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49화 (749/892)

749화. 책이 완성되다

계 선생님은 해가 뜨기 전이라고 했고, 비록 그때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호운은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종이학도 짹짹대며 얼른 호운의 뒤를 쫓아갔다.

호운이 별달리 고민하지도 않고 대나무를 다시 되돌려 놓기로 한 걸 보고, 계연은 아래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 퉁소를 가볍게 돌리면서 눈을 감았다. 그의 의식은 천천히 유몽술로 빠져나갔다.

우규산에서는 여우와 종이학이 자죽 두 그루를 들고서 나는 듯 달려 자신들이 나무를 베어온 자죽림에 도착했다.

“이것부터 해보자!”

호운은 자기가 잘라간 상태 그대로인 대나무를 잘린 곳에 맞대고서 잠시 가만히 유지했다. 그러자 대나무가 다시금 ‘붙었고’, 지면에서부터 새로 영험한 기운이 대나무를 통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로 되네? 신기해라! 그럼 이것도…….”

호운이 손에 든 대나무의 잘린 단면을 바라보니, 확실히 지면에 남은 단면보다 둘레가 작았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어찌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기다란 발톱을 내밀고 그 끝에 힘을 모은 뒤 낮은 소리로 말했다.

“종이학아, 내 발톱을 잘 봐!”

샤사삭…….

호운은 단단한 발톱으로 손에 든 자죽의 껍질을 긁어냈다. 그러자 대나무 껍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런 뒤 다시 발톱으로 지면에 남은 대나무의 안쪽 껍질을 긁어냈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쪽 발을 잘린 곳에 갖다 대자, 형체가 없는 듯한 거의 투명한 실선이 뽑혀 나왔다. 호운은 그것을 손에 든 자죽 둘레에 감고서 다시 땅에 꽂았다.

콱!

휘이이-.

바람이 불어오자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 자죽 두 그루가 다시금 ‘우웅’하고 소리를 냈다.

“헤헤, 됐다!”

“짹!”

여우와 종이학은 환호성을 내지르다가 이어 붙인 자죽 두 그루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호운은 그 주위를 돌며 관찰하기 시작했고, 종이학은 그보다 약간 높은 공중에서 자죽 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동시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이 이상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투명하게 반짝이는 걸 보고 그저 별빛이 반사되어 그런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광채가 너무 옅어 자신들이 착각한 것이었다. 둘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제야 이 자죽의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자죽을 새로 이어 붙인 몇 초 뒤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은은한 은빛이 감돌았기 때문이었다.

“종이학아, 이건 분명히 선생님이 남기신 수단이겠지?”

종이학은 그저 빙빙 날아다닐 뿐, 호운으로서는 그가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종이학은 그러다 다시 호운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가자,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보러 오면 되겠지.”

호운은 이렇게 말하며 머리 위에 종이학을 얹고 통통 튀어 자죽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내려가 영안현으로 향했다.

사실 계연은 유몽술을 이용해 이미 자죽림에 도착해,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 자죽 두 그루 앞에 서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것은 전에 잘려 나갔던 흔적이 아예 사라져, 이제는 잘려 나갔다는 것을 누가 알아보기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짧은 것은 옆쪽의 대나무에 비해 마디 하나가 더 짧았고, 바닥에 대나무 표면을 긁어낸 가루가 쌓여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생명력이 넘쳐 보였다.

이를 보니 호운의 도행은 아직 대요(大妖)라고 불릴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남달리 뛰어난 편이었다.

뒤이어 거안소각에 있던 계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한쪽에 앉은 조낭이 손에 든 <봉구황>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이 책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계속 쥐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음률 방면에 있어 자신은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선생님, 이 <봉구황>도 밖으로 퍼뜨리실 건가요?”

그러자 계연이 손에 든 자죽 퉁소를 만지작거리며 <봉구황>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왕 서책으로 엮은 만큼, 당연히 홀로 감상하려는 용도는 아니지. 게다가 단 도우도 분명 이 <봉구황>이 널리 퍼지길 원할 거야. 몇몇 사람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곡이지. 하하, 물론 지금 보니 이 <봉구황>을 완벽히 연주해내기란 무척 어려울 것 같긴 하구나. 인연을 봐야겠지. 음, 조낭 너도 한번 시도해보렴.”

“제가요?”

조낭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더니 어색한 듯 미소 지었다.

“선생님, 조낭은 선생님께서 부는 퉁소 소리가 아름답다는 것만 알지, 스스로 연주할 만한 능력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 봉구황을 듣고 난 후에 가볍게 흥얼거리기조차 어렵던걸요…….”

“벌써 불러봤다고?”

계연은 무심결에 이렇게 물었지만, 그 물음에 언제나 담담하던 조낭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뜰 안에 부는 바람을 빌려 긴 머리카락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린 다음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주제를 바꿔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단 도우는 어떤 분이신가요?”

계연은 손가락 사이에 퉁소를 끼우고 돌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단야 도우가 <봉구황>에 나오는 바로 그 봉새란다. 그 덕분에 <봉구황>이라는 곡이 탄생할 수 있었지. 이 곡은 변화무쌍하고 가락이 구성진 데다, 황새에게 구애하는 감정이 담겨 있으니 악기 없이 부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이 곡에 담긴 감정 때문에 조금 부끄러울 수도 있으니 쉽게 흥얼거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조낭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가볍게 대답했지만, 그런데도 화조(火棗)처럼 붉어진 얼굴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계연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어쩐지 바람이 전보다 더 어지럽게 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조낭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서 음악적인 재능이 없는 게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 않나 하고 의아하게 여겼다.

“음악은 많이 듣고 자주 연습하는 만큼 실력이 느니, 그리 낙담할 필요 없단다!”

계연이 웃으며 위로하자 조낭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그때, 대문이 열리더니 호운과 종이학이 돌아왔다. 호운의 목소리는 그가 대문 안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한발 먼저 들려왔다.

“계 선생님, 대나무 두 그루를 다시 접붙이고 왔어요. 둘 다 아주 말짱해요!”

종이학은 쌩하니 호운을 앞서나가더니 계연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잘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대나무를 자르고 다시 멀쩡히 붙여냈으니, 이는 육 산군 앞에서도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야.”

오랜만에 듣는 계연의 칭찬에 호운은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탁자 가까이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

“선생님, 오늘 밤에 거안소각에 머물러도 되나요? 몇 번 왔다 갔다 했더니 다시 돌아가기 싫어서요…….”

“마음대로 하렴. 객방을 내줄 테니 안에서 자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바깥에서 자도 된다. 흠……. 시간이 꽤 늦었구나. 나도 어서 가서 자야겠다.”

계연은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죽 퉁소를 들고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봉구황>은 탁자 위에 그대로 남겼고, 조낭과 호운 등도 함께 뜰에 남았다.

계연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뜰 안은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조낭은 서책을 들고 나무 위로 가서 앉았고, <검의첩> 안의 작은 글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다시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종이학과 호운은 마치 구경꾼처럼 그들을 바라보다가 때때로 대화에 끼어들곤 했다.

금갑은 계연이 들어간 방문을 등진 채 문신(*門神: 문을 지켜서 불행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준다는 귀신)처럼 우뚝 서 있었다.

* * *

그 뒤 며칠 동안 손아아는 자기가 구해온 음률에 관한 서책을 들고 거안소각을 찾아와, 계연과 함께 이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계연의 목표는 단시간 내에 음악의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었고, 그저 좀 더 정확하게 <봉구황>을 악보 형식으로 기록하길 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손아아는 불안해하며 계연을 가르치는 일을 자신 없어 했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이 며칠 동안 대체 자기가 계 선생님을 가르치는 것인지, 아니면 계 선생님이 특수한 방식으로 자신을 가르치는 것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 * *

5일 뒤 오후, 푸른 하늘에 높이 떠오른 태양 빛이 대추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떨어져 거안소각 마당을 얼룩덜룩 물들이고 있었다. 조낭을 비롯한 몇몇은 돌 탁자 앞에 앉아있었고, 나머지는 공중에 떠오른 채로 가만히 계연이 글을 쓰는 것을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문방사우가 갖춰져 있었고, 계연은 낭호필을 손에 쥐고서 물 흐르듯 손을 움직였다. 그 모습은 신비롭기도 하고, 영험함과 운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높이 올랐다 낮아지는 붓의 움직임은 때로 글자가 되기도 했고, 소리의 고저(高低)를 나타내기도 했다.

붓을 들기 전부터 계연은 이미 마음에 주저함이 사라진 상태였으므로, 지금은 더욱 붓놀림에 막힘이 없었다. 붓끝의 먹물이 마르기 전까지 계연은 손을 멈추지 않았는데, 보통 한 장을 완성한 뒤에야 먹물 한번을 묻히는 게 고작이었다.

계연을 위해 먹을 가는 영광스러운 임무는 조낭이 맡게 되었다. 벼루 위의 먹물이 반쯤 사라지면 그녀는 손가락 끝에 물을 맺히게 해 벼루 위에 떨어뜨린 후 금향묵을 갈았다. 어느새 거안소각 뜰에는 은은한 묵향이 퍼져나갔다.

계연이 <봉구황>의 마지막 한 획을 긋자, 내내 긴장하고 있던 손아아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가만히 옆에서 보고 있는 이들이 계연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계연은 붓을 거둔 뒤 서책 위의 글자가 마르도록 가볍게 바람을 불었다. 종이 위의 글자가 순식간에 마르자 계연이 조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이제 먹물은 더 안 만들어도 된다. <봉구황>이 드디어 완성되었구나.”

<봉구황>을 뒤적이는 계연의 얼굴 위로 밝은 미소가 번졌다.

봉새의 노래를 듣는 것과 그것을 퉁소로 연주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악보로 적어보니 이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계연은 이곳도 나름대로 작곡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조금 뻔뻔하게 덧붙이자면 성과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봉구황>은 보통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낭이 마침내 벼루에서 손을 거두자 글자들이 얼른 날아와 벼루를 둘러쌌다.

“어르신, 먹물이 조금 남았어요.”

“어르신, 금향묵을 이대로 마르도록 두면 너무 낭비예요.”

“맞아, 맞아!”

“어르신, 어차피 벼루는 깨끗이 닦아야 하잖아요!”

“맞아요!”

이를 지켜보던 계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고, 조낭과 손아아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서 눈이 반달이 되도록 웃었다. 멍하니 벼루를 바라보던 호운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너희들 말이 옳다. 그럼 이 어르신을 도와 벼루를 닦아주렴.”

“명을 받들겠습니다!”

글자들은 이렇게 예의 바르게 대답하더니 곧이어 검은 바람으로 변해 벼루 주위를 휘감았다. 그들 사이에서는 때때로 “한 명당 한 입이야.”라거나 “많이 먹지 마.”, “욕심내지 말고 다들 한입씩 먹을 수 있도록 남겨.”라는 말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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