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화. 이긴 게 꼭 복(福)은 아니다 (2)
정오가 되자 장솔은 느지막이 침상에서 일어나 밥을 먹고는 가족들에게 집을 나선다고 알린 뒤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시진하고도 반이 지나자, 장솔은 어느새 30냥을 딴 상태였다. 도박장 안은 흥분한 이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으로 떠들썩했고, 그의 주위로는 계속해서 도박꾼들이 몰려들었다.
장솔의 기술은 확실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는 패를 뽑을 때마다 끗발이 좋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패가 나오면 과감히 큰돈을 걸었다. 그렇게 여러 번 승패가 갈리고 판돈은 쌓이고 쌓여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자면 장솔은 확실히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자였다. 그는 모든 패의 수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맞은편의 장가가 속임수를 쓰자, 장솔은 곧장 십자(十字)하나가 더 많고, 문전(文錢) 하나가 적은 것을 알아차렸다. 장가는 패를 섞다가 실수로 섞여 들어갔다는 이유를 댔는데, 주위의 도박꾼들이 나서준 덕분에 그 판은 무효가 되었다.
장솔은 그저 자신이 지닌 재능을 옳지 못한 곳에 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때 그는 무척 득의양양한 채 마조패 놀이를 이어갔고 또다시 한 시진이 지났다.
타앗!
“하하하하, 끝났소. 어서 돈 주시오, 50냥! 하하하하…….”
장솔은 한쪽에 이미 은자 100냥을 쌓아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막 손을 뻗어 맞은편의 백은(白銀)을 쓸어오려던 순간, 커다란 손이 나타나 그의 팔을 잡아챘다.
장솔이 고개를 들어보니 흉악한 얼굴의 거한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
거한이 장솔의 손을 틀어쥔 채 힘을 주자, 그는 손이 잘릴 것처럼 아팠다.
“쓰읍……! 아, 아파요!”
“감히 여기서 속임수를 써?”
“안, 으윽…… 안 썼습니다…….”
거한은 장솔의 팔을 탁자 위로 끌어와 그의 소매를 탈탈 털었다. 그러자 갑자기 패 한 장이 그의 소매 속에서 툭 떨어졌다.
“이런데도 네놈이 속임수를 안 썼다고?”
그러자 주위의 구경꾼들이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얼굴로 저마다 말했다.
“세상에, 원래 속임수를 썼었다니……!”
“어쩐지!”
“그렇게 여러 번 이기더라니, 이상하다 했지.”
“보면서도 전혀 몰랐지 뭔가…….”
도박장 안의 도박꾼들은 탁자 주위로 몰려들어 창백한 얼굴의 장솔을 향해 삿대질하며 욕했다. 그러자 장솔도 자신이 도박장 측이 판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당, 당신들! 이건 모함이야! 이런 거짓말을 지어내다니!”
“감히 지금까지도 거짓말을 하느냐? 여기 있던 모든 이가 네놈이 속임수를 쓴 걸 보았다!”
거한은 이렇게 소리친 뒤 장솔의 배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장솔은 하마터면 그 주먹 한 번에 위액을 토할 뻔했다. 그가 고통에 배를 감싼 채 바닥을 뒹굴자, 도박장 측에 고용된 호위들이 와서 그를 두들겨 팼다.
도박장에서 나온 장솔은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뒤에는 척 봐도 흉악한 얼굴의 거한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장솔은 도박장을 나오기 전에 자신이 딴 돈을 모두 잃은 건 물론이고, 자기가 속임수를 썼다는 내용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이제 도박장 측에 100냥의 빚을 지게 되었는데 그 기한은 고작 3일이었다. 그때까지 도박장 측에서는 그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도록 했다.
‘이를 어쩌지…….’
장솔은 고뇌에 찬 얼굴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집안에 모아둔 돈과 값나가는 물건을 전당포에 좀 갖다 맡기면 100냥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일을 가족들에게 어찌 말한단 말인가? 아버지께서 알게 되시면 분명 자기를 때려죽이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관아에 신고하려니 그를 감시하는 이들이 자신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관아에 신고하더라도 아마 8할은 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은자 100냥이라니, 금으로 바꿔도 7, 8냥은 될 텐데……’
장솔은 다리를 절뚝이며 집에 돌아가면서 몇 번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보았다. 감시자들은 때로 보일 때도 있었고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때, 장솔의 마음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난번에 만났던 대정국 군관이 그 ‘복’ 자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게 생각난 것이다.
‘어쩌면…….’
계획이 생긴 장솔은 걸음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겨울이라 그는 오늘 옷을 두껍게 입었기 때문에, 두들겨 맞을 때도 그리 아프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에는 상처가 전혀 없었으므로 가족들이 알아차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솔의 걸음이 빨라진 걸 발견한 도박장 호위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놈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낙담한 기색이었는데, 지금은 또 왜 저러지? 설마 서관(*書館: 대정국 군영에서 설치한 관아의 일을 대리하는 곳)에 신고하러 가는 건 아니겠지?”
“아냐, 아냐. 그 방향이 아니잖아. 분명히 집에 가서 돈을 긁어오려는 거겠지. 게다가 대정국 율법에도 도박장이 불법이란 소리는 없어. 또 장솔이 속임수를 쓴 걸 그렇게 많은 이들이 봤으니, 설령 신고하러 간다고 해도 우리가 유리해.”
그러자 다른 한 사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확실히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군. 어쨌든 장씨 집안은 사정이 넉넉하니까. 아들을 구하려면 100냥 정도는 당연히 내주겠지.”
“따라가 보면 알겠지. 행여나 무슨 수를 쓰지 못하도록 바짝 감시하자고.”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르자 장솔의 걸음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뒤로 두 사람이 따라오고 있는 걸 알았지만, 어차피 떨쳐낼 수도 없었으므로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집 앞에 선 그는 멍이 든 다리를 문지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고, 종일 대체 무얼 하러 싸돌아다니는 게냐! 집에는 그림자도 안 비추고 말이야. 연말이 됐는데 집안 청소라도 좀 돕지 않고. 조금 있다 나와서 밥이나 먹어라.”
그의 노모(老母)는 거의 70이 다 된 나이였는데, 여전히 정정하고 머리카락도 새카맸다. 그녀는 작은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몇 마디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아들은 “알겠어요.”라고 대답하고는 쏙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놈 자식, 나이도 어리지 않은데 아직도 저렇게 철이 없으니, 어느 집 낭자가 저걸 맘에 들어 할는지, 에휴!”
그녀는 그렇게 탄식하면서도 자기 아들이 그리 못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장솔이 철이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낭자도 시집오길 원하지 않을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장솔은 다급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장 바닥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벽 모서리에 고이 접힌 ‘복’ 자가 보였는데 종이는 잔뜩 구겨져 있었다.
장솔은 기뻐하며 이걸 팔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몇 걸음 다가가 막 손을 뻗으려던 순간, 실수로 탁자 옆에 있던 걸상 다리를 차버렸다.
퍽!
“윽!”
장솔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철퍼덕 넘어졌다. 그가 넘어지면서 일으킨 바람으로 인해, ‘복’ 자가 적힌 종이가 공교롭게도 침상 아래로 날아가 버렸다.
“쓰읍……. 에고,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저 재수 없는 글자 때문에…….”
장솔이 침상 아래를 바라보니 온통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침상 앞에 둔 발 받침대를 치우고서 아래로 손을 휘저어봤지만, 먼지만 잔뜩 묻어나올 뿐 그 종이는 만져지지 않았다.
“제기랄.”
장솔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빗자루를 가져오더니, 침상 아래쪽을 빗자루로 마구 쓸었다. 그러자 마침내 그 종이를 찾을 수 있었다.
‘복’ 자가 적힌 종이를 찾은 장솔은 온몸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손에 쥔 종이에는 먼지가 조금도 묻어있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털어 깨끗해졌다고 여겼다.
이때 장솔의 모친이 방앞으로 다가오자 곧바로 먼지가 그녀의 코에 들러붙었다.
“켁켁……. 대체 뭘 하는 게냐? 방을 온통 먼지투성이로 만들어놓고?”
“아, 어머니, 아까 집안 청소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먼지를 털고 있었어요…….”
“엣취! 먼지를 이렇게 터는 법이 어디에 있다더냐? 대체 온종일 무얼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어서 나와라, 씻고 밥 먹어야지.”
그녀는 이렇게 한바탕 꾸짖은 뒤 다시 몸을 돌려 가버렸다.
“네, 네. 곧 가요. 곧!”
장솔은 조금 켕기는 얼굴로 종이를 다시 품속에 넣고는 씻으러 방을 나섰다.
그의 부친과 큰형은 밖에서 일하고, 누나는 일찍이 출가했으므로 집안에는 장솔과 그의 여동생 그리고 모친 세 사람뿐이었다. 장솔은 밥을 먹을 때도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평소와 달리 말을 몇 마디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장솔은 얼른 먼지가 가라앉은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침상 위에 누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모친이 방으로 들어와 장솔이 먼지로 더럽혀놓은 바닥을 청소하려 하자, 장솔도 간만에 그녀를 도와 함께 방을 청소했다. 하지만 청소를 마친 모친이 방을 나가자 그는 더욱 심란해졌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장솔은 조금도 잠이 오지 않았으므로 가만히 침상에 누워 온갖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이 모든 일을 모친에게 사실대로 말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금세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내일 아침 일찍 시정에 가서 자리를 펴야지. 그 대정국 군관이 오면 좋을 텐데…….’
* * *
다음 날, 장솔은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은 뒤 광주리를 멜대에 지고서, 자신이 지닌 얼마 안 되는 돈을 품에 넣고 밖으로 나섰다.
막 대문을 나서던 그는 문턱에 발이 걸려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겨울이라 옷이 두꺼웠던 덕에 고통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장솔은 곧장 시정으로 향하지 않고, 전과 마찬가지로 자기 부친과 막역한 사이인 여(余)숙부네로 가서 저렴한 가격으로 장신구와 빗 등을 몇 개 샀다.
그리고는 시정에서 적당한 자리를 물색한 뒤 광주리 안에 있던 물건들과 ‘복’ 자를 앞에 펼쳐놓고서 큰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진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전에 장솔이 자기는 점심시간 무렵이 되어야 나온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시각이었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편 노점상들이 대부분이었고 행인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장솔은 큰 소리로 손님들을 끌다가 행인들이 얼마 되지 않는 걸 보고, 목청을 아낄 겸 때때로 소리치기만 했다.
하지만 진수는 오지 않고, 오늘은 기원천이 시정으로 나왔다. 그는 뚜렷한 목적은 없었고 그저 군영에 오래 있었던 탓에, 나와서 구경도 하고 겸사겸사 물건도 좀 사려는 생각이었다.
기원천은 미소 띤 얼굴로 주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해평성의 저잣거리는 기억 속의 경기부와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졌지만, 여기에는 해평성만의 특색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풍부한 해산물이었다.
“와서 보고 가세요, 신선한 장어 있습니다!”
“꽃게 팝니다, 전부 살아있는 싱싱한 놈들입니다!”
“농어 팝니다, 농어! 15근(斤)에 달하는 신선한 농어요!”
“쑥치 있습니다, 산모에게 제일 좋습니다!”
커다란 대야에는 바닷물과 함께 생선, 새우, 게 등의 해산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죽은 것도 있었지만 아직 힘차게 펄떡거리는 것들도 있었다. 기원천은 아직 바다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해산물들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