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화. 연못 속 그림자
골목을 나온 금갑은 거기서 걸음을 멈추고, 머리 위의 종이학과 함께 저 앞에 모이는 커다란 연못을 바라보았다.
째잭!
종이학이 이렇게 소리치자 금갑이 다시 걸음을 옮기더니, 천천히 다가가 연못가에 섰다.
그렇게 보니 연못 곳곳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만들어진 것이 보였다. 그런데도 계단 위에는 빨래하거나 채소를 씻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다시 연못의 물을 보니 맑다고 하기에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었고, 혼탁하다고 하기에는 또 그렇지도 않았다.
종이학은 고개를 쭉 빼더니 갸우뚱한 머리로 수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왈왈왈! 왈왈왈왈!”
그때, 돌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종이학의 생각이 뚝 끊겼다. 커다란 검은 개 한 마리가 오른쪽 골목에서부터 나타나더니, 연못 가까이 다가와 금갑을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댔다.
“왈왈왈! 왈왈왈!”
송곳니를 드러내고 맹렬하게 짖어대는 모습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놀라 즉시 도망가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갑은 끄떡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제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금갑의 차갑고 위압감 넘치는 눈빛과 마주하자, 맹렬히 짖던 검은 개는 갑자기 소리를 뚝 그치더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검은 개는 바로 계연과 호리가 찾아간 육가포자의 대흑이라는 나이 든 개였다. 오늘 준비한 고기가 다 팔려 가게가 일찍 문을 닫았기 때문에, 대흑도 간만에 일이 일찍 끝난 것이다.
종이학이 커다란 검은 개를 바라보는 모습에서는 그에 대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반면 금갑을 노려보는 검은 개의 온몸 근육은 팽팽히 긴장되어 있었다. 금갑은 전과 다름없이, 상대를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검은 개를 내려다보았다.
이때, 갑자기 금갑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검은 개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만약 이 검은 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근처에 있었다면, 이를 보고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도 금갑의 모습을 본다면 검은 개의 이런 태도를 충분히 이해했을 테지만 말이다.
“크르릉…….”
검은 개가 이를 드러내고 몸을 잔뜩 낮춘 채, 위협적으로 목을 울렸다. 하지만 금갑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방향을 휙 틀었다. 종이학은 이미 한발 먼저 날아올라, 재빨리 누군가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참이었다.
“주인님!”
그때, 금갑이 살짝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예를 행했다. 그리고 금갑은 이 세상에서 오직 계연에게만 고개를 숙였다.
나타난 사람은 호리의 빚을 함께 청산한 계연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호리도 이때 계연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찌익! 짹!
종이학이 계연의 어깨 위에서 한쪽 날개로 연못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은 그가 마치 종이학의 맑은 울음소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듯했다.
“그래, 알겠다. 조금 전에는 금갑한테 연못에서 떨어지라고 한 것이구나? 연못 안에 뭐가 있길래?”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커다란 검은 개를 바라보았다. 검은 개는 사실 계연이 나타나고 금갑이 동작을 멈추자 크게 안도한 참이었다.
계연은 가볍게 묻고는 연못 가까이 걸어가, 양손을 뒷짐 진 채 푸른 연못을 바라보았다. 그는 언젠가 밤에 녹평성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 연못의 존재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왈왈왈!”
계연이 연못 가까이 다가서자 검은 개가 즉시 긴장하여 크게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계연의 말을 들은 검은 개는 조심스레 연못 가까이 다가오더니, 연못의 중심을 향해 다시 짖기 시작했다.
“왈왈! 왈왈왈!”
“저기에 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지?”
계연은 연못을 둘러보며 눈을 좀 더 크게 떴다. 그의 법안 아래 모든 풍경이 변화하며 새로운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물 아래로 수령(*水靈: 물의 영물, 영기)이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활발히 움직이는 게 또렷하게 보였다.
“장풍득수(*藏風得水: 겨울의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을 수 있고 농경에 필요한 용수 공급이 용이한 곳을 말함.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요건)의 좋은 지형이구나. 수심은 그리 얕지 않고.”
이 연못의 물은 고인 물처럼 보였지만, 계연이 법안으로 관찰해보니 수면 아래로 흐름이 바뀌는 게 보였다. 즉 연못 아래로 어딘가와 물이 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계연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물 한줄기가 천천히 솟아오르더니, 유연하게 움직이며 계연을 향해 날아왔다. 그와 함께 계연은 옅은 비린내를 맡았는데, 사실 계연은 처음에 이 연못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부터 이미 냄새를 맡고 있었다. 지금은 훨씬 냄새가 강하게 날 뿐이었다.
계연이 손을 뻗어 물을 만져보더니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물이 아주 차갑네!”
아직 완전히 봄에 접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찬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연못의 물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워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계연이 다시 손을 뻗어 연못을 향해 부채처럼 흔들자, 연못 물이 가볍게 좌우로 흔들렸다.
다음 순간, 연못 안의 물이 계연의 손짓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아아…… 촤아아……!
연못의 중앙을 비우고 물살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연못의 수위가 확 올라갔다. 계연이 가볍게 휘두른 손짓 한 번에, 연못의 물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 중앙에는 마차 두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법한 너비의 길이 생겨나, 연못의 바닥을 훤히 드러냈다.
연못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곳은 약 1장(약 3m) 깊이였는데, 그곳 중앙에는 마차 한 대 너비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구멍 안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어 샘구멍처럼 보였다. 아주 느리긴 했지만, 샘구멍은 계속해서 밖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개는 연못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순간, 이미 뒤로 몇 발짝이나 물러나 있었다. 개는 깜짝 놀란 듯 계연을 쳐다본 뒤, 다시 한참 뒤에야 천천히 연못 가까이 다가갔다.
계연이 다시 냄새를 맡아보니 비린내가 전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고, 그에 더해 알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그때, 샘구멍에서부터 솟구치는 물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그에 따라 주위로 내뿜는 한기도 더욱 강해지고 비린내도 더욱 심해졌다.
“왈왈왈! 왈왈왈!”
그러자 검은 개가 다시 한번 긴장하기 시작하더니, 연못 기슭에서 좌우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중앙의 샘구멍을 향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크르르…… 왈왈! 왈왈왈!”
“알겠다, 그만 짖으렴.”
계연이 미간을 찡그린 채 담담하지만 엄숙한 표정으로 연못 중앙을 바라보았다. 검은 개는 계연의 말에 더는 짖지 않았지만, 그래도 온몸의 근육을 잔뜩 긴장시킨 채 몸을 낮추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샘구멍을 노려보았다.
“재미있게 됐구나, 전에는 내가 놓친 것이었군. 원래는 녹평성 성황신의 죽음이 그 늑대 요괴와 조월국의 다른 요마들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 보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야!”
촤르르르……!
샘구멍에서 대량의 물이 쏟아져 나오더니, 아래로 하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계연이 소매를 한번 흔들자, 한 줄기 묵광(墨光)이 소매 안쪽에서부터 날아오르더니 그의 눈앞에서 <검의첩>이 활짝 펼쳐졌다.
“주위를 봉쇄하거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작은 글자들이 맑은 목소리로 입을 모아 대답하더니, 주위로 여러 갈래의 먹빛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위가 몽롱하게 뒤덮였다.
촤앗!
연못 중앙에서 물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더니, 한 줄기 하얀 형상이 꿈틀거리며 높이 솟구쳤다.
계연은 손에 든 곤선승을 만지작거리며 한쪽에 서 있는 금갑을 향해 말했다.
“잡아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금갑은 살짝 몸을 숙이더니 다리에 힘을 주고 뛰어올랐다. 그러자 연못 주위에 깔린 석판 위로 흙먼지가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금갑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연못을 향해 날아갔다. 다행히 지면에는 아무런 손상이 가지 않은 상태였다.
샘구멍 주위의 진흙탕은 금갑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두 발이 진흙 위에 안착한 후에도 주위로 조금의 흙탕물도 튀지 않았다.
“크릉…….”
콰앙!
그 기다랗고 하얀 형체는 굵기가 커다란 물통만 했는데,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해도 이미 5, 6장(丈)의 길이였다. 게다가 이성이 없는 듯 꿈틀거리는 모습이 무척 혼란스러워 보였다.
“허엇!”
하얀 형체가 그를 향해 공격해오는 순간, 금갑은 크게 기합을 넣으며 두 팔을 힘차게 앞으로 뻗었다.
퍼엉!
솨아아-!
두 힘이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주위의 흙탕물과 연못 물이 사방으로 튀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흙탕물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자 계연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한 주위 전체가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휘익!
촤앗-! 촤아앗!
금갑이 이 거대한 뱀 같은 것의 머리를 두 손으로 꽉 틀어쥐자, 뱀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금갑은 이때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는데, 이 괴물을 샘구멍에서 완전히 빼내기 위해서였다.
“캬악-! 크르릉…….”
퍽, 퍽, 퍽……!
뱀이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꿈틀거리자, 샘구멍 근처의 진흙탕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드러난 석판에 점점 더 많은 균열이 생겼다.
펑, 펑…… 콰앙……!
후두두둑……!
뒤이어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연못 주위로 튕겨 나갔다.
콰광!
그중 멀리 날아간 거대한 바위 하나가 근처의 건물에 떨어지자, 멀리서 봐도 지붕에 금이 가며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이 보였다. 하지만 무너진 건물은 한순간에 다시 원래 모습을 회복했고, 주위에서는 행인이나 근처에 사는 백성의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앗!”
금갑이 다시 크게 기합을 넣으며 무릎을 살짝 구부린 뒤 뒤쪽을 향해 날아갔다.
쿠구구궁……!
퍼엉!
흙탕물과 섞인 연못 물이 폭발하면서, 30장(약 90m)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길고 가느다란 뱀 같은 것이 금갑에 의해 끌려 나왔다.
“크르릉…….”
이 괴이한 뱀은 온몸이 흰색이었으며 두 눈조차 흰색이었는데, 오로지 혀만이 검은색이었다. 그것은 어부에 의해 구멍에서 끌려 나온 드렁허리(논두렁에 구멍을 뚫고 사는 물고기)처럼 쉼 없이 팔딱거렸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금갑의 몸을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후욱-! 휘리릭!
단단한 몸체가 재빨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얀 뱀이 금갑을 꽁꽁 휘감아 더는 금갑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계연은 금갑에게 이 정도는 별일 아니라 여겼기 때문에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하얀 뱀에게서 괴이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척 봐도 불길해 보이는 종류였다.
치직…… 치지직……!
곧이어 기름이 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뱀이 꽁꽁 휘감은 몸통 사이로 희미한 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기기긱……!
금갑을 휘감은 하얀 뱀의 형체가 점점 더 부풀어 오르면서, 뱀의 몸통 사이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갑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하앗, 네 이놈!”
퍼억! 퍽!
곧이어 금빛 철갑으로 뒤덮인 손 두 개가 튀어나오더니, 한 손은 입을 쩍 벌리려는 뱀의 머리를, 다른 한 손은 뱀의 급소를 틀어쥐었다.
금갑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번개의 빛을 내뿜자 그의 형체가 점점 더 커지더니 하얀 뱀의 상반신이 팽팽히 늘어났다. 그것은 곧 끊어질 듯한 하얀 밧줄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