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5화. 손님의 방문
“언젠간 돌아오실 거야. 아, 대추 맛 좀 봐.”
조낭이 이렇게 말하더니 나뭇가지를 향해 손을 뻗자, 잘 익은 푸른 대추가 네 알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을 손아아를 향해 건넸다.
“집으로 가져가도 될까요?”
“전부 네 거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때,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오자 대추나무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조낭은 무언가를 느낀 듯이 손아아를 향해 말했다.
“곧 여기로 손님이 오시겠구나. 네 할아버지도 이미 정리를 다 끝내셨으니 먼저 돌아가 보는 게 좋겠다.”
“네…….”
손아아는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세요? 찬합에 요리를 좀 담아다 드릴게요. 저희 할아버지가 솜씨가 좋으시거든요!”
“괜찮아,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
조낭이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정중히 거절했다.
“네…….”
손아아는 조낭을 향해 인사한 뒤 손에 대추 네 알을 쥔 채로 거안소각을 나섰다.
손아아가 떠나자 조낭은 고개를 들어 서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쪽 하늘에서는 바람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변화는 무척 감지하기 힘든 것이라서 다른 이들은 이를 판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조낭만은 지금 누군가가 바람을 몰고 영안현으로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람이 그녀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 * *
그때 멀리 공중에서는 세 사람이 바람을 몰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구풍이었고, 선풍도골의 모습을 한 중년의 남자는 구풍의 사부인 배정이었으며, 마지막 한 사람은 배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연(練) 선배님, 저 앞이 바로 영안현입니다. 거안소각이 바로 영안현에 있지요. 선배님께서 예측하신 대로 계 선생님께서 정말 댁에 계시면 좋겠네요.”
그 말에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 늙은이(老夫)는 계 선생님께서 반드시 댁에 계실 거라고는 하지 않았소. 그저 거안소각에 누군가 있다고만 예측했을 뿐이지.”
“부디 헛걸음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배정이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과 함께 영안현으로 향하는 이 노인은 옥회산 수선자가 아니라, 천기각에서 먼 길을 찾아온 수선자였다. 몇 년 전 계연이 옥회산을 통해 곧 천기각에 갈 것이라 말을 전했고, 옥회산에서는 이 소식을 곧장 천기각에 전했다. 그러자 천기각에서는 비록 동천을 굳게 봉쇄한 상태였는데도 계연의 왕림을 환영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계연은 내내 걸음을 하지 않았고, 천기각 측에서는 전혀 흔적을 종잡을 수 없는 이 고인(高人)을 기다리다 못해 마침내 직접 사람을 보내 모셔오기로 한 것이다.
물론, 조낭은 지금 이곳으로 오는 게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영안현으로 향하는 세 사람도 거안소각에 있는 게 계연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계연에 대한 존중을 표하기 위해, 천기각에서는 동천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연씨 성의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을 보냈다. 그는 점을 치는 데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긴 수염의 노인은 계연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었지만, 계연과 연관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안 되고 사물(死物)이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거안소각에 누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쳤을 때, 오늘 나온 결과가 무척 길했던 것이다. 이에 노인은 곧장 옥회산 측에 청해 영안현으로 그를 데리고 가달라고 요청했다.
비록 노인이 확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구풍은 계 선생께서 정말로 거안소각에 계실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영안현으로 가려면 우선 우규산을 지나야 했다. 세 사람이 공중에서 우규산을 지나던 중, 천기각의 노인은 그 산세를 보더니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 산은 영기가 빼어나고 풍뇌(*風雷: 광풍과 우레)의 흔적도 남아있는 것이 척 봐도 보통 산이 아니구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부님, 연 선배님, 이제 영안현이 머지않았습니다. 땅으로 내려가서 걸어서 성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마땅한 도리지요!”
“당연히 그래야지!”
두 사람은 아무런 이견 없이 곧장 영안현 밖에 내려섰다. 그런 뒤 함께 현성 안으로 들어서 천우방을 향해 걸어갔다.
구풍의 일행은 손아아처럼 뛰어난 외모를 지닌 여인은 아니었지만, 수염이 긴 노인 한 명만으로도 주위의 시선을 끌기는 충분했다. 그는 뚱뚱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 수염만은 산타클로스보다 훨씬 길고 풍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혹시 모를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장안법을 써서 각기 연령대가 다른 문아한 서생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천우방 밖의 손기노점은 이미 장사를 접은 상태였기 때문에, 구풍의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노점을 보지 못했다. 연 노인은 천우방 밖에서부터 이미 바람을 타고 흐르는 영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거안소각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리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연 노인은 사실 오는 내내 우규산 전체와 영안현의 형세를 세심히 관찰하며, 계 선생이 은거하는 곳은 대체 무엇이 특별한지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계 선생께서 은거하는 곳은 과연 남다르구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안현은 확실히 살기 좋은 고장이지요. 다만 영안현이 살기 좋은 곳이라 계 선생께서 이곳에 은거하신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저희로서는 알 수 없지요.”
구풍이 이렇게 말하자, 연 노인과 배정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각자 예의 있게 서로를 청하며 천우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천우방 저 끝, 거안소각의 대추나무가 벌써 눈에 띄었다. 대문 앞에 다다른 세 수선자는 다시 정신을 바짝 다잡았다.
“사부님, 연 선배님, 이곳이 바로 거안소각입니다. 그럼, 문을 두드리겠습니다.”
“잠깐!”
긴 수염의 노인이 손을 들어 구풍을 제지하더니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의관을 정제할 시간을 좀 주시오.”
구풍과 배정은 원래 노인이 말하는 의관을 정제한다는 게 그저 옷차림이 깨끗한지 아닌지 살펴보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은 먼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불진을 꺼내 존재하지 않는 온몸의 먼지를 탈탈 털었다. 그리고는 다시 은빛 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노인이 병을 가볍게 던지자, 그것이 공중에 떠올라 스스로 마개를 열더니 그 안에서부터 맑은 샘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노인은 샘물을 받아 손을 깨끗이 닦고, 다시 얼굴을 닦았다.
구풍은 한 번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해답을 구하듯이 자신의 사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배정도 생전 이런 사람은 처음 보는 것이라서, 비록 연 선배가 계연을 향한 존경심에 이렇게 한다는 건 알았지만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구풍과 배정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봤지만, 계연의 집 문 앞에서 감히 “도우, 좀 지나친 게 아닙니까”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연 노인은 그렇게 몇 분 정도 깔끔히 손과 얼굴을 닦더니, 부드러운 수건을 꺼내 손과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거의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얼굴로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소, 두 분 도우. 옛 경전에 이르기를, 성인(聖人)을 대하려면 반드시 경건함을 지녀야 한다고 하지 않소? 구풍 도우, 그럼, 연모(某)가 문을 두드리겠소.”
이렇게 말한 연 노인은 거안소각 대문 앞에 다가가더니, 먼저 대문 위에 걸린 편액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천기각 장수 노인(*긴 수염의 노인) 연백평(練百平)이 계 선생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연백평의 목소리는 거안소각에 있던 조낭에게도 또렷이 들렸다. 그녀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 앉아 대문 방향을 바라보며, 문을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는 중이었다.
천기각의 연백평?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고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선생님도 안 계시지 않은가?
거안소각 안에는 확실히 누군가 있는 게 틀림없었는데, 안에 있는 사람이 못 들은 척을 하니 연백평은 무척 계면쩍어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은 뒤 다시 한번 대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후배 연백평이 계 선생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혹 선생님을 한 번 뵐 수 있겠는지요?”
이렇게 말을 한 뒤 잠시 기다렸는데도 거안소각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이에 배정이 구풍을 슬쩍 쳐다보자, 구풍이 얼른 한 발 나서 말했다.
“제가 해볼까요?”
그러자 연백평이 울적한 얼굴로 한발 물러났다.
“그럼, 구 도우께서 대신 말을 전해주시오…….”
“예.”
구풍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막 대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그저 골목을 지나는 사람이라 여기고 굳이 돌아보지 않았지만, 곧이어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분께서 제 누추한 거처에 와주셨는데, 좀 더 일찍 맞이하러 나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막 먼 길에서 돌아오는 참이라, 아직 집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계 선생님!’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세 사람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골목 어귀에서부터 계연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계 선생님!”
“아, 알고 보니 댁에 계시지 않았던 것이군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계연은 세 사람과 서로 공손히 인사를 나눈 뒤 연백평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그들끼리 나눈 대화를 들었기도 하지만, 설령 듣지 못했더라도 계연은 그의 외모만으로도 그가 천기각의 장수 노인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연백평도 두 눈을 빛내며 계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에 흥분이 묻어났다. 하지만 실제 그가 느끼는 감격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욱 컸다.
‘이분이 바로 계 선생님이시군. 과연, 과연 천지와 도(道)가 조화롭게 어우러졌구나…….’
바로 그때, 거안소각의 대문이 끼익 열렸다. 동시에 나뭇가지에서 내려온 조낭이 서둘러 문가로 걸어왔다.
“선생님, 돌아오셨군요!”
‘웬 여인?’
‘사람인가? 신선?’
구풍을 비롯한 이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조낭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별말 없이 조낭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세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먼 길 와주셨는데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조낭, 꿀차를 한 주전자 끓여야겠는데, 내가 가진 게 다 떨어졌구나.”
“네, 조낭이 계속 채집하고 있었습니다!”
조낭이 기쁜 얼굴로 차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계연은 세 사람을 뜰 안에 있는 돌의자로 안내한 뒤, 일단 연백평을 향해 사과했다.
“연 도우, 계모가 원래는 정말로 천기각을 방문하려 했었는데, 그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계속 미뤄졌어요. 천기각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선, 선생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계연의 말에 연백평이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계연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행했다.
“선생님께서 어떤 분이신데, 응당 저희 천기각에서 직접 찾아뵙고 모셔와야 마땅하지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