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황폐한 저택에서의 야연(夜宴)
위씨 장원은 전과 달리 텅 비어있었지만, 여전히 면적이 아주 넓었고 내부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후원 깊은 곳, 어느 큰 저택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문틈과 창틀,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는 불빛이 새어 나와 바깥에서도 그 안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종이학은 아주 작았지만 빠르게 날 수 있었기 때문에, 계연의 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이 등불이 환히 밝혀진 큰 저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종이학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창가에 내려앉아,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안쪽의 풍경은 아주 떠들썩했는데, 뒤쪽으로 난 작은 문에서는 계속해서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 안에 놓인 커다란 원탁 위에는 이미 맛있는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의자나 걸상을 옮기고 있었고, 따뜻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숯불이 든 난로를 옮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자, 의자는 여기 놓아라.”
“난로는 일단 여기에 놓고, 저쪽에도 하나 놓아야겠다.”
이렇게 바삐 분부하는 남자는 보기 좋게 살집이 오른 통통한 사내로, 피부가 희고 깨끗했으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부리는 내내 기쁜 듯 환히 웃었다.
“하하하하, 동생이 조금 늦었습니다!”
그때 뒤쪽으로 난 문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남자가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곧게 펴고는 안쪽의 남자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하하하, 마침 잘 왔네, 잘 왔어! 전혀 늦지 않았으니 어서 들어오게, 어서.”
“이건 작은 성의입니다, 안에는 홍복기(鴻福記)의 소랍(*燒臘: 안주용으로 먹는 간장에 조린 고기)이 들어있습니다!”
“현제(*賢弟: 아우뻘 되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의 선물은 마침 오늘 자리에 딱일세! 하하하, 아주 알맞은 걸 들고 왔군, 어서 안으로 들지!”
건물 안팎은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종이학의 눈에는 이 장면이 무척 이상해 보였던 것이, 일단 이자들은 걷는 자세가 모두 괴상했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행하기 전에, 손에 든 선물 보따리를 입으로 문 채 인사했다.
“숙부님, 저 왔습니다, 제가 뭘 갖고 왔는지 한번 보십시오!”
그때, 능라(綾羅)로 짠 비단 장포를 입은 한 청년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뛰어오더니, 양손에 든 술 단지를 신나게 흔들며 이렇게 소리쳤다.
“이미 술 향기가 나는구나. 오늘 마침 술이 부족한데 잘 왔다! 어서 들어와라!”
“예, 들어갑니다!”
이미 도착한 이들과 계속해서 들어오는 손님들을 합치면 2, 30명은 될 듯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들거나 물고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음식이었다. 가끔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손님도 있었는데, 그러면 이미 도착해 있던 손님들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내주며 누구도 쫓아내지 않았다.
손님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연회를 시작할 때가 되자, 실내의 분위기도 점점 떠들썩해져 갔다.
종이학은 날개 두 짝으로 창호지 구멍에 매달려 그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탁은 보통의 식탁보다 크긴 했지만, 그래봤자 1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나 실내의 3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식탁 하나에 끼어 앉아 있어, 아주 우스워 보였다.
그보다 더욱 재미난 것은,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두 어디서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이들처럼, 하나같이 침을 흘리며 식탁 위의 음식과 술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 그럼 이제 먹어볼까요?”
“옳소!”
“어서 식사합시다!”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나는 닭다리부터 먹어야지!”
“나도!”
“여기 술, 술!”
2, 30여 명의 사람은 일제히 식탁 위로 젓가락을 뻗어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집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아예 손을 뻗어 음식을 집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서로에게서 술 단지를 뺏다시피 하여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계연은 서두르지 않으며 유유자적하게 후원의 한 저택에 다다랐다. 그곳 대청 안에는 등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고, 안쪽에서부터 서로에게 술을 권하거나 술잔을 부딪치는 등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갖가지 맛있는 냄새도 전해져왔다.
금갑은 이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연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전혀 깜빡이지 않는 두 눈 위로 등불이 비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띠었다.
“알아보겠느냐?”
“주인님께 아룁니다, 모두 요사한 자들입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었다.
“요괴가 맞긴 하지만, 사악한 무리인 것 같진 않구나. 그래봤자 속임수를 좀 쓰고 도둑질을 하는 정도지. 자, 우리도 어서 가보자.”
조월국에서 각종 요마가 날뛰며 백성들을 해치는 것만 보다가, 오늘 밤 이런 일을 맞닥뜨리자 계연은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계연은 이렇게 생각하며 금갑을 데리고 한창 연회가 열리는 큰 저택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창호지에 딱 붙어있는 종이학을 발견한 계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웃다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안에서 한창 신나게 먹고 마시던 이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단번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해진 걸 보니, 그들의 감각이 아주 민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누가 문을 두드린 것 같은데요?”
“그러게…….”
“하지만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는데…….”
똑똑똑-!
그때 다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안에 있던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때 손님들을 맞으며 바삐 움직이던 통통한 사내가 손에 든 닭다리를 내려놓고는, 식탁 모서리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어서 모습을 좀 정돈하게, 내가 가서 문을 열 테니!”
그러자 손님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즉시 자기 모습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바른 자세로 자리에 앉거나, 쓰러진 의자 몇 개를 바로 세우거나, 손에 묻은 기름기를 옷에 문질러 닦기도 했다.
한편, 복스럽게 통통한 남자는 문가로 다가간 후, 자신의 의관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구멍 뚫린 창호지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바깥에 문인처럼 생긴 단정한 남자와 그의 시종처럼 보이는 거대한 체격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그는 속으로 해야 할 말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본 뒤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그 순간, 바깥에서부터 하얀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대청 안의 불빛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렸다. 하지만 그가 다시 자세히 바라보니, 바깥은 실내보다 훨씬 어두워 조금 전 자신이 느낀 것이 마치 착각인 듯했다.
“저, 선생께서는 누구십니까? 이리 늦은 밤에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통통하게 살집이 오른 남자가 먼저 계연을 향해 예를 행하더니,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반면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괴이한 눈빛으로 이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이런 장면을 보통 사람이 마주쳤다면 소름이 돋아 겁에 질렸겠지만, 계연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안쪽을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눈앞의 남자를 향해 가볍게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저는 외지에서 온 계씨인데, 성문이 닫힌 것을 보고서 곤란해하던 와중 이렇게 큰 장원이 있는 걸 보고 하룻밤 묵어가려고 들어왔어요. 하지만 들어와 보니 장원이 황폐한 걸 보고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이쪽 후원에서 등불이 켜진 것을 봤습니다. 만약 제가 무례했다면 부디 널리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으시다면, 계모(某)가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어가도 될까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실내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식탁 위는 온통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둘러앉은 손님들의 옷에도 음식 찌꺼기며 기름이 잔뜩 묻어있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저, 그, 선생께서 여기서 묵고자 하신다면, 아무 곳이나 찾아서 쉬시면 됩니다…….”
이때 이 통통한 남자와 실내에 앉은 손님들의 신경은 대부분 금갑에게 쏠려 있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느껴지는 혈기도 무림 고수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압박감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참, 두 분 만약 시장하시거든 들어와서 함께 드시지요. 옛말에도 멀리서 찾아온 이는 손님이라…….”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계연은 상대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금갑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실내에 있던 손님 중 문가에 있던 이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고, 곧이어 계연과 금갑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계연은 법안을 열어 일찍이 이들의 정체를 간파한 뒤였다. 이들은 모두 한 무리의 여우로, 가장 흔히 보이는 요물이었다.
하지만 이 여우들은 둔갑한 것이 아니라 환술을 이용해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것뿐이었다. 그들 모두 옷자락 아래로는 어찌할 도리 없는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좋네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식탁 가득 차려져 있다니. 아, 여기 술도 있네요!”
계연은 식탁 가까이 다가가 위쪽을 한번 훑더니, 손을 뻗어 아직 깨끗해 보이는 닭 날개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통통한 남자가 다시 식탁 근처로 다가오자, 주위 여우들이 모두 원망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을 느낀 남자는 상황을 매끄럽게 넘기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자, 모두 앉읍시다, 앉아! 눈치 볼 것 없이 먹고 드시면 됩니다! 자자, 손님께 제가 술 한잔 따라드리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니 모두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계연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한쪽에 선 채로 닭 날개를 뜯고 있었다. 반면 위압감 넘치는 모습의 금갑은 계연의 뒤에 가만히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한잔 받으시지요.”
“그리고 이쪽 장사(壯士)께서도 한잔 드시지요.”
통통한 남자가 이렇게 말하며 술잔 두 개를 내밀자, 계연은 웃으며 받아들었고 금갑은 두 팔을 몸 옆에 딱 붙이고 선 채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위압감 넘치는 눈빛에 겁에 질린 남자는 침을 꼴깍 삼키며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계연은 받아든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반면, 금갑 때문에 남자가 잔뜩 긴장한 채 가만히 서 있는 걸 본 다른 여우들은 작은 소리로 떠들던 것도 멈춘 채로 모두 침묵에 잠겼다.
그때, 창밖에서 맹렬한 기세로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왈왈왈! 왈왈왈!”
“으악!”
“개다!”
“어이쿠……!”
“어서 도망쳐!”
콰당!
쿠웅……!
…….
실내에 있던 이들은 모두 겁에 질려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한쪽에 난 작은 문으로 꽁지가 빠질세라 달아났고, 어떤 이들은 입고 있던 옷이 홀쭉해지더니 곧장 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가 바깥의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이 모든 일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고, 어느새 실내는 텅 비어버렸다.
계연이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니, 종이학이 얼굴을 갸우뚱한 채로 실내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조금 전 들린 개 짖는 소리는 사실 종이학이 낸 소리였다. 종이학은 평소에 호운이 개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있던 이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아마 여우 대부분이 개를 무서워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