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화. 바다 같은 진화(眞火)와 구천(九天)에 일어난 검기
넝쿨검이 검집에서 나오자 어두운 하늘을 검광이 환히 밝혔다. 그때 이미 저 멀리까지 도망친 사제가 고개를 돌려보니, 저쪽에 노을빛 같은 것이 번지는 게 보였다.
반쪽 하늘에 번진 그 빛은 자신의 사형이 고법(蠱法)을 펼쳤고, 그의 선충(仙蟲)이 운해처럼 하늘을 뒤덮었다는 뜻이었다.
‘사형…….’
사형이 곧장 목숨을 건 공격을 시작한 걸 보고, 사제는 다시 사안의 심각성을 느끼고는 다시 법력을 써서 속도를 높였다. 그는 계속해서 고도를 올리며, 층층이 뒤덮인 먹구름을 뚫고 강풍이 부는 고공으로 올라갔다.
휘이이…… 휘이이……!
귓가에 바람 소리가 윙윙대며, 형태 없는 바람은 사제의 주위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아래쪽의 구름층도 바람에 의해 온통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사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심상찮음을 느끼며 자신의 정혈(精血)로 둔술을 펼쳤다. 그러자 둔술로 인해 빛이 번쩍였지만, 술법은 전방의 바람을 뚫지는 못했다.
퍼엉!
마치 타고 있던 말이 벽에 부딪힌 것처럼 노인은 곧장 바람에 부딪혀 튕겨 나갔고, 그는 너무 어지러운 나머지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그때 형태가 없던 바람이 회오리바람을 형성하여 점차 형태를 갖추더니, 곧 그 위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안 돼!”
슈욱-!
대응할 시간도 없이 금빛은 순간적으로 노인을 바짝 조여들었다. 노인은 곧 자신의 법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온몸이 무력해진 그는 곤선승에 돌돌 묶인 채로 머리만 간신히 드러낸 종자(*粽子: 찹쌀과 대추, 팥 등 각종 재료를 대나무 잎에 싸서 쪄먹는 중국요리) 같았다.
다음 순간, 곤선승은 금색의 잔영만을 남긴 채 한 줄기 금빛이 되어 바람을 뚫고 사라져 버렸다.
한편, 계연 쪽에서는 사형인 노인이 해를 뒤덮을 정도의 벌레 떼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벌레들은 점점 더 수가 늘어나, 마치 하늘을 뒤덮은 벌떼 같았다. 그것들은 노을빛을 내뿜고 있었고, 바람과 구름을 어지럽히기까지 했다.
넝쿨검의 검광이 번쩍이며 이 벌레 떼를 휙 긋고 지나가자, 셀 수 없이 많은 벌레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중에는 검기(劍氣)에 스친 벌레도 있고, 진짜로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 죽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추락하는 벌레 중에서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것들은 땅에 닿기 전에 다시 한번 날아올라 그 끈질김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도 이 술법을 펼친 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위이잉……!
어느샌가 계연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은 선충으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그 노인의 기운은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가 선충으로 이루어진 몸이었다니, 내가 당신을 얕잡아 봤군요!”
계연은 살짝 놀란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선충들은 그야말로 백 리(里)를 뒤덮을 정도였다. 이것들이 이대로 양국이 교전하는 곳을 향해 내려가면, 양쪽 군사들은 더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보니 이들이 정말로 깊이 개입한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하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계 선생님. 이 후배는 그저 자신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노인의 목소리는 바다처럼 주위를 뒤덮은 선충 중 하나에게서 들려왔다. 벌레 떼는 앞뒤로 늘어나더니, 점점 더 좁고 길게 변해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편, 계연에게서 가까운 곳의 선충들은 노을빛을 내뿜는 거대한 손으로 변해 계연을 잡으려 했다.
쿠웅……!
하늘 한쪽이 진동하더니, 주위의 구름이 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계연은 날아오는 거대한 손은 피했지만, 주위에 점점 더 많은 선충이 나타나고 있었다. 위아래 사방팔방 선충으로 뒤덮이지 않은 곳이 없었고, 벌레들의 입과 뾰족한 다리 등이 눈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늘 저 끝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곤선승이 날아왔다. 이를 본 계연은 곤선승이 도망친 나머지 한 사람을 잡아 온 것을 알아채고는 살짝 안도했다.
계연이 손을 들어 올려 곤선승을 소매 속으로 돌려보낸 뒤, 계연의 의식 세계 안 단로의 덮개가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자 단로 안에서 무궁무진한 불길이 치솟더니,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금교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외부 세계의 계연은 이때 기해(*氣海: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계연의 얼굴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계연은 법안을 모두 연 채로, 의식 세계 안에서 하늘과 땅을 뒤덮은 불바다를 관상(*觀想: 우주 만물과 소통하고 하늘과 합일(合一)하기 위해 사물을 마음속으로 형상화하는 도교의 명상법)해내기 시작했다.
그 뒤 계연이 입을 벌리자 삼매진화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화르르-!
삼매진화가 계연의 입에서 나오자, 늙은 용이 물을 토하면 푸른 파도가 만 리(里)에 넘실대듯, 삽시간에 하늘 전체가 불바다로 뒤덮였다.
그 강렬한 불길은 어두운 밤하늘과 여명의 어슴푸레함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노을처럼 찬란한 붉은빛을 내뿜는 불길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치명적일 정도로 뜨거운 온도와 위험성이 느껴졌다.
선충들이 이 불바다와 맞닥뜨린 순간, 불길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선충이 불에 타오르자, 선충의 기운도 급속도로 약해지기 시작했다.
삼매진화의 불길은 유형의 존재는 물론 무형의 존재도 피할 수 없었다.
“끼이이이-!”
선충들은 삼매진화에 산 채로 불태워지는 동족들의 고통을 모두 느끼기라도 하듯이 다 함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길이 퍼지는 속도는 선충들의 비명보다 훨씬 빨랐다.
계연은 불을 뿜어낸 후에 자신도 뒤로 물러났다. 계연은 불길을 계속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불바다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는데도 그 화력 때문에 거리를 벌려야 했을 정도였다.
“크윽…… 살려 주십시오, 계 선생님!”
선충의 무리는 주동적으로 기차보수(*弃車保帥: 차(車)를 버리고 장수(帥)를 지키는 것. 장기에서 사용하는 전략)하며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9할 이상의 선충은 불바다를 가로막았고, 남은 1할들이 동쪽을 향해 재빨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바다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더욱 빠른 속도로 기세를 넓혀갔다.
쿠르릉……!
멀리 하늘에서부터 번개가 번쩍이는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삽시간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이어 거대한 한 줄기의 물길을 형성하더니, 삼매진화의 불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어서 가라!”
그때 벼락같은 목소리가 뇌운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더니, 곧이어 하늘에 형성된 드넓은 물길이 선충들을 지나쳐 삼매진화를 덮쳤다.
그러자 도망치던 선충 무리 사이에서 놀라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형? 대사형, 어서 가십시오! 저건 그 계 선생의 삼매진화입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화르륵!
하늘을 뒤덮은 파도가 불바다와 부딪히자, 불길은 더욱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하며 물기를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콰직-!
쿠구궁……!
번쩍-!
콰앙!
벼락이 한 줄기씩 떨어지며 뇌운이 계속해서 고도를 낮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선광(仙光) 한 줄기가 선충 무리를 훑고 지나갔다.
십여 마리의 벌레를 잡아챈 이는 새카만 머리카락을 지닌 중년의 남자였다. 그가 벌레들을 손에 쥐자, 마치 솥 위로 기름이 튀는 소리가 났다.
치지직……!
“대사형,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삼매진화는 뼈에 자라나는 독창(*毒瘡: 악성 부스럼)같아, 선충이 한 마리 죽을 때마다 저도 그만큼 손상을 입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불길은 그저 제 심신(心神)을 불태울 뿐이니, 어서 가십시오!”
그러자 남자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더니, 저 멀리 자신이 어수술로 만들어낸 파도가 삼매진화의 불길을 더욱 재촉하는 기름 역할을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가 왼손을 활짝 펴자, 그 위로 투명한 옥병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뭔지 모를 액체가 들어있었다.
“사제, 움직이지 마라.”
남자가 이렇게 말한 뒤 옥병을 기울이자, 연한 녹색을 띤 액체가 그의 손 위에 있는 십여 마리의 선충 위로 흩뿌려졌다.
치지지직……!
그러자 십여 마리의 선충들이 고통스러운 듯이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꿈틀대더니 곧이어 선충들의 형체가 그을리듯이 변했다. 날개가 끊어지고 다리가 떨어진 것이 무척 처참해 보였다.
하지만 손안의 벌레들은 그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차가워졌다’. 남자가 재빨리 도망치는 와중에도 사제를 구하느라 정신을 판 탓에, 뒤쪽의 불길은 이미 바짝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제의 상태가 호전된 듯 보이자, 남자가 얼른 옥병을 들어 뒤쪽을 향해 쏟았다. 그러자 녹색의 투명한 액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며 그가 만들어낸 물길에 섞여들어, 파도가 연둣빛을 띠었다.
퍼엉-! 펑!
치지직……!
다시 푸른 파도와 불바다가 맞붙자, 이번에는 전처럼 불길이 더 거세게 일어나지 않았다. 파도는 여전히 열기에 의해 급속도로 증발하고 있었지만, 전에 비해 어느 정도 대항하는 힘이 생긴 뒤였다. 남자는 이 틈을 타 불바다가 뒤덮은 이곳에서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계연이 높이 뛰어오르자 그가 지나는 곳마다 맹렬한 기세의 삼매진화가 얌전해졌다. 넝쿨검은 계연의 주위를 배회하며, 도망치는 남자 쪽을 검의(劍意)로 곧장 가리키고 있었다.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고. 귀하는 저를 안중에도 두지 않으시는군요.”
챙-!
뒤이어 날카롭게 검명이 울리더니 계연이 넝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검광이 수십 리를 뻗어나가 전방의 남자를 향해 쏘아졌다. 넝쿨검은 계연이 검을 뽑아 드는 그 순간 즉시 목표를 맞힌 것이다.
쾅……!
그때, 빛을 내뿜는 작은 방패 같은 거울이 생겨나더니 날아오는 검광을 맞받아쳤다. 그러자 부딪힌 검광이 각도를 바꿔 하늘로 튀어 올랐고, 먹구름 사이로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이 일검을 쉽게 맞받아치는 걸 보고 상대의 도행을 짐작한 계연이 조금 경계를 높였다. 계연은 더욱 엄숙해진 표정으로 손목을 돌리며 넝쿨검을 고쳐잡았다.
계연은 넝쿨검을 손에 쥔 채로 정신을 집중하며 회백색의 눈으로 전방을 직시했다. 그러자 그의 의식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며, 저 먼 하늘에 환상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한 산과 물길이 떠올랐다.
우웅-!
손에 쥔 넝쿨검이 미약하게 떨며 내는 소리가 계연의 흥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신(檢身) 위의 어두웠던 ‘참(*斬: 베다)’ 자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이때 심신을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을 느낀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빛을 내뿜으며 한 자루의 선검이 날아오는 듯했다. 그가 고개를 내려 제 손바닥을 바라보니, 불에 그을린 십여 마리의 선충들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계 선생, 제게 검술을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남자는 갑자기 아래를 향해 날아가더니, 손에 든 선충을 품에 넣고는 두 손으로 인을 맺기 시작했다. 그가 손에 든 옥병에서는 계속해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것은 땅에 떨어지며 장대비가 되어 내렸다.
“춘생(春生), 기화(氣和), 발산(拔山), 지기(地起)!”
쿠르르릉……!
콰광!
지면이 갑자기 끝없이 솟구쳐 오르더니, 공중에 거대한 산맥을 형성했다.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푸른 나무와 붉은 꽃가지들이 자라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대지는 모두 파도처럼 들고 일어났고, 그 위로 수많은 식물이 급속도로 생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