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화. 여우의 마음, 사람의 마음 (1)
“사, 사람이 되다니? 내가…….”
호리는 몸에 감도는 법력을 느끼며, 얼굴과 몸 곳곳을 만져보았다. 그러다 엉덩이를 만져보고는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몸속에서 느껴지는 법력을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호리는 시범적으로 식탁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위의 모든 접시와 음식 찌꺼기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와중에 술잔 안에 들어있던 술이 관성에 의해 밖으로 넘쳤으나, 그 액체까지도 방울방울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에 호리가 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리자, 그 액체가 가느다란 물줄기가 되어 공중에서 몇 바퀴 돌다가 쩍 벌린 호리의 입으로 날아왔다.
입에서 느껴지는 술맛과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느낌에, 호리는 이것이 환각이 아님을 확신했다.
“아, 이, 이게 바로 수행이 경지에 이른 느낌이군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하늘도 날 수 있고 땅 밑에 숨을 수도 있으며, 물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도 있고, 천지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으며 자연의 오묘함을 깨달을 수도 있죠. 즉, 수행의 정도(正道)에 오르는 거죠. 하지만 이는 그저 제 법력으로 당신을 변화시킨 것뿐이라 진짜는 아니에요.”
계연은 이 여우의 견식이 아주 짧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자 호리가 단번에 바닥에 꿇어앉더니, 계연을 향해 계속해서 절을 올렸다.
“선장(仙長), 선장!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세요! 선장께서 분부하시든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제 목숨을 다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잘 생각하셔야 해요. 미리 말하는데, 이 일은 절대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어요. 어쩌면 죽게 될 수도 있고요.”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세요, 부디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세요!”
호리는 꿇어앉은 채 다시 양손을 맞잡으며 계연의 가르침을 빌었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뜻밖에도 자신이 진정한 선인을 만나다니, 이런 선인지로(*仙人指路: 선인이 내리는 가르침을 일컬음)의 기회는 절대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위험을 맞닥뜨린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기처럼 앞길이 막연한 작은 요괴에게 있어서 한번 목숨을 걸어볼 만한 일이었다!
“일어나세요. 이 일은 제가 당신들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니, 이렇게 큰절을 올릴 필요 없어요.”
계연이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호리는 부드러운 힘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걸 느꼈다. 그는 계속 바닥에 꿇어앉고 싶었으나, 몸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졌다.
계연은 호리의 모습을 위아래로 가늠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영지를 얻은 영호(靈狐)이기 때문에 이런 법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이 변화된 모습은 한동안 유지될 테니, 이 기회에 당신이 이끄는 무리를 모두 제게 데려오세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호리는 즉시 양손을 맞잡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예,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선장(仙長)께서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제가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호리는 몸을 돌려 곧장 뒷문으로 나갔다. 그가 날렵하게 몇 번 뛰어오르자, 단번에 먼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여우들이 그리 멀리 도망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위씨 장원의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이 장원이 조금 클 뿐이었다.
바깥으로 나온 호리는 더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돌연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그러자 전과 달리 발아래에서 힘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그는 단번에 십여 장(약 30m) 높이로 올라섰다.
“아오오오-!”
공중에 뜬 호리는 손발을 허우적거리다가 자신이 공중에서도 도움닫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공중에 흐르는 기류에 발을 디디니, 마치 면화 솜처럼 푹신하게 느껴졌다. 땅에 떨어질 때는 속도 조절이 가능해서, 속세의 사람들이 익히는 경공처럼 가볍게 미끄러지듯 날아올랐다가 땅에 떨어질 때는 거의 백 장 가까운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었다.
“하하하하, 하하하……! 내가 날고 있다니, 내가 날고 있어!”
계연은 여전히 원래 있던 곳에 앉아 멀리서 들려오는 흥분에 찬 웃음소리와 탄성을 듣고 있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예전에 자신이 아직 비거술을 익히지 못했을 때, 높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면 무척 신이 났던 게 기억이 났다.
호리가 변한 모습으로 다른 여우들을 찾으러 가게 한 것도 실은 자신을 도와 말을 잘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리를 직접 보내어 불안해하는 여우들을 달래는 데에도 좋았다.
과연 일은 계연이 예상했던 대로 풀렸다. 호리의 현재 모습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호리가 여우들을 하나둘씩 찾아내자 그들 모두 흔쾌히 계연을 만나러 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채 일각(15분)이 지나기도 전에, 스무 마리가 넘는 여우들이 온통 엉망이 된 대청으로 다시 한번 모였다. 그들은 꽤 그럴듯하게 계연을 향해 예를 행했다. 그중에는 환술로 인간의 모습을 한 여우도 있었고, 원래 여우의 모습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갈망에 찬 눈빛과 진정성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계 선장, 저희 영호들은 모두 32마리입니다. 여기에 모인 건 26마리뿐이지만, 소화(小花)가 다른 다섯 마리를 찾으러 나섰으니 모두 선장을 뵈러 올 겁니다!”
호리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동족들을 둘러본 뒤, 다시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아 예를 취했다.
“부디 저희를 가엾게 여겨 주세요.”
본래부터 이 여우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던 호리는 이제 암묵적으로 이들 여우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다른 여우들을 찾아 나설 때도, 호리는 자신이 계 선생의 비범함을 알아봤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도망쳤을 때도 자신은 그곳에 남았던 거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다른 여우들은 호리가 공손히 예를 올리는 걸 보고, 모두 전에 없이 아주 깍듯한 태도로 계연을 향해 예를 취했다.
“부디 저희를 가엾게 여겨 주세요!”
“모두 일어나세요. 이 일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제가 이 장원에 잠시 머무르면서 천천히 설명하도록 하죠. 여러분의 품성이 어떤지도 살펴보고, 각자의 상황이 다 다르니 수행에 관한 조언도 각자 다르겠지요…….”
계연은 여우들이 잔뜩 흥분해 눈을 빛내는 걸 보면서, 그들이 무엇을 동경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일단 여러분의 수행이 어떤지부터 보도록 할게요, 모두 앉으세요.”
계연의 목소리는 온화했고 어떤 법력이나 칙령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를 침착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이에 황공스러워하거나 흥분한 모습의 여우들도 모두 점차 안정을 되찾고 계연의 말대로 따랐다.
이 여우들은 야생성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계연이 느끼기에 이들은 상대적으로 무척 깨끗한 편이었다.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듯, 이는 요물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우 중에는 닭고기나 술을 훔친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라 할 수는 없었다.
이 여우들의 도행이 너무나 얕았기 때문에,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아주 명확했다. 이에 계연의 단 몇 마디 충고만으로도 여우들은 눈앞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비록 선장에게서 묘법(妙法)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 전처럼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두 시진(약 네 시간) 뒤, 계연은 대청을 떠나 휴식을 취할 만한 적당한 곳을 찾으러 나섰다. 한편 선인의 가르침을 얻어 잔뜩 흥분한 여우들은 계연이 떠난 뒤에 다시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에 먹고 남은 음식을 먹으면서, 더러워진 것을 집어먹는 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위씨 장원의 뒤편에는 특이한 원락(*院落: 담장으로 둘러싸인 건물과 뜰)이 하나 있었는데, 몇몇 건물을 제외한 모든 구역이 심하게 훼손되거나 무너진 상태였다. 이곳이 바로 예전에 계연이 와서 하룻밤 머물렀다가, 사람도 시체도 아니게 된 위씨 일가가 그를 포위했던 곳이었다.
마침내 조용하고 익숙한 곳을 찾은 계연은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 * *
며칠 뒤 이른 아침, 호리는 계연이 머무는 원락으로 찾아와, 반쯤 열린 대문으로 안쪽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금갑은 마치 문신(門神)처럼 문가를 지키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계연의 법력은 이미 흩어져 버렸지만, 호리의 정신 상태와 마음가짐은 이미 전과 크게 달라진 뒤였다. 게다가 실질적인 변화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낮에도 환술로 사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대문 밖에 선 호리는 다시 한번 의관을 정제한 뒤, 태양이 떠오른 높이를 살핀 뒤에야 마음 놓고 반쯤 열린 대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계 선생님, 접니다, 호리예요! 저희가 적당한 약초들을 몇몇 구해왔습니다. 이걸 돈으로 바꾸면 전에 훔친 닭고기며 술을 배상할 수 있을 겁니다!”
똑똑-!
“선생님, 아직 주무십니까?”
잠시 후, 계연이 방문을 열더니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아흠……. 알겠어요, 그럼 어서 성으로 가봅시다.”
계연은 여우들의 효율적인 일처리에 무척 만족했다. 그보다 계연을 더 기쁘게 한 것은, 계연에게 말했던 대로 이들이 정말로 자신이 물건을 훔친 점포와 민가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기를 모면하고자 그저 둘러댄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가격이며 어느 위치에 자리한 곳인지, 몇 번을 훔쳤는지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계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들이 훔친 것을 점차 잊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요물로서의 성향이 점점 강해져 종국에는 백성들을 해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연은 이 단계에서 자신이 이들을 마주친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선생님, 성까지는 어떻게 가지요?”
“걸어서 가야죠. 마차도 없잖아요?”
호리가 이 기회를 빌려 구름을 타고 날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지만, 계연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금갑을 포함한 세 사람은 황폐한 위씨 장원을 나서 곧 녹평성에 이르렀다. 이곳은 양국 간의 전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평안하고 번화한 도시 중 하나였다.
거리에는 행인과 장사꾼들로 가득했고 곳곳에서 온갖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호리가 태양이 지지 않은 시각에 녹평성을 거니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를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호기심과 긴장이 섞인 얼굴로 계연과 금갑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기저기를 구경하느라 바삐 움직여 무척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대범하게 행동하세요.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곁눈질로 보지 말고 당당히 구경하고요.”
“예, 예.”
호리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그런 태도가 즉시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자주 겪으면 곧 익숙해질 테니, 계연도 굳이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약초 냄새가 전해져오자, 계연은 굳이 눈으로 찾지 않아도 약방이 저 앞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