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화. 이긴 게 꼭 복(福)은 아니다 (1)
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예를 올린 뒤 금은을 건네받았다. 그 무게가 손에 닿자 걱정스럽던 마음이 곧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진모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 선생께서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기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십시오! 반드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기원천도 자리에서 일어나 진수를 향해 예를 행했다.
진수가 떠나자,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주머니 안의 기이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꺼내 들고 보니 그저 평범한 동전같이 보였지만, 조금 전에 느낀 비범한 감각은 여전했다.
“이 동전은…… 맞아!”
기원천은 그제야 이 동전이 어디서 났는지 생각이 났다. 종군하기 전에, 경기부의 어느 찻집에서 풍모가 비범하던 선생이 그에게 찻값으로 남기고 간 동전이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선생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네, 종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돈주머니를 한번 잃어버렸지 않았나? 이 동전도 그때 같이 잃어버렸어야 맞는데……. 설마 그때 그 동전이 아닌가?’
기원천은 눈썹을 찡그린 채 한참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직감이 이 동전이 바로 찻집의 그 동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흠, 전쟁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 곧 새해인데 나도 돌아가기 전에 저자에 나가서 뭐라도 사가야 하지 않을까?”
진수의 말을 들은 기원천도 곧 시정을 구경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
그날 밤, 달빛이 홀로 환한 가운데 해평성(海平城) 전체는 이미 고요에 잠겨 있었다. 비록 성의 주인은 바뀌었으나, 백성들의 생활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로는 바로 비적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억울한 일이 생겨도 호소할 곳이 있었다. 전에는 관리들이 뒷돈만 받고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말로 백성들을 대신해 일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연말에 해평성과 그 주위의 백성들은 모두 안락한 나날을 보내며 편안히 잘 수 있었다.
한편, 성안을 돌아다니던 야경꾼이 삼경(三更)을 알리자 장솔은 눈을 번쩍 뜨고는 조심스레 이불을 젖혔다.
그러자 단번에 냉기가 느껴져 장솔은 몸을 부르르 떨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깟 한기가 어찌 마음속의 열기를 누를 수 있겠는가?
장솔은 차례로 옷을 갖춰 입고 그 위에 두꺼운 외투와 모자를 썼다. 그런 뒤 베개 아래에서 두툼한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렇게 곧장 집을 나서려던 장솔은 문가에서 잠시 주춤하더니, 방으로 되돌아가 침상 머리맡의 상자에서 ‘복’ 자를 꺼냈다.
장솔은 그 종이를 침상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접어, 한입 크기의 말린 두부만 하게 만든 뒤 품 안에 넣었다.
“전에는 이 몸이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졌지만, 오늘은 기필코 내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겠어!”
장솔은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마조패(馬弔牌)라는 것에 푹 빠져있었는데, 그건 도박장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였다. 마조패는 예전에 자주 하던 엽자패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랫동안 놀 수 있었다.
장솔은 아직 규칙을 완전히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몇 번 이겨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번 놀다 보니 그는 자기가 패가 안 좋아서 지는 게 아니라, 기술이 없어서 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집안 물건을 팔아 은자 5냥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정도 금액은 집안 가족들이 쓰기에도 넉넉할 정도였으니, 도박장에서 실컷 놀기에도 충분한 돈이었다.
오늘 장솔이 ‘복’ 자를 가져가는 건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이 글자는 보통 글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는 오늘 자신이 돈을 좀 따면 연말을 아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 돈으로 가족들에게 좋은 가죽 털 같은 걸 좀 사가면 체면도 아주 설 것 같았다.
장솔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흥분을 억누르고 살금살금 방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후원 담벼락 앞에 늘어선 절인 채소를 담은 항아리를 밟고서 담을 넘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오늘은 달빛이 밝아 주위가 아주 환했다.
“헤헤, 날씨도 딱 좋군!”
장솔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서둘러 도박장으로 향했다. 그는 작은 골목만 이용해 일각(15분) 반 만에 도박장이 있는 골목에 다다랐다. 저 멀리 환히 내걸린 등롱 위에는 ‘해락방(海樂坊)’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박장에 밖에 내건 등롱이 보이자 장솔의 걸음이 전보다 빨라졌다. 도박장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에서부터 열기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구를 지키고 선 두 사내는 장솔과 아주 잘 아는 사이인 듯,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장 공자, 또 오셨군요?”
“헤헤, 그렇네, 손이 근질거려서 말이야. 오늘 내 돈을 두둑이 따면 자네들에게도 술값을 좀 주겠네!”
그러자 두 호위가 장솔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장솔도 그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훈기가 그를 덮쳐와 장솔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늦은 밤, 도박장 안은 무척이나 떠들썩했다. 곳곳에 화로가 놓인 데다 도박꾼들의 열기가 섞여 내부는 거의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추위가 가시자 장솔은 빈자리가 있는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자자, 자네들 노는 데에 나도 좀 끼워주게!”
도박장에서 하는 놀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도박장 측에 일정 금액을 주고 도박꾼들끼리 모여서 노는 것이 있었다. 놀 사람이 부족하면 주위에 있던 이들이 참가할 수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도박장 측에서 운영하는 탁자였는데, 그런 경우 주위의 구경꾼들도 판돈을 걸 수 있었다. 이편이 첫 번째 종류보다 좀 더 자극적이고 노는 사람도 많았다.
장솔은 일단 손을 좀 풀어보려는 생각으로 이들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 시진(2시간) 동안 놀다 보니 연이어 좋은 패가 나왔고, 도박장에 돈을 좀 떼주고도 3백 문(文)넘게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장솔은 이 정도 번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 여기까지만 하세.”
“뭐? 돈을 따자마자 가는 법이 어디 있나?”
“그러니까 말이야.”
그와 같이 놀던 도박꾼들이 불쾌해하며 따지자, 장솔이 웃으며 도박장 한쪽의 떠들썩한 곳을 가리켰다.
“여긴 재미가 없어서 그러네, 판돈이 너무 적어. 저기에 가야 돈을 좀 따지. 이 어르신은 저쪽에 가서 놀 테니 자네들도 와서 그럼 돈이나 좀 걸게.”
장솔이 이렇게 말하니 다른 이들도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장솔은 도박장을 뜨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가리킨 곳으로 가버렸다.
게다가 도박장에는 사실 큰손들이 많아서, 장솔이 지닌 은자 5냥 정도는 그리 큰돈이라 할 수도 없었다.
장솔은 곧장 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주변에 서서 판돈을 걸었다.
탁자를 둘러싼 도박꾼들은 저마다 판돈을 걸었는데, 승패에 걸 수도 있었고 마지막에 나오는 패가 4가지 조합 중 어느 것일지에 대해 걸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돈내기를 하는 게 간단한 주사위 놀이에 돈을 거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장솔은 오늘 끗발이 좋았기 때문에 곧바로 은자 1냥을 걸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마조패를 시작하자, 주위에서 연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 시진 여가 지나자, 장솔의 본전은 이미 22냥까지 불어나 있었다.
마조패는 네 사람이 하는 놀이였는데, 이때 국면은 장솔과 장가(*庄家: 도박장 측에 고용된 딜러를 일컫는 말)가 팽팽하게 대치하는 상태였다.
장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는데, 장솔은 그와 달리 내내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하하, 여러분, 어서 승패에 판돈을 거시오! 내가 이기는 데에 걸면 돈을 따게 해주겠소!”
“대단하구려!”
“공자께서 오늘 끗발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끗발이 아니라 그게 다 이 어르신 기술이 좋기 때문이지!”
“예, 그렇지요.”
한편 도박장 2층에서는 몇 사람이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띤 장솔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자 혹시 속임수를 쓴 게 아닌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한데.”
“그러니까 말일세, 잡는 패마다 좋은 것만 나오다니.”
두 사람이 한창 의심스럽게 지켜보던 찰나, 장솔이 단번에 큰돈을 내걸었다.
“이번에는 15냥을 걸겠네!”
그 큰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장솔이 앉은 탁자를 쳐다보았다. 2층에 있던 이들도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장솔을 주시했다. 그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시력을 지닌 데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장솔이 든 패를 볼 수 있었다.
그때, 한창 흥분한 장솔은 가슴께에서 뜨끈한 온기를 느꼈으나, 한창 열이 올라 땀을 흘리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장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패를 냈다. 그러면서도 살짝 고개를 들어 연신 2층 난간이 있는 곳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패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탁자 모서리를 짚고 있었는데, 언제든 탁자 아래를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2층에 있던 이가 살짝 고개를 젓자, 장가도 어쩔 수 없이 가진 대로 패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반각(半刻) 뒤, 장솔은 씁쓸해하는 표정으로 손에 든 패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아이고, 한 장을 잘못 냈네……. 에잇, 내 아까운 15냥!”
그러자 장솔이 이기는 데에 돈을 건 이들도 전부 돈을 잃게 되었다. 그중 성질이 나쁜 이들은 곧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대체 패를 어떻게 냈길래 졌단 말이오!”
“당신 때문에 은자 2냥을 잃었잖아!”
“실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는 떵떵 치고 말이야!”
“뻔뻔한 놈!”
“에잇!”
장솔도 연신 탁자를 내리치며 후회하는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많이 걸지 말걸…….”
이렇게 되자 도박장 2층에 있던 이들의 안색은 한결 좋아졌다. 큰돈을 잃은 장솔은 한 판 더 마조패를 시작했는데, 또 져서 은자 1냥을 잃게 되었다. 그러자 2층에 있던 이들도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는 시각, 장솔은 몇몇 도박꾼들과 함께 도박장을 나왔는데 그의 표정은 그리 개운치 못했다.
“에잇, 하룻밤 내내 놀았는데 겨우 1냥 3백 문밖에 못 따다니…….”
“나는 고작 2백 문 딴 게 다라네!”
“지금 장난하나? 나는 따기는커녕 1냥을 잃었네.”
“나는 3냥이나 잃었다고!”
“쓰읍……. 추워라!”
도박꾼들은 추위에 떨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장솔도 집으로 돌아가 외투를 벗고는 곧장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손에 들어왔다가 잃어버린 십여 냥의 은자가 떠오르자, 침상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들고 들어간 돈보다 가지고 나온 돈이 더 많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어휴! 만약 제때 손을 뗐으면 지금 20냥 넘게 따왔을 텐데…….”
장솔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가슴께에서 사각형으로 잘 접힌 종이를 꺼내 침상 아래로 휙 던졌다. 장솔은 마조패 기술이 좀 더 좋아지면 자연히 돈을 딸 수 있을 거라 여겼기에 오늘의 결과가 더욱 마뜩잖았다.
“별것도 아니네. 전에 저 글자를 안 가지고 갔을 때가 끗발이 더 좋았었지! 괜히 가져갔다가 재수 없게 돈만 잃고!”
홧김에 소리친 장솔은 어쩐지 약한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떠니 또 어지러운 느낌이 가셨다.
“에휴, 하룻밤 내내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배고파서 곧 깨겠네. 일어나면 죽이라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