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55화 (755/892)

755화. 출발

백성들의 소망은 모두 소박했다. 그동안 조월국의 부패를 겪을 대로 겪었으니, 누구든 자신들을 돌봐주고, 살아갈 길을 만들어주고, 앞으로의 나날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면 그들을 따르게 되어있었다. 지금은 비록 대정국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컸지만, 기대와 희망이라는 씨앗은 이미 백성들의 마음에 심어진 후였다. 이는 그동안 대정국 군사들이 엄한 군율을 제정해 이를 실천한 결과였다. 그에 더해 이런 성지까지 내려왔으니, 이는 조월국 백성들의 진정환(*定心丸: 생각이나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비유함)이 되었다.

긴 성지의 낭독이 끝나고 “이상, 어명을 받들라.”는 말이 떨어졌지만, 백성들은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문관은 혹시나 누군가 질문을 하는 이가 있을까 봐 가만히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아래에 선 백성들은 그 누구도 감히 앞으로 나서서 질문을 하지 못했다. 이에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고, 뒤이어 병사들이 형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비교적 외진 지역과 중앙을 빼면 아직 소수의 지방이 대정국에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이미 대정국에 완전히 점령된 상태였다. 이에 그들은 본격적인 겨울이 되기 전, 형벌을 집행할 적당한 시기를 고른 것이었다.

“처음 반년은 죽기 살기로 싸우더니, 뒤로 갈수록 아예 성문을 열고 투항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전쟁이 아니라 꼭 행군 같았지. 허, 참!”

옆에 있던 한 장군이 이렇게 말하자 윤중이 웃으며 대꾸했다.

“조월국에는 비적들이 많으니, 아직 우리가 싸울 기회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을 따르는 천사(天師)들은 아직 요사한 것들을 처리하고 있으니, 그것도 격전이라 할 수 있지요.”

“어이쿠, 그런 일에는 나는 끼고 싶지도 않다네!”

“하하하하…….”

“자네도 참, 하하하…….”

“류(劉) 대인, 그럼 이만 함께 군영으로 돌아가시지요. 제가 미리 양고기를 통째로 구워 놓으라 명해놓았습니다!”

“하하하, 좋소. 조월국 도성에 있는 객잔에서는 도통 잠을 못 자겠더군.”

윤중을 비롯한 장수들이 군영으로 돌아가자, 성지에 적힌 내용이 이미 곳곳에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 * *

큰 포부를 품고 대정국에서 온 학식 있는 서생들은 시험만 통과하면, 조월국 곳곳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서생들은 정식 관원은 아니었지만, 관리들의 일을 도맡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온갖 고통과 수모를 당한 백성들은 곧바로 그 변화를 체감했다. 이 관리들은 대정국의 군사들을 호위로 두고 있었고, 상황에 따라 군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단 며칠 사이에 근방의 비적들은 평정되었다.

작은 산골에서 위세를 부리며 백성들을 괴롭히던 비적들은 한창 사기가 오른 대정국의 정예병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비적들이 험준한 지형의 이점을 살려 끝까지 버텨보려 하면 대정군에서는 곧장 천사들을 투입했다.

우르릉…… 쿠궁…….

조월국 곳곳의 하늘에 우레가 울렸으나,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하늘의 변화로서 땅의 변화를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때, 영정관 근처 연추산의 한 산꼭대기에서는 산신 홍성연이 멀리 조월국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조월국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이야…….”

산신이 고개를 내려 다시 영정관을 바라보니,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정군 측에서는 수많은 병사를 옛 조월국 땅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제대로 피를 본 적은 없었지만, 훈련이 잘되어 있고 사기가 드높았다. 그중에는 패검을 찬 서생들도 있었으며, 말을 타는 이도 두 발로 걷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하나같이 강인한 의지가 엿보였으며, 그들이 내뿜는 기상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그러자 산신 홍성연이 다시 한번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대정국이 나날이 흥성하는 것도 당연하지.”

* * *

옥취산 깊은 곳의 옥령봉에서는, 영보헌 밖에 서 있던 계연이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연백평도 계연보다 한발 늦었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먼 하늘을 관찰하고 있었고, 몇몇은 손가락을 접으며 점을 쳐보기도 했다.

“계 선생님, 그럼 저희는 언제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까?”

연백평은 계 선생님의 눈빛에서 약간의 근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두 나라의 대세가 정해졌으니 이렇게 질문한 것이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요 며칠 안에 출발하죠. 보아하니 거 도우께서는 이번에도 함께 가시려는 건가요?”

계연이 먼 하늘에서 시선을 뗀 거원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거원자는 조금도 겸연쩍어하는 기색 없이 솔직한 태도로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꺼리지만 않으신다면요.”

“우리 사이에 그리 예를 차릴 필요가 있나요.”

함께 곤선승을 제련하기도 했고, 거원자의 품성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계연은 이미 거원자를 옥회산에 있는 두 친우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또 다른 친우는 거원자보다 항렬이 한참 낮은 구풍이었다.

계연의 말에 거원자는 뛸 듯이 기뻤으나 겉으로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친우 사이에는 그리 조심스러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계연에 대해 지닌 존경심은 전보다 더욱 깊어진 상태였다.

“선생님, 이참에 옥회성경도 한번 둘러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거원자는 마침 적절한 때라 여겨 냉큼 이렇게 물었다. 옥회산에서는 전부터 이미 계연의 방문을 고대해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옥령봉까지 온 만큼 계연도 실은 한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지요. 그런데 제가 데려온 이들이 함께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령 정괴나 귀신이라 할지라도, 선생님께서 데려오셨다면 당연히 옥회산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영보헌에서 신나게 보물을 사들인 호운 등은 선항을 유람하는 자체로 이미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계 선생님 덕분에 옥회성경을 구경해 볼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처음으로 옥회성경에 발을 들인 계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 호운과 손아아가 어땠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옥회성경은 진정한 세상 밖의 동천(*洞天: 도교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의 유형 가운데 하나로, 신선이 산다고 함. 대개 동굴이나 석동, 계곡 등 지하 또는 반지하 공간)은 아니었지만, 선도(仙道)를 닦기 적합한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라 할 수 있었다. 사계절의 운치가 있고, 밤에는 별이 모이고, 낮에는 노을빛이 감돌며, 바람에는 영기가 서려 그야말로 사람들이 선경(仙境)에 대해 가진 모든 환상에 부합하는 곳이었다.

계연은 속으로 옥회산에 ‘대정국 선도의 명승지’라는 명패를 달아놓았다.

연백평은 거원자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계연의 옆을 따르며, 무척 인내심 있는 태도로 활발하기 그지없는 호운과 손아아를 상대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거원자는 사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마음이 다른 데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위무외가 계연의 일행을 데리고 옥령봉을 돌아다니는 동안,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이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수천 리에 이른다.”라고 계연이 했던 말을 호운이 그에게 몰래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거원자는 예전에 계연이 탄천수를 처음 보았을 때도 ‘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거원자가 물었더니 계연은 곤이 일종의 커다란 물고기라고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 저 여우 요괴가 읊은 <소요유>의 한 구절에서는 곤의 크기가 수천 리에 이른다고 하니 그야말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 * *

3일 뒤 옥령봉 가장 높은 곳, 운무가 짙게 낀 공중에는 탄천수가 보일 듯 말 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연은 위미종 수사를 따라 운교(*雲橋: 구름다리)를 밟아 탄천수 위에 올라탔다. 한편 조낭, 호운, 손아아는 위씨 부자를 비롯한 이들과 함께 운교 아래에서 계연을 송별했다.

계연이 탄천수 위에 오르자, 그는 이 거대한 요수(妖獸)가 현재 반쯤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때로 탄천수는 눈을 뜨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그가 깨어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탄천수 위에는 위미종 수사들을 제외하면, 진정한 승객이라 할 수 있는 이는 계연의 일행뿐이었다. 탄천수의 등 위에도 건물이 있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공간은 배 속에 있었다. 그 아래로 내려가려면 등에 있는 탄천수의 기공(*氣孔: 숨구멍)을 이용하거나, 위미종에서 설치한 진법을 이용해야 했다.

계연이 느끼기에 탄천수는 여전히 반쯤 잠든 상태였으나, 그래도 탄천수는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파도를 휘젓듯 주위의 안개를 헤치며 오르락내리락했다. 계연의 일행은 탄천수의 등 위에 서서 아래쪽의 옥령봉을 내려다보았다. 호운 등은 여전히 아래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지만, 점차 안개가 짙어지며 그들의 모습이 가려졌다.

후웅-!

마치 거대한 물고기가 물보라를 일으킨 것처럼, 옥령봉 정상에 낀 안개가 폭발하듯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탄천수는 주위의 안개에 파문을 일으키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 진동은 옥령봉 위에까지 전해졌는데, 아래에 있던 이들은 곧이어 바람이 불어닥치는 것을 느꼈다. 영각(靈覺)이 예민한 이들은 어지럽게 흔들리는 배 위에 탄 것처럼, 심령(*心靈: 마음속의 영혼)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감각은 단 몇 초 만에 사라져버렸다.

“위미종의 탄천수는 탈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연백평은 점점 작아져 가는 옥령봉을 바라보며 감탄을 내뱉고는, 다시 시선을 계연에게 돌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탄천수 등 위에 세워진 한 정자였다. 다행히 어풍술을 이용한 진법이 설치되어 있어 광풍이 불진 않았으나, 그래도 주위로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계연은 옥령봉이나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두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는데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 연백평이 그제야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탄천수에 처음으로 탑승하셨는데, 뭔가 특별한 느낌이라도 받으셨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정자에 함께 서 있는 위미종 수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탄천수는 계속 수면 상태군요. 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완전히 깨어난 적이 없었네요.”

강설릉은 불진을 받쳐 든 채 가만히 계연을 바라보기만 했으므로, 옆에 있던 주섬은 사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고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계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탄천수는 잠이 많아서 깨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소삼은 특히 더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저도 소삼이 깬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항상 깊이 잠들거나 반쯤 잠든 상태라서요!”

거원자는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탄천수 주위를 바라보았다. 탄천수의 주위에는 시종일관 흩어지지 않는 운무(雲霧)가 끼어있었다.

“탄천수 주위에 감도는 저 운무는, 그가 반쯤 잠든 상태라 생겨나는 겁니까?”

“거 진인의 추측대로입니다!”

주섬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이는 두 고인(高人)에게 진정으로 감탄을 금치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남들과는 반응이 다른 자신의 사조를 대신해 매끄럽게 손님 접대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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