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4화. 돌아왔으니 되었다
계연은 홍성연에게서 죽통을 건네받더니, 무게를 가늠해 본 후 이렇게 대답했다.
“안에 든 물이 정말 이 죽통만 한 크기가 아니라 다행이에요.”
“하하하하, 홍모가 비록 선생님께서 지니신 천두호 같은 진귀한 물건은 없지만, 꽤 큰 용량을 담을 수 있는 물건은 몇 개 있습니다.”
“그럼, 고맙게 받겠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생님!”
계연이 죽통에 엮인 끈을 들더니 홍성연을 향해 인사했다.
“그럼, 계모는 이만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홍성연도 계연을 향해 공손히 예를 행했다. 그러다가 계연이 구름을 타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계 선생님, 후에 좋은 술을 빚거든 홍모도 맛보게 해주십시오!”
“당연하죠, 홍 산신!”
계연이 웃으며 대꾸하더니 손에 든 죽통을 흔들어 본 다음 소매 안에 넣었다.
보통 술을 빚는 데는 그리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물은 썩은 것도 신기한 것으로 바꾸는 힘을 지녔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술보다 진귀한 것이었다.
* * *
그와 비슷한 시각, 은은한 도홍색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영안현 밖에 이르렀다.
여인은 한 손에 기름먹인 종이로 만든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회색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현성의 모습을 바라보며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바로 수행의 기반을 착실히 다지고 돌아온 손아아였다.
‘고향은 아직도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답구나…….’
막상 현성 앞에 도착하자, 손아아는 저도 모르게 조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족들과는 계속 서신을 주고받았지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집안 상황이 어떤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약간의 초조함을 안고 영안현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으로 들어서자 생활의 정취가 느껴지는 각종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손아아의 마음을 어지럽히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손아아는 전보다 더욱 아름다워진 외양에 선기(仙氣)까지 감돌았지만, 성에 들어선 후로 모습을 바꿔 그리 많은 시선을 끌지는 않았다.
손아아는 곧장 동수방의 집으로 향하지 않고, 길을 꺾어 천우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직 천우방 근처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골목 어귀에 다다른 손아아는 눈물 어린 얼굴로 천우방 밖 거리를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익숙하기 그지없는 오래된 국수 노점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노점에서는 살짝 등이 굽은 노인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손복은 이미 고령이었지만 손발이 잽싸고 몸도 튼튼했다. 그래서 그는 궂은 날씨에도 거의 매일 같이 나와 장사를 했고, 노점의 오래된 규칙도 그대로 지켜왔다. 노점의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다.
때는 마침 식사 시간이 막 지난 뒤라, 노점에는 국수를 먹는 손님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때 손복은 한 손으로 나무 쟁반을 들고서, 다른 한 손으로는 행주로 다른 손님이 앉았었던 식탁을 닦고 있었다.
그러다 손복은 한순간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노점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손복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 가라앉았으나, 고개를 살짝 젓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낭자……. 주문하시려고요?”
할아버지의 말에 목이 멘 손아아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가득 고였다.
“할아버지! 저 아아예요, 아아!”
투둑……!
그러자 손복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손에 든 쟁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고 싶은 온갖 말이 목구멍으로 치솟았으나, 손복은 결국에는 이 한마디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아야…….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돌아왔으니 되었다!”
손복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 위로 눈물이 쉴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들 가족은 아아가 계 선생님을 따라 신선이 되기 위해 떠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신선에 관한 이야기는 백성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 주제였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도 신선과 평범한 인간이 유별하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씨 집안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때때로 손아아가 서신을 보내와도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손녀가 돌연 눈앞에 나타나니, 고령의 손복이 어떻게 마음속의 감격을 억누를 수 있겠는가.
손아아는 할아버지가 우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그녀는 더는 전처럼 문약한 소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볍게 비틀대는 손복을 쉽게 부축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아아가 돌아왔어요. 제가 왔어요, 일단 앉으세요!”
손복의 앞에서 손아아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모습을 숨기던 장안법을 거두고 원래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외양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놀란 손복은 거의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
손아아는 손복을 한쪽 자리에 부축해 앉혔다. 한편 한쪽에서 국수를 먹던 손님은 손복이 우는 걸 보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눈부신 손아아의 모습을 보고는 하려던 말이 도로 쑥 들어가 버렸다.
‘세상에, 꼭 선녀가 강림한 것 같군!’
할아버지와 손녀 둘은 그런 와중에도 노점에 손님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해후의 기쁨을 나눈 손복은 입을 쩍 벌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손님의 그릇이 거의 텅 빈 것을 발견했다.
“다 먹었나? 다른 거 더 드릴까?”
손복의 얼굴을 본 손님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 아뇨, 손씨 아저씨께서 바쁘신 듯하니 저는 이만 가는 게 좋겠습니다, 계산할게요! 그나저나 나아가 돌아왔다니,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네요. 아아야, 혹시 나 기억해? 옆쪽 방(坊)에 살았었는데, 어릴 때 이름은 이왜(二娃)였어.”
“하하하하, 눈치가 빠르구먼. 되었네, 오늘은 내가 내는 걸로 하게. 돈 안 받겠네!”
그러자 손아아는 그저 예의상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기억해. 앞으로도 자주 와서 국수 먹고 가.”
“으응, 그럴게. 꼭, 꼭 올게. 아저씨,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손복은 이제 처음의 흥분이 많이 가셨기 때문에, 유일한 손님이 떠나자 아아를 불러 자리에 앉히고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손씨 집안사람들은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으며, 손아아가 떠난 것으로 인해 무언가가 바뀌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가끔 누군가 그녀에 관해 물을 때마다, 그저 멀리 배움을 구하러 떠났다고만 말한다고 했다.
손아아는 마치 말문을 배운 꾀꼬리처럼 운산의 아름다운 풍경부터 수행하는 중 겪고 보았던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는 손복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연신 미소 짓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다. 설령 내용 대부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손녀가 그간 아주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왔음을 알고 대견하게 여겼다.
그렇게 반 시진 넘게 앉아 이야기하던 손복은 얼른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장사를 일찍 접는 게 좋겠구나, 어서 돌아가서 닭도 잡고 오리도 잡아서 요리도 해야 하고, 네 아버지 어머니도 너를 무척 보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오늘은 아아가 돌아온 날이니만큼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 준비도 하고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손아아도 물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계속 천우방 방향을 힐끔거리다 마침내 계연에 관해 물었다.
“할아버지, 계 선생님은 혹시 돌아오셨어요?”
“최근 몇 년 동안은 국수를 드시러 오신 적이 없는 걸 보니, 아마 댁에 계시지 않는 듯하구나. 하지만 선생께서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시니 중간에 몇 번 돌아오셨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럼, 할아버지, 저 거안소각에 먼저 가봤다가 얼른 돌아올게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어서 가서 선생님께서 계신지 보고 오렴. 할아버지는 여기서 기다리마.”
그는 아아에게서 요 몇 년간 계 선생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건 아니라는 걸 이미 들었지만, 그래도 손복의 눈에 계연은 아아의 은사(恩師)였다. 그러니 고향에 돌아온 이상 은사를 먼저 뵙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천우방의 모습은 아아의 기억과 그리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고작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아아를 보고서도 알아보는 천우방 사람이 몇 없었다.
아아가 쌍정포를 지나 익숙한 골목을 따라 걸으니, 거안소각에 우뚝 자라난 대추나무가 눈에 띄었다.
손아아는 거안소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곳 특유의 고요하고 깨끗한 느낌이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계 선생님을 만나러 오는 동안 느껴졌던 흥분이나 초조함도 점차 가라앉았다.
그러다 거안소각의 대문 앞에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은 걸 보고 손 아는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선생님께서 안에 계시나 봐!’
부푼 기대를 안고 손아아가 가볍게 대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선생님, 계세요? 저 아아예요!”
그렇게 잠시 기다렸지만 거안소각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손아아가 몸을 돌려 떠나려던 순간, 대문이 저절로 열렸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손아아가 얼른 고개를 들어 뜰 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뜰 안에도 사람 그림자가 없어 무척 이상했다.
“손아아구나, 들어와.”
그때 돌연 온화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손아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커다란 대추나무의 가지 위에 녹색 비단옷을 차려입은 여인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여인은 두 발을 공중에 내려놓고 가만히 앉은 채 손아아를 향해 웃고 있었다.
손아아가 멍하니 문가에 서 있자 조낭이 다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야, 들어와.”
“아, 네! 언니는 누구세요? 어떻게 저를 아세요?”
거안소각은 계 선생님이 머무는 곳이었으므로, 손아아는 이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고 그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무 위의 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계 선생님 집에 왜 여인이 있지? 그것도 나무 위에?’
그러자 조낭이 슬며시 웃더니 풀쩍 땅으로 내려섰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가볍고 부드러운 깃털 같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녀가 입은 치마는 살짝 바람이 흩날렸을 뿐 뒤집히지 않았다.
“나는 조낭이야, 일전에 선생님께서 네게 글자를 가르쳐주시는 걸 본 적 있어. 일단 여기 와서 앉아. 선생님께선 집에 안 계시거든.”
조낭은 뜰 안에 놓인 돌 탁자를 가리키며 손아아에게 자리를 권했다. 손아아는 더는 이전의 무지한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짧은 경악 뒤에 곧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녀는 탁자를 향해 걸어가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대추나무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저 대추나무군요? 대추나무가 바로 당신이고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제게 글자를 가르쳐주시는 걸 보신 거고요?”
그 말에 조낭이 미소 지으며 먼저 탁자 앞에 앉았다. 손아아가 뒤이어 자리에 앉자 조낭이 이렇게 대답했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나는 대추나무에 맺힌 정령이야, 대추나무의 일부분이지. 그러니 나는 대추나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추나무는 나라고 할 수 없어.”
조낭이 누군지 알게 되자, 손아아는 즉시 그녀에게 그 어떤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계속 거안소각에 계셨던 거예요, 그동안?”
“응, 계속 여기 있었어.”
손아아는 조낭이 실은 이미 오래전에 정령이 되었는데, 그때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금은 자신이 수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낸 거라 여겼다.
“저, 계속 여기 있으면, 외롭지 않으세요?”
그러자 조낭은 계속해서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외롭지 않아. 거안소각은 아주 편안하거든. 게다가 여기는 선생님이 머무시는 곳이니까, 선생님께서도 언젠간 돌아오시겠지.”
“그럼, 선생님께서 언제 마지막으로 오셨는데요?”
“한 4년쯤 되었을 거야.”
그러자 손아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절대 그 무료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