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48화 (748/892)

748화. 퉁소 하나로 충분하다

휘이잉-!

호운이 몰고 온 바람이 죽림의 대나무들을 가볍게 흔들었다. 뒤이어 바람 속에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은 털을 지닌 여우가 죽림 앞에 내려섰다.

우우…… 우……!

호운은 돌연 움직임을 멈추더니 눈을 위로 굴려 제 머리 위에 앉은 종이학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

“짹!”

여우와 종이학은 조각상처럼 죽림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소리가 다시 들리는 일은 없었다.

이에 호운과 종이학이 어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다시 바람이 불어오더니 죽림이 솨아아 흔들렸다.

우웅…… 우우……!

“저기다!”

이렇게 소리친 호운이 얼른 죽림 안으로 뛰어들었다. 종이학은 그보다 이미 한발 앞서 날아가고 있었다.

휘이이-!

그때 죽림 사이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는데, 이는 바로 호운이 부리는 바람이었다. 그러자 죽림 안에서 조금 전에 들린 소리가 때때로 들려왔다.

곧이어 종이학과 호운은 대나무가 드문드문 적어지기 시작하는 어느 숲에 섰다. 그곳에는 자죽 두 그루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며 맑고 그윽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와……. 이 대나무로 퉁소를 만들면 아주 완벽할 거야!”

“짹짹-.”

여우와 종이학은 자죽 두 그루 앞에 서서 감탄을 내뱉었다. 호운이 대나무 위에 손을 대어보니, 그 위로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에 호운은 망설이지 않고 앞발을 이용해 자죽 두 그루를 잘라냈다.

콰직- 콰득-.

자죽 한 그루는 지면에서 1척(약 30cm)쯤 되는 곳에서 잘려 나갔고, 다른 한 그루는 지면에서 3촌(약 9cm) 정도 올라간 위치에서 잘려 나갔다.

“하하하하……. 잘됐다! 이 두 그루가 가장 이 죽림에서 가장 특별하니, 아무리 적어도 퉁소 두 개는 만들 수 있겠어!”

* * *

후웅…… 우우우……!

호운은 푸릇푸릇한 잎이 달린 자죽 두 그루를 등에 지고 우규산을 내달렸다. 그러자 때때로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며 은은한 소리를 냈다.

종이학은 더는 호운의 머리 위에 앉아있지 않고, 대나무 한 그루 위로 자리를 옮긴 뒤였다. 그는 자죽이 흔들리며 ‘우우’하고 소리를 낼 때마다, 기쁜 듯 날개를 내리쳐서 소리에 변화를 내면서 재밌게 놀았다.

떠날 때는 막 해가 진 시각이었는데, 영안현에 돌아오니 어느새 고요한 밤이 되어있었다. 그들이 현성 안에 들어서기 직전, 성안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 종이학아, 대나무 잘 잡아. 다시 소리 내게 하면 안 돼.”

종이학은 잠시 머리를 갸우뚱한 채 호운을 바라보았지만, 마침내 그의 말대로 따랐다. 그는 양쪽 날개로 두 자죽의 끝부분을 감싸,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게 막았다.

뒤이어 호운이 도움닫기를 하여 현성의 성벽을 뛰어넘었다. 그는 아래로 하강하다가 미끄러지듯 현성 안 어느 건물의 지붕에 내려앉았다. 그가 지붕과 담장을 뛰어다니며 이동한 덕분에, 성안의 고양이 반 정도는 놀라 죽을 뻔했다.

나머지 반은 아예 그를 발견하지도 못했거나 이미 나이가 꽤 들어 이전에 호운을 만난 적이 있던 고양이였다.

그렇게 여우와 종이학이 거안소각으로 돌아오자, 뜰 안에는 계연과 조낭만이 남아 있었다. 계연은 고개를 들어 대문에서 들어오는 호운과 종이학을 보더니, 곧 그 뒤의 자죽 두 그루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 빛냈다. 과연 호운이 자신을 흡족하게 할 만한 것을 가져와 주었다.

“선생님, 아아는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게다가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려고 아아를 기다리고 있다지 않니. 몇 년 만에 집에 돌아온 만큼 당연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지, 하룻밤 내내 여기서 우리랑 악보 이야기나 하고 있을 순 없지 않으냐?”

그러자 호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계 선생님의 말씀이 옳긴 하지만, 아아는 거안소각에 좀 더 머무는 것을 절대 개의치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 뒤 자죽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었다.

웅…… 우우…….

“선생님, 보세요. 이 자죽 두 그루는 제가 우규산 자죽림에서 찾아낸 가장 좋은 대나무예요. 퉁소로 만들기 딱이죠?”

호운이 보물을 헌상하듯 자죽 두 그루를 내밀자 계연이 그것을 받아든 뒤 위아래로 조심스레 살폈다.

“좋다, 좋아. 이건 영험함을 타고난 자죽이구나. 연이 있으면 단번에 얻을 수 있고, 연이 없으면 수많은 숲을 뒤져도 찾기 어렵다지. 최소한 퉁소 두 개, 금소(*琴簫: 소(簫)의 일종)두 개는 만들 수 있겠다.”

“하하하하……. 선생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이 대나무는 바람을 맞으면 스스로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아주 감미롭더라고요. 종이학에게 물어보세요!”

“짹짹!”

계연이 웃으며 가볍게 대나무를 두드렸다.

휘이이-.

뜰 안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더니 대추나무 가지와 잎이 살며시 흔들리며 솨아아 소리를 냈다. 그러자 계연이 들고 있는 자죽 두 그루도 우웅대는 은은한 소리를 냈다.

“선생님, 영안현의 장인을 찾아 소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듣자 하니 영안현의 장인들이 세간에 유명하더라고요.”

계연은 검지로 자죽의 마디마디를 가볍게 때려보았다. 특히나 대나무 마디 부근은 다른 곳보다 좀 더 많이 두드렸다. 계연의 눈에 자죽 두 그루는 영험한 보랏빛 광채를 띄고 있었는데, 그가 두드릴 때마다 그 빛이 조금씩 약해졌다. 하지만 그 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자죽 안쪽으로 흡수되어 움직일 뿐이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내가 비록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아니지만, 소리가 어디에서 나야 적당한지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음, 그래, 이렇게 해야지!”

계연은 호운에게 이렇게 대답했지만, 그 끝은 오히려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런 뒤 그는 검지로 대나무 위를 미끄러지듯 훑었다.

스윽-!

계연은 검지로 대나무를 훑고 지나가기만 했는데, 그 위의 흙먼지 등이 떨어져 내리면서 광택이 반질반질한 자죽이 되었다. 조금 전의 흐릿한 보랏빛과 달리, 지금은 자죽 위에 광채가 나고 있었다.

계연은 가볍게 대나무 위를 쓰다듬다가, 잘려 나간 아랫부분에 대나무의 영기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호운을 한번 쳐다보았다. 역시 구미호가 심마(心魔)로 변해 들러붙을 만했다.

끝부분에서부터 아홉 개의 마디를 올라간 부근에서 손가락을 멈춘 계연은, 그곳이 적당하다고 느끼고 가볍게 손가락을 갖다 댔다.

콰득-.

자죽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뒤이어 계연이 부러뜨린 쪽을 아래로 기울이자, 그 안의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연은 길이를 재어 따로 표시하거나 하지 않고, 감각에만 의존해 대나무를 입에 대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올린 곳에 구멍을 뚫었다. 대나무에 구멍이 뚫리자 그 위로 은색 별빛이 얇은 막처럼 뒤덮였다.

실은 퉁소뿐만 아니라 거안소각의 모든 것이 별빛에 한 겹 덧씌워져 있었고, 영기 섞인 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탁자 위의 자죽 두 그루도 마찬가지였다.

호운, 종이학, 조낭, 금갑, 그리고 대추나무에 걸린 검의첩 안의 작은 글자들은 모두 정신을 집중해 계연이 퉁소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계연은 악기를 제작하는 게 더없이 쉬운 일인 것처럼 뚝딱뚝딱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 선생님이 지금 법기(法器)를 제련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퉁소를 제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손놀림은 가벼운 동시에 무척 정교하여, 전혀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구멍이 하나씩 뚫릴 때마다 계연은 대나무에 귀를 대고 가만히 소리를 들었다. 한편 하늘에서는 별빛이 계속해서 아래로 모여들고 있었고, 대추나무 주위를 감돌던 영기도 이때 탁자 주위를 맴돌았다.

우…… 우우웅-.

바람이 계연을 스치고 지나자, 그의 옷자락이 가볍게 나부꼈고 대나무에서도 맑고 그윽한 소리가 났다. 비록 봉구황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듣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소리였다.

별빛은 마치 유성우처럼 뜰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계연이 퉁소를 제작하는 과정 자체도 이미 무척 신비로웠기 때문에, 이 모습이 더욱 심오하게 보였다.

“별빛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자죽은 땅에서 자라나니, 음색에 오행(五行)을 갖췄구나. 소리에 음양이 조화롭게 담기며, 기도(*器道: 법기를 제련하는 기술)와 묘법을 결합하니 천도(*天道: 천지자연의 도리)와 자연이 합쳐지노라…….”

계연은 퉁소를 만들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전혀 동작이 굼뜨지 않았다. 때때로 대나무의 소리를 듣고, 별빛을 끌어오는 과정은 절대로 짧지 않았지만, 계연 자신은 물론이고 호운과 조낭 등은 모두 그리 오래 걸린다고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은 지금 계연의 가르침을 보고 듣는 중이었으니, 이는 후에 모두 피와 살이 되는 내용이었다.

그리 많은 힘과 시간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단 한 시진(2시간) 만에 아름다운 퉁소가 계연의 손에 나타났다.

“계 선생님, 완성된 건가요?”

호운은 계연이 다시 한번 <봉구황>을 불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참지 못하고 먼저 이렇게 물었다. 계연은 자신이 만든 퉁소를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다. 딱 하나만 빼고 말이지.”

그는 이렇게 말하자 탁자의 붓걸이에서부터 낭호필이 계연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는 먹물을 묻히지 않고, 붓을 들어 퉁소 위쪽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붓을 떼니, 그 위에 적힌 것은 ‘계연’ 두 글자였다. 글자는 먹물처럼 까맣지 않고 그저 퉁소의 보랏빛보다 약간 더 옅은 정도였고, 대나무의 외피도 상하지 않았다.

“하하하, 하마터면 퉁소 위에 이름을 새길 뻔했구나…….”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호운이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일부러 그러라고 쓰신 거잖아요……. 참! 선생님, <봉구황> 한 번만 더 연주해 주시면 안 돼요?”

호운이 한 말은 사실 내심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계연이 주위를 둘러보니, 금갑마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그저 고개를 가만히 저을 뿐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아…… 그럼 선생님, 이 자죽은 아직 반이나 남고, 저건 잘라 온 그대로인데 퉁소를 하나 더 만드세요.”

“아, 그렇구나. 하지만 퉁소는 이것 하나로 충분하단다.”

“예? 그럼 남은 자죽은 어떻게 하죠?”

호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탁자 위의 자죽을 보며 물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하나는 네가 가져가서 보관하거나, 하나는 우규산의 자죽림으로 가서 다시 붙이는 거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계연의 말에 호운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다시 붙일 수가 있다고요?”

“그럼, 가능하지. 네가 대나무를 자를 때 적절히 통제한 덕에, 영기도 그대로고 영험함도 손상되지 않았단다. 대나무를 자르면서도 생기를 그대로 지켜냈고, 지금은 태양의 힘도 없는 시간이니 해가 뜨기 전에 다시 가져가면 원기(元氣)를 그리 상하게 하지 않은 채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호운, 종이학, 심지어는 조낭마저 즉시 자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자죽 중 하나는 선생님에 의해 반으로 잘려 나가 퉁소가 되었는데, 그래도 원기가 상하지 않았다고?’

계연이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어색한 듯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말했잖느냐, 원기가 아예 상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리 많이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물론, 이 자죽은 영험함을 지니고 태어나긴 했지만, 영지를 얻을 정도는 아니었단다. 그저 좋은 재료일 뿐이야. 그러니 그리 많은 생각할 필요 없이 원하면 네가 가져도 좋다.”

“네……. 하지만…….”

호운은 반이 잘려 나간 자죽을 들고 그 단면을 곰곰이 살펴본 뒤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 자죽은 이제 산에 남은 단면보다 둘레가 훨씬 작아요. 붙일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 네가 방법을 생각해내야겠구나!”

계연이 호운을 향해 눈을 깜빡이며 말하자, 호운이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호운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자죽 두 그루를 들고 탁자 아래로 뛰어내렸다.

“계 선생님, 그럼 저 가볼게요!”

“그래, 그래!”

계연은 손을 휘휘 저으며 호운이 대나무 두 개를 들고 거안소각을 뛰쳐나가는 것을 눈으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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