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46화 (746/892)

746화. 못한다고 하시지 않았나?

<봉구황>은 계연이 느끼기에 처음에 <운중유몽>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완전히 달랐고, <봉구황>이 <운중유몽>보다 더욱 신묘했다.

조낭은 그의 말에 살짝 입을 벌렸다. <천지화생>과 <묘화천서>에 대해서는 그녀도 약간이나마 알고 있기에, 두 권 다 무척 심오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놓인 이 책도 계 선생님께서 이런 평가를 할 정도라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앞의 책을 쓰다듬었는데, 열어보고 싶으나 감히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보고 싶으면 보렴. <봉구황>은 무슨 대단한 가르침을 담은 비전도 아니고 법보도 아니니 봐도 무방하다. 다른 두 권도 읽어보고 싶으면 운산관에서 가서 읽어보렴.”

여기까지 말한 계연은 조낭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너도 이제는 그런 걸 배울 때가 됐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조낭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에게 예를 올렸다. 그런 뒤 다시 자리에 앉아 한결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봉구황>의 표지를 열어젖혔다. 그녀의 손이 종이에 닿자, 옅은 안개가 낀 것처럼 모호하던 한 겹 막이 순식간에 흩어지더니, 그녀의 손이 닿는 대로 문자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쏴아아- 쏴아아-!

파도가 치는 소리와 망망대해의 풍경, 거대한 오동나무가 우뚝 서 있는 풍경이 조낭의 마음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거안소각 안인 데다 옆에는 계연도 있었기 때문에, 조낭은 모든 경계를 내려놓고 완전히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봉구황>을 읽으며 조낭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광활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면서도 동시에 그토록 자연스러워, 눈과 귀와 마음이 서로 교감하며 그 모든 것을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특수한 영근목의 신분을 지닌 만큼, 바다에 우뚝 선 오동나무로 변해 계연과 함께 봉황의 노랫소리와 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계연은 한쪽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시면서, 향긋한 꿀차와 고요한 풍경을 느긋하게 즐겼다. 그는 이미 <검의첩>을 꺼내 한쪽에 펼쳤지만, 글자들은 밖으로 나온 다음에도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읽고는 소란스럽게 굴지 않았다. 그저 조낭의 뒤로 다가가 함께 <봉구황>을 읽기 시작했다.

글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문자인 만큼, 이런 특수한 서책에 무척 민감했다. 특히나 계연이 쓴 글은 더욱 쉽게 그들을 끌어당겼다.

* * *

다른 한쪽에서는, 석양빛 아래 호운이 금갑을 이끌고 천우방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우방의 쌍정포는 이 시각이 하루 중 가장 붐비는 두 시간대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마을의 아낙네들이 커다란 우물 두 개와 시냇가를 둘러싸고 재잘대다가, 호운과 금갑을 보고는 하나둘씩 입을 다물었다.

호운은 그동안 각종 수단을 써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녔는데, 오늘 처음으로 환술을 써 사람의 모습으로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운은 안 그래도 긴장한 상태였는데, 쌍정포의 아낙네들이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자 살짝 의기양양해졌다. 아마도 자신의 외모가 너무 준수한 탓이리라.

호운과 금갑이 지나가자 쌍정포가 다시 한번 소란스러워졌다.

“조금 전에 지나간 소년이 누군지는 몰라도 용모가 참으로 수려하더군!”

“그러게나 말이야, 어린 아가씨보다도 더 보드라워 보이던데.”

“어느 대갓집 공자 아니겠는가?”

“공자는 무슨, 내가 보기에는, 어느 댁 낭자가 남장하고 나온 게 분명해!”

“아이고, 그나저나 그 뒤의 호위는 키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게 아주 철탑같이 단단해 보이더구먼!”

“맞아, 아주 튼실한 사내였지!”

“하하하하…….”

“무슨 허튼 생각을 하는 겐가!”

“그 어린 공자는 얼굴이 아주 돼지 간처럼 시뻘게진 것이, 척 봐도 아직 솜털도 안 벗은 애더군, 하하하…….”

“어쩌면 정말로 호위를 데리고 나온 대갓집 아가씨일 수도 있지, 쯧쯧…….”

“하하하하…….”

“쉬, 조용히 좀 하게…….”

“이미 지나갔는데 뭘.”

쌍정포의 아낙네들은 평소에도 이렇게 농을 던지고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이제 호운과 금갑이 멀리 떠나갔으니, 거리낄 것 없이 원래대로 떠든 것이었다. 호운과 금갑의 청력은 계연만큼 초월적이진 않았으나, 그래도 평범한 인간들의 청력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지나간 뒤 여인들이 자신을 두고 희롱하는 것을 거의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금갑은 자연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호운은 얼굴이 온통 새빨개져서 저도 모르게 걸음을 서둘렀다.

예전에 계 선생님께서도 시정의 아낙네들이 모여 떠들면 그 입심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호운은 지나가며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자신의 그들의 의논 대상이 되어보니 그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쌍정포에서 멀어져 천우방을 나서기 직전, 외진 골목 안으로 들어간 호운은 즉시 자신의 외형에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외모를 너무 많이 바꾸고 싶진 않았다. 이 모습은 수행을 닦으며 가끔 마음속에 나타나는 형상이었는데, 아마 자신이 둔갑할 수 있게 되면 이와 무척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금갑, 이제 전보다 좀 더 건장해 보여?”

호운이 고개를 들어 이렇게 묻자, 금갑이 비스듬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이런 눈빛은 언제나 보는 사람이 그가 상대를 하찮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했다. 그래서 호운도 이마를 긁적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알았어, 네 뜻은 알겠어……. 종이학아, 나 조금 전보다 더 나은 것 같아?”

“짹!”

“그래도 네가 낫구나. 안목도 있고!”

종이학은 곧이어 양쪽 날개로 전방을 가리키며 때때로 무슨 모양을 그려댔다. 그리고는 다시 서쪽으로 날개를 쭉 뻗었다.

“짹, 짹짹-.”

“아, 맞아. 심부름부터 해야지. 곧 해가 질 테니까!”

이런 작은 현성에서는 점포들이 문을 닫는 시각이 거의 그 주인 마음대로였다. 손님이 있으면 열고 없으면 닫는 식이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호운은 금갑을 데리고 서둘러 거리를 걸었다.

현성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은 책방과 문구류를 파는 점포였다. 호운은 책방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금갑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 음률과 관련된 서적이 있습니까?”

책방 주인이 책꽂이를 정리하고 있는 걸 보니 곧 문을 닫으려 준비하는 듯했다. 그가 뒤로 고개를 돌려보니, 준수한 외모의 어린 공자가 호위 하나를 데리고 문가에 서 있었다.

“음률?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찾아드리지요.”

책방에서는 수요가 많은 책을 주로 팔고 있어, 호운이 원하는 종류의 서책을 구비한 곳이 별로 없었다. 주인이 한참을 돌아다녀도 금보(*琴譜: 칠현금 악보) 한 권을 찾아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악보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는 내용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악보일 뿐이었다.

그 후로 호운이 여러 책방을 돌아다녀 봤지만, 음률에 관련된 서책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책방마다 가장 많은 것은 윤재성의 저서였다. 그렇게 호운이 다섯 번째 책방을 방문했을 때, 이곳 주인은 한참을 찾은 끝에 계산대 앞에서 한참 기다리던 호운에게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이거 한 권뿐인가요?”

“예, 손님. 우리 책방에는 이 한 권뿐입니다. 아니면 다른 책방에 가서 찾아보시지요.”

“아…….”

호운이 책을 받고 값을 치른 후 서책을 보니, 첫 번째 책방에서 샀던 금보와 같은 <축송곡(祝誦曲)>이었다.

가게를 나온 호운은 서책을 금갑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계 선생님께서 내리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듯했다. 그는 선지와 서책을 들고 있는 금갑을 바라보았으나, 그새 종이학이 어디로 간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근처 시장에서는 종이학이 어딘가로 바삐 날아가고 있었다.

“짹- 짹-.”

손아아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고는 즉시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종이학이구나! 네가 여기 있다는 건, 계 선생님께서도 근처에 계신다는 거겠지?”

손아아는 채소가 든 바구니를 든 채 계연을 찾으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계연은 나타나지 않고 눈에 띄는 외양을 지닌 호운과 금갑만이 나타났다.

“하하하……. 아아구나!”

호운이 얼른 손아아를 향해 다가오며 이렇게 인사했다.

“누구세요?”

“하하, 네가 날 몰라볼 줄 알았지!”

호운은 손을 허리에 착 올리고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아아는 이제 수행자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도 호운의 환술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다.

“나 호운이야, 이쪽은 금갑이고. 선생님께서 우리더러 음률에 관한 서책과 선지, 그리고 자죽(紫竹)으로 된 퉁소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어!”

“선생님께서 정말로 돌아오셨어요?”

손아아가 즉시 기뻐하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응, 오신 지 얼마 안 되셨어. 참, 아아야, 음률에 관련된 서책은 찾기가 너무 어렵던데 혹시 어디서 파는지 알아?”

손아아는 바구니를 든 채 생각에 잠겼다.

“제대로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어쩌면 악기를 파는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퉁소는 샀어요?”

그러자 호운이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께서는 자죽으로 만들어진 것을 원하시는데, 내가 악기 상점이나 잡화점에 가봤더니 자죽 퉁소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런 영험함도 느껴지지 않았어. 어쩌면 오히려 선생님께 질책을 들을지도 몰라. 정말이지, 우규산의 자죽림(紫竹林)에서 내가 직접 좋은 대나무를 골라오고 싶을 정도였어.”

호운은 이렇게 말하며 금갑이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퉁소 하나를 꺼내 보였다.

“거기 주인한테 혹시 그런 서책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 말에 호운이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거기에 있는 건 전부 악보였어.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건 악보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는 서책이야.”

“선생님께서 악보를 쓰고 싶어 하신다고요? 제가 할 줄 아는데요!”

손아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운과 종이학이 그녀를 휙 쳐다보았다. 심지어 대부분의 일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금갑마저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볼 정도였다.

그렇게 손아아는 당연하게도 호운 일행에게 이끌려 함께 거안소각에 가기로 했다. 그들은 도중에 손씨 집안에 들려 아아가 들고 있던 채소 바구니를 내려놓고 계 선생님을 뵈러 간다고 말한 뒤 거안소각으로 향했다.

“선생님!”

손아아가 약간 흥분한 기색으로 이렇게 부르자, 계연은 그저 고개만 살짝 들어 호운과 그들을 바라보며 살짝 끄덕였다.

“왔구나?”

“네!”

“선생님, 물건은 전부 샀어요. 선지는 가장 좋은 걸로 샀고, 자죽 퉁소는 괜찮은 게 없어서 그나마 나은 걸로 두 개 사 왔어요. 서책은 전부 악보이긴 한데, 대신 아아가 음률에 대해 좀 알고 있어서 선생님께 가르쳐드릴 수 있대요!”

호운은 금갑에게 들고 있는 바구니를 내려놓게 하고는 재빨리 설명했다.

“아……. 그게, 저도 실은 조금밖에 몰라요…….”

손아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 이렇게 말했으나, 계연은 무척 기뻐 보였다.

“잘됐구나, 모두 여기 와서 앉으렴. 차도 좀 마셔보렴. 일단 내가 퉁소를 한번 불어볼 테니 나중에 고쳐주면 되겠구나.”

계연은 호운과 손아아를 위해 찻물을 따라주었다. 차를 마실 수 없는 종이학과 금갑은 하나는 어깨 위에 내려앉고, 다른 하나는 옆에 가만히 섰다. 계연은 바구니 안에서 자죽 퉁소 하나를 꺼내 들었다.

퉁소를 부는 자세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계연은 구멍에 손가락을 잘 붙이고서 입 가까이 갖다 댔다.

“후…… 우웅……. 우우…….”

소리를 몇 번 내본 계연은 마음에 어느 정도 감이 잡혀, 아름다운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호운은 넋이 나갔고, 손아아는 하마터면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음률에 대해 잘 몰라서 배우고 싶다고 하신 게 아니었나? 내가 무얼 가르쳐드려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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