기 영기(靈氣)가 미간으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계연은 뒤에 선 두 사내가 쉬지 않고 어깨와 팔을 긁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곧이어 눈앞의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윽, 하윽……. 이건, 바람? 여기가 어디지…….”

남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그의 두 눈은 이미 혼탁하여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뻗어 허우적대다가 곧 초봄의 찬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공기도 감옥보다 훨씬 깨끗했다.

“형님!”

“형님, 깨셨군요!”

검은 옷을 입은 이들 중 한 사내가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고 죄수복을 입은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계연이 뻗은 팔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주위에서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돌연 몸을 떨더니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너희들? 너희들이냐? 방금 그게 꿈이 아니었어? 그럼 왜 내 말대로 나를 감옥과 함께 불태우지 않았느냐? 왜 내 말대로 하지 않았어, 왜? 언제나 내 말을 따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내 말대로 하지 않은 거야!”

남자는 격렬히 흥분을 쏟아내다가 돌연 말을 멈추고는 다시 급박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날 데리고 나왔지? 날 만진 이가 있느냐?”

“형님, 저와 여덟째가 형님을 부축해서 데리고 나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을 부축하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아, 관아의 추격병들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던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계연과 금갑을 흘끗 바라보았다. 이 두 사람은 확실히 관아에서 나온 이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뭐? 나를 만졌다고? 지금 느낌이 어떠냐?”

“예? 형님, 왜 그러십니까?”

“대답해라!”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소리치자, 사내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잠시 후, 조금 전에 대답했던 사내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조금 간지러운 것 말고는, 괜찮습니다.”

내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계연이 이때 왼손으로 인을 맺었다. 그러자 그에게 이끌린 듯 어디선가 물살이 나타나더니, 두 남자의 몸에서 은은한 검은 연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계속해서 계연의 손바닥을 향해 모여들더니, 잠시 후 꿈틀대는 포도 크기의 검은 물질이 되었다.

‘이렇게나 많다니!’

계연은 속으로 깜짝 놀라 등허리가 다 서늘해질 정도였다. 이 두 사람의 몸에 있던 벌레의 수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벌레들을 뽑아내는 과정도 생각보다 더욱 복잡했다. 벌레들은 아주 깊게 파고들어 있어, 심지어는 혼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혹 이 벌레들이 어디서 온 것들인지 아시나요? 당신의 형제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이미 그것들을 다 처리했으니까요.”

‘벌레?’

사내들이 놀란 얼굴로 계연의 왼손 위 상공에 떠 있는 한 검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그중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관찰해보았다. 무인답게 뛰어난 시력 덕분에 달빛 아래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꿈틀대는 아주 작은 벌레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둥글게 뭉쳐져 있는 것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고 역겨웠다.

“이게 대체 뭐지?”

“정말 벌레네!”

“소름이 다 돋는군!”

“설마 우리 형님의 몸에도 이런 것들이 있단 말인가?”

사내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죄수복을 입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왜냐하면 달빛 아래, 그들 큰형님의 몸 곳곳을 꿈틀대며 돌아다니는 벌레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농창이 있는 부위는 더욱 심해, 벌레들이 피부 바깥에까지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고 있었다. 빽빽한 벌레들은 그 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달빛의 영향 때문인지, 벌레들은 모두 죄수복을 입은 남자의 몸 더욱 깊은 곳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그런데도 남자의 피부 표면으로 꿈틀대는 것들이 보일 정도였다.

화르륵-!

계연의 왼손 손바닥 위로 화염이 솟구치더니, 주위를 밝게 비추는 동시에 그 위에 떠 있는 벌레들을 단번에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타닥타닥 벌레들이 불타오르는 소리가 났다.

“아직 정신이 맑을 때, 제게 당신이 아는 것에 대해 전부 이야기해주세요. 이일은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될 수도 있어요.”

죄수복을 입은 남자는 벌레들이 불에 타며 나는 냄새를 맡았다. 그는 계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계연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허약한 그의 몸이 옆으로 스르르 기울어지자 계연이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

“만, 만지지 마시오!”

“괜찮아요, 제게 이 벌레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이놈들이 절 두려워하고 있죠.”

계연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죄수복을 입은 남자 본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 모두는 벌레들이 계연의 손이 닿은 어깨 부근에서 재빨리 멀어지는 것을 달빛 아래서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벌레들이 움직이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분명 선사(仙師)시군요! 제발 우리 형님을 좀 구해 주십시오!”

“제발 저희 큰형님을 구해 주세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무 늦었어요. 몸도 혼백도 모두 먹혀버렸거든요. 지금 이 벌레들을 뽑아내면 이 사람도 죽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어서 아는 대로 이야기해주셔야 해요. 그러고 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드릴게요.”

계연이 불어넣은 영기 덕분에 말할 힘이 충분했던 그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군영에서 보고 들은 것과 의심스러웠던 것들을 모두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서우(徐牛)로, 원래 조월국 대군의 한 군영에서 후군(後軍) 사마(*司馬: 군정(軍政)을 맡아보는 벼슬)를 맡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자기가 있는 군영의 몇몇이 악질에 걸렸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후에 악질이 다른 이들에게 옮기 시작하자 온역(*溫疫: 급·열성 전염병을 두루 일컬음)이라고 여기고 즉시 상부에 보고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전염병에 걸린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마침내 선사 두 명이 사태를 살피러 왔다. 하지만 내내 선사들의 분부를 착실히 따르던 서우는 왠지 그들이 병을 고치러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전염병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많은 이들이 선사들과 만난 후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한번은 병세가 심각한 어느 병사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군영 밖으로 달려가더군요. 그래서 제가 급히 따라갔더니, 달빛을 받은 그의 피부 아래로 벌레들이 잔뜩 기어 다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에 겁에 질린 저는 더 이상 그를 뒤쫓지 못했고, 다시 군영으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아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군중에서 지명 수배를 내려 관아에 잡혀 들어갔고, 제게도 점차 그 전염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우는 이 일이 조월국 군중에 있었던 소위 선사라는 이들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설명을 마친 그는 분노를 뿜어내며 이렇게 소리쳤다.

“분명 그 선사들이 한 짓입니다, 아니, 선사가 아니라 삿된 술법을 부리는 요사한 인간들이 분명합니다! 저를 불태워 주십시오, 이 역병을 더 이상 퍼져나가게 해선 안 됩니다! 저를 불태워 주세요! 그 옥졸들, 옥졸들도 분명 옮았을 겁니다! 전부 태워야 합니다, 전부!”

계연이 그의 말을 들으며 손가락을 접어 점괘를 쳐보다 점점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이 벌레가 조월국 군중의 소위 선사라는 이들과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신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속세의 분쟁과 큰 관련은 없어 보였다. 즉 이 벌레가 퍼져나간 근원과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 * *

“저기 연기가 나는군, 저쪽이 아닌가?”

“가세, 살펴봐야겠어!”

“어서 따라와라!”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남도현 관아의 관차들이 어느 거리의 끝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연기와 무언가 탄 듯한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방금 뭔가를 태운 것 같군. 도망친 죄수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 한밤중에 누가 여기서 물건을 태웠지?”

관차들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계속해서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이미 재가 된 서우의 유해를 안고 남도현성을 떠난 뒤였다. 육신을 되살리기는 너무 늦었기 때문에, 계연이 할 수 있는 것은 서우의 남은 혼을 보전하는 것뿐이었다.

* * *

계연은 사당에 땅굴이 이어진 그 저택 안에 들어와 있었다. 뜰에 서서 완전히 고요해진 저택 내부를 잠시 둘러보던 계연은 곧 충역(蟲疫)에 옮은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반각(半刻) 뒤, 계연은 저택을 빠져나와 남도현을 한 바퀴 돌면서 발견한 벌레들을 모두 거둬갔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날아갔고, 그의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약 한 시진(時辰: 2시간) 뒤, 계연은 조월군 후방의 한 군영에 도착했다. 그는 공중에서 잠시 군영을 지켜보다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여러 군영을 수색했다.

이 벌레는 아주 희귀한 사술(邪術)의 일종이었다. 충역이 퍼지는 것만 보면 마치 그 벌레들이 자주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 술법을 펼친 자가 모든 벌레에 대한 통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계연은 수많은 군영을 돌아다니면서, 아주 많은 이들이 이미 충역에 감염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그동안 군영에서 도망쳐 나온 감염자들이 조월국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거라는 걸 충분히 짐작해낼 수 있었다.

이 일은 더 이상 계연 혼자 돌아다니며 벌레들을 처리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 소식을 알리는 것 외에, 지금 가장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은 이 술법을 펼친 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자의 도행은 필시 보통 수준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많은 벌레를 통제할 수 있는 걸 보니, 법기(法器)를 만들어낼 때처럼 특별한 제련 과정을 거쳤거나, 이 벌레들의 모충(母蟲)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어떤 특수한 법기를 소유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설령 시술자가 이 술법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충이나 법기를 찾아내 훼손하기만 하면 이 수많은 벌레를 무용지물로 만들거나 아예 죽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충역에 걸린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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