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08화 (708/892)

708화. 처참한 몰골의 사형제

“계연! 당신은 법보의 힘을 빌려 쓰는 것밖에 못 하나?”

그의 고함에는 놀람과 분노가 담겨 있어, 계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대체 뭘 바라시죠?”

계연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곤선승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나 가느다란 금색 뱀처럼 날아갔다. 그것은 순식간에 투명한 금빛으로 변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볼 수 있었을 때는 그리 두렵지 않았지만, 곤선승이 아예 종적을 감추자 남자는 그것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두려워졌다.

그 짧은 사이에, 남자의 마음에 갖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계속 주저하다가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는, 이를 꽉 물고 오른손으로 법력을 펼쳐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그 대상은 계연이 아니라 자신의 천령개(*天靈蓋: 두개골)였다.

푸욱……!

중년의 남자는 핏빛의 안개가 되었고, 그가 내뿜던 둔광도 곧장 흩어져버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둔광이 있던 곳에는 천지를 잇는 금빛용처럼 생긴 회오리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곧이어 다시 금빛 끈이 되더니 핏빛 안개 주위에 떠올랐다.

잠시 후 계연이 날아오더니 곤선승을 다시 자신의 소매 안으로 불러왔다.

계연은 남자가 핏빛 안개가 되어 사라진 공중에서 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숨을 대신해주는 보물이나 그와 비슷한 신기한 수단은 세상에 많이 있었다. 하지만 자살은 수행계는 물론이고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도 아주 꺼리는 행위였다. 이는 정신을 상하게 하고 수행자의 마음을 망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둔술의 흔적이 남지 않으니, 계연으로서는 그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도망치다니……. 마음이 보통 독한 게 아니군…….”

계연은 작게 읊조리며 그곳에 잠시 서 있다가 방향을 돌려 날아갔다.

체명부(*替命符: 목숨을 한번 대신해주는 부적)처럼, 혹은 체명부를 쓴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중년의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핏빛 안개는 점차 환영이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동해 어느 하늘에 뜬 구름 위에 낭패한 몰골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이때 남자는 더는 전처럼 선풍도골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목숨을 대신해주는 물건의 특징은 시전자를 죽기 전의 모습 그대로 돌려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때 남자의 옷은 무척 남루했고 머리도 산발이 되어 있는 데다, 가슴께에는 검에 당한 상처도 있었다. 그에 더해 계연의 공격 범위에서 계속 벗어나려고 법력을 끌어다 쓴 덕분에 그 몰골이 더욱 처참해 보였다.

“캑캑캑……! 어흑……! 헉…… 푸웁!”

구름을 밟고 선 남자는 속에서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지 못하고 결국 시꺼먼 피를 토해냈다. 입을 가로막은 손가락 사이로 그의 피가 뚝뚝 떨어져, 보기만 해도 전보다 더욱 낭패스러운 상태였다.

“커흑…… 캑캑…….”

남자는 이때 오른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왼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체내의 기운도 무척 혼란스럽게 얽힌 상태였다. 이는 거의 동현(*洞玄: 도교 경전이 동진(洞眞), 동현, 동신(洞神) 세 부분으로 나눠짐, 수행의 단계를 이르기도 함)의 신묘함을 깨달으려는 수선자에게 있어서는 보기 드문 깊은 상처였다.

남자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새도 없이,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더니 정신을 바짝 집중하고 법력을 끌어모아 계속해서 전방으로 날아갔다. 그는 계연이 자신을 계속해서 뒤쫓아올까 봐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른 수행자에게 있어 이런 두려움은 아주 오랜만에 겪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무척 선명하여 어떻게 해도 이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곳은 이미 하늘이 밝아온 상태였고, 그렇게 계속 오후가 될 때까지 날던 남자는 마침내 작은 섬을 찾아내 그 위로 내려섰다.

섬에 내려선 남자는 낙엽과 갖가지 것들로 뒤덮인 지저분한 땅바닥에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곧장 기를 다스리며 수행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자 바람이 조금씩 잠잠해지더니, 주위의 영기(靈氣)가 남자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모여들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져, 남자는 곧 미간도 굳게 찌푸린 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남은 검기가 규혈(*竅穴: 혈자리와 같은 이름과 같은 위치에 있지만, 규혈은 몸 안에 숨겨져 있음) 안에서 날뛰며 몸속 천지의 균형을 어지럽히는 동시에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더해 검의가 그의 마음과 정신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때 그는 심경도 불안한 상태라, 계속해서 계연이 초연한 얼굴로 일검을 날리는 환각을 보았다.

“푸웁!”

또다시 입에서 피를 뿜은 남자는 근처의 나무와 수풀을 자기 피로 물들였다. 그러자 남자의 기운은 전보다 더욱 어지러워졌고, 가슴께에 입은 상처도 다시 벌어졌다. 곧이어 선광이 몸을 덮으며 다시 한번 상처가 아물었지만, 안에서 검기가 계속 요동치는 바람에 다시 상처에 핏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어흑…… 컥…….”

남자가 소매를 한번 휘둘러 녹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나뭇잎 두 장을 꺼내 들었다. 그는 마음과 몸의 고통을 참고서 나뭇잎을 가볍게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두 개의 나뭇잎은 남자가 입은 가슴 앞뒤의 상처에 내려앉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몸속의 검기가 봉쇄되더니 상처가 다시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 자라난 살도 상처가 있었던 흔적을 완전히 감춰주지는 않아서, 한 줄기 검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시진(2시간)쯤 뒤, 상처를 대강 가라앉힌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떠 자신이 앉은 섬의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계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야 그는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품속에서 불에 그을린 십여 마리의 선충을 꺼내어 보니, 그 위로 비치는 선광이 어둡긴 했지만 아직 살아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잠시 후, 선충들의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해 남자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것은 점차 형체를 갖추더니 곧 불에 그을린 상처가 가득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커헉…….”

그때 잿빛 연기가 노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여러 번 격렬하게 기침을 한 다음에야 노인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헉…… 허억……. 삼매진화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하마터면, 정말로 불바다에 몸이 타버릴 뻔했습니다. 만약 대사형이 아니었다면…….”

노인은 고개를 돌려 중년 남자를 바라보고는 하던 말을 멈추고 다급히 물었다.

“대사형! 대사형, 괜찮으십니까? 대사형!”

이렇게 묻는 노인의 잔뜩 그을린 두 손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대사형이 괜찮은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상대의 모습이 자기보다 더 처참해 보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중년의 남자는 창백한 안색에, 피부 아래 규혈이 있는 곳에서는 핏빛이 비치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을 한 채 옷차림도 엉망이었으며, 가슴께에는 붉은 핏물이 묻어있었다. 그에 더해 가슴을 가로지른 커다란 검흔도 보였는데, 그 아래로 녹색, 하얀색, 푸른색이 계속해서 꿈틀댔다.

대사형이 눈을 꼭 감은 채 자신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에게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노인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더는 법력을 쓸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손을 뻗어 대사형의 코 밑에 가져다 대보았다.

“아직 죽지 않았다…….”

대사형의 말에 노인이 크게 안도했다.

남자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처참한 몰골의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제의 몸속에서 끊임없이 꿈틀대는 불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사제는 지금 남은 법력을 끌어모아 그 불길을 힘껏 잠재우는 중이었다. 이에 남자는 비탄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 사형제가,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되다니…….”

“대사형…….”

노인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대사형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선(眞仙)과 다름없는 뛰어난 인물인데 이런 지경이 되다니.

중년의 남자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안 죽는다. 내가 방심해서 계연의 일검에 당해버렸구나. 별일…… 어쨌든 죽지는 않을 거다…….”

중년 남자는 원래 “별일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현재 모습이 그런 말을 내뱉지 못하도록 했다. 게다가 그렇게 말해봤자 사제에게는 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네 몸의 화독(*火毒: 불의 독기)은 서둘러 억누르려 해선 안 된다. 의식 세계 안에 봉인을 만들어 마음 깊은 곳에 화독을 봉한 뒤, 물의 술법으로 천천히 풀어나가야 한다……. 삼매진화가 마음과 정신까지 태우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구나…….”

노인은 이때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운을 차분히 조절하다가, 대사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삼매진화가 계연이 지닌 고유한 불의 신통력이며, 그 위세를 짐작할 수도 없다고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 불이 실체와 허상을 넘나들어 불태울 뿐 아니라 떨쳐내기도 이리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대사형께서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제가 선충의 9할을 포기하고 도망쳤더라도 불에 타 죽었을 겁니다.”

그러다 노인은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서둘러 이렇게 물었다.

“대사형, 혹시 사제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제가 계연을 붙잡고 시간을 끌고, 사제를 먼저 도망치게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중년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미 점을 쳐봤다. 길(吉)보다 흉(凶)이 더 많으니, 이미 계연에게 붙잡힌 듯하구나.”

중년 남자는 사실 그의 사제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뿐이었다. 조금 전에 계연과 겨루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사제는 이미 죽었다고 봐야 했다.

“자, 이곳은 오래 머물기 적합하지 않으니, 좀 더 멀리 떠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사제가…….”

“너와 나 둘 다 이런 상황인데, 다시 돌아가서 계연에게 사제를 돌려달라 할 수 있겠느냐?”

대사형이 이렇게 묻자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깊이 탄식했다.

뒤이어 옅은 안개가 섬에서 솟아오르더니, 둔광술을 쓴 두 사람이 그 사이에 모습을 감춘 채 빛이 되어 하늘 저편으로 멀리 날아갔다.

* * *

한편, 계연은 급히 조월국 변경 지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국경 위의 상공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동이 튼 시각이라, 햇빛이 계연의 등 뒤에서 비치며 그를 둘러싸며 만 장(丈)의 빛무리를 형성했다. 계연이 지금 떠 있는 곳 아래쪽은 조월국 땅으로, 겹겹이 쌓인 안개와 구름 사이로 사람들이 내뿜는 왕성한 화기(火氣)가 보였다.

다행히 어제 싸움이 벌어진 곳은 여기서 좀 더 멀고 외진 곳이었다. 조월국은 그동안 인구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제 그 중년 남자가 계연의 검을 막기 위해 공중에서 산맥과 땅을 들어 올릴 때 사람들도 다쳤을 것이다.

이때 계연이 소매를 한번 흔들자, 머리가 새하얗게 센 노인이 그가 딛고 선 흰 구름 위로 떨어졌다. 눈을 꼭 감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꼭 숨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일어나세요.”

계연이 칙령의 힘을 담아 이렇게 말하자, 노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눈을 뜬 노인은 눈을 찌르는 햇빛을 느끼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아직 살아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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