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겉과 속이 다른 우패천 (2)
우패천이 한껏 경시하는 눈빛으로 왕유홍을 바라보자, 그의 몸에서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여기가 정봉 나루터든 어느 선문의 나루터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뿐더러, 눈앞의 사람이 응하기만 하면 곧장 주먹을 날리겠다는 기세였다.
그러자 소년은 가슴속의 분노를 억지로 내리눌렀다. 비록 우패천에게 깊은 원한과 분노를 느끼긴 했지만, 상대의 도행이 높아 정말로 맞붙기는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하! 여기서 참고 넘어가다니, 사내놈이 패기도 없군. 나는 패기 없는 놈은 상대도 안 해!”
우패천이 씩 웃자, 차갑게 빛나는 하얗고 견고한 치아가 드러났다. 그것은 분명 소가 지닌 단단한 이빨일 뿐이었지만, 어쩐지 맹수의 송곳니보다 더욱 소름이 끼쳤다.
소년은 자기만은 저 난폭한 소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며 속으로 계속 되뇌면서 호흡을 진정시켰다.
“대꾸해주기도 싫네요. 저쪽에 일행이 있으니 갑시다.”
우패천은 왕유홍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내가 비록 지금 당장 네놈을 어찌하지는 못해도, 열받아 죽게 만들 수는 있지!’
이렇게 생각한 우패천은 속으로 살짝 탄식했다.
저 왕씨 놈은 지닌 기운이 아주 사악했는데,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자신은 물론이고 육 산군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저자는 선연을 얻고자 하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손을 뻗쳐 그 원기를 섭취했는데, 듣자 하니 아직 완전히 자라나지 않은 선도(仙道)의 기초를 뽑아낼 수도 있다고 했다.
‘계 선생님이 진지하게 임하셨든 아니든, 그 도망친 모습이 얼마나 낭패였든지 간에, 일단 계 선생님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면 절대 보통 녀석이 아니야. 내 조만간 네놈을 죽여주마!’
그는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떠올리며 왕유홍의 뒤를 쫓아갔다.
왕유홍은 정봉 나루터에서는 이곳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우패천을 제외한 다른 일행 모두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저 성질 더러운 소만 잘 지켜보면 되었다.
왕유홍은 여전히 정봉 나루터에서 손을 뻗칠 평범한 인간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개 치고 다니지는 못했다. 전에 그렇게 했다가 두 번이나 계연을 마주쳤고, 두 번째에는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왕유홍과 우패천은 평범한 인간이 운영하는 어느 주루 바깥에서 강호 무인의 차림새를 한 키가 크고 마른 남자 세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왕유홍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지금 저 살짝 그을린 청년의 모습이 왕유홍이 자주 변하곤 하는 모습 중의 하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왕유홍의 곁에 서 있는 저 순박하고 무던해 보이는 남자는 여러 사자(使者)가 나서서 천계맹으로 모셔온 소 요괴임이 틀림없었다.
“홍 어르신을 뵙습니다, 우씨 어르신을 뵙습니다!”
세 사람은 우패천과 왕유홍이 가까이 다가오자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예를 취했다. 왕유홍은 아무 말 없이 까딱 고개만 끄덕였고, 우패천은 무척 흥미롭다는 듯이 세 사람을 살펴보다가 다시 왕유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 이 기생오라비 좀 보게, 오만하기는. 그나저나 이 몸이 배가 고픈데 술과 요리는 준비되어 있겠지?”
그러자 세 사람은 왕유홍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조심스럽게 관찰한 뒤, 얼른 우패천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예, 그럼요. 안쪽에 이미 주문해 놓았습니다. 우씨 어르신, 홍 어르신, 어서 들어가시지요!”
“음, 그래야지. 그럼 어서 가세, 여기서 꾸물대지 말고.”
우패천은 세 사람 중 한 남자의 옷깃을 끌어당겨 그를 앞장서게 했고, 그렇게 그들 일행이 모두 주루에 들어섰다.
그러자 세 사람이 말했던 대로 식탁에는 이미 요리와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 자리는 뻥 뚫린 대청의 한쪽 구석에 식탁 두 개를 붙여 만들었는데, 그 위에 준비된 요리에서는 주방에서 막 나왔는지 김이 폴폴 오르고 있었고 영기마저 감돌았다. 그야말로 모양, 향기, 맛 그리고 영기까지 완벽하게 갖춘 요리들이었다.
“어이쿠, 신경을 꽤 쓴 모양이군. 음식에 영기도 감돌고, 선과(仙果)도 있고, 이 몸도 아직 이런 건 먹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헤헤헤, 우씨 어르신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소인, 두 분께서 오신다는 걸 알고 일부러 신경 써서 준비했습니다!”
세 사람 중 키가 제일 크고 또 가장 마른 남자가 우패천 곁에 다가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우패천도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더니, 다음 순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펼쳤다.
주위에 있는 이들이 채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우패천이 그자에게 주먹을 날린 것이다.
퍼억!
쿵……!
그러자 주루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우패천에게 얻어맞은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상반신은 바닥을 뚫고 들어간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 온몸을 덜덜 떨며 경련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죽지는 않았지만, 과도하게 놀란 데다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일부러 신경 써서 준비하긴 개뿔? 내가 소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많은 고기 요리를 내오다니, 어째서 채소는 보이지 않지? 이 꼴을 보고 어찌 화를 내지 않겠느냐!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 여기는 선문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내 기필코 네놈을 목 졸라 죽였을 것이다!”
이에 옆에 있던 왕유홍이 깜짝 놀라 얼른 우패천의 팔을 끌어당겼다. 동시에 우패천이 또 성질을 부릴 경우를 대비해 온몸의 법력을 끌어모았다.
“어르신, 인제 그만 하세요. 너희 둘, 어서 신선한 채소 요리를 준비시켜라. 충분한 영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저자도 어서 일으키고!”
그 말에 다른 두 사람은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를 부축한 뒤, 얼른 주문을 넣기 위해 계산대로 향했다.
왕유홍과 다른 세 사람뿐만 아니라, 주루 안팎에 있는 많은 이들도 이 장면을 보고 흠칫 놀랐다. 수행을 닦은 이들은 모두 꺼리는 눈빛으로 우패천을 바라봤지만, 우패천은 두 눈에 벌건 실핏줄이 돋아난 채로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그들을 마주 봐주었다.
“보긴 뭘 봐? 저 어린놈을 훈계하는데도 내가 당신들 눈치를 봐야 하나? 한판 붙고 싶어?”
“우, 우씨 어르신, 진정하세요, 진정!”
왕유홍은 이제야 우패천이 무슨 화를 불러올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패천의 성질을 잠재우려 애쓰면서, 연신 주루 안팎의 사람들을 향해 예를 올리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친우가 산골에서 제멋대로 살던 이라 성질이 이리 불같습니다. 제대로 된 예의범절을 배운 적이 없어 그러니 부디 아량 넓게 용서해주세요. 조금 전에 있었던 몸싸움은 저희끼리 잘 해결하겠습니다…….”
상황을 원만히 해결한 왕유홍은 주루의 주인에게도 사과를 잊지 않았다.
“바닥을 훼손한 것은 반드시 배상해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봉 나루터에서 주루를 열 수 있다는 것은, 월록산에 연줄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더 큰 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왕유홍은 겸손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이쪽에서 멀어졌고, 주루의 주인장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유홍은 그제야 안도하며 내내 꼭 틀어쥐고 있던 우패천의 팔을 풀어주었다.
이때 우패천은 이미 성질이 많이 누그러져 있었는데, 왕유홍이 보기에 아마 이제야 자기 행동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아, 그 뭐냐, 조금 전에는 이 몸이 조금 충동적이었던 것 같다. 하하하하하, 그래도 별일은 없어 다행이군.”
“당신, 아니 우씨 어르신,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동료이니 서로를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어르신의 도행이 높은 건 알지만, 조금 전에는 정말이지 지나쳤습니다. 게다가 지금 여기는…….”
“알겠어, 알겠다고. 다음번에는 살살하지!”
왕유홍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을 뻔했다. 우패천은 이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느긋하게 자리에 앉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왕유홍을 바라보았다.
‘서로 존중은 무슨! 계 선생님께 네놈이 도망치기 위해 비열한 수단을 썼다는 걸 듣지 않았으면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그때, 조금 전의 세 사람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중에 우패천에게 얻어맞은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남자는 얼굴색이 불그스름했는데, 이는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조금 전 우패천의 주먹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우, 우씨 어르신, 채소 요리를 십여 가지 정도 다양하게 주문했습니다. 채소뿐만 아니라 과일도 가져올 겁니다…….”
“그래, 그래. 조금 전에는 내가 반응이 지나쳤다. 자, 그럼 어서 앉지!”
우패천이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향해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세 사람은 사실 마음속으로 화가 난 상태였지만, 우패천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 이를 드러낼 수 없었다. 게다가 연맹에는 괴이한 자들이 아주 많았고, 눈앞의 이 요괴도 단연코 그중 하나였다. 괜히 성질을 건드렸다간 동료 간의 우애 같은 건 봐주지도 않을 사람이었으니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우패천이 씩 웃더니 곧장 젓가락을 들어 식탁 위에 보이는 채소부터 집어 먹기 시작했다.
우패천은 사실 평소에 채소만 먹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몸담은 곳이 그리 깨끗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채소만 먹는다고 미리 밑밥을 깔아놓은 것이었다. 후에 혹시나 누군가 ‘인육 잔치’ 같은 데에 초대했는데, 자기가 먹지 않으면 틀림없이 의심을 살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인육을 먹자니, 앞으로 계 선생님을 만날 때 마음 한쪽이 몹시 불편할 것 같았다.
이 문제에 대해 육 산군은 우패천만큼 쓸만한 핑곗거리는 없었지만, 대신 육 산군은 생각이 트여 있어서 필요한 때 마음을 거스르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에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심성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우패천은 푹 삶은 배추 요리를 먹으면서 육 산군이 이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지금 깊은 못에 몸을 담근 것과 같은 상황이라, 그 표면은 진흙으로 뒤덮였지만, 일단 못에서 나오기만 하면 여전히 하얀 연뿌리일 것이다.”
우패천은 육 산군을 보며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런 모습에 우패천은 내심 감탄했고, 자신이 이 방면에서는 확실히 그에게 뒤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입에 맞았는지 우패천이 얌전히 밥을 먹자, 내내 긴장하고 있던 왕유홍이 그제야 그들의 목적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정봉 나루터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얼마 후면 점차 일행이 모일 테니 때가 되면 다 함께 영주(靈州)로 떠날 것이다. 그동안 나루터의 상인들을 잘 살피다가 상고 적의 피나 법기를 발견하면 무슨 방법을 써서든 손에 넣어야 한다. 또한 우리 천계맹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발견하면, 시간을 두고 잘 관찰했다가 적당한 때 끌어들여라. 아, 그리고 월록산의 규제가 더욱 엄격해졌으니, 절대 안일하게 행동해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예, 조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