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22화 (722/892)

722화. 하얗고 괴이한 뱀

“하악! 크르릉…….”

하얀 뱀은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지르며 기다란 꼬리를 쉴 새 없이 팔딱였다. 그것은 연못을 때리기도 했고 금갑의 몸을 때리기도 했는데, 진흙탕이 사방으로 튀고 석판에 금이 가는 상황에도 금갑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파닥- 파닥-!

쿠웅, 쿵!

원래 금갑은 이대로 뱀을 반으로 끊어버리려 했으나, 계연의 명령을 떠올리고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가 단번에 폭발시키며 뱀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퍼엉!

뱀의 몸이 바깥으로 휘날리며, 뱀은 더는 금갑을 제압할 수 없게 되었다. 금갑이 두 손으로 뱀을 단단히 틀어쥔 모습은 마치 기다란 채찍 하나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휘익-.

곧이어 30여 장이 넘는 길이의 기다란 하얀 형체가 공기를 가르더니, 곧바로 지면에 내리쳐졌다.

쿠웅!

글자들이 이미 진법을 깐 상태였지만, 금갑은 하얀 뱀을 내던질 때 일부러 거리에 조준해 어떤 건물에도 부딪히지 않게 했다. 하지만 거대한 뱀이 지면에 떨어질 때마다, 주위의 기왓장이 떨어지거나 건물이 무너지거나 했다.

쿠구구구……!

지면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갑은 다시 팔에 힘을 줘 뱀을 다른 방향으로 땅바닥에 내리쳤다.

휘익- 콰앙!

휘익- 콰광!

휘익- 콰광!

…….

그렇게 연이어 40여 번을 내리치는 동안, 주위의 거리가 부서지고 건물이 무너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금갑이 마지막으로 뱀을 땅에 내리친 순간, 하얀 뱀은 석판 아래 3척(약 90cm) 깊이의 땅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금빛 갑주를 입은 신장(神將)의 모습을 한 금갑은 제 손에 들려 힘없이 축 늘어진 뱀의 머리를 한껏 멸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금갑은 정신을 잃은 뱀을 땅에 내리친 후 한쪽 발로 뱀의 몸통을 밟고 선 뒤, 몸을 살짝 돌려 계연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취했다.

“주인님, 이 요사한 놈을 잡았습니다!”

그동안 호리와 검은 개는 연못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건물 뒤에서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때가 되어서야 주저하며 몇 걸음을 걸어 나왔지만, 그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계연이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땅에 축 늘어진 흰색의 괴이한 뱀을 바라보았다. 원래 이 흰 뱀을 본 순간 계연이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백소정(*白素貞: <백사전(白蛇傳: 중국 송나라 시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로, 인간 남자 허선과 인간으로 변한 백사 요괴 백소정의 사랑을 다룸)>의 주인공으로 하얀 뱀임)이었으나, 이 뱀은 생김새가 너무나도 괴이했다. 진작에 멀어버린 듯한 두 눈은 혼탁했고, 혀도 새까만 데다가, 척 보기만 해도 독소가 들어있는 듯한 검은 연기도 괴이쩍었다. 이렇게 소름 끼치는 모습을 지녔으니, 도대체가 낭만적인 감정과는 연결할 수가 없었다.

계연이 이 하얀 그림자를 처음에 언뜻 봤을 때는, 예전 녹평성 성황신의 죽음이 이 괴이한 뱀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또 그다지 확신이 없었다.

이 괴이한 뱀은 사로잡기가 무척 성가셨는데, 그래도 계연은 이 뱀이 혼란한 상태이며 아무런 이성도 없이 본능적으로 공격한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의 공격은 당연히 금갑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성황신에게도 얼마쯤 골칫거리를 안겨줄 순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성황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설마 녹평성 성황신을 죽인 게 이 뱀이 아닌가? 그 정도 능력은 없는데…….”

“있을 수도 있지…….”

거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계연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소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장 해치 그림을 꺼내 들었다.

“뭔가 아는 게 있으세요? 아니면 이게 무슨 뱀인지 아시는 건가요?”

그림을 펴자 해치가 가만히 서 있는 상태 그대로, 눈동자와 입만 움직이며 슬쩍 웃은 뒤 대답했다.

“뱀? 아니, 이건 뱀이 아니야…… 하지만 무척 보기 드문 것이긴 하지. 규치(*虯褫: 중국 신화 속에 나오는 백사의 일종으로, 잘못을 저지른 용이 규치가 된 것이라는 전설도 있음)라고 하는 것인데, 원래는 용족에 속하는 존재이지. 지금 모습을 보니 정신이 맑은 상태가 아니군. 그렇다곤 해도, 만약 성황신이 이것에 물렸다면 충분히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을 수 있다!”

“이게 규치라고요?”

계연이 굳게 미간을 찡그린 채로 금갑의 발아래에서 죽은 듯 축 늘어져 있는 하얀 규치를 바라보았다. 계연은 이 존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긴 했지만, 아는 것은 거의 그 이름뿐이라 해도 좋았다.

“해치, 규치는 본인의 의식이 있는 존재인가요?”

“이 세상에 계연이 모르는 것도 있다니? 하하하하……. 규치가 의식이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는 이 어르신도 모른다. 최소한 이놈은 없는 것 같다만.”

“네, 그래 보이네요.”

이렇게 대답한 계연은 생각만으로 양쪽으로 갈라진 연못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계연, 이 규치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해치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고 아무런 고저도 없었으나, 계연은 뛰어난 청각을 바탕으로 해치가 약간 흥분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직 모르겠네요. 무슨 고견(高見)이 있으신지요?”

“그럼 내가 먹게 주거라! 다는 아니고 조금만 줘도 된다. 예를 들면 머리라던가?”

그림 속 해치의 모습이 훨씬 생동감 있게 변하더니, 해치에게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해치는 그림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눈으로는 내내 규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계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해치를 향해 물었다.

“머리가 없으면 규치는 죽잖아요?”

“아……. 그렇지,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남은 것을 버릴 수는 없으니, 그냥 저걸 통째로 내게 주어라!”

그 말에 계연이 입가를 씰룩였다.

“가끔은 정말 해치가 아니라 도철(*饕餮: 성정이 포악하고 탐식(貪食)하는 것으로 유명한 전설 속의 야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니까…….”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림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해치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계연, 계연아, 우리 상의를 하자, 상의! 심장, 심장이면 된다. 아니면 꼬리! 꼬리만 먹어도 된다……. 꼬리만 먹…….”

계연이 그림을 말아 소매 안에 넣은 뒤, 바깥 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하자 해치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계연이 다시 금갑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규치는 여전히 금갑의 발아래에 축 늘어진 상태였다.

“저대로 곧장 소매 속에 넣는 건 적당하지 않을 듯하고…….”

계연은 턱을 문지르며 자신의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전과 비교하면 그는 이제 해치에 대해 많이 익숙해진 상태였고, 해치가 절대 보통 그림 속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규치를 저대로 곧장 소매 속에 넣으면 해치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이에 계연은 곧장 종이와 붓을 꺼내 들었다. 그는 종이를 공중에 평평하게 띄우고서 낭호필을 푸른 연못에 담근 뒤,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끝이 종이 위에서 가볍게 움직이자, 그 위로 물이 흐르며 사면팔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림이 완성되는 속도는 보통의 회화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곧 푸른 연못의 풍경이 담긴 그림이 계연의 붓 아래 완성되었다.

“조금 잔꾀를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 그림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 너희 생각은 어떻지?”

계연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종이학과 조금 전부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검은 개와 호리에게 펼쳐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종이학만이 그런 그의 말에 대답하며 날개를 이용해 손뼉 치는 듯한 모습을 흉내 냈다.

째액!

계연이 별말 없이 웃으며 그림을 앞으로 가볍게 던졌다. 금갑은 이때 이미 발을 치우고 옆으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나 있었다. 그러자 축 늘어진 규치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회오리바람을 타고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풍덩!

그러더니 그림 위의 연못에 크게 물보라가 일며 규치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의식이 없으니 어쩌면 자기가 아직도 그 연못 속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계연이 속으로 안도하며 고개를 돌리자, 호리와 검은 개가 전보다 많이 친밀해진 것이 보였다.

“자, 돌아가자.”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연못 한쪽에 서 있던 금갑이 천천히 계연을 향해 걸어왔다. 그와 동시에 금빛 갑주가 점차 색을 잃고 체격이 작아지더니, 계연의 곁에 섰을 때는 조금 전의 불그스름한 피부의 거한으로 돌아왔다.

계연은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다가, 다시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호리는 이때 간이 좀 커진 상태라, 조심스럽게 연못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자 검은 개도 질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따라왔다.

“계 선생님, 조금 전에 그 요괴는 대체 무엇인가요?”

해치의 목소리는 거칠게 쉬어 있었고, 대부분은 계연에게만 말을 걸었으므로 멀리 떨어져 있던 호리와 검은 개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요괴?”

그러자 계연이 호리를 한번 쳐다보니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다고 할 수도 없군요. 전설에 의하면 규치는 큰 잘못을 저지른 용이라고도 하니까요. 이들은 주로 음기가 모이는 곳에서 수련을 닦는데, 그렇게 하면 다시 용의 몸을 되찾을 수 있다고도 하죠. 하지만 이 규치는…….”

계연은 그 이상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이 규치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의식만 남은 상태로, 아무런 지각이 없는 상태였다.

‘대체 이전에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녹평성 성황신이 정말로 이 상태의 규치에게 물려 그 맹독에 의해 죽은 것이라면 정말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계속 연못을 바라보았다. 규치가 떠났기 때문인지 그의 법안 아래 연못에는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과연 영기와 음기가 모이는 곳이었군. 규치가 이곳에 자리 잡은 후로는 모든 영기와 음기를 흡수해 버렸었는데, 이제 규치가 사라지니 문제가 생기겠네요.”

“무슨 문제요? 설마 여기에 새로운 요괴가 나타날까요?”

“그건 아니고, 이 연못이 너무 음랭(陰冷) 하면 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거든요.”

이 연못은 이미 인근 백성들에게 불길한 장소로 인식되어 있어 평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냥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

계연은 왼손을 소매 안에 넣어 법전 두 개를 꺼낸 뒤, 다시 낭호필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연못에 붓을 담근 뒤, 법전 두 닢의 양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던 호리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감히 가까이 다가가 관찰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저 옆에서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하는 호리와 달리, 계연의 어깨 위에 있던 종이학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목을 쭉 빼고 어르신이 손을 움직이는 동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얼마 뒤, 계연이 글씨를 다 쓰자 법전 두 닢 위로 황동색의 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계연이 그것을 앞으로 휙 던졌다.

퐁! 퐁!

법전 두 닢은 자그마한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연못 속으로 가라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