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화. 계연의 ‘광팬’
연백평은 계연을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조심스럽게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계연이 입은 법의(法衣)는 소박했으며, 어떤 신비한 문자나 주문도 담겨 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어떤 술법이나 신통력을 쓰지 않았는데도, 유형과 무형의 모든 때와 먼지가 그의 몸에 닿지 못했다. 이를 본 연백평은 계연에 대한 존경이 더욱 깊어졌다.
“아닙니다, 사과드려야 마땅하지요. 하지만 이왕 도우께서 직접 찾아오셨으니, 계모도 천기각에 갈 필요가 없겠네요.”
계연의 말에 연백평이 놀라 펄쩍 뛰었다.
‘예? 천기각에 안 가신다고요, 어르신? 그것도 제가 찾아왔기 때문이라고요? 그럼 천기각에 돌아가면 저는 각로들에게 산 채로 뜯어먹힌다고요!’
“저,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저와 반드시 천기 동천에 가셔야 합니다! 저희 천기각에서는 선생님께서 오신다고 듣자마자 위아래로 동천을 전부 정돈하고, 구석구석 선생님을 맞기 위해 손보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선생님께서 가지 않으신다면, 천기각에서는 분명 제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크게 노할 겁니다! 가볍게는 백 년간 금족(*禁足: 외출을 금하는 일) 되거나, 무겁게는 지금까지 쌓은 수행의 2할은 날아갈 겁니다…….”
그러자 계연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그렇게나 심각한 벌을 받는다고? 설마 이 노인이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저, 그럼 만약에 제가 연 도우를 통해 서신을 한 통 써드리면요?”
“그것도 아니 됩니다! 휴우, 그럴 바에는 그냥 어딜 가든 선생님을 따라다니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천기각에 가지 않으시면 저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럼 아직 임무에 실패한 건 아니게 되니까요!”
연백평이 이렇게 고집을 피우며 달라붙을 줄 몰랐던 계연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천기각에 한번 방문할게요.”
그때 조낭이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더니,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고는 손님들을 위해 찻주전자로 차를 따라주었다. 그러자 꿀차의 맑은 향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연백평이 가만히 차향을 맡아보니 그 안에 단순히 영기가 담겨 있을 뿐만이 아니라, 거의 영험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러분, 어서 차 맛 좀 보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잘 마시겠습니다, 조 선자(仙子)!”
그러자 그 호칭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조낭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조낭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참, 선생님, 아아가 돌아왔어요.”
“응, 알고 있다.”
연백평은 차를 마시다가 돌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얼른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물에 감싸인 투명하고 큰 물고기가 몇 마리 나타났다. 물고기들은 공중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모양은 길쭉했고 길이는 보통 사람의 팔 길이보다 짧은 것은 없었다.
“선생님께서 생선을 좋아하신다고 하여, 제가 특별히 좋은 것으로 몇 마리 준비해왔습니다. 제 성의이니 흔쾌히 받아주시지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군…….’
계연은 그 생선들을 바라보며 감히 거절의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네,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요. 그럼 오늘 제가 이 생선들로 세 분 도우를 접대해 드리겠습니다. 아, 조낭, 혹시 배가 고프니? 같이 먹겠느냐?”
계연이 자신을 향해 이렇게 묻자, 조낭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파요. 조낭도 먹을래요!”
조낭이 기뻐하며 대답했고, 구풍, 배정, 그리고 연백평 세 사람은 당연히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구풍은 이전에 계연이 만든 생선 요리를 먹어봤으므로 계 선생님의 손맛을 알고 있었다. 또한 배정은 구풍의 사부로서 당연히 제자에게 그때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연백평은 원래부터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계 선생님께서 자신의 선물을 받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요리까지 해주신다고 하니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세 분은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계모(某)는 이 생선을 우선 손질해야 해서요.”
계연은 모두 찬성하는 듯 보이자 손을 한번 움직여 공중에 뜬 투명하고 반짝이는 생선들을 주방으로 보냈다.
“예, 알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거든, 이 연모가 주방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술법이나 신통력을 빌리는 게 아니라 진짜로요.”
연백평은 계연의 후한 접대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계연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괜찮아요.”라고 정중히 사절했다. 그리고는 조낭에게 손님 접대를 맡기고 자신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계연이 주방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도, 연백평은 연신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척 봐도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계연이 사라졌다고 해서 곧장 태도를 편히 바꾸지 않고, 조낭에게도 예의 있게 대했다.
“조 도우, 이 꿀차가 아주 향긋하고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구려. 다도에 무척 소질이 있으신가 보오!”
연백평은 조낭에게 공손히 예를 취한 뒤, 찻잔을 들어 가볍게 음미하며 말했다. 구풍과 배정도 이 여인의 정체가 분명 단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연백평처럼 저렇게 낯가죽이 두껍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저 조낭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좋은 차군요.”라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조 도우라고 부르실 필요 없이, 선생님처럼 그저 조낭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차가 입맛에 맞으시다면 좀 더 드세요. 보통 선생님은 손님들께 딱 한 잔만 드리는데 오늘은 양이 충분하거든요.”
세 사람이 다시 한번 조낭을 향해 감사 인사를 하자, 조낭이 웃으며 빈자리에 앉더니 서책을 한 권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행이 높은 선도의 수선자들을 곁에 두고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긴장하는 기색 없이 편안해 보였다.
연백평은 조금씩 차를 음미하며 곁눈질로 조낭을 바라보다 옆에 있는 커다란 대추나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는 일찍이 꿰뚫어 본 상태였다.
한편, 주방의 굴뚝에서는 이미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계연은 오랫동안 불을 때지 않았던 아궁이에 땔감을 넣고 불씨를 붙였다. 이를 보니 조낭이 조금 전에 차를 끓일 때는 땔감을 이용해 물을 끓인 게 아닌 듯했다.
때로는 지금처럼 직접 요리를 하는 것도 무척 흥을 돋우는 일이었다. 특히나 식자재가 이렇게나 훌륭할 때는 말이다.
주방의 도마 앞에 선 계연이 가볍게 손짓하자, 은어(銀魚) 한 마리가 도마 위로 떨어졌다. 내내 몸을 감싸던 물방울이 사라지자 생선은 온몸을 펄떡였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물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게 바로 이제 막 끓을 듯 말 듯 한 솥 안이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칼등으로 생선의 머리를 퍽 내리쳤다. 그러자 원래대로라면 기절하는 게 불가능한 이 생선은 계연의 힘에 정신을 잃었고, 그와 동시에 계연이 칼을 내려 생선의 머리를 잘랐다.
콰직!
그 소리는 마치 단단한 채소 줄기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러더니 잘라낸 생선 머리와 몸통의 단면에는 하얀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또한 단면으로 보니 생선 안에는 등뼈 하나뿐이었으며 내장은 아예 없었다.
“좋은 생선이구나! 벌써 영기를 흡수해 뼈를 만들어냈으니, 만약 백 년만 더 자랐더라면 나도 널 먹으려 하진 않았을 거야.”
보통 이런 생선들은 물의 정수가 모여 생겨난 것으로, 이들의 형상은 물고기였지만 실상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오장육부 같은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 오장육부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다 갖추면 그때는 진정한 생명을 지닌 물고기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계연의 손에 잡힌 이 물고기는 좀 더 특별했다. 단순히 물의 정수뿐만이 아니라 수(水)와 목(木) 두 가지 기운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계연이 알기로도 이런 종류의 물고기는 무척 보기 드문 것이었다.
생선은 총 다섯 마리였는데, 크기가 각자 달랐다. 계연은 그중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두 마리를 남겼고, 다른 세 마리로 요리를 시작했다.
이렇게 진귀한 식자재를 다듬으려면 경험과 노련한 솜씨가 필요했다. 특히나 도행이 낮아서는 안 되었다. 계연의 손에서 이 생선들은 마치 보통의 생선들처럼 잘리고 다듬어질 수 있었으며 각종 방법으로 조리될 수도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생선은 죽는 순간 곧바로 자연에 융화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혹은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탕을 끓이더라도, 물의 정수만이 가득 담긴 살 한 점 없는 깨끗한 탕이 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생선은 진정한 생명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연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잘린 뒤에도 펄떡펄떡 움직였다.
계연이 생선 세 마리의 손질을 끝내자, 마침 한쪽에 놓인 솥이 적당히 달궈졌다. 그는 솥 안으로 기름을 두른 다음, 손질을 마친 생선 한 마리를 그 안에 넣었다.
치이익……!
솥 안에서 기름 튀기는 소리가 들리며 향긋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조금 전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던 생선은 그제야 동작을 멈췄다. 계연은 주걱으로 생선을 뒤집으며 익힌 다음, 오로지 감각만으로 여러 양념을 차례로 넣기 시작했다. 그 양념 중에는 신선한 대추꽃 꿀도 있었다.
세 마리 생선을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던 계연은 한 가지 재료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에 뜰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던 네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구 선생님, 말린 채소 한 접시 정도만 사다 주시겠어요? 집에 있는 건 너무 오래되어서요.”
조낭은 자신의 영근목 곁에서 순조로이 수행하면서, 나날이 실력이 진보하고 있었다. 이에 계연도 돌아와 조낭을 본 순간부터 이미 그녀가 거안소각 밖을 나설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조낭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문밖을 나서본 적이 없었는데, 이는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계연은 네 사람 중에 그와 가장 익숙하기도 한 구풍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계연의 말에 구풍이 웃으며 승낙하려던 순간, 한쪽에 앉은 연백평이 벌떡 일어나더니 한발 먼저 대답했다.
“계 선생님, 굳이 구풍 도우를 번거롭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영안현에서 파는 말린 채소 중에는 동쪽 거리 입구의 젊은이가 파는 게 가장 질이 좋습니다. 하지만 영안현 전체에서 가장 맛난 것은 묘사방 근처 진(陳) 씨 댁의 것입니다. 막 항아리에서 염장을 끝낸 걸 꺼내 말린 것이니 제일 맛있을 때입니다.”
연백평은 이렇게 말하더니 찻잔 안의 찻물을 한입에 비우고는 대문가를 향해 걸어갔다. 계연이 말리지 않으면 정말로 가서 말린 채소를 구해올 기세였다.
연백평이 예상했던 대로, 계연은 그의 말에 멍한 얼굴이었지만 굳이 그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에 연백평은 대문을 열고 나가는 동시에 안쪽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그럼, 연모는 금방 갔다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값도 잘 치러주고 오겠습니다!”
연백평이 거안소각을 떠나는 발걸음은 경쾌하기가 마치 신이 난 소년 같았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이것이 지금 연백평이 계연에 대해 느끼는 감상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