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54화 (754/892)

754화. 조월국의 멸망

그때, 어느 노인과 나이 어린 수사 두 사람이 중앙의 보물실로 들어왔다. 척 봐도 이곳에 있는 물건들이 진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곳의 보물들과 교환할 만한 물건은 손아귀에 없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보고 견식을 넓힐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노인은 마른 체격에 자비롭고 선량한 눈매를 지니고 있었고, 그 곁에는 11,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따르고 있었다. 아이는 평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주화(*珠花: 진주 등으로 꽃 모양을 만들어낸 머리 장신구)를 꽂고 있었다.

“여의보전이라, 사부님, 이건 무슨 보물인가요? 법기인가요?”

노인도 당연히 알지 못했으므로 영보헌 관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노인의 뜻을 읽고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이름이 여의보전이니, 당연히 돈처럼 무언가를 교환하는 데에 사용되지요. 다만 의식주와 관련된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무형의 힘을 교환하는 겁니다!”

“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오!”

그러자 관사가 호운과 손아아를 슬쩍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동전에는 ‘도념(道念)’에 가까운 법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마음 가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해 술법을 펼칠 수도, 수행을 닦을 수도 있으며, 심마(心魔)와 같은 망령된 것을 물리칠 수도 있지요. 심지어 술법을 배울 때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동전의 힘을 빌리면 그 술법을 부릴 때의 감각을 몸이 기억할 수 있으니 더욱 빠른 배움이 가능합니다!”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여의보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능력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무척 진귀하지요.”

여자아이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 이렇게 물었다.

“그럼 여의보전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영보헌의 관사는 여자아이와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다시 간략히 점괘를 쳐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두 분, 여의보전은 저희 영보헌 안에서도 손꼽히는 보물입니다. 그래서 오직 위급한 상황에 놓인 연이 닿은 분에게만 내드립니다. 두 분은 기운과 정신이 맑고 또렷한 데다, 영보헌에 오신 것도 무언가를 급히 찾으려는 목적이 아니셨지요. 그저 언젠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얻고자 하시는 분과는 여의보전을 거래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들이 운영하는 점포인 만큼, 이곳은 경영하는 방식이 조금 남달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옥석(玉石)을 만지작거리던 계연은 관사가 한 말을 듣고 속으로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저게 바로 선생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던 연법(*緣法: 연분, 인연)인가요?”

어느새 계연의 곁에 와 있던 조낭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돌려 조낭을 바라보더니,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단다. 영보헌의 연법에는 확실히 일반적인 의미의 인연이란 뜻이 담겨 있지만, 곤경에 처해 급히 필요로 하는 이에게 진귀한 물건을 팔면, 상대도 너의 호의를 더욱 깊이 기억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렇게 쌓은 연법이 영보헌에 좀 더 도움이 되겠지.”

그러자 영보헌 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계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면 양측이 원하는 게 들어맞으니, 그것도 일종의 연법이지요.”

계연은 얼굴에 띤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법안을 전부 열고 영보헌의 108개의 보물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수많은 보물보다 계연이 더욱 흥미를 느낀 것은 천강지살의 진세(*陣勢: 진법의 형세)였다.

사실 계연에게도 진법과 비슷한 힘을 지닌 특수한 보물이 있었다. 바로 소매 속에 있는 <검의첩>이었는데, 서첩 자체의 특별함에 더해 그 안에는 자신이 먹물을 다섯 번 덧입혀 가며 제련해낸 특수한 정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제힘으로 특별한 진법을 조합해낼 수 있었다. 이때 글자들은 이미 소매 속에서 조심스럽게 이곳의 진법을 관찰하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진법을 살피던 계연은 <검의첩>과 법전 한 꿰미를 꺼내 조낭에게 전달했다.

“전에 내가 너희들에게 원하는 걸 한 가지씩 사도 좋다고 했었지, 일단 이걸로 값을 치르렴. 나는 잠깐 나갔다 올 테니, 네게 주마.”

“네.”

계연은 조낭에게 물건을 건넨 뒤 서둘러 영보헌을 나갔다. 한편 이미 영보헌 수사들의 모든 주의력은 조낭이 든 법전에 쏠려있었다. 저 법전 한 꿰미는 딱 봐도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이때 영보헌의 지사와 위무외는 이미 계연을 따라 밖으로 나간 뒤였다. 세 사람이 영보헌의 대문을 나서자, 내부의 광활한 풍경이 일시에 사라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그저 다른 건물보다 조금 크고 높은 누각이 보일 뿐이었다.

“계 선생님, 선생님의 수행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심오하고, 법력은 끝없이 무궁무진하니, 아마 이 세상에 선생님을 난처하게 하는 일은 별로 없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희 영보헌이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십시오. 반드시 전력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계모를 난처하게 하는 일은 많고 많습니다. 필 지사의 말씀은 영보헌을 대표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필 지사 개인의 입장인가요?”

“하하하, 선생님께서는 영보옥령을 지니고 계시니, 당연히 모든 영보헌을 대표하여 하는 말입니다.”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천기각의 연백평과 옥회산의 거원자 등 여러 진인이 이쪽으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필 지사, 제게 서첩이 한 부 있는데, 나오기 전에 그걸 조낭에게 맡겼어요. 그 안의 글자 정괴들은 지금 영보헌 내의 진법을 관찰하며 배움을 쌓는 중이에요. 이걸로 값을 치를 테니, 만약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부디 말씀해주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필 지사에게 법전 다섯 닢을 건넸다. 필문은 법전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뒤 아무런 이견도 내지 않았다. 글자들은 정정당당하게 진법을 관찰하는 것일 뿐, 진법의 도면을 훔치거나 진법을 훼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 더해 여의보전까지 받았으니 이는 남는 장사였다.

그때, 연백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 선생님, 이 후배가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구름을 타고 온 몇 사람이 영보헌 바깥에 내려서더니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계연과 함께 서 있던 위무외는 감히 옥회산 선배들의 예를 받을 수 없었으므로 급히 한쪽으로 피했다. 그러자 살집이 퉁퉁한 위무외를 바라보는 옥회산 진인들이 눈빛이 더욱 흡족해졌다.

계연은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곧이어 동북쪽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옥회산 진인들과 영보헌 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옥령봉에 있던 수행자나 영각(靈覺)이 발달한 이들 모두 동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설릉과 주섬도 이때, 탄천수의 등 위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저편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며 때때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마치 환각 같기도 했는데, 이 현상을 알아차린 수행자들은 모두 이것이 환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조월국이 끝났구나!”

연백평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담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 * *

그곳에서부터 2만여 리나 떨어진 조월국의 도성에서는 조월국 황제가 멍한 눈빛에 머리는 산발을 한 채로 황궁 밖 광장의 고대(*高臺: 높이 쌓은 대) 위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 주위로는 대정국의 병사들이 삼엄히 경계를 섰다. 한편 조월국의 귀족들과 도성에 살던 백성들은 고대 아래에 빽빽이 모여 서서 약간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는 그저 황실의 피를 지닌 자일 뿐, 설령 재위 중인 황제라 할지라도 그 홀로 한 나라의 국운(國運)을 대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때는 무척 특별한 순간이었으므로 황제 자체가 국운을 대표하고 있었다.

한편 갑주를 차려입은 윤중은 이때 장군 두 명과 함께 고대의 안쪽에 앉아있었다. 그때 중앙에 앉은 노장(老將)이 바깥으로 영전(*令箭: 군령을 전하는 화살)을 던지며 소리쳤다.

“폐하의 명을 받드노니, 저자를 참수하라!”

영전(*令箭: 군령을 전하는 화살)이 바닥에 떨어지자, 튼실한 팔근육을 드러낸 망나니가 독한 술을 한입 머금더니 손에 든 칼날 위에 후욱 뿜었다. 그리고는 다시 술을 한 입 마신 뒤 소리쳤다.

“우리 폐하께서 당신을 참수하길 원하시니, 이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잘 가시오!”

관례에 따라 망나니는 작은 소리로 황제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하지만 황제는 멍한 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망나니가 대도(大刀)를 높이 들어 올리자 그의 온몸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다. 곧이어 망나니는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칼을 아래로 휘둘렀다. 검광이 반짝이는 순간, 선혈이 흩뿌려지며 황제의 머리통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아……!”

“헉!”

그러자 고대(高臺) 아래에 서 있던 백성과 귀족들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때 황제였던 이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자, 사람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솟구쳤다.

고대 뒤편에 앉은 대정군 최고 지휘관이 한쪽에 선 문관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문관이 즉시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조심스럽게 탁자 위의 황색 비단으로 된 성지를 집었다. 그런 뒤 고대 앞으로 한 걸음씩 나가더니, 아직도 피를 내뿜는 황제의 시신 옆에 걸음을 멈췄다. 그는 두 손으로 경건히 성지를 펴더니, 고대 아래 수천수만의 조월국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관이었지만 동시에 무공을 닦은 관원이었으므로, 깊이 심호흡한 뒤 온몸의 진기(眞氣)를 끌어모았다. 그러자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황궁 광장 안팎에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이르노라. 오늘부터 대정군은 무기를 내려놓고 백성들은 추호도 건드리지 않는다. 필요한 물품은 합당한 가격을 치러야 할 것이며, 논밭을 건드리지 않고, 함부로 살생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여인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대정군 각 부에 명하여 비적들을 토벌하며, 군중의 문관들로 하여 곳곳에 정무당(政務堂)을 설립하게 하라. 억울한 일이나 근심이 있는 백성은 누구나 정무당에 와 고할 수 있다. 고소장이나 다른 문서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 대정군을 따르는 이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대정국의 국법에 따라 그 재산과 신변의 안전을 보호해줄 것이니라…….”

성지의 내용은 먼저 위세를 보이고 나중에 은혜를 베푸는 형식이었다. 관원이 성지를 낭독하는 목소리는 무척 크고 위엄이 넘쳤는데, 절묘하게 숨을 쉬어 마치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듯 들렸다. 성지의 내용은 이를 듣는 백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윤중과 몇몇 장군들은 성지를 읽는 순간부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몇 마디 듣자마자 윤중은 이미 성지의 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지에 따르면 백성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되어있지만, 전제는 대정군을 따르는 이들에 한해서였고 행정도 대정국의 법을 따랐다.

만약 이 전제에 따라 성지의 내용이 집행되면, 대정국의 법에 따라 대정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셈이니 그렇게 조월국은 천천히 대정국처럼 변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입소문이 퍼지고 민심이 바뀌며, 결과적으로 조월국의 백성들을 귀화시키는 데에 큰 진전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