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50화 (750/892)

750화. 종이학

그 순간 계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돌연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대문을 나서니 하늘을 빙빙 돌던 검광(劍光)이 내려와 계연의 손을 향해 날아왔다.

‘비검전서(*飛劍傳書: 칼이나 다른 법기(法器)에 소식을 담아 받는 이의 위치로 날려 보내는 것)?’

그의 손에 날아온 것은 영험한 무늬가 새겨진 목검이었다. 목검은 영안현은 무리 없이 찾아냈지만 거안소각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러다 계연이 대문을 열어 한 줄기 기운이 새어 나오자 곧장 이리로 날아온 것이었다. 계연이 목검을 만지니 곧장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전해졌다.

목검이 전한 내용은 아주 간단했는데, 계연의 ‘광팬’이 완곡한 어조로 계연에게 자신이 다시 방문해도 되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실은 계연에게 언제 올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계연이 대문 밖에서 비검을 전해 받는 동안, 뜰 안의 글자들은 벼루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빙 둘러싼 상태였다. 그 모습은 무척 질서정연해 보였지만, 실은 글자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다투는 중이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손아아가 웃으며 물었다.

“쟤들은 언제나 저렇게 소란스러운가요?”

그러자 조낭이 고개를 젓더니, 호운의 부드러운 붉은 털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벼루에 남은 저 먹물은 보통 먹물이 아니거든. 선생님께서 글을 쓰시고 남은 것이니, 심오한 도의 기운이 깊이 남아 있지. 글자들은 그걸 알아차렸기 때문에 저렇게 흥분한 거야.”

“맞아, 나도 그걸 알고서 실은 내가 갖고 싶었는데, 저 글자들이 나보다 더 필요해 보이기도 하고 좀 더 저 먹물을 쓰기에 적합한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았어. 그렇지 않았으면, 선생님과 내 친분으로 봤을 때 분명 내게 주셨을걸!”

호운은 조낭의 쓰다듬을 받으며, 자신이 아량을 베풀었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한편 종이학은 금갑의 머리 위에 앉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금갑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글자들이 벼루를 둘러싸고 공중에 떠오른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익을 얻으려는 이는 붓과 벼루를 두고 다투지만, 영성(靈性)만 얻을 수 있을 뿐 그 지혜는 얻을 수 없다…….”

금갑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리자 거안소각이 단번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글자들마저 소동을 멈추고 그를 바라볼 정도였다. 그들도 금갑이 벙어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말문을 여니 다들 깜짝 놀란 것이었다.

그들은 금갑이 한 말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계연이 예전에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뜰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쳐다보는데도 금갑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고 자세도 그대로였다. 잠시 후, 그들이 다시 원래 하던 일로 주의를 돌리자 내내 조용히 서 있던 금갑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해명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주인님께서 하셨던 말이다…….”

계연이 안으로 돌아왔을 때, 뜰은 어느새 평온을 회복한 뒤였다. 글자들은 <검의첩>으로 돌아갔으며, 벼루 안에 있던 먹물은 깨끗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 떠나시려고요?”

조낭이 탁자에서 일어나더니 모두를 대표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계연도 숨김없이 손에 든 목검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연 도우가 급한가 보더구나. 또 옥회산에서 새로 만든 선항(仙港)이 다 지어졌다 하니, 겸사겸사 한번 가서 구경해도 좋을 것 같구나.”

뜰에 있던 이들의 표정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스치자 계연이 곧바로 웃으며 덧붙였다.

“옥회산 정도면 사실 이 근방이라고 볼 수 있지. 가고 싶으면 나와 함께 가서 구경하자.”

그는 사실 조낭을 위해 이런 제의를 한 것이었다. 조낭은 거안소각의 문밖을 나서본 적이 없었고, 계연은 그녀가 밖으로 나가겠다는 생각 자체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조낭에게 밖을 나서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낭은 대추나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하지 못한 게 아니라 그럴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어쩌면 그녀가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계연은 조낭이 집에만 머무는 것에 그리 개의치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밖으로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계연의 제안은 모든 이들의 환성을 샀다. 특히나 호운이 가장 기뻐했다. 그는 최근 묵묵히 수행에 힘쓰고 있었지만, 성정 자체가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는 계 선생님을 따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 *

옥회산은 계주 전체에 굽이굽이 이어진 옥취산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선항은 당연히 옥회성경 내에 있는 게 아니라, 선문과 비교적 가까운 옥취산의 다른 적당한 산봉우리에 세운 것이었다.

그날 정오가 되자 계연의 일행은 이미 산속을 걷고 있었다.

계연은 옥회산 측에 정확히 언제 가겠다고 말하지 않고 며칠 안에 가겠다고만 말해둔 상태였다. 그는 조낭 등을 데리고 옥취산 산자락까지 날아온 뒤, 영기가 충만히 흐르는 산길을 도보로 걷고 있었다.

“선생님, 왜 곧바로 옥회산까지 날아가지 않으시고 이렇게 걸어가는 거예요? 듣자 하니 옥외 성경은 풍광이 무척 수려하다던데요.”

호운은 이때 환술을 이용해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계연은 그의 말에 곧바로 대답해 주지 않고 앞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보자.”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길을 평지 걷듯 걷고 있었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었고, 험준한 길도 가볍고 민첩하게 지나쳤다. 그들이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자, 빽빽하던 수풀이 드문드문해져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 그러자 저 멀리 크고 작은 보따리와 상자를 짊어진 일행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어? 이런 황량한 산에서 일가족을 이끌고 등짐을 지고 어딜 가는 거지? 저 방향으로 계속 가면 옥취산 깊은 곳에 이를 텐데.”

“맞아, 보아하니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호운과 손아아는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계연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던 이들은 곧 앞쪽의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일가족을 이끌고 짐을 잔뜩 지고 가는 데도 옷차림이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고 땀도 그리 흘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계연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가 손에 든 멜대를 내려놓더니, 계연의 일행을 향해 걸어와 양손을 맞잡으며 정중히 물었다.

“저희는 옥회산의 옥장(玉章)을 받아 옥령봉(玉靈峰)으로 이사 가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시고 무슨 일로 올라가십니까?”

그러자 계연도 그를 향해 정중히 예를 차리며 대답했다.

“옥회산에서 선항을 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옥회산 선문과 교분이 좀 있어 겸사겸사 구경해보려고 왔어요. 그 후에는 옥회산에 가보려고 합니다.”

그러자 노인이 돌연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다시 정중히 예를 올렸다.

“아, 여러분은 모두 선장(仙長)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너희도 어서 선장들께 예를 올려라.”

“선장을 뵙습니다!”

남자의 뒤로 7, 8명의 나이가 각기 다른 이들이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더니 계연의 일행을 향해 예를 올렸다. 옥취산은 옥회산의 뒷마당이나 다름없었으니, 이런 곳에서 상대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수행자이니 그리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어요. 괜찮으시다면 함께 올라갈까요?”

“예, 예. 저희가 좀 느리게 걸어도 괜찮으시다면요!”

노인이 이렇게 웃더니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 자기가 메고 있던 광주리 안에서 커다란 배를 몇 개 꺼내 계연의 일행에게 건넸다.

“맛 좀 보시지요. 대단한 영과(靈果)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달고 시원합니다.”

계연의 일행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 배를 받아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옥회산과 옥령봉의 선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이 늙은이는 몇 년 전부터 이미 옥회산에서 선항을 만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옥회산에서 이를 책임지고 있는 위 선장은 무척 생각이 열린 편이셔서, 대정국과 그 주위의 이름 좀 있다 하는 수행 세력에 모두 이 소식을 알리셨지요. 저희는 비록 정괴의 몸이긴 하나, 다행히 물의 신께서 보증을 서 주셔서 옥령봉에서 땅을 골라 건물을 세울 수 있는 옥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노인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어조에도 선항에 대한 동경이 뚜렷이 드러났다.

“헤헤, 사실은 선항에 이렇게 한자리 얻을 수 있는 것도 무척 진귀한 기회지요. 그리고 수행자들 사이에는 이미 널리 퍼졌다시피, 조월국은 곧 대정국에 의해 멸망하게 될 테니, 옥회산의 선항도 반드시 그 새로운 국면의 이점을 얻게 될 거예요!”

“맞아, 그래서 아버지께서도 우리 일가를 모두 이끌고 이곳에 오신 거고요.”

“지금까지 저희는 한 번도 이렇게 먼 길을 떠나본 적이 없었는데, 만 리가 넘는 길을 오면서도 이 옥장이 있으니 여러 신령께서도 조사만 마치면 바로 통과시켜주셨어요.”

그러자 호운이 흥분한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옥장이 그리 대단하단 말이에요? 그것만 있으면 신령들이 통행을 허락해준다고요? 선생님, 제가 저 옥장을 얻게 되면, 둔갑을 하지 않아도 어디든 갈 수 있겠네요?”

그 말에 계연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으나, 노인이 웃으며 이렇게 말을 받았다.

“예, 예, 맞습니다! 다만 옥장을 받으려면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어야 하는데, 제가 보니 여러분도 기운이 맑은 것이 옥장을 받는 데에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짹짹…….”

그때 종이학이 호운의 머리 위로 날아가 두어 번 콕콕 쪼았다.

“아앗, 왜 그러는 거야?”

호운이 불평을 터뜨리며 종이학을 잡으려고 위로 손을 휘둘렀다.

“짹!”

그러자 종이학은 민첩하게 호운의 손을 피하더니 다시 계연의 어깨 위로 날아왔다. 그러나 계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호운을 향해 날개를 흔들어 보였다.

손아아도 그 옥장에 호기심을 느꼈으므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군요, 만약 그 옥장이 있다면 정말 편리하겠네요. 저도 하나 갖고 싶을 정도예요. 선생님, 옥회산 측과는 어느 정도로 가까우세요? 가능하다면 호운에게도 하나 얻어다 주시면 안 될까요?”

“삐익!”

그러자 종이학이 이번에는 손아아의 머리 위로 날아와 그녀를 콕콕 쪼고는 다시 날아가 버렸다.

“아야! 왜 그래?”

하지만 종이학은 이미 계연의 어깨 위로 돌아간 후였다. 계연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고개만 저었고, 조낭도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들은 종이학이 왜 호운과 손아아를 쪼아댔는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을 따르던 금갑은 이 모든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지만, 내내 무표정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노인이 영패의 역할을 하는 그 옥장을 으스대듯이 꺼내 들었을 때, 눈빛에 가소로움이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내 그런 표정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계연은 종이학이 왜 이들을 콕콕 쪼아댔는지 알고 있었으나, 호운에게 그 옥장을 얻어다 줄 생각은 없었다. 호운은 영성(靈性)이 충만하고 일찍이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으므로, 지금은 충분한 수행을 쌓는 게 가장 중요했다. 만약 호운에게 그 옥장을 얻어다 준다면, 그의 성격으로 볼 때 그걸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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