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56화 (756/892)

756화. 이토록 가까운 건곤의 기세

강설릉은 거원자를 한 번 쓱 바라본 뒤 다시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님께서는 혹시 더 깊은 견해가 있으신지요?”

그러자 계연이 가만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견해랄 게 더 있겠는가, 이는 그저 탄천수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에요. 깊은 뜻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말씀해주시겠죠.”

강설릉은 보기 드물게 미소 짓더니, 계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손님들을 남겨두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그러자 손님들을 남겨두고 갈 수 없던 주섬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상황을 수습했다.

“계 선생님, 연 선배님, 그리고 거 진인, 저희 사조께서는 성정이 진솔하실 뿐이지 절대 손님 여러분께 무례를 저지를 생각은 없으신 분입니다. 대신 여러분이 내부에 익숙해지실 때까지 제가 대신 모시겠습니다…….”

“괜찮소.”

“고맙습니다, 주 도우.”

다행히 이곳에 있는 이들은 진정한 선도(仙道)의 고인이라서, 도의 근본에 대한 논쟁이 아니면 마음이 넓었다. 그들은 전혀 강설릉의 태도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노기 띤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주섬은 남몰래 안도했다.

“주 도우, 이 짐승의 이름이 탄천인 걸 보니, 먹성이 아주 대단한가 보지요?”

그러자 주섬이 우스웠는지 미소 띤 얼굴로 설명해주었다.

“계 선생님, 탄천수의 이름은 그 크기 때문에 붙여진 거예요. 처음에 이름을 지은 이가 탄천수의 크기에 놀랐기 때문이죠. 게다가 탄천수는 주로 해와 달의 정화와 영기만 섭취하지, 형체가 있는 건 잘 먹지 않아요.”

“아, 그러고 보니 계모(某)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계연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더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이제 탄천수 안으로 들어가 보죠. 배 속의 세계가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네요.”

“네, 그럼 후배가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하오!”

“이쪽입니다!”

주섬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자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거원자와 연백평은 계연과 가까이 걷고 있었으므로, 계연이 두 눈을 거의 감다시피 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연의 두 눈은 원래도 실명된 상태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눈을 그리 크게 뜨고 다니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별로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편 계연은 이 순간 몇 번의 시도 끝에, 탄천수 소삼처럼 반쯤 잠든 상태가 되었다. 다만 깊게 잠들었느냐 얕게 잠들었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여러분, 이번에는 소삼의 기공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섬은 일행을 이끌고 탄천수의 머리와 등이 이어진 부근에 있는 거대한 구멍 곁으로 다가갔다. 그 주위로는 푸른 돌판이 둥글게 깔려 있었다.

거대한 구멍 안쪽은 평온하여 바람도 일지 않았고, 탄천수의 피부가 두꺼웠기 때문에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멍처럼 보였다. 그러나 안쪽에는 희미한 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것이 나선형으로 밑바닥까지 이어진 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어, 계 선생님께서는 주무시는 건가요?”

계연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거원자는 연백평과 눈을 한번 마주친 뒤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소. 선생께서는 그저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하시는 것뿐이오. 어서 가십시다.”

주섬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계연을 바라보자 계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그제야 웃는 얼굴로 일행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탄천수 내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구멍 안에는 진법도 없었고 중력이 사라지는 감각도 없었다. 하지만 아래로 이어지는 길 위에 오르자, 점차 대낮 같은 밝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저 멀리 특수한 천지(天地)가 보였는데, 주위에는 망망대해와 같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공중에 뜬 섬이 수려한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이 순간 계연은 눈을 감고 일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그의 의식 한 줄기는 하늘을 노닐고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계연은 계속해서 시도를 거듭하고 있었다. 유몽술을 펼치기가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책 속의 세계를 펼치는 황당한 일도 첫 시도 만에 해냈었다.

그렇게 한참 뒤, 계연이 유몽술의 뜻을 품은 채 눈을 뜨자 눈앞의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그는 바람을 부리며 앞으로 향하고 있었고, 옆에는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이 물고기는 안개에 몸이 감싸인 채였는데, 그 상태로 마치 물속을 노니는 것처럼 활발히 뛰어오르고 있었다. 계연은 바람을 이용해 그 커다란 물고기를 따라갔다.

이 커다란 물고기의 정체는 바로 탄천수인 소삼이었다. 하지만 실제 탄천수가 산맥만큼 큰 데에 비해, 지금은 계연의 팔 반 정도 되는 길이였다. 물론 실제 물고기와 비교하면 그리 작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탄천(*呑天: 하늘을 삼키다)이라 불릴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계연이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눈앞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이 스쳐 지나갔다. 산들은 그리 높거나 험준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순간, 계연은 돌연 깨달았다. 탄천수가 작아진 게 아니라, 계연 자신이 탄천수의 신기한 꿈속에서 거대해진 것이었다. 혹은 자신의 법상(法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우우우-.”

탄천수가 전방을 향해 움직이며 즐거운 듯한 울음을 내뱉었다. 그를 둘러싼 안개는 더욱 넓고 크게 변하며, 아래에 펼쳐진 산과 하천을 뒤덮어버렸다. 그렇게 주위는 어느새 운무(雲霧)의 바다가 되어, 물보라처럼 부서지기도 하고 파도처럼 높이 일기도 했다.

촤아앗-!

탄천수가 물보라를 내뿜듯이 안개를 뒤흔들며 활발히 움직이는 동안, 계연은 내내 한가한 걸음으로 그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파앗!

돌연 안개의 바다에서 커다란 파도가 일더니, 비늘 덮인 몸에 흉악한 발이 넷 달린 괴물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계연은 그 괴물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지만, 현재 그의 크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작디작은 쥐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그리 작은 동물이 아닐 것이다.

“우우……!”

이에 흥분한 소삼이 그 괴물을 뒤쫓기 시작하자, 괴물도 그제야 탄천수를 발견한 듯이 울부짖으며 다급히 도망쳤다. 그의 속도는 탄천수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순식간에 그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우오…… 우……!”

“내가 도와주마!”

계연은 소삼이 쫓아가지 못하는 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안개를 한 손에 가득 퍼담은 뒤, 구름을 밟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자 소삼이 이를 보더니, 계연의 손바닥 위로 풀썩 뛰어올랐다. 소삼의 꼬리가 계연의 손바닥과 안개를 세게 휘저었다.

계연의 손바닥 위로 진동이 생겨나더니, 다음 순간 소삼이 하얀 무지개처럼 변해 엄청난 속도로 전방의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삼은 비록 괴물을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이미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한 뒤였기 때문에, 곧 입을 쩍 벌렸다.

후욱-!

그러자 전방의 광활한 하늘에 안개가 파도처럼 높이 일더니, 곧이어 빛조차 가릴 정도가 되었다. 계연이 주위가 어두워졌다고 느낀 순간, 탄천수의 거대한 입이 반원형의 공간을 뒤덮으며 주위를 더욱 어둡게 물들였다.

우르릉……!

곧이어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는 동시에 소삼이 하늘의 넓은 범위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당연히 그 괴물도 범위 안에 있었다.

“우우!”

탄천수가 즐거운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멍하니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계연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얼굴이었다. 이 순간 계연의 눈에는 거대한 탄천수의 뒤로 넓은 소매 같은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그는 자신이 수리건곤술(*袖里乾坤術: '소매 안의 우주'라는 뜻으로, 건곤납물술을 발전시킨 것)을 한 단계씩 발전시켜왔던 경험을 떠올렸다. 늙은 용이 앞발로 사람을 잡아채던 장면, 노염생이 산을 만들어내 여우 요괴를 진압했던 일, 천경검세가 공중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던 때의 시퍼런 서슬, 그러다 마침내 탄천수가 한입에 하늘을 삼켜버리는 광경…….

“천경검세는 천지건곤(*天地乾坤: 하늘과 땅, 음양을 일컬음)의 힘을 빌려 사악한 무리를 처단하고, 수리건곤은 천지건곤의 힘을 빌려 형체를 집어삼키는구나……. 건곤의 힘을 움직이려면, 건곤의 기세(勢)가 필요하고…… 한 번 입을 벌리니, 천지가 어두워지는구나…….”

계연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수리건곤의 신통력을 이토록 가깝게 느낀 적이 없었다.

* * *

탄천수 내부, 안개 속에 떠 있는 섬은 크기가 전혀 작지 않았다. 섬에는 수려한 산수(山水)의 풍광에 더해 아름다운 누각들이 지어져 있어, 작은 수행 종파가 거뜬히 자리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만약 위미종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하지 않았다면, 소삼 내부에 이미 작은 성이 지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주섬은 계연의 일행을 데리고 다니며 섬에서 특히 풍광이 뛰어난 곳을 소개해주었다. 그런 곳에는 주로 진법이 깔려 있었고, 주위의 안개 사이로는 언뜻 섬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그들은 아래에 펼쳐진 산맥과 대지,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까지 볼 수 있었다.

섬 위를 구경하는 동안 주섬은 내내 두 눈을 감은 계연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거원자와 연백평도 때때로 계연을 바라보며 그를 살폈다.

계 선생님은 탄천수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계속 잠이 든 듯한 모습이었다. 비록 걸을 수도 있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느낌이었다.

“선배님들, 그리고 도우 분들, 여기에는 영천(*靈泉: 신기한 약효가 있는 샘)이 하나 있는데, 그 영천은 소삼의 몸에 있는 영맥(靈脈)과 이어져 있습니다. 샘물에는 짙은 영기가 감돌고 있어, 차를 끓여 마시거나 무언가를 제련하는 데에 사용하더라도 모두 뛰어난 효능이 있습니다. 원래는 다른 이들의 접근을 금하고 있지만, 만약 여러분 중 원하시는 분이 있거든 직접 떠가시면 됩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주의가 잠시 주섬의 발치에 있는 작은 샘물에 집중된 순간, 계연이 돌연 눈을 떴다.

“계 선생님, 돌아오셨군요?”

연백평이 낮은 소리로 이렇게 묻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인 뒤, 주위에 있던 이들을 향해 겸연쩍은 듯 웃어 보였다.

“제가 잠시 낮잠을 좀 잤네요. 참, 주 도우. 제 객사(*客舍: 손님이 머무는 숙소)가 어디인가요? 방금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어 잠시 폐관하고 수행을 닦으려 합니다.”

그러자 주섬이 깜짝 놀라 계연의 말에 공손히 대답했다.

“선생님, 배에 오를 때 받으신 옥패에 영기를 주입하시면 감응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숙소에 설치된 진법도 그 옥패로 조절하실 수 있습니다.”

“네, 그럼 여러분은 천천히 구경하세요. 계모(某)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계연이 이렇게 양해를 구하며 양손을 맞잡자, 다른 이들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당치 않습니다.”라며 인사했다. 마침내 계연이 몸을 돌려 축지법을 이용해 떠나가자, 남은 이들은 서로 놀라움이 담긴 눈빛을 교환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계연이 어느 정도의 도행을 지닌 인물인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돌연 깨달은 바가 있어 폐관한다고 하자 절대 작은 일이 아님을 알았다.

“혹 천도(*天道: 천지자연의 법칙)의 지극한 이치 같은 것을 깨달으신 게 아니겠습니까?”

“법력이 더욱 신통해진 것일 수도 있지요.”

연백평도 호기심을 느꼈지만, 얼굴에는 근심 어린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옆에서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거원자를 바라보며 낙담한 듯 중얼거렸다.

“선생님께서 도를 깨달으셨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언제 출관하실지 알 수 없으니…….”

그 말에 거원자가 천기각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니, 과연 무척 곤란해할 만도 했다. 계 선생님 같은 선도의 고인이 폐관 수행을 한다고 하면 짧게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몇 달 혹은 몇 년이나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컸다. 그래도 1년 정도라면 좀 낫지만, 수십 년 혹은 백 년 가까이 이어진다면 천기각 측은 당연히 수심에 잠길 것이다.

하지만 거원자는 계연에 대해 그들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백평을 안심시켜 주었다.

“도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계 선생님은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시는 바가 있는 분이니, 천기각 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모(某)의 생각에는, 탄천수가 천기동천에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출관하실 것입니다. 다만 거모가 궁금한 것은…….”

“계 선생님께서 왜 갑자기 폐관 수행을 하시느냐, 이 말이지요?”

“맞소, 연모도 그 점이 무척 궁금한 바요!”

주섬이 계연이 떠난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눈앞의 이들을 바라보니 그들은 모두 흥이 식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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