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화. 동전 두 닢
진수는 그들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다들 돈이 얼마나 있는가? 지금 가진 돈이 얼마지?”
“어? 진 형님, 여기서 뭘 사시려고요?”
“무얼 사려고 하십니까? 돈이 충분치 않으십니까?”
“그렇다네, 집안에 뭐라도 사 가고 싶은데 돈이 충분치 않군.”
진수가 가만히 헤아려본 결과, 지금 그가 지닌 현금은 7, 8냥 정도의 은자와 동전 반 꿰미가 전부였고, 그 외 20냥짜리 은표(*銀票: 은자와 바꿀 수 있는 수표의 일종) 한 장, 10냥짜리 은표 한 장이 있었다. 하지만 은표를 발급한 전장(*錢庄: 옛날에 개인적으로 경영하던 금융점포, 현재의 은행과 비슷함)이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서 단기간 내에 은자로 바꿀 수는 없었다.
군중에서 진수의 지위는 도백(*都伯: 휘하에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는 군관)이었고 평소 됨됨이도 괜찮았기 때문에, 병사들은 다들 흔쾌히 그를 도와주려 했다. 그들은 곧이어 지닌 돈이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지금 가진 건 은자 2냥뿐입니다.”
“저는 은자 4냥하고 100문 좀 넘는 돈이 있습니다.”
“저도 은자 1냥이 있습니다.”
“도백, 제게 금 부스러기가 조금 있습니다. 아마 1냥 정도 될 겁니다.”
그렇게 은표를 빼고 모두 가진 돈을 합쳐보니 은자 40냥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자 진수가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한참 모자라네, 모자라…….”
그러자 병사들이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며 물었다.
“진 도백, 이걸로도 부족하십니까?”
“진 형님, 뭘 사시려고 그러십니까?”
“설마 저 글자를 사시려고 그러는 건 아니시죠?”
진수가 흘끗흘끗 글자를 쳐다보는 걸 보고 한 병사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진수가 얼른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글자는 확실히 대가의 솜씨고, 나도 마음에 들긴 하지만, 그래도 금 10냥은 너무 비싼 듯하네.”
“맞습니다…….”
“가세, 이 주변이나 좀 더 둘러보지.”
진수가 이렇게 말하자 병사들이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수는 그들을 따라 떠나려다가 어느새 구경꾼들이 확 줄어든 노점에 한 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동전을 세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더니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리, 뭔가 마음에 드신 게 있으시면 제가 좀 깎아드리겠습니다.”
진수가 고개를 젓더니 다시 광주리 위의 글자를 바라보았다. 먹물만 보면 정말로 쓴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였다.
“저 글자…….”
“이걸 사고 싶으십니까?”
젊은이가 잠시 놀라워하더니 손을 뻗어 글자를 집어 들었다.
“저 글자, 아무래도 팔지 않는 게 좋겠소. 저 글자가 정말로 개광(*開光: 고승(高僧)이 의식에 쓰이는 도구 등에 영력을 불어넣는 것을 뜻함)을 거쳤든 아니든, 저 서법만 보더라도 잘 보관하는 게 맞소. 어서 집으로 가져가시오.”
진수가 사려는 게 아닌 듯 보이자 남자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건 나리께서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저 장솔(張率)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절대 싸게 팔지는 않을 겁니다.”
과연 이자의 성은 서신에 쓰여있던 대로 장 씨였다. 그러자 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어서 저 글자를 잘 보관하시오. 재물은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저 글자도 마찬가지요. 참, 보통 언제 자리를 펴시오?”
장솔은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대체 이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군관이었으므로 그도 무례하게 굴지는 못했다.
“그게, 제가 항상 나오는 게 아니라서요. 끗발이 좋으면 잘 안 나오는데, 장사하러 나오면 보통 점심때쯤입니다.”
“알겠소.”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복’ 자에 시선을 던진 뒤 떠나갔다.
장솔은 그렇게 얼마간 장사를 펴고 있다가 손님이 없자, 다시 물건을 갈무리해 멜대에 지고는 떠나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는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품에 넣은 돈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하자, 동전과 은자 부스러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노랫소리보다 감미로웠다.
“헤헤, 오늘은 거의 한 냥이나 벌었네!”
그러다 장솔은 한쪽 광주리 안에 든 ‘복’ 자가 적힌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글자가 정말로 개광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릴 때부터 지켜보았던 이 글자는 조금도 그 색깔이 퇴색되지 않았고, 집안 어른들도 이 글자를 무척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솔은 이 ‘복’ 자가 그래 봐야 삿된 것을 쫓는 소소한 작용을 하는 게 전부라고 여겼다. 게다가 이건 뱀이나 쥐 같은 것도 내쫓지 못했다. 장씨 집안도 다른 집안에 비하면 그저 사정이 조금 더 넉넉하고 큰 저택을 가졌을 뿐, 금의옥식(*錦衣玉食: 비단옷과 흰 쌀밥이라는 뜻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일컬음) 하는 대갓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집안에서 누군가 횡재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었고, 지금 집안의 돈은 모두 어른들이 고생해서 절약해 쌓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글자는 지난 20년간 장솔의 눈에 그리 현묘하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큰 저택으로 이사 온 뒤에는 글자를 밖에 붙이지 않고, 지금까지 10년간 궤짝 안에 숨겨온 상태였다.
어쨌든 그동안 집안 형편은 내내 괜찮은 편이었고, 이에 장씨 집안 사람들은 이미 이 글자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 장솔이 얼마 전에 전당포에 맡길 물건을 찾느라 집안 곳곳을 뒤지던 중에, 오래전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 글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글자를 찾았다는 말을 집안사람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 * *
진수는 군영에 돌아온 뒤 내내 정신이 어딘가에 팔려있었다. 이틀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때 본 ‘복’ 자만이 떠올랐다.
이틀 내내 그는 훈련이 끝나면 저잣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장솔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차피 아직 돈을 마련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에 그는 갈수록 시름이 깊어졌다.
그렇게 오늘 또다시 시정에 나갔다가 돌아온 진수는 막 하얀 막사를 지나는 순간, 그 안에 있는 이가 글씨를 쓰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에 그도 곧 서신을 써서 식구들에게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서신을 한번 보내고 답장을 받는 데에 수개월이 걸리니 어차피 소용이 없을 듯했다.
한편 막사 안에 앉아있던 주부(主簿)가 밖을 내다보니, 진수가 이 앞을 거닐다 다시 떠나려는 걸 보고는 그를 불러세웠다.
“진 도백?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진수가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더니, 어쩌면 이 고민을 주부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부와 관계가 좋았으므로, 어쩌면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진수는 그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탄식하며 말했다.
“기(祁) 선생, 요즘에 제가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주부의 이름은 기원천(祁遠天)이었고 경기부 사람이었다. 그는 대정국과 조월국이 막 전쟁을 시작했을 때, 혈기 왕성한 서생들과 함께 3척(약 90cm)짜리 칼을 들고 용감히 종군한 자였다.
그러자 기원천도 자리에서 일어나 진수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한쪽에 놓인 걸상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그는 얼른 쓰고 있던 문서를 끝맺고 인장을 찍은 뒤, 붓을 내려놓고는 진수를 향해 물었다.
“진 도백, 무슨 일로 그리 근심하십니까?”
“휴우……. 실은, 그것이, 제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 찾았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싼 건 둘째치고, 그걸 파는 사람이 종적을 감춰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내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에 기원천은 즉시 호기심을 느꼈다. 진수는 사람 됨됨이가 진실했고 머리도 좋았기 때문에, 이미 상관들은 그를 군후(*軍候: 휘하에 500명의 병사를 둔 군관)로 승진시킬 생각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번 전투가 끝난 뒤, 그들은 병사들에게 급료만 지급했을 뿐 아직 공로는 헤아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진수의 공적을 생각해보면 그는 곧 군후로 뽑힐 게 확실했다.
“아하, 무슨 물건인데 그러십니까?”
“그게…… 휴우, 아무튼 꽤 희귀한 물건입니다, 말하기는 좀 그렇네요. 참, 기 선생, 혹 은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제게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기원천은 웃으며 자신의 돈주머니를 끌러 안쪽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동전을 제외하고 은덩이와 은자 부스러기, 금 부스러기가 보였다.
“한 100냥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진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많습니까? 그럼, 제게 조금만 빌려주십시오. 30냥, 30냥이면 족합니다!”
“30냥이요? 적지 않은 액수네요!”
기원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그래서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진 도백의 됨됨이를 제가 아는데, 진 도백도 못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그러자 진수가 단번에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웃었다.
“하하하하, 고맙습니다, 기 선생! 정말 고맙습니다! 휴, 이제 돈은 해결했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기원천은 다시 고개를 숙여 돈주머니 안의 금은(金銀)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군관들과 달리, 성을 함락시키고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술을 마시러 다니지 않았다. 그는 절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상으로 받은 돈까지 전부 모으고 있었다. 게다가 관직도 낮지 않았으므로 항상 급료가 남았다.
기원천은 돈주머니에서 은자를 꺼내다가 돌연 그 안에서 금빛이 번쩍, 스치자 깜짝 놀라 동작을 멈췄다. 그가 다시 주머니 안을 뒤져보니, 아래에 깔린 동전 두 닢이 왜인지 다른 동전과 다른 것 같았다.
“기 선생? 왜 그러십니까?”
“예? 아, 별일 아닙니다. 30냥이라 하셨죠, 마침 여기 저울이 있습니다…….”
기원천이 꺼낸 금은을 저울 위에 올려 재는 사이, 진수는 다시 그 글자를 떠올리며 돌연 이렇게 물었다.
“기 선생, 선생이 보시기에 복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인 것 같습니까?”
기원천은 주머니 안에서 은자를 꺼낼 때마다 깊숙한 곳의 동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진수가 뜬금없이 던진 질문을 듣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기모(某)가 보기에, 복이 있다는 건 부귀를 뜻하거나 금의옥식 하는 삶, 혹은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엇을 일컬어 복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제가 배움을 구하고 있을 때, 일찍이 등(鄧)형과 이 문제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일컬어 복이라 하는가? 집안 사정이 풍족하고, 가족이 화목하며, 재난이 없고, 병을 앓지 않으며, 타인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타인에게 원한을 사지 않는 것, 즉 전반적으로 순조롭고 편안한 삶을 복이 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삶에 별다른 고뇌가 없고, 부모님이 오래 사시고, 현숙한 아내를 두고, 자손이 넉넉한 것도 모두 복이라 할 수 있지요. 이곳 조월국 땅을 좀 보십시오, 이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진수는 진지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동의했다.
“기 선생의 말씀이 맞습니다. 예전에 조월국에서 부호였던 이들은 쉽게 남들의 이목을 끌었고, 권력을 지녔던 이들은 조정의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기원천은 이때 무게를 다 잰 뒤였다.
“32냥 정도 되겠군요. 30냥에 딱 맞춰 나누기가 쉽지 않으니, 진 도백께서는 이대로 가져가시지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기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