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20화 (720/892)

720화. 남에게 빚지고 살면 안 돼요

손님들이 백은(白銀)으로 계산하자 육씨네 형제는 속으로 모두 기뻐했다. 은자는 조월국의 동전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리가 건넨 쇄은자 한 줌이 손에 들어오자, 육씨네 첫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어딜 봐서 은자 한 냥의 무게지?

“저, 손님, 좀 많이 주신 것 같은데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은자를 한쪽에 놓인 저울에 달아보았다. 무게를 재보니, 과연 그의 생각대로 이건 거의 은자 2냥에 해당하는 무게였다.

“거의 2냥을 주셨네요, 일단 1냥은 받으시고 동전으로 거슬러 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호리가 연신 손을 저으며 주인이 돌려주는 은자를 거절했다.

“주인장, 이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오늘 온 것은, 주인장께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육씨 형제가 서로 의아한 눈빛을 교환하며 자신을 쳐다보자, 호리는 멀지 않은 곳에 앉은 검은 개와 옆에 있던 계연을 한번 쳐다보더니 용기 내어 말했다.

“얼마 전에, 통닭구이를 여러 번 도둑맞은 적이 있지 않았나요?”

“아, 그런 적이 있긴 있었지요. 그런데 한 달 반쯤 전에 대흑을 데리고 온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육씨네 첫째가 기억을 되짚어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호리가 얼른 그의 말을 받아 말을 이었다.

“예, 그렇죠. 사실, 저희 집에서 그…… 개를 좀 키우는데, 언제부턴가 밖에서 통닭구이나 수육 같은 걸 들고 오지 뭔가요. 그래서 대체 어디에서 훔쳐 온 건지 찾다가, 이곳에서 파는 고기라는 걸 알게 되어 사과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한쪽에 앉은 대흑이 고개를 들어 호리를 보더니, 비웃는 듯한 모습으로 입을 씰룩였다. 옆에 있던 계연도 마찬가지로 가볍게 미소 지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훔쳐 갔다는 말은 호리 스스로 떠올린 것이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아주 그럴듯한 핑계였다.

그의 말을 들은 육씨네 형제가 그제야 깨달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 그랬군요, 그, 그래도 은자 1냥은 너무 많습니다. 고작해야 4백 문 정도일 텐데…….”

“아, 아닙니다, 당연히 드려야지요. 배상금으로 치고 받아주세요!”

호리는 교섭에 있어 점차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형제들과 설왕설래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육씨 형제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멋쩍은 기색으로 은자를 받았다. 그러고는 겸연쩍었는지 포장한 고기를 댁으로 배달해 주겠다고 했으나 계연과 호리가 즉시 사절했다.

가게에서 나오는 계연과 호리의 양손에는 고기가 잔뜩 들려 있었다. 그들은 인적 드문 골목 한쪽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모두 계연의 소매 안으로 넣었다.

그런 뒤, 그간 여우들이 훔쳐 간 전적이 있던 점포 몇 군데에 들러 조금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과하고 돈을 냈다. 그렇게 적지 않은 술과 요리를 사게 된 호리는 다 합해 총 은자 5냥이란 거금을 쓰게 되었다.

모든 빚을 청산한 호리의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순간 그는 아주 중대한 일을 끝마친 듯한 안도감이 들었고, 계연과 함께 거리를 걸으며 마음은 물론이고 몸까지 더 가볍게 느껴졌다.

이런 느낌은 사실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주 희미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리는 계연과 같이 있기 때문인지, 이런 감각을 더욱 또렷하고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계 선생님, 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마음이 아주 편안하네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이든 요괴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좋지 않아요. 일단 마음에 맺힌 게 있으면, 그게 오래될수록 심겁(*心怯: 일생에 겪은 모든 고통, 역경, 상처들이 터져 나와 겪는 겁운)이 되거든요. 그러니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아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면, 마음에 맺힌 걸 적당한 방식으로 푸는 게 좋아요. 그편이 살아가는 데에도 수행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호리는 알아들은 듯 아닌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연의 말에서 허점을 찾아내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그러니까, 만약 속으로 자신의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마음이 맺히는 게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호리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 되면 마음에 맺히는 건 없겠지만, 그보다 더욱 위험한 천겁(*天劫: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맞닥뜨리게 될 거예요. 각종 방식으로 그것을 누르거나 미루면, 결국에는 죽어야 끝날 정도로 큰 천겁이 되고요. 그러니 남에게 빚지고 살면 안 되는 거죠.”

“아…….”

호리는 말문이 막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계연도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계연은 수행계의 삿된 무리가 천겁에 대항하기 위한 각자의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가올 천겁을 지연시키는 것뿐으로, 결국 자신의 앞날을 끊는 것과 같았다. 어쨌든 정도(正道)의 수행자들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계연과 호리가 성안을 돌아다니며 빚을 청산하는 동안, 머리에 종이학을 얹은 금갑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계연이 일부러 금갑과 종이학이 자유롭게 성안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종이학에게 금갑을 데리고 구경하라고 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성에 들어온 종이학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곳곳을 구경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금갑을 데리고 다녀야 했으므로 이 꺽다리를 지휘해가며 거리를 구경해야 했다. 종이학은 만약 어르신께서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자기도 금갑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이 꺽다리는 분명 어느 적당한 곳을 찾아 종일 서 있기만 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금갑은 전방만 똑바로 주시한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길을 꺾어야 할 때가 되면, 종이학이 그의 머리 위에서 날개로 툭툭 쳐 그가 방향을 바꾸도록 했다.

짹짹!

다시 어느 골목 어귀에 이르자, 종이학이 오른쪽 날개로 연신 금갑의 머리를 툭툭 쳤다. 이에 금갑이 살짝 시선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종이학이 날개로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를 본 금갑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의 남다른 체격과 범상치 않은 기세 때문에, 금갑이 어디로 가든 사람들은 모두 양쪽으로 물러나 부디 저 사람의 눈에 자신이 띄지 않기만을 빌었다. 녹평성도 최근에 치안이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 앞쪽에서 두 사내가 크게 말싸움을 하는 게 보였다. 그들은 서로를 손으로 밀치고 있었는데, 까딱 잘못하면 곧장 몸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다.

“네놈이 부딪쳐서 내 술 단지가 깨졌잖아!”

“네놈은 내 수육을 떨어뜨리고 그걸 밟기까지 했잖아?”

“내 술을 깨뜨린 게 먼저지. 게다가 나는 실수였다고. 어서 술값 물어내!”

“뭐라고? 실수라고 하면 다야? 이 수육 세 근은 무려 백 문이라고! 그 싸구려 술은 기껏해야 20문도 안 될 텐데!”

“개소리하네! 이건 화장주(花醬酒)라고! 한 단지에 2백 문이란 말이야!”

“개소리는 네놈이 한 게 개소리겠지!”

“어서 돈이나 물어내!”

“네놈이나 배상하고 사과하시지!”

상대와 입씨름하며 치고받는 사이, 두 사람은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이 슬슬 흩어지는 걸 느꼈다. 그들은 원래 사람들이 자신들의 몸싸움에 다칠까 봐 물러난 거라 생각했으나, 곧이어 그렇게 된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어느 커다란 그림자가 그들을 뒤덮자, 싸우던 두 사람이 동시에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건장한 체격에 흉악한 기운을 내뿜는 불그스름한 피부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눈만 아래로 내려 그들을 한껏 멸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금갑이 그 자리에 아무런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는데도,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뭐, 뭐야? 겁이 나서 같은 편을 데려왔나 보지?”

“네, 네가 데려온 사람 아니야?”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안도가 스쳤다.

“거, 인제 그만하지?”

“그러든가. 고작해야 1, 2백 문인데 이 몸이 그 정도는 낼 수 있지!”

“흥!”

“하!”

두 사람은 언짢은 얼굴로 콧방귀를 뀐 뒤, 다시 금갑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홱 떠나갔다.

그러자 금갑의 머리 위에 있던 종이학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 날개를 빠르게 펄럭였다. 그러다 고개를 숙여 금갑을 바라보니, 꺽다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러자 종이학은 반쯤 포기한 듯, 그저 날개로 그를 툭툭 쳐 앞으로 계속 걸어가게 했다.

횡행패도(*橫行覇道: 세력을 믿고 제멋대로 날뛴다는 뜻의 사자성어)란 바로 지금 금갑과 종이학의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었다. 비록 그들이 정말로 횡행(*橫行: 옆으로 걷는다는 뜻)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만방자한 모습도 아니었으나, 금갑이 지나가는 곳은 사람들이 저절로 길을 터주었다. 그가 홀로 선 곳이 4, 5명의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이었으니, 실질적으로 보면 ‘패도(*覇道: 포악하다는 뜻도 있지만, 길을 독점한다는 뜻도 있음)’가 맞긴 맞았다.

종이학은 이곳저곳 돌아다닌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반면 금갑은 바깥 세계에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종이학의 말은 무엇이든 따라주었다.

그렇게 계연과 호리가 성안에서 여우들이 빚진 대상을 찾아다니는 동안, 종이학과 금갑은 온 성안을 자유로이 돌아다녔다.

이 두 존재가 함께 다니자 사람들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저력까지 발휘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새 오후가 되어, 금갑과 종이학은 비교적 한산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짹-!

그러다 종이학이 날개로 그를 치자 금갑이 오른쪽의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양쪽에 지어진 건물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조금 어두웠다.

금갑이 사람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체격이 거대했다. 그런데도 그가 길을 걸을 때는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다. 이 골목에는 행인이 없었기 때문에, 금갑의 다리는 연기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깊숙한 골목을 순식간에 지난 그들은 골목의 끝에 다다랐다.

골목 끝에 이르자 시야가 확 트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축구장만 한 크기의 연못이었다. 푸른 수면은 고요하니 아무런 파문도 없었고, 잡초나 연꽃이 자라 있지도 않았다.

그 주위에는 푸르른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녹평성 같은 번화한 곳에서 모처럼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운치 있는 장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주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설령 유명하진 않다고 하더라도, 주위에 사는 아이들이 와서 놀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큰 연못 주위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게다가 이 연못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도 연못 근처에 난 길에서부터 20장(*약 60m) 넘게 떨어져 있었다.

녹평성 같은 성에서 이는 무척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녹평성은 조월국에서는 그야말로 땅 한 톨 값이 금덩이인 비싼 지방이었는데, 그런 곳의 연못에 빨래하는 아낙네조차 없는 것이다. 시간대가 안 맞아서도 아니었다. 아직 해가 떠 있긴 했으나, 저녁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딱 빨래를 하거나 채소를 씻을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