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화. 되찾아 오다 (2)
“참으로 황당한 노릇입니다!”
이때, 노기가 담긴 질책 소리가 대전 안에 울리며 한 늙은 신하가 걸어 나왔다. 그는 수녀들의 앞에 서서 황제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신 류선호(劉先虎), 황상께 올릴 상주문이 있습니다.”
황제는 미간을 굳게 찌푸렸지만 그를 꾸짖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친애하는 류 경, 오늘은 조회가 없으니 올릴 상주문이 있으면 태감에게 두고 가시오. 고가 후에 읽어보겠소.”
노태감이 즉시 아래로 내려갔으나, 늙은 신하에게는 따로 들고 있는 상주문이 없었다.
“저, 류 대인, 상주문은 어디 있습니까?”
“하!”
노신은 공수한 자세를 유지한 채 황제가 앉은 용교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의 상주문은 이미 폐하께 올라갔습니다. 모두 여섯 번이나 올렸습니다만 지금까지 폐하의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전선의 병사들은 피를 뒤집어쓰고서 국운을 건 고전을 벌이고 있는데, 폐하께서는 정무는 돌보지 않으시고 수녀들을 뽑는 데만 힘쓰고 계시니, 이것이 어찌 나라를 다스리는 옳은 도리라 하겠습니까?”
“친애하는 류 경, 우리 조정은 선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대정국을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오. 경은 도성 안에 널린 게 대정국 제주에서 가져온 보물들인 것을 보지 못했소? 여러 선사(仙師)는 어찌 생각하시오?”
그러자 넓은 소매의 장포를 입고, 머리에는 금비녀로 작은 관을 고정한 고상한 차림새의 마두(魔頭)가 앞으로 걸어 나와 웃으며 말했다.
“류 대인, 우리 군중에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수행자들이 많고, 얼마 전에는 또 어느 고인(高人)이 찾아오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황상께서는 고인이 주신 약을 드셨으니, 곧 대적할 무리가 없는 신통한 병사들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대정국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천수(天數)를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류 대인의 질녀(*姪女: 조카딸)가 수녀 선발에 참여했다가 두 번째 단계에서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대인께서 혹시 그에 대해 무슨 의견이 있으신 거라면, 차라리 여기서 떳떳하게 말씀하시지요.”
“네가 요괴인 걸 모를 줄 아느냐! 금군 중에 네놈이 사람을 잡아먹는 걸 본 자가 있다. 삿된 요마 주제에 감히 천사(天師) 노릇을 하다니! 폐하, 설령 우리 군사들이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런 요사한 것들을 계속 옆에 두면 나라에 큰 화가 될 것입니다. 결코 믿으시면 아니 됩니다!”
“하하, 류 대인, 말씀이 심하십니다. 저는 언제나 폐하께 충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제가 법보를 수련해내고 조월국 강산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고, 미리 상주문을 올려 폐하의 윤허를 받은 일입니다. 또, 지금 두 나라가 교전하는 와중에 우리 수사들은 군사들을 도와 나설 수 있지만, 류 대인께서는 여기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 외에 또 무얼 하실 수 있으신지요?”
“네…… 네 이놈!”
“그만! 두 사람 다 물러가시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황제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말싸움에 아무런 흥미가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이 각자 자리로 물러나자, 수녀들이 하나씩 나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선호를 포함한 몇몇 대신들은 이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황제에게 예를 올린 뒤 대전을 떠났다.
한편 계연은 대전 안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때 안색이 좋지 않은 몇몇 대신들이 대전을 나서자, 계연은 대전의 기운이 단번에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
곧이어 칠현금과 비파 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는데, 보아하니 수녀들이 각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선보이는 듯했다.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민현과 금갑을 향해 말했다.
“자, 우리도 구경하러 가죠.”
두 사람이 계연을 따라 한 칸씩 계단을 오르자, 대전 안의 몇몇 수행자들이 무언가를 감지하고는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푸른 장삼을 입은 남자가 뒤에 두 사람을 거느리고 대전 안에 들어왔다. 주위의 시위들은 그들이 들어오는데도 전혀 이를 보지 못한 듯했다.
“귀하는 누구신데 감히 함부로 대전 안에 드는 것이오? 책봉을 받으러 왔다면 먼저 아뢰는 것이 순서요!”
수사 중 한 사람이 음악 소리를 덮을 정도의 큰 소리로 계연을 향해 묻자, 악사들이 즉시 연주를 그쳤다. 그에 맞춰 춤을 추던 수녀들은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즉시 상궁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났다.
대전 안의 모든 시선이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 떨어졌다. 그들은 지금 모습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없이 당당하게 대전의 중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선장, 선장이시구려? 아이고, 고에게 또 무슨 선약(仙藥)을 주러 온 것이오?”
황제는 최근 기력이 넘치고 시력도 좋아졌으므로, 단번에 민현을 알아보고는 기쁜 얼굴로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민현은 계연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노부(老夫)는 그저 계 선생님을 따라온 것뿐입니다.”
“계 선생?”
“계 선생…….”
“계 선생이라고?”
“계씨…….”
대전 안 수사들의 반응은 각기 다양했다. 대부분은 의혹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몇몇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선생께서도 고를 도우러 온 것이오? 선생은 어떤 재주가 있으시오? 책봉을 받고 싶어 오신 것이오?”
조월국 황제는 잔뜩 흥이 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최근 일 년 동안 그는 수많은 선인을 만났고, 그때마다 곧 있으면 천추(*千秋: 천년, 긴 세월)를 이을 패업을 이룰 수 있겠다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계연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웃더니, 용교의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계모(某)는 그저 폐하께 속하지 않는 물건을 다시 가져가기 위해 왔을 뿐이에요. 강산의 사직이나 천추를 이을 패업은 계모가 상관할 일도 아니고요. 하지만 폐하께 한 말씀만 올리자면, 차마 눈 뜨고 볼 수도 없는 이런 저속한 요마와 삿된 무리는 신중히 기용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희뿌연 눈으로 한쪽에 선 천사들을 훑어보았다. 요기(妖氣), 마기(魔氣), 사기(邪氣)가 그의 법안에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왔다. 그는 내심 이들이 자기 말에 노기충천해 즉시 공격해오길 바랐다.
하지만 민현이 곁에 있어서인지 조월국의 선사들은 행동으로 나서지 않았다.
“흥, 기세가 대단하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언행에 주의하시오, 도우.”
선사들이 차가운 눈빛과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황제는 그 말에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어떤 물건을 가져가시려는 것이오?”
“별건 아니고, 그저 폐하의 몸에 있는 벌레 한 마리입니다. 손(*巽: 팔괘(八卦)의 하나로 바람을 상징함)은 바람, 진(*震: 팔괘(八卦)의 하나로 우레를 상징함)은 천둥을 상징하지요.”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황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를 향해 바람을 날렸다. 그러자 법광(法光)이 황제의 몸을 뒤덮더니, 몸 앞뒤로 백 개에 가까운 혈 자리에 그 빛이 날아 들어갔다. 그런 뒤 계연은 바람을 날린 왼손을 거두고 손가락 세 개를 모아 무언가를 잡아채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황제는 사지와 온몸이 쇠사슬에 꽁꽁 묶인 듯한 감각이 들더니, 어좌 위에서 확 끌어올려져 대(大)자처럼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섰다.
“윽……. 호위, 어가를 호위하라, 으윽…… 크릉……!”
황제의 목소리가 점차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포효로 변했다. 그 소리는 절대 사람의 것이라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멈추시오!”
“당장 폐하를 풀어주시오!”
우웅-!
그때 검명이 울리며 넝쿨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날카로운 검기(劍氣)와 검의(劍意)가 대전 안의 온도를 확 떨어뜨렸다. 동시에 이 선사들을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짓누르기 시작해, 누구도 감히 앞에 나설 수 없었다.
“크르릉…….”
그때 황제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더니, 얼굴과 온몸의 푸른 힘줄이 불끈 솟아올라 마치 꿈틀대는 것 같았다.
계연은 준엄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다,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일국의 군왕이, 사람도 귀물도 요물도 아닌 지경에 떨어지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그와 동시에 황제의 몸에서 붉은빛이 솟구쳐 오르더니, 빙빙 황제를 감싸고 돌며 그의 몸을 벗어나 계연의 왼손으로 날아왔다. 계연이 세 손가락을 뻗어 그것을 잡아보니 날개 두 쌍에 다리가 여섯 달린 벌레였다. 머리부터 반 정도는 갑충(*甲蟲: 온몸이 딱딱한 껍데기로 덮인 곤충) 같았고, 그 뒤로는 기다란 연충(*蠕蟲: 꿈틀대며 기어 다니는 벌레)같이 생겼는데, 그것은 계연의 손에 잡히자마자 벗어나려 이리저리 꿈틀댔다.
“크르릉…….”
벌레는 마치 맹수와 같이 거친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상반신을 덮은 껍데기는 무척 색이 선명했고, 하반신은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으며, 날개 두 쌍은 무척 화려했다. 그것은 계연의 손에 잡힌 후에도 계속해서 격렬히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지지직……!
보랏빛 전류가 한번 반짝이자 괴충(怪蟲)이 몸을 파르르 떨더니, 더는 전처럼 심하게 꿈틀대지 않았다.
한편 대전 안에서는 선사들을 제외하고, 대신들과 태감, 궁녀, 수녀들까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황상!”
“저게 대체 무엇인가?”
“황상의 몸에서 저런 게 나오다니…….”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계연이 그 충황(蟲皇)을 손에 쥐자마자 조월국 황제는 온몸의 속박이 단번에 확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용교의 위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온몸에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황제는 식은땀으로 뒤덮인 상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계연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고(孤)에게 돌려주시오, 어, 어서 돌려주시오……. 그건 고의 선약(仙藥)이오, 고의 선약…… 어가, 어가를 호위하라…….”
“폐하!”
“어서 태의를 불러라!”
곁에 있던 태감들은 놀라고 당황한 얼굴로, 황제가 용교의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얼른 그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계연 쪽을 관찰하는 동시에 태의를 불러오라 소리쳤다.
“어서, 어가를 호위하라…… 고의 선약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
황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무척 초조하게 들렸다. 충황이 그의 몸을 떠난 순간, 황제는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호흡마저 곤란해진 그는 억지로 말을 잇다가 곧 혼절해버렸다.
“어서 황상을 모시고 나가야 한다, 황상을 호위하라! 너, 그리고, 너! 어서!”
태감의 권력은 황제에게서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노태감은 자연히 대전 안의 선사(仙師)들보다 훨씬 충심이 깊었다. 그는 소태감들에게 황제 폐하를 모시라고 명을 내린 뒤, 호위들의 삼엄한 경계를 받으며 얼른 대전을 떠났다.
계연은 충황을 손에 쥔 채 한마디도 하지 않고 황제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대전 안의 시위들 대부분은 황제를 뒤따라갔지만, 대신 대전 밖에서부터 병기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대전을 둘러싼 금군의 수가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이들은 다 대전을 떠나도, 소위 선사들은 떠날 수 없었다. 감히 떠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계연에게서는 어떤 법력이나 신령한 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가 절대로 평범한 사람 일리는 없으니 도행이 너무 높아 짐작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고인(高人)임이 분명했다.
또한 선검의 검의(劍意)가 시종일관 대전 안을 짓눌러, 그 날카로움에 그들은 피부는 물론이고 마음과 정신마저 따끔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일검에 베어나갈 것 같았으므로 감히 함부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