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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05화 (705/892)

705화. 사형제(師兄弟)

조월국의 중군(中軍) 진영은 이미 조월국의 국경선 안으로 물러나 있었다. 여명에 가까워진 시각, 어느 큰 막사 안에는 여전히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차림새를 한 수행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남녀가 섞여 있었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외양을 지닌 자도 있었다.

그들은 마침 어떻게 대정군과 맞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백발의 노인 두 명이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녔는데, 두 사람의 외양은 바짝 말라비틀어진 모습이었다. 방석 위에 앉아 가부좌를 튼 이들의 모습은 마치 머리를 산발한 해골 두 구 위에 옷을 걸쳐놓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이 의논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분 선배님들, 전에 선배님들께서 충병(蟲兵)은 홀로 천명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고 하셨었지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벌레에 먹힌 병사들의 숫자가 만 명을 넘어가는데, 언제 그들을 쓸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점점 늘어나는 대정군의 수사(修士)들은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요?”

해골 같은 모습의 두 노인은 질문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그러자 막사 안이 어색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한참 뒤, 그중 한 노인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그 한 쌍의 혼탁한 눈으로 주위의 수사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과 마주친 이들은 사람이든 요괴든 모두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하하, 충인(蟲人)을 제련해내는 게 어찌 그리 쉽겠소. 군영 안의 모든 감염자는 제 몸으로 벌레들을 번식시키는 도구일 뿐이오. 순조롭다면 한 사람당 하나씩 충왕(蟲王)을 탄생시킬 수 있을 테지만, 뇌를 집어삼켜야만 충왕 하나를 얻을 수 있소.

수만 명의 병사를 먹여도 얻을 수 있는 충왕은 기껏해야 열 마리 중 하나, 둘이 전부요. 하지만 충왕은 수련을 할 수 있는 데다, 사람의 뇌에 들어가 상대를 꼭두각시처럼 통제할 수 있소. 주위 수천수만의 벌레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벌레에 감염된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명을 듣게 할 수 있으니, 범인(凡人)으로 이루어진 대군을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오.”

노인은 느긋하게 설명하다가 잠시 멈추더니, 곧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정국의 수사들은 여러분들이 걱정할 거리도 못 되오. 일만 마리의 충왕을 얻으면 그것들에게 젊은이들의 피와 살을 먹여 다시 충황(蟲皇)을 탄생시킬 수 있소. 그것을 다시 만 마리의 벌레와 합치면 진정한 충인이 탄생하오.

충인은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고 못 하는 것이 없소. 설령 대정군에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이가 있더라도 충인을 상대로는 기껏해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오.”

말을 마친 노인은 다시 눈을 감고 홀로 수행 상태에 접어들었다. 자리한 수사들은 그의 말이 의심스럽긴 했으나, 차마 그것을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저 두 사람의 도행이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들이 군영에 처음 왔을 때, 혈혈단신으로 연추산 산신을 만나고 오겠다며 연추산에 가서는 무사히 돌아오기도 했었다.

두 노인 중 다른 하나가 이때 눈을 뜨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 연추산 산신이 대정국 쪽에 합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산신을 도발하지 않고 최대한 그 산을 피해 다니면 별일 없을 것이오. 우리 사 형제 중 두 사람은 충병이 제련되면 곧 떠날 것이고, 가지고 있는 충황도 이미 조월국 황제께 바쳤으니 더 이상 우리 도움에 기대어 대정군 수사들을 상대하려고 하지 마시오.”

충병을 기르는 이 술법은 잔인하다면 잔인했으나, 무척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어 겉으로는 그저 온역이 퍼진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의원이 달인 약을 먹으면 증세가 살짝 나을 정도니, 수사들조차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벌레들은 특수한 상황의 달빛 아래에서만 그 정체가 드러날 뿐이었다.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고, 양국이 계속해서 교전하면서 곳곳에 시체들이 널린 상황이니 군영에 온역이 도는 것도 무척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또한 병에 걸린 이들의 증세가 심각하다는 걸 알면 다른 이들은 병에 옮지 않기 위해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이 일의 실체가 널리 퍼지지 않았다.

두 노인이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자, 막사 안의 어느 수사가 다시 새로운 근심거리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조월국 안에는 그 실력이 대단한 무애귀성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 성의 귀신들은 조월국의 신하도, 대정국의 신하도 아니나, 하는 일을 보면 명백하게 대정국 쪽에 기울어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두 분 선배께서는 혹시 저희가 이들을 어찌 상대해야 할지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하! 그 귀성의 주인은 이익이 눈이 멀고 망상에 가득 차, 귀도(鬼道)의 힘을 증명하겠다며 자신이 신령이라도 된 듯 행동하니,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오.”

이렇게 대답하던 두 사람은 순간 무언가를 느낀 듯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지니고 있던 보물 하나가 급격하게 뜨거워진 것이다.

“설마 발각된 건가?”

“두 분 선배님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두 노인은 사방을 조심스럽게 둘러본 뒤, 해골 같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골칫거리가 닥친 듯하니, 먼저 가보겠소. 그럼 이만!”

그러자 막사 내에서 스스로 도행이 조금 높다고 자부하는 수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겠습니까?”

“당신들이? 하, 그냥 앉아계시오. 충병의 일은 계속 모르는 척하시오.”

두 사람은 몇 걸음 만에 막사를 나서더니, 곧장 지면에서 떠올라 밤하늘 사이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군영을 벗어난 지 채 일각(15분)도 되지 않아, 다시 그 위기감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한 줄기 검광이 이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에 두 사람은 뒤쪽의 검광을 한번 보고는, 상의라도 한 듯이 각자 미간에서 피를 한 방울 뽑아내 법력과 섞었다. 그러자 빛이 환하게 비치며 둔술(*遁術: 다른 물질의 도움을 빌려 숨거나 도망치는 술법)이 펼쳐지더니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후, 계연의 검광이 두 사람이 있던 공중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법안을 모두 열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계연은 검둔(*劍遁: 검을 이용한 둔술)을 유지한 채, 유몽술을 이용해 자신의 꿈과 의식 세계로 현실 세계를 덮어버렸다.

그러자 막대한 심신(心神)의 힘이 소모되는 동시에, 하늘을 떠받치고 선 거대한 계연의 법상(法相)이 나타났다. 그는 잠시 그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 방향을 돌려 계속해서 두 사람을 뒤쫓아갔다.

두 노인은 둔술 덕분에 거리를 꽤 벌렸다고 생각했으나, 어쩐 일인지 머릿속에 돌연 하늘과 땅이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이들은 전혀 몸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이 감각은 다시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두 사람은 즉시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 중 사형(師兄)인 노인이 즉시 사제(師弟)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필 이때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다니. 황당하긴 하지만 우리를 뒤쫓는 사람은 그 선생이 틀림없다!”

“그가 직접 몸을 움직이다니요? 사형, 어쩌면 좋겠습니까? 저희가 그자를 따돌릴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의 사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대사형이라 하더라도 그 선생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으려 하니까. 오늘 밤 우리 형제 둘 중에, 아무래도 한 사람만 벗어날 수 있을 듯하구나.”

“그럼, 사제가 남겠습니다. 그 선생의 실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겠네요. 제가 사형을 대신해 그를 붙잡고 있겠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네 도행으로는 어차피 오래 붙잡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그가 진짜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끌 수 있겠으나, 일단 진짜로 손을 쓰기 시작하면 넌 그의 공격을 몇 번 맞받아치지도 못할 것이다. 네가 남으면 우리 둘 다 도망치지 못할 테니, 사형인 내가 남는 게 낫다!”

“사형…….”

사제가 계속해서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저 멀리 뒤쪽에서 낮고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는 멀었지만, 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것처럼 계연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는 계연이라 합니다. 두 분 잠시 멈춰 주시지요.”

두 사람 중 사형은 고개를 돌려 계연이 다가오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다시 사제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

“잔말 말고 어서 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죽을 것이다. 평생 닦은 도행을 걸고 한번 겨뤄볼 테니, 어쩌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어서 가!”

“사형, 조심하십시오!”

사제 쪽이 짧은 한마디만 남긴 뒤 다시 피를 한 방울 짜내 전방을 향해 멀리 도망쳤다. 그의 사형은 천천히 둔술의 속도를 늦춘 뒤, 계연이 오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곧이어 날카로운 검광이 순식간에 날아오더니, 공중에 서 있는 계연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계연은 눈앞의 노인을 위아래로 관찰하더니, 다시 그의 뒤쪽을 살피며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서 온 이들이죠? 조월국 쪽에 합류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고충술(*蠱蟲術: 회충과에 속하는 기생충을 다루는 술법)로 조월군을 돕는 건가요? 일단 이건 됐고, 그 술법을 풀면 오늘 밤 두 사람에게 살길을 열어주겠습니다. 어떤가요?”

노인은 사실 무척 긴장하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이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계 선생, 굳이 저를 속이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밤에는 우리를 놓아주겠지만, 이각(30분)만 지나면 오늘 밤이 지나지 않습니까? 선생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충황은 이미 송씨 황제에게 넘겼고, 이미 그의 신혼(身魂)과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풀 건가요, 풀지 않을 건가요?”

계연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이렇게 묻자, 곧이어 노인이 말을 내뱉었다.

“그럴 수 없…….”

계연은 곧장 검을 날렸다.

챙-!

눈처럼 새하얀 검광이 삽시간에 어두운 밤을 환히 밝혔고, 노인의 눈앞도 온통 눈을 찌를 듯한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위험을 감지한 순간, 이미 검이 날아왔다.

퍼엉……!

그때 노인의 허리춤에 있던 옥패가 산산이 부서졌다. 원래대로라면 반으로 갈라졌어야 할 노인은 백 리(里) 밖으로 멀어져 호흡을 골랐다.

“과연 목숨을 대신해주는 물건이 있었군!”

계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즉시 그를 향해 날아갔다.

선검을 날린 순간, 사실 계연은 그의 몸만 벨 뿐 원신(元神)은 남기려 했었다. 하지만 노인이 그 일검을 막기 위해 목숨을 대신해주는 귀중한 보물을 썼으니, 계연으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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