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29화 (729/892)

729화. 신군상(神君像)

주방 안의 아궁이 위에서 닭을 넣은 탕이 펄펄 끓자, 향긋한 냄새가 바깥으로 퍼지며 뜰에 앉은 여우들 모두가 군침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바삐 움직이던 농부의 부인은 이들의 모습을 보며 딱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일가족 중에는 아주 똘똘하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들도 있었는데, 원래 이들이 어느 대갓집에서 온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부인은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그저 이 가족들이 소탈하고 귀여워 보였다.

“요리는 거의 다 끝났어요. 안에서 드시겠어요, 아니면 뜰에서 드시겠어요?”

그러자 여우들이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

“뜰에서 먹겠습니다!”

“예, 예, 그냥 여기서 먹겠습니다!”

“예, 여기가 시원하기도 하고…….”

“맞아요, 저희 때문에 괜히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저희는 먼 길을 오느라 옷도 지저분하니, 그냥 여기서 먹는 게 나중에 치우기도 편하실 겁니다.”

“예, 그럼 원탁을 내올게요!”

농부의 부인은 손님들이 자신들을 배려해준다고 생각해 웃으며 탁자를 옮기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호리를 비롯한 모든 여우가 고개를 돌려 부인이 들어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실내의 대청에 놓인 어느 신상 앞의 향이 꽂힌 향로에서 맑은 향기가 주위로 퍼지고 있었다. 신상은 소매가 넓은 옷을 표표히 흩날리는 모습에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아주 신령하고 유유자적한 모습의 노인처럼 보였다. 신상은 그렇게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대청 바깥을 바라보았다.

딱 잘라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여우들은 왜인지 그 신상에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인 부부가 함께 식탁과 의자를 내오자, 여우들이 모두 일어나더니 그들을 도와 뜰로 식탁과 의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 부부는 마지막으로 방 안에서 원탁을 내가면서, 바깥의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외지인들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어쩜 저렇게 예의가 바른지, 우리가 나중에 번거로울까 봐서 실내에 들어오지도 않겠다니요.”

“하하, 그렇긴 하구려. 조금 전에 해 뜨기 전에, 저 남자가 여우가 닭을 잡아먹으려는 걸 보고 와서 막으려 했다길래 내 실은 믿지 않았었소. 게다가 은자도 준다고 하고, 여긴 우리 마을인데 감히 돈을 안 내고 갈까 싶어 식사를 대접하기로 한 것이었소.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말이 진짜였던 거로군.”

그러자 부인이 웃으며 창문에 내린 가림막 사이로 바깥의 손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참, 대정국에서 왔다던데, 거긴 어떤 곳인가요? 어디에 있는 나라죠?”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하지만 저들을 보니, 분명 예의를 중시하는 곳일 거요.”

“아, 어쨌든 저 사람들 아주 배고파하는 것 같은데 일단 이것부터 옮기도록 하죠.”

두 사람이 원탁을 들고나오자, 호리와 그 곁에 있던 이들이 얼른 도우러 다가왔다. 그러자 다른 이들은 부부와 함께 식탁 위로 그릇과 음식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우들은 바삐 움직이며 신상에서 눈길을 거두고, 하나씩 올라오는 요리에 온통 주의를 빼앗겼다. 식탁 위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닭 요리가 백참(*白斬: 각종 재료를 넣고 삶는 요리법), 홍소(*紅燒: 기름과 설탕을 넣어 살짝 볶고 간장을 넣어 익혀 검붉은색이 되게 하는 요리법), 푹 곤 탕처럼 각양각색으로 차려져 있어, 향긋한 냄새로 그들을 유혹했다.

“자자, 어서 와서 앉으세요! 작은 농촌 마을이라, 그다지 접대할 만한 게 없답니다. 별건 없지만 그래도 저희 정성을 봐서 맛있게 드셔 주세요!”

부인이 예의를 차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일찍부터 군침을 흘리던 여우들이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별게 아니라니요, 아주 훌륭합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한 상 가득한데요!”

꼬르륵-!

“저, 두 분, 이제 먹어도 되겠지요?”

호리가 이렇게 묻자, 그들을 보던 부부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얼른 대답했다.

“예, 그럼요! 사양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돈도 이미 냈겠다, 이제는 약속대로 배불리 한 끼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자 호리가 즉시 여우들을 향해 말했다.

“들자!”

스스슥!

조금 전까지 점잖았던 여우들은 이제 모든 허례허식을 내려놓고, 허겁지겁 닭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게다가 탕과 쌀밥을 두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밀어 넣었다.

그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입가에 기름을 묻혀가며 즐겁게 먹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내내 풍찬노숙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한 지가 아주 오래된 상태였다.

여우들이 정신없이 맛있게 먹던 순간, 가벼운 웃음소리가 호리와 몇몇 여우들의 귀에 들려왔다.

“하하하하…….”

그러자 닭 다리를 뜯던 호리가 동작을 뚝 멈추더니, 두 볼이 부풀어 오른 채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두세 마리의 여우를 제외하고 다른 여우들은 모두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먹고 있는 게 보였다.

“큰할아버지, 혹시 무슨 소리 듣지 못하셨어요?”

소박한 차림새를 한 낭자의 모습을 한 어린 여우가 호리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꿀꺽-!

“들었다. 무슨 웃음소리 같았는데…….”

호리는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는 입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주방 쪽을 바라보니, 부부가 밥통을 들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마 여우들이 모자란 밥을 편히 덜어서 먹을 수 있도록 아예 통째로 들고 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웃고 있지도 않았고 그렇게 괴이한 소리를 낸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하하하…….”

그때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호리가 몸을 한번 크게 떨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살짝 닫힌 대문 사이로, 부부가 대청 안에 모셔 놓은 신상이 보였다.

“하하하하…….”

호리가 너무 놀라 몸을 퍼뜩 떨자, 무릎이 식탁 아래에 쿵 부딪히며 그 위의 접시들이 서로 어지럽게 부딪쳐 큰소리를 냈다.

호리는 이제야 이 집안에서 모시는 저 신상에 진짜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행히 상대는 자신들에 대해 큰 적의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호리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어서 먹어라, 다 먹으면 서둘러 떠나야겠다.”

“예!”

“네!”

여우들 대부분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호리의 말을 따랐다.

호리가 보기에 저 신상은 아마 이 고장의 어느 신령인 듯했다. 그리고 요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신령에게 밉보이는 것이었다.

여우들이 고개를 파묻고 서둘러 밥을 먹던 순간,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이 흰옷을 입고서 뜰 안에 나타났다. 그는 원탁 근처로 걸어오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여우들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선량하고 자비로운 생김새를 지녔는데, 그가 원탁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 앉은 이들은 나이와 털 색이 모두 다른 여우들이었다. 그의 눈에는 여우들이 반쯤 쭈그리고 앉아 앞발로 엉성하게 젓가락을 쥐고서 음식을 집어 먹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런 모습을 하고서도 무척 진지한 얼굴로 먹고 있었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요기(妖氣)는 무척 온화해, 삿된 기운도 악한 기운도 없다시피 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이렇게 재미있는 요괴들을 만나다니, 계 선생님께서도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호리의 옆에 앉은 여우는 한창 볼을 부풀린 채 닭고기를 씹으면서 국물을 떠먹다가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언제 나타났는지 머리와 수염이 모두 하얗게 센 노인이 근처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이에 여우는 팔꿈치로 호리를 살짝 찔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보이세요?”

“뭐를?”

호리는 이렇게 물으며 가장 먼저 집안의 신상 쪽을 쳐다보았고, 그러다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별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았다.

“저기에…….”

호리에게 물은 여우는 차마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긴박하게 호흡했다. 그 노인이 마침내 자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작은 여우야, 이 늙은이가 보이느냐?”

“예, 예…….”

그러자 노인이 웃더니, 더는 모습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미약한 빛을 내뿜으며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노인은 바로 진자주였는데, 진짜로 이곳에 있는 건 아니고 그저 그의 정신 일부가 온 것이었다.

진자주가 나타나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 밥을 먹던 동작을 멈추었다. 몇몇은 너무 놀라 목구멍에 음식이 걸린 탓에 가슴팍을 탕탕 내리치고 있었다.

“내 보다 보니 너희 영호(*靈狐: 영지를 얻은 여우)들이 참 재미있어서 말이다.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오래도록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구나. 정말로 대정국에서 온 것이냐?”

그러자 호리가 무의식적으로 주방에서 바삐 음식을 만드는 두 부부를 바라보았다. 진자주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류(劉) 씨 부부는 이쪽을 보지 않을 것이다, 여기로 오지도 않을 것이고.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이 늙은이의 성은 진 씨이고, 살생을 싫어하며 의술을 펼치는 이다. 너희들은 기운이 맑고 깨끗한 걸 보니 필시 사악한 요괴가 아닐 것이고, 당연히 이 늙은이도 너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노선생께 아룁니다, 저희는 사실 조월국에서 도망쳐 왔습니다. 다만 바깥을 돌아다니다 보니, 대정국에서 왔다고 말하는 게 좀 더 편리하여…….”

“으음.”

진자주는 호리 곁의 어린 여우를 몇 번 쳐다보더니, 다시 호리를 위아래로 가늠하며 물었다.

“정봉 나루터를 찾고 있는 게지?”

그의 말은 정봉 나루터가 월록산에 있다는 걸 뻔히 아는 데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여우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여우들은 모두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진자주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혹시 정봉 나루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저희는 여기서 아주 먼 다른 대륙으로 가고 싶습니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요…….”

그러자 진자주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도행이 이렇게나 얕은 여우들의 견식이 무척 넓다는 데에 놀랐다. 다른 대륙이 있다는 것도 알고, 정봉 나루터의 존재도 알고 있다니?

“도행은 얕은데 아는 게 적지 않구나. 음, 너희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대체 어디냐?”

그러자 호리가 한결 안심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일전에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속에서 바다 건너 먼 곳에 여우족의 성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세상 밖에 따로 만들어진 천지 같았는데, 산수의 풍경이 아주 수려하고 여우 신선들이 수행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꿈에서 깬 뒤에도 그 광경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었지요. 그러다 불시에 재난을 당한 후로, 아예 그곳을 한번 찾아보려는 생각에 고향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이곳에 요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지 않는 선인들의 나루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또 다른 대주로 갈 수 있다기에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오호…….”

진자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족의 성지라면 그도 계연에게 들어본 바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호리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태여 따져보려 하지 않았다. 어쨌든 여우족의 성지에 가고 싶다는 건 분명 사실일 테니 말이다.

“네가 말하는 성지란 분명 옥호동천일 것이다. 서역 남주 천창산에 있지…….”

그 순간, 호리의 뇌리에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일전에 계 선생님께서 혹시 정봉 나루터를 찾지 못하거든, 그 산자락 주위에 머물며 서성여 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지금, 이 순간을 예측하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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