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다
다시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저 바람만 부리던 계연이 법력으로 구름을 만들어내어 민현과 금갑을 데리고 계속해서 서남쪽으로 날아갔다.
계연은 내내 말이 없었는데, 이런 조용한 분위기에 민현은 계속해서 불안과 초조를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동적으로 대화를 이끌 엄두도 나지 않았다.
“민현, 고충술을 푸는 방법에 대해 뭔가 숨기고 있었던 거죠?”
민현이 내내 긴장하고 있던 것도 실은 계연이 이렇게 물어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계연의 생김새와 기운이 흉악하거나 살기를 띠진 않았고, 민현 자신도 이미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음에도, 민현은 계연의 이 말에 긴장과 불안을 느꼈다.
“저는 그 술법을 푸는 방법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했습니다. 부디 고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선생님!”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저도 당신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 충황에 대해 당신 본인도 잘 모르는 것이 있고, 그에 대해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은 건 맞잖아요?”
그러자 민현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연의 말을 묵인한 후 그는 다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 사형제를 어찌하실 계획이십니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당신은 깔끔하게 이번 생을 끝내고 싶나요, 아니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여생을 살아가길 원하나요?”
이런 상황에 놓인 뒤에도 민현은 여전히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불안함이 묻어났다.
“죽는 것보다야 살아있는 게 낫겠지요. 이전의 일이 있었으니, 선생께서도 이제는 제 수행만 거둬가진 않으시겠죠?”
“하하…….”
계연이 속도를 올리자 딛고 선 구름이 날아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는 한번 웃은 뒤 민현을 향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수백 년간 수행을 쌓았으니, 설령 몸에 지닌 법력을 잃는다고 해도 이미 육신이 환골탈태한 상태죠. 그러니 법력을 거둬가면서 원기(元氣) 일부분도 가져가는 게 좋겠어요. 지금 이 겉모습 그대로, 앞으로는 팔순의 노인이 되어 생사와 부귀가 모두 당신 스스로에 달리게 될 겁니다.”
계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한 마디 더했다.
“당신의 동문(*同門: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찾아올 거란 생각은 버리도록 하세요.”
그 말에 민현이 깊이 탄식했다. 계 선생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정말로 아무런 변수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팔순의 노인은 길을 걷는 것조차 힘이 드는 나이인데, 그는 자기를 돌봐 줄 가족도 없었다. 만약 세태가 조금 평화로운 곳이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조월국 땅에 떨어지게 되면 몇 년이 아니라 며칠 동안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선생께서는 저를 어디로 데려가실 생각이신지요?”
이에 계연은 팔순 노인의 모습을 한 눈앞의 수선자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비록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지만, 조월국 송씨 황제에게 책봉된 선사 대부분과 비교하면 민현은 제대로 된 정통의 수선자였다. 그에게서는 심지어 악한 기운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정국에 데려다줄 테니까요.”
“대정국이요?”
민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심오한 도행을 지닌 선생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민현을 비롯한 사형제를 뒤쫓아 동쪽으로 향할 때는 상공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었지만, 다시 서쪽으로 돌아올 때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계연은 구름을 타고 조월국의 남쪽 국경을 한 바퀴 둘러보며 충황이 사라진 후의 변화를 관찰했다.
조월국 군중에서 충역에 감염된 수많은 군사와 알 수 없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충역에 감염된 백성들이 지닌 벌레들은, 이때 이미 죽거나 점점 활동성이 약해지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더라도 이미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곧 이대로 사라질 듯했다.
물론, 충역에 걸린 이들 모두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충역에 심각하게 감염된 이들은 벌레가 죽었더라도 신체가 이미 허약해진 후라, 곧장 정신을 잃고 혼절하기도 했다. 만약 이들이 의원의 도움을 제때 받지 못한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또한 서우처럼 병세가 특별히 위중한 이들은 벌레가 죽는 순간 곧장 목숨을 잃기도 했는데, 이런 자들이 꽤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조월군은 타격을 입은 셈이었다. 하지만 충병을 기르기 위해 잔인하게 이용된 병사들은 모두 진정한 주력군이 아니었으니, 실제적인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전체 머릿수로만 보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셈이지만, 그렇다고 조월군의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다만 더는 숫자로 허장성세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 * *
만약 계연더러 요괴 수행자의 힘을 빼앗으라고 한다면, 그는 이론적인 지식이나 기초적인 경험이 부족해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통 수선자의 수행을 거둬들이는 데에는 계연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하루 뒤, 계연은 금갑과 민현을 데리고 대정국 동주(同州)의 한 황량한 산봉우리에 내려섰다. 계연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주위의 커다란 돌덩이들 위에 있던 흙먼지가 흩어졌다. 그런 뒤 계연이 그쪽으로 앉으라며 손짓했다.
“여기 앉으세요.”
“예.”
민현이 그중 한곳에 앉자 계연도 그의 옆에 앉았다. 이제 일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으니, 민현은 오히려 계연이 어떻게 자신의 수행을 거둬갈지가 궁금해졌다.
‘온몸의 규혈을 훼손하거나, 원신(元神)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 아니면 다른 방법이 또 있나?’
그와 같은 문제를 계연도 생각해봤으나 그 수단은 모두 너무 거칠었다. 하지만 해치의 그림을 본 뒤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계연은 이 세상의 신통한 묘법은 본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도행이 높고 기이한 생각을 지닌 수행자들이 연구해낸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해치가 충황을 제게 달라고 요구하던 때에 계연은 사실 그 자신조차 기대가 될 정도로 새로운 묘법을 떠올린 것이다.
계연은 곧이어 소매에서 하얀 종이 한 장과 낭호필 한 자루를 꺼내더니, 붓을 들고서 민현을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
“몸속의 의식 세계가 어떤 풍경인지, 높은 산, 푸른 숲, 흐르는 물, 깊은 호수, 그리고 마음에 지닌 생각까지, 입정에 든 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제 의식 세계말입니까?”
“네, 의식 세계요.”
민현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더니, 비록 법력은 봉인되었지만 정신을 집중해 별말 없이 입정에 들었다. 그 정도의 도행을 갖추면 입정에 들어 수행을 닦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없었다. 그러고는 풍경과 자신의 느낌을 말하기 시작했다.
민현은 곧이어 예전에 수행을 닦을 때와 달리, 자신이 그 속에 서서 의식 세계를 관찰하고 있는 걸 느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정말로 그 안에 들어와 풍경을 살펴보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그런 느낌은 더욱 강렬해졌다.
“높은 산이 떠받친 단로라. 확실히 정통 수선자군요. 심지어 사도(邪道)라고 볼 수도 없겠네요.”
계연의 목소리가 돌연 위쪽에서 전해지자,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민현이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의식 세계 안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하, 이왕 마음속에 들어왔으니 마음의 눈을 뜨세요.”
이에 민현이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이 계연과 함께 정말로 산봉우리 위에 앉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산은 바깥 세계 대정국 동주의 한 황량한 산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세계 안에 솟은 높은 산이었다.
이 산은 크고 광활했지만, 시선이 닿는 멀리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걸 보니 의식 세계 안의 경계에 가까운 듯했다.
불빛이 얼굴을 비추는 걸 느낀 민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높이 솟은 봉우리 위에 단로가 놓인 것이 보였다. 그 안에서는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불길은 단로 위로 둥근 금빛 광채를 내뿜어 저 멀리 하늘까지 물들이고 있었다.
‘단로, 그리고 금교!’
“여기가 바로 당신의 단로와 금교가 있는 곳이에요.”
계연은 민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계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공중에 떠오른 종이 위에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손에 쥔 붓은 한줄 한줄, 어떤 궤적을 그려 나갔다.
“계 선생님, 이게…….”
계연은 민현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서 한번 사방을 둘러본 뒤 다시 바삐 붓을 놀렸다.
이에 민현은 그를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아, 신기한 표정으로 주위의 경치를 구경했다. 민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단로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는데, 손을 뻗어 가볍게 대자 따뜻한 감각이 손을 통해 전해져왔다.
모든 것이 너무나 실제 같아, 자신이 정말로 이름 모를 어느 산을 유람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느껴지는 도의(道意)와 왠지 모를 친숙한 느낌이 민현에게 이는 자신의 의식 세계일 뿐이라고 계속해서 일깨우고 있었다.
“계 선생님, 대,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왜 제가 제 모습을 한 채로 의식 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거지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들어오신 거고요?”
“글쎄요 그건 됐고, 이리 와서 제가 그린 그림이 어떤지 한번 보세요.”
계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민현을 향해 손짓했다. 민현은 흥미와 호기심이 잔뜩 생겨난 참이라 계연의 말에 얼른 다가가 그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그러자 그림 속에 자신의 의식 세계 속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선생님, 그림 실력이 정말 뛰어나시군요. 이 후배의 의식 세계를 도장으로 찍어낸 것처럼 그려내시다니요!”
“그렇게 비슷한가요?”
“실제와 한 치도 다른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잘됐군요!”
이렇게 말한 계연이 민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민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연은 다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단로로 시선을 돌렸고, 그가 든 낭호필에 먹물이 차올랐다. 그 상태로 계연이 팔을 휘두르자, 금색 선에 묵광(墨光)이 번진 글자들이 떠올라 단로 주위를 감쌌다.
“와라!”
쿠구구궁……!
계연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으나 마치 천둥처럼 천지를 울렸다. 이에 의식 세계 전체가 진동하더니, 단로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아니, 안 돼…….”
민현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보았으나 당연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단로는 몇 초 만에 곧장 계연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단로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 순간, 강렬한 허무감과 몰락감이 그를 덮쳤다.
“허…… 허억…….”
바깥 세계의 산 정상에서는 민현이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퍼뜩 깨어났다. 자세히 자기 몸을 느껴보니, 단로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고 의식 세계는 물론 금교의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옆을 바라보니, 계연이 수려한 산과 하천의 풍경이 담긴 그림을 들고 있었는데, 가장 높은 산 정상에 단로가 우뚝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림 속의 단로는 불이 꺼진 듯이 암담해 보였고,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잊을 뻔했네요. 당신의 체백(*體魄: 사람의 육체를 주관하는 것, 정신을 주관하는 것은 혼(魂))도 거둬야겠죠. 이 그림이 있으니 편하군요.”
계연이 그림을 펼쳐 든 상태로 붓을 민현 가까이 갖다 댄 뒤, 그대로 그림 위로 끌어왔다. 그러자 푸른 연기가 민현의 몸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그것은 계연의 붓끝을 따라 그림 안으로 모여들더니 마침내 단로 속으로 들어갔다.
“어흑…… 아…….”
이 순간 느껴지는 무력감은 민현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두려웠다. 푸른 연기가 그림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민현은 점점 더 몸이 허약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더는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을 때가 되자, 그는 산 정상에 불어오는 찬 바람을 느끼고는 몸을 떨었다. 이제 그의 몸은 더 이상 알맞은 온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평생 닦은 수행을 내가 거뒀으니, 오늘부터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목구멍이 떨려 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민현과 달리, 계연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침착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산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언제나 변함이 없을 것 같아 저 하늘 같기도, 도(道) 그 자체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