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3화. 영보헌의 108개의 방
“여기에도 분점을 열다니, 영보헌이 재주가 좋네요.”
계연은 손에 든 옥패를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비록 자신은 당장 필요한 물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안에 들어가서 구경은 해보고 싶었다.
“선생님, 들고 계신 것이 혹 영보 옥령(*玉令: 옥으로 된 영패)입니까?”
위무외는 살짝 놀란 듯한 얼굴로 이렇게 묻더니 곧바로 표정을 수습했다. 눈앞의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계 선생님이셨다. 그러니 이분이 뭘 지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듣자 하니 이 옥패는 그 자체로 대단한 보물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옥패가 상징하는 권위도 대단해서, 사업과 관련되지만 않는다면 이 옥패를 지닌 이를 전심전력으로 돕는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얻기가 몹시 어려운가요?”
호운이 이렇게 묻자, 위무외가 몹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어렵습니다. 이곳 영보헌의 한 지사(知事)가 했던 말에 따르면, 이 옥패에는 비회(*飛回: 날아서 돌아오다) 칙령이 걸려 있어서, 누군가 숨기거나 잃어버리거나 훼손하려는 시도가 감지되면 스스로 돌아온다고 하더군요. 오직 정당한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양도하거나 빌린 경우에만 옥패 주인의 몸을 떠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닥쳐오는 위험을 막아주고 체명(*替命: 목숨을 대신해 주다)의 능력까지 지녔다고 합니다. 최근 백 년간 딱 하나만이 외부로 발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계 선생님, 혹시 그게 선생님께서 지니고 계신 옥패가 아닐까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아래턱을 문질렀다.
“듣고 보니 그 옥패가 바로 이것 같네요. 그럼 저희도 영보헌에 들어가서 구경이나 한번 해보죠. 조낭, 호운, 그리고 아아 너희들 만약에 안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내가 대신 사주마.”
계연은 이 작은 옥패가 무슨 능력을 지녔는지 미처 살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 물건이 분명 제대로 만들어진 것일 테고, 영보헌에서 편리하게 쓰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영보헌에서 이것을 자신에게 줄 때, 아마도 너무 세속적이라 생각할까 봐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듯했다.
영보헌의 대문이 열리자, 계연의 일행은 누각에 걸린 진법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즉시 관사 차림의 남자가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띤 채 다가왔다. 그는 이들 무리의 조합이 남다르다고 여겼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서 무척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여러 도우분들, 무엇이 필요하여 오셨는지 모르나 제게 말씀해주시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계모(某)가 이전에 다른 영보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천강지살(*天罡地煞: 도교에서 천강(天罡)은 북두성(北斗星)에 포함된 36위(位)의 별 또는 신장(神將)을 일컬음. 지살(地煞)은 72위의 흉성(凶星) 또는 흉신(凶神)을 가리킴. 전설에 따르면, 천강지살 총 108가지 별이 함께 움직이며 요괴와 마귀를 물리친다고 함)의 형태를 빌려, 총 108개의 보물실 안에 각종 기이하고 진귀한 보물을 보관하고 있었어요. 옥령봉의 영보헌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안쪽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요?”
계연의 말을 들은 관사가 눈을 반짝 빛냈다. 이 손님은 이쪽 방면에 정통한 고인(高人)인 듯했다.
“계 선배님, 영보헌은 지점마다 각기 다른 특색이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천강지살의 구조를 따르는 가운데, 세부 방위(方位)가 조금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보물실의 수는 같습니다.”
“오, 계모가 가서 볼 수 있을까요?”
“계 선배께서 원하시는 걸 알려주시면, 저희가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관사는 무척 정중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말에는 거절의 뜻이 명백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오늘 자신이 지닌 옥패의 힘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거절을 듣자마자 옥패를 보여주었다.
“지금은요?”
“이건…… 영보옥령이 아닙니까!”
관사는 계연이 손에 든 옥패를 자세히 살피더니, 다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계연의 머리에 꽂힌 묵옥 비녀와 언뜻 보이는 회백색의 두 눈을 보고 알아차렸다.
‘바로 그 계 선생님이시구나!’
관사는 계연의 신분을 알아차렸다는 티를 내지 않고, 옥패와 계연의 모습을 잠깐 살핀 뒤 곧바로 정중하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영보옥령을 지니셨으니 그 정도 일이야 별것 아니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먼저 다른 35명의 관사 도우, 지사 진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해서 말입니다. 그런 후에 보물실을 모두 개방해드리겠습니다!”
영보헌 수사는 이렇게 말한 뒤, 누각 안쪽을 향해 여러 갈래의 법광을 쏘아 보냈다. 원래 계연의 일행은 최소한 몇 분 정도는 이렇게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단 수십 초 만에 주위에서 반짝이는 빛이 흐르기 시작하며 영보헌 내부를 찬란하게 물들였다.
솨앗- 슈욱-!
빛이 점차 퍼져나가며 계연이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이 딛고 선 바닥, 주위의 벽, 머리 위의 천장 등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도 널찍했던 영보헌의 1층 대청이 점점 더 커지고 환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건물 내부가 사방팔방으로 끝없이 늘어나는 느낌은 무척 신기한 동시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웠다.
게다가 공간이 점차 넓어짐에 따라,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영보헌에서 보관하는 보물을 한창 구경하던 수사들도 있었고, 영보헌에 소속된 관사와 일반 수행자들도 있었다. 공간이 넓어지는 과정에서 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은 대체 영보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대부분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십 초 만에 모든 변화가 끝이 나더니, 어느새 수많은 보물실은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서로 연결되었다. 각각의 보물실은 투명하고 가느다란 빛으로 나뉘어 있었다. 영보헌 내부는 이제 사면팔방 곳곳이 이어져 있었고 보물 자체가 내뿜는 빛과 보호용 진법의 빛이 서로 뒤얽혀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광활한 영보헌 내부가 찬란한 노을빛에 뒤덮인 듯했다.
그중 보호용 진법이 가장 두껍게 설치된 곳을 보니, 척 봐도 제일 범상치 않아 보이는 보물 몇 개가 눈길을 끌었다. 계연은 곧 그중에서 공중에 떠 있는 동전 세 닢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쪽에 걸린 깃발 위에는 ‘여의 보전(寶錢)’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계 선장(仙長)님, 영보헌의 천강지살 108개의 방을 모두 개방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이때 계연의 표정은 언뜻 담담해 보였지만, 실은 이 독특한 구조에 계연은 무척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와, 이게 바로 진법이 지닌 특별함이구나…….”
“정말 대단하네요.”
계연의 옆에 있던 조낭과 금갑은 언제나처럼 별달리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위무외는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으므로 지금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호운과 손아아만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감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한쪽에 서 있던 영보헌 수사는 자연히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계속해서 계연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므로, 곧 계연이 무엇을 쳐다보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여의보전은 정말이지 그 이름처럼 대단히 진귀한 보물입니다. ‘여의(*如意: 뜻대로 되리라는 의미)’라는 글자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부릴 수 있고 변화가 무궁무진하거든요. 지금까지 이 여의보전을 사 간 도우는 몇 되지 않는데, 영보헌과 친분이 두텁고 급박한 상황에 놓인 게 아니면 절대로 먼저 여의보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고 최대한 다른 물품으로 대체하는 편입니다. 이 여의보전은 먼저 영보헌 내부에 공급되었거든요.”
관사는 찬양과 감탄이 담긴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계 선장께서 예전에 200닢만 내주신 터라……. 물론 이런 보물이 200개나 된다니 적지 않은 수량이긴 합니다만, 사용 가치가 너무나 뛰어난 덕분에 지금은 영보헌 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들만이 고작 2, 3닢 정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 어느 고인이 신기한 보물을 구하러 영보헌에 왔다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을 때 저희가 영보헌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내어놓는 용도입니다.”
옥령봉에 있는 영보헌은 비교적 중요한 점포였으므로 무려 여의보전을 3닢이나 보관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 여의보전이 바로 선생님께서 만드신 거군요?”
이들 대부분은 이미 영보헌 관사의 말에서 맥락을 짚어낸 후였다. 그래서 호운이 한발 먼저 나서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그래, 예전에 내가 영보헌에 준 게 맞다. 물론, 그때 나는 그저 법전이라고만 불렀지. 영보헌 도우들이 지은 이름처럼 멋들어지진 않았단다.”
이에 대해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으므로 계연도 순순히 호운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법전을 많이 개선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 힘이 훨씬 무궁무진했다.
이때 영보헌 내부에 일어난 변화를 목격한 다른 사람들은 주위를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이렇게나 많은 기이하고 진귀한 물건들이 갑자기 눈앞이 펼쳐지니, 그들은 눈앞이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때 짙은 남색의 장포를 입고, 금잠(*金簪: 금비녀)과 작은 관으로 머리를 고정한 남자가 계연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더니, 공손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옥령봉 영보헌의 장각지사(*掌閣知事: 총책임자) 필문(畢文)이 계 선생님과 여러 도우 분들을 뵙습니다!”
계연을 비롯한 이들도 그에게 같은 예로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그는 가까이 다가와 관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께서 저희 영보헌에 걸음 해주셨는데, 미리 마중 나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영보헌의 모든 보물실을 전부 열었으니, 혹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신지 편하게 살펴보십시오. 제가 함께 모시겠습니다.”
“네, 그럼 천천히 구경할게요.”
그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영보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이었다.
다른 보물들은 법기(法器) 같은 종류를 제외하면 모두 기이한 화초를 비롯한 식물, 광물, 약재, 단약 등이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척 보기에 눈에 그리 띄지도 않았는데, 대부분 시커멓거나 돌덩이처럼 보였다. 다만 그 위로 범상치 않은 기운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주위의 수사들이 활짝 열린 보물실 사이를 돌아다니는 데도, 영보헌 수사들은 무척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이왕 보물실을 전부 열었으니, 들어온 손님들에게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다. 어차피 그중에 누군가가 어떤 보물을 원하더라도, 그건 그자가 그 값을 치를 능력이 있는지를 봐야 했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바삐 날아다니는 종이학을 제외하면, 호운과 손아아가 이 중에서 가장 흥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장 여의보전을 보관한 진법 근처로 뛰어갔고, 그 뒤를 영보헌의 관사가 따랐다.
“아아야, 그러니까 이 여의보전을 계 선생님이 만들어내신 거란 말이지?”
“네, 맞아요!”
“그럼 지금도 이 동전을 조금쯤 갖고 계시지 않을까?”
그러자 한쪽에 서 있던 영보헌 관사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이 보물은 계 선생님께서 제련해내신 것이니, 분명 어느 정도 갖고 계시겠지요. 보아하니 두 분은 계 선생님을 따르는 후배인 듯한데, 계 선생님이 이런 보물을 지니신 걸 모르셨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댁을 떠나 계세요. 게다가 저희가 어찌 선생님의 일을 모두 알 수 있겠어요?”
호운이 생각 없이 대답한 말에 영보헌 관사의 두 눈이 반짝였다. 호운의 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호운은 계연의 집을 알고, 그곳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태도가 무척 스스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