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화. ‘복(福)’ 자를 파는 사람
“주 도우, 더는 소개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 스스로 객사를 찾아가겠습니다.”
“네, 그럼 후배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으시면, 가까이 있는 위미종 수사에게 요청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고맙소!”
계연이 떠나자, 남은 이들은 모두 계 선생님이 갑작스레 폐관한 이유가 무엇일지 추측하느라 더 이상 구경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다른 곳에 팔린 주섬도 전혀 개의치 않고 돌아갔다. 위미종에서는 그간 단 한 번도 이런 형식상의 겉치레를 한 적이 없었으나, 오늘은 천기각과 계연의 존재가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에, 이처럼 전례를 깨고 친절히 접대한 것이었다.
연백평과 거원자의 객사는 계연이 머무는 곳을 중앙에 두고 각기 양쪽에 자리해 있었다. 객사의 간격은 스무 걸음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들이 함께 객사로 돌아와 보니, 계연이 머무는 곳에는 따로 폐관 진법이 걸려 있지 않고 그저 대문만 닫힌 상태였다. 이에 그들은 대문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안에서부터 묵향(*墨香: 먹의 향기)이 은은히 풍겨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계연을 방해하지 않고 서로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각자의 객사로 향했다.
* * *
섬 어느 누각 위에서는 강설릉이 탁자 위에 나른히 엎드린 채로 후배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계 선생님께서 폐관하셨다고?”
“네, 하지만 언제 출관하실지는 모르겠어요. 계 선생님께서는 사조와 법기를 제련하는 도(道)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하셨잖아요.”
그러자 강설릉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렇게 대꾸했다.
“괜찮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계연이 폐관한 이유는 많은 이들의 추측과는 달랐다. 그는 대단한 술법을 부리며 큰 소리를 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요히 앉아 수행을 닦지도 않았다. 그저 문방사우를 꺼내놓고서,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은 수리건곤술의 발전에 관한 자신의 추론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연서법(*衍書法: 글로 써서 술법을 추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을 이용해, 소삼의 꿈에서 얻은 깨달음을 천천히 기록했다.
계연의 붓놀림은 마치 구름과 물처럼 자유롭고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글을 쓰는 동안 이전에 그가 남긴 관건이 되는 부분에 금빛이 돌더니, 점차 주위의 다른 글자들과 결합하며 금색 문장으로 변했다. 계연은 그것을 보고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눈을 감다가 살짝 뜨기도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붓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소위 건곤을 삼키는 술법이란, 상대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소매를 펼치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법력을 펼치면 땅이 어두워지나, 이는 해와 달이 빛을 잃은 게 아니라, 모든 빛이 완전히 뒤덮여 버렸기 때문이다…….”
계연의 붓끝에는 마치 신(神)이 서린 듯했는데, 이는 신도(神道)에서 일컫는 신이 아니라, 스스로의 원신(元神)과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영험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금갑은 뜰 안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고, 종이학과 작은 글자들은 조용히 탁자 주위를 둘러싼 채 진지한 태도로 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두 달여가 지난 어느 날, 연백평은 숙소의 문을 열고 나와 계연이 머무는 원락(*院落: 담장 안에 따로 막아 놓은 정원이나 부속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은은한 묵향(墨香)이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몹시 궁금했지만, 계연을 방해하지 않고 손가락을 접어 점괘를 치기 시작했다. 다만 그가 헤아리는 것은 계연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떠난 운주였다. 이때 운주 남쪽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이미 눈이 몹시 내리고 있었다.
한편 저 멀리 조월국의 옛 땅, 동해(東海) 인근의 한 도시에서는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에 값나가는 옷을 걸친 스무 살쯤 된 남자가 멜대를 지고 장터로 걸어들어왔다.
이 시각 저잣거리는 몹시 떠들썩했는데, 백성들뿐만 아니라 대정국의 병사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곧이어 남자는 소쿠리를 내려놓고서 목청껏 소리쳤다.
“자자, 대정국에서 오신 나리들, 어서 이리 와서 구경 한번 해보십시오! 저희 집안의 좋은 것들을 들고나왔습니다. 대정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기에 적당한 것들입니다! 가격도 잘 쳐 드리겠습니다!”
“자자, 어서 와서 구경해보세요! 전부 품질이 뛰어난 물건들입니다!”
남자가 계속해서 소리쳤으나, 행인들은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 와서 구경하는 이는 몇 없었다. 이에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예 광주리를 뒤집어 그 안에 든 물건을 전부 꺼냈다.
그러자 물건들끼리 어지럽게 부딪치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자는 물건을 간단히 정리한 다음, 또 다른 광주리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친 뒤 뒤집은 광주리 위에 올려놓았다.
“옥 조각품과 옥 비녀, 뛰어난 서화 작품과 개광(*開光: 고승(高僧)이 의식에 쓰이는 도구 등에 영력을 불어넣는 것을 뜻함)한 ‘복(福)’ 자 팝니다!”
그가 물건을 그럴듯하게 펼쳐놓자 그제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광주리 위에 놓인 ‘복’ 자는 척 봐도 자태가 남달랐기 때문에, 가장 먼저 행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곧이어 채소를 지고 있던 나이 든 농부가 물었다.
“여기는 가격이 어찌 되오?”
“아, 모두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이 ‘복’ 자가 꽤 괜찮군. 글씨도 뛰어나고. 얼마요?”
곧이어 남자의 대답에 질문을 던진 이가 깜짝 놀랐다.
“이 글자는 제 부친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고인이 남기고 가신 거라 하셨습니다. 저희 집안에는 이 글자를 대대로 잘 보관해야 한다는 가훈이 있을 정도인데, 만약 제가 급히…… 크흠, 아무튼, 에누리 없이 황금 열 냥입니다!”
“뭐라고? 고작 이 글자 하나가 황금 열 냥이란 말이오? 왜, 아예 도둑질을 하지 그러나!”
“그러게나 말이오, 값이 말도 안 되는구먼!”
“뭐가 금 열 냥이라는 거요?”
“어떤 글자 하나를 열 냥에 판다고 하오.”
“어디 좀 봅시다.”
“어느 글자 말이오?”
“저기!”
황금 열 냥이라는 말에 점점 더 많은 행인이 몰려들었다. 이에 남자는 속으로 무척 흡족해했다. 어차피 그는 처음부터 누군가 황금 열 냥을 내고 이 글자를 사가길 바라지 않았고, 그저 손님들을 끌어오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 사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바보천치일 것이다.
“그럼 가격을 흥정하면 되지 않습니까! 본래 장사라는 게 전부 흥정이 아닙니까? 게다가 제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이 글자는 정말로 어느 고인이 개광(開光)한 것입니다! 원래는 저희 집 대문에 붙어 있던 건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이 지나도 아직 이렇게 새것처럼 깨끗합니다. 이 먹물 자국이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걸 좀 보십시오. 후에 여기에 있는 큰 저택으로 이사 온 후로는 집안 어른들께서 이 글자를 고이 보관해왔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보십시오, 완전히 새것 같지 않습니까?”
“거, 참, 젊은이! 새로 쓴 거니까 새것처럼 보이는 게지!”
“그러니까 말이오, 우리가 전부 바보인 줄 아나!”
“20년이 넘은 글자가 어떻게 이렇게 새것 같겠나?”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동안,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대정국의 한 군관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집에서 온 서신을 넣어둔 가슴께를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복’ 자를 파는 사람이 있다니?’
“가세, 우리도 한번 가서 구경해보지!”
“좋습니다, 대체 무슨 구경이 났길래 저렇게 사람이 많은지 봐야겠습니다!”
군관이 이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몇몇 병사들이 함께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편 글자를 팔던 남자는 아직도 구경꾼들과 논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믿어주십시오, 이 글자는 정말로 영험하단 말입니다! 게다가 곧 새해가 되는데, 집안에 이런 ‘복’ 자 하나 붙여놓으면 재물도 불러오고 삿된 것을 내쫓는 효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남자는 병사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목청을 더욱 크게 키웠다.
“여러분, 이제 세상이 태평해졌으니 앞으로도 좋은 변화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이 온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이 글자를 집안에 붙이기에 마침 딱이지요!”
“그럼 어느 선생을 찾아가 글씨를 써 달라고 하면 되지.”
“내 말이!”
“그건 다릅니다! 이 글자는 보배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고요!”
진(陳)씨 성의 군관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광주리 위의 은은한 빛이 감도는 ‘복’ 자를 발견했다. 놀란 그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니, 더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본 게 환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 글자, 얼마에 팝니까?”
“하하하하, 나리, 저자는 돈에 양심을 판 사람입니다. 무려 저 글자를 황금 열 냥에 판답니다!”
“그렇습니다, 황금이요, 황금! 은자 열 냥이 아니라!”
“열 냥? 그렇게 비싸게 판단 말이오?”
진씨 성의 군관이 놀란 얼굴로 이렇게 묻자, 글자를 팔던 남자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나리, 장사라는 게 원래 흥정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 글자는 정말로 보통 글자가 아닙니다! 만약 나리께서 사시겠다면, 크흠, 딱 여덟 냥만 받겠습니다. 비록 낙관은 찍혀있지 않지만, 이건 정말로 대가가 쓴 명필입니다!”
진씨 성의 군관은 단번에 승낙하려다가, 서신 속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충동을 억누르며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이보시오, 이 글자는 아무래도 다시 집에 갖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소. 집안 어른들은 당신이 이 글자를 팔고 있는 걸 아시오? 게다가 이게 정말로 보배라면 왜 이걸 갖고 나와 파는 것이오?”
“나리……. 저, 그것이…… 저는, 그저 소소한 장사를 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이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걸 사시지요.”
남자는 더듬더듬 대답하더니, 이내 가지고 나온 다른 물건들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손님들은 이미 끌어올 만큼 끌어온 상태였다.
게다가 광주리 안에 대충 담아와 바닥에 늘어놓은 것들은 그저 그런 물건이 아니라 하나같이 정교하고 값진 것들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꽤 합리적이어서 금세 물건이 하나둘 팔리기 시작했다.
이 군관의 이름은 진수(陳首)였다. 사실 집안에서 이 서신을 보내왔을 때, 그는 서신에 적힌 내용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거친 노병으로서, 이미 대정국과 적국 천사(天師)들의 역량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일들에 대해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순간 정말로 ‘복’ 자를 발견하자 그는 그것이 진짜 보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진수는 그저 저 글자를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서신에 담긴 주의사항을 잊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일단 자신이 저 보배를 손에 넣을 만한 돈이 있는지를 살펴야 했다.
이때 젊은이가 벌린 노점에는 적지 않은 행인이 모여들어 구경하고 있었다. 그가 내놓은 물건 중에는 정교한 조각품도 있었고 장신구도 있었다. 진수가 한발 물러나 함께 온 병사들에게 다가가니, 그들은 젊은이를 조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자가 돈이 급해 정신이 나갔나 보군. 겨우 ‘복’ 자 하나에 황금 열 냥을 부르다니! 그 돈이면 저택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인데!”
“그러게나 말일세. 10문(文)이면 족할 것을!”
“뭐, 저 글자는 확실히 어느 대가의 솜씨인 것 같으니, 10문은 좀 싸지.”
“그럼 100문! 그보다 많이는 못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