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45화 (745/892)

745화. 세 세 번째 경전

“선생님, 또 뭘 쓰시려고요?”

호운은 계연이 몇 번이나 붓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 그러자 계연이 조금 어색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봉구황>을 기록으로 남겨 보려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아……. 봉황이 부른 노래 말씀이군요…….”

계연의 말에 호운도 머릿속에 섬에서 들은 봉황의 노랫소리가 떠올랐다. 확실히 그가 들어본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감미로운 노래였다. 비록 가사도 없는 걸 노래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계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선생님, 어떤 악기로 연주하는 게 가장 적합할까요?”

“당연히 퉁소지. 봉황의 울음소리와 가장 비슷하니까. 만약 이 노래를 퉁소 곡으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아주 뛰어날 거야!”

“아, 그럼 악보를 써야겠네요!”

그 말에 계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감자보(*減字譜: 당나라 때 만들어진 고대 기보법으로, 한자의 획을 뒤죽박죽 조합하여 음악 기호로 만듦), 공척보(*工尺譜: 합(合), 사(四), 일(一), 상(上), 구(句), 척(尺), 공(工), 범(凡), 육(六), 오(五) 10자로 음을 표현한 악보), 율여보(*律吕譜: 음의 높이를 12개의 율명(律名)으로 표시하는 악보)…… 심지어는 오선보(*五線譜: 5개의 선 위에 여러 기호를 그려 음의 길이나 높낮이 등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든 악보)도 어떻게 적는지 몰라서 문제지…….”

계연은 그간 서책을 많이 읽었으므로 당연히 악보도 본 적이 있었다. 때로는 악보를 보기만 해도 그 운율과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일부러 악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천감의 권종실에서도 일부러 악보를 찾아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래를 듣는 것과 적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는 붓을 들고 난 후에야 자신이 운율을 적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계연이 악보를 적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호운의 첫 번째 반응은 ‘계 선생님이 못 하는 것도 있다니?’였다.

“그럼 어쩌죠? 조낭은 적을 수 있어?”

호운이 조낭을 향해 물으니 조낭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음악처럼 높은 경지의 학문은 아직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 속세에서도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 호운은 계연이 붓을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선생님, 그 짧은 사이에 깨달으신 거예요?”

계연은 힘있게 붓을 움직이다가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럴 리가. 그저 나 같은 수선자는 일반적인 악보의 규격에 그리 구속될 필요가 없어서, 혹시나 잊어버리는 부분이 있을까 봐서 일단은 천록문으로 봉구황의 장면을 기록해 놓는 것뿐이란다. 그런 뒤 다시 일반적인 문자로 악보를 적으면 되겠지.”

호운은 그 말에 두 눈을 반짝 빛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이해했어요. 만약 누군가 <봉구황>을 연주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연이 닿은 사람일 거예요. 그럼 그 사람이 <봉구황>을 연주하는 순간, 봉이 황에게 구애하는 걸 볼 수 있을 테니 이 곡의 진수(眞髓)를 깨달을 수 있게 되겠죠!”

“네 말이 옳다.”

계연이 계속해서 붓을 움직이자 하얀 선지 위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완벽한 글자가 나타났다. <봉구황>은 길이가 길어서 탁자 위의 선지 한 묶음만으로는 전부 기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는 계연이 일부러 일련의 문자마다 큰 간격을 두어, 후에 그곳에 노랫가락을 기록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계연의 머릿속에는 봉황의 노랫소리뿐만 아니라, 단야가 오동나무 앞에서 춤을 추는 눈부신 자태도 떠올랐다. 계연은 자신이 본 그대로 적지 않고 자기 생각도 곁들였기 때문에 그 내용이 더욱 방대해졌다.

계연이 마지막으로 획을 긋고 붓을 떼자, 글자 전체에 빛이 반짝이다 사라졌다.

붓을 뗀 계연이 탁자 위를 둘러보자, 곳곳에 두세 장씩 겹친 선지들이 보였다. 오늘 그는 그동안 사놓았던 상등급의 선지를 거의 다 소진한 참이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겠군…….”

<봉구황> 위로는 때때로 심오한 도가 흘러 글자가 희미하고 어지럽게 보였다.

“어, 글자가 사라졌네? 천록서가 완성된 건가요?”

이렇게 물은 것은 호운이었는데, 그의 눈에는 탁자 가득 깔린 종이 위의 글자가 한순간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글자도 적히지 않은 선지처럼 보였다.

반면 조낭의 눈에도 글자들이 모두 사라지긴 했지만, 종이 위로 희미한 안개 같은 것이 흐르는 게 보였다. 그녀가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 안개를 걷어낼 수 있을 듯했다.

계연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시선은 호운을 지나 조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낭이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표정을 수습했다.

“선생님, 저 아무래도 <봉구황>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음, 너는 영근목(靈根木)의 정령이니, 하늘의 특별한 보우를 받는 것도 당연하지.”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의 종이들을 무척 만족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진정한 악보와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마치 지난 생에 영화를 봤다고 해서 그 배경음악까지 완전히 복제해낼 수 있는 건 아니듯 말이다. 설령 어느 재주 좋은 이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해도 <봉구황>은 여느 영화와 달랐다. 게다가 이 천록서의 내용은 보기도 쉽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계연은 자신의 계획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수행자들도 읽을 수 없는 천록문으로 먼저 내용을 기록한 후, 일반 문자로 악보를 적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남겨두었으니 말이다.

그가 탁자 위의 종이들을 다시 한번 쭉 읽어본 뒤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선지들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라 한 장씩 겹치기 시작했다. 선지의 위아래로는 어두운색의 겉표지가 붙었고, 예전에 법보를 제련하고 남은 명주실을 끈으로 삼아 종이끼리 엮자 금세 서책 한 권이 뚝딱 완성되었다.

서책이 탁자 위에 천천히 내려앉자 계연이 겉표지 위에 ‘봉구황’이라는 세 글자를 천록문이 아닌 보통의 글씨로 적었다. 그래도 계연의 서법이 뛰어난 덕에 척 봐도 비범해 보였다.

“호운, 나 대신 나가서 음률 방면의 서책을 좀 사 오렴. 선지도 좀 사 오고, 질이 너무 좋을 필요는 없지만, 너무 떨어져서도 안 된다.”

계연은 새로 완성된 천록서를 뒤적이며 호운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호운이 약간 주저하는 듯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어, 저…… 선생님,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면 안 될까요……? 지금 시간대가…….”

“곧 있으면 서점이 전부 문을 닫을 거야.”

계연은 이렇게 말하더니, 돌연 고개를 돌려 꿀이 든 찻잔을 들고 있는 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아직도 개들이 무서운 것이냐?”

“누, 누가 그래요! 저는 이제 예전의 호운이 아니라고요. 비록 수행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 초짜는 아니에요! 일대일로 맞붙으면 그 어떤 개도 제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요. 그저 그놈들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니니까 그렇죠. 흥, 비열한 놈들!”

계연은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설령 영안현의 모든 개가 한 번에 덤빈다 해도 이제는 호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대체 이렇게 개를 두려워해서 나중에 어찌 세상을 돌아다니려고 하느냐? 게다가 혹시라도 개 요괴를 만나게 되면 싸우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리겠구나?”

“그건 달라요!”

호운이 탁자를 내리치며 즉각 반발했다.

“저도 이젠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요.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매영술(魅影術)도 있으니 언제든 제 한 몸은 거뜬히 지킬 수 있어요. 하지만 영안현의 개들은 달라요. 그놈들 전부 송 성황신의 잿밥을 먹은 놈들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여기서 소동을 부릴 수 있겠어요?”

매영술은 예전에 호운이 금갑 역사와 같은 종이 인형 부적을 만들어보려다 개발해낸 술법이었다. 다만 그때 나타난 것은 금갑 역사가 아니라 매영(*魅影: 유령)과 흡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었다.

“그래…….”

계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호운이 겪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해줄 생각은 없었다. 가끔 보면 호운도 이를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내가 금갑을 함께 붙여주마. 물건도 금갑이 들도록 하면 되겠구나.”

“짹!”

금갑의 이름이 들리자, 계연의 가슴께에 있는 비단 주머니에서 깊은 잠을 자던 종이학에 단번에 깨어나 스스로 틈을 비집고 나왔다. 동시에 계연의 소매에서도 역사 부적 한 장이 나오더니 금갑으로 변했다.

“주인님!”

금갑 역사는 호운의 기억 속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크고 거대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금갑 역사의 시선이 자신에게 잠시 머물고 지나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종이학도 함께 데려가렴.”

“짹짹-!”

호운은 금갑 역사를 보며 이렇게 눈에 띄는 것을 어떻게 밖에 데리고 다니느냐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금갑 역사의 외양이 천천히 변하더니, 더는 금빛을 내뿜지도 않고 그저 체격이 조금 건장할 뿐인 보통의 사내로 변했다.

“어? 선생님, 이자는 다른 금갑 역사와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이름은 금갑이야. 확실히 남다른 존재지.”

그러자 호운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금갑이요? 하지만 전부 금갑 역사 아닌가요? 그럼 다른 역사들의 이름은 뭐예요?”

“금을, 금병, 금정(*갑(甲), 을(乙), 병(丙), 정(丁)은 모두 천간(天干) 중 하나로, 천간은 과거 날짜나 달, 연도를 셀 때 사용했던 단어의 총칭)…… 어떠냐?”

조낭과 호운은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이어 호운이 무척 억지스러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지으신 이름이니, 당연히 좋고 말고요……. 그럼 저는 어서 심부름하러 가볼게요!”

“잠깐만.”

계연은 신이 나 달려 나가려는 호운을 제지했다.

“선생님, 또 무슨 분부가 있으세요?”

“돈 가져가야지!”

계연이 막 소매 속에서 돈을 꺼내려 하자, 호운은 이를 기다리지도 않고 문가로 달려가며 말했다.

“괜찮아요, 선생님! 헤헤, 제가 금덩이가 몇 개 있거든요!”

그러자 계연은 고개를 내려 자신이 들고 있던 은자 부스러기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 선지는 가장 상등급으로 사고, 퉁소도 하나 사 오렴. 아, 당연히 가장 좋은 것으로 말이다. 자죽(*紫竹: 갈색 바탕에 자줏빛 무늬가 있는 대나무)으로 만든 게 가장 좋다.”

“알겠어요!”

잠시 후, 열대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거안소각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바로 환술을 이용해 모습을 바꾼 호운이었다. 그의 뒤로는 건장한 사내가 머리 위에 종이학을 얹고서 따라 나왔다.

그들이 모두 집을 나서자 조낭이 계연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보아하니 이건 이제 간단한 음률 서책이 아니겠군요?”

그러자 계연도 손에 든 <봉구황>을 조낭의 앞에 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평생 지금까지 총 세 권의 서책을 썼는데, 살짝 과장해서 말하자면 모두 경전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다. 첫 번째는 <천지화생>, 두 번째는 <묘화천서>, 그리고 오늘 반쯤 완성한 <봉구황>은 비록 악보를 만들기 위해서 쓴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묘함이 담겨 있으니 경전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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