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61화 (761/892)

761화. 글씨가 날아가다

기원천이 지나갈 때마다 상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는데, 이는 기원천이 척 봐도 서생인 데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보니, 그는 대정국에서 온 서생이 틀림없었다.

“‘복’ 자 팝니다, 대가의 작품입니다! 고인의 개광을 거친 글씨입니다! 집에 가져가면 행운이 가득할 겁니다! 단돈 황금 10냥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장솔의 호객 소리가 들리자 기원천의 주의가 단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복 자를 무려 황금 10냥에 판다니? 설마 어느 대가가 각기 다른 서체로 백 개의 복(福)을 쓴 백복첩(百福貼) 같은 건가?‘

서생으로서 그는 당연히 이런 일에 흥미를 느꼈으므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걸어갔다. 장솔이 편 노점 앞에는 두세 사람이 서서 물건을 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는 것은 비녀와 빗 같은 것들이었다.

노점 가까이 걸어온 기원천은 이미 정사각형의 종이에 커다랗게 적힌 ‘복’ 자를 볼 수 있었다. 그가 생각했던 백복첩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대문 앞에 붙이는 종류의 글자였다. 순식간에 흥미가 식은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보시오, 주인장. 가격을 너무 높이 부른 것 같소. 겨우 ‘복’ 자 하나에 황금 10냥을 부르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라고 하려던 순간, ‘복’ 자를 바라보던 기원천이 제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말이오, 미친 게 분명하다니까. 얼마 전에도 저걸 가지고 나와 팔더니.”

“맞소! 누가 저 돈을 내고 저 글자를 사겠소? 하하하…….”

“안 살 거면 가십시오! 당신들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분명 이 글자를 살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장솔은 이렇게 대꾸하고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글씨를 바라보는 기원천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아주 잘 쓴 글씨죠?”

기원천은 힘겹게 글씨에서 시선을 뗀 뒤 장솔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쓴 정도가 아니오……. 이건…… 이 글씨는 정말이지…….”

기원천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비록 이 글씨에는 낙관도 찍혀있지 않았고, 황금 10냥이라는 가격도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확실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어디서 난 것이오? 누가 쓴 글씨인지 아시오? 이분의 다른 작품도 있소?”

그 말에 장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의 이 서생은 척 봐도 대정국에서 온 것 같았는데, 보아하니 이 글자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사려는 건가? 대정국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가?’

그는 얼른 이런 생각을 떨쳐낸 뒤 재빨리 대답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젊었을 적에 어느 고인께 받은 글씨입니다. 이건 정말이지 신묘한 글씨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먹물이 꼭 새것 같지 않습니까? 저희 집에도 딱 이 한 장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글씨는 없어요. 황금 10냥도 절대로 제가 그냥 붙인 가격이 아닙니다. 만약 사신다면 제가 좀 더 깎아드리겠습니다…….”

장솔은 다른 손님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기원천은 자신이 지닌 돈이 얼만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얼마나 깎아줄 수 있소?”

그러자 장솔이 깜짝 놀라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사시려고요? 크흠, 보아하니 대정국에서 온 서생이신 듯한데, 제가 또 평소에 검을 들고 출정한 대장부들을 존경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만약 사신다면, 단돈 9냥에 드리겠습니다. 무려 황금 1냥이냐 깎아드린 겁니다!”

“9냥, 9냥이라…….”

기원천이 속으로 가만히 돈을 세어보더니, 곧 결심한 듯 돈주머니를 꺼냈다.

“이 안에 대략 백은 12냥과 황금 4냥, 동전 백여 개가 있소. 또 녹봉으로 내리는 관표(官票)를 아직 받지 않은 게 있는데, 그게 백은 50냥이오. 이걸 다 합치면 황금 9냥에서 아주 조금 모자랄 것이오. 만약 이 거래를 하고 싶거든, 지금 나를 따라 가까운 서관으로 갑시다. 거기서 바로 관표를 돈으로 바꿀 수 있소!”

그러자 장솔이 벌떡 일어나 기원천이 내민 돈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는 안에 가득 들어있는 금과 은덩이의 촉감이 느끼고는, 금덩이를 하나 꺼내 어금니로 콱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즉시 기분이 좋아져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물리기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이제 거래가 성립되었다는 겁니다! 당장 자리를 접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대정국에서 온 서생들은 대부분 믿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손에 쥔 돈주머니의 무게는 거짓이 아니었다.

기원천과 장솔은 모두 흥분한 얼굴로 함께 서관으로 향했다. 서관은 원래 관아가 있던 곳을 빌려 쓰고 있었다. 이에 내내 장솔을 지켜보던 도박장의 호위들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기원천이 나타난 뒤로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지만, 보아하니 그들은 관아로 가려는 듯했다.

“어쩌지? 관아로 가려나 봐!”

“일단 기다려 봐, 저자는 대정국에서 온 서생이니 분명 군중에 직위가 있을 거야. 함부로 건들면 안 돼.”

기원천은 군중에 몸담은 이였으므로 요패(*腰牌: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허리에 차던 나무패)를 보여주자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관아의 고방(*庫房: 곳간, 창고)을 지키던 서관은 기원천이 내민 관표의 진위를 확인한 뒤, 직접 10냥짜리 은덩이 다섯 개를 가져와 기원천에게 건네주었다. 기원천은 사실 이 서관의 바로 위 상사라고 할 수 있었다.

“기 선생, 여기 은자입니다.”

“음, 고맙소.”

기원천은 서관에게 인사한 뒤, 고방을 나와 새로 받은 따끈따끈한 은자를 장솔에게 건넸다. 그러자 은자를 손에 넣은 장솔의 얼굴이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하하, 이제 살았다!”

“음? 장솔 자네가 글씨를 판 게 목숨과 관련이 있는가?”

기원천은 ‘복’ 자를 펼쳐보며 호기심에 이렇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것이, 이 종이에는 조금도 주름이 잡혀있지 않았다.

“휴우, 도박을 하다 문제가 생겨서요. 제가 실력도 좋고 그날따라 끗발이 좋아서, 모함을 당했지 뭡니까. 제가 속임수를 썼다며 도박장에 100냥이나 되는 돈을 물어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제 돈을 마련했으니, 더는 문제 삼지 않겠지요…….”

“뭐라고? 도박장에서 자네를 모함했단 말인가?”

기원천이 눈썹을 찡그리며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전부 사실인가? 자네는 정말로 속임수를 쓰지 않았는데, 도박장에서 고의로 자네를 모해했다는 거지?”

문약해 보이던 서생이 갑자기 흉악한 기세를 내뿜자 장솔이 깜짝 놀랐다.

“저, 제가 한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저는 마조패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이 성에 사는 일개 백성일 뿐인데 어찌 감히 도박장에서 속임수를 쓰겠습니까? 죽음을 자초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기원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일세. 흥, 감히 대정국의 국법을 위배하다니, 도박장 놈들이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이참에 아주 잘됐군!”

그는 해평성에서 대정군의 위엄을 세우고 민심을 얻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좋은 일이 눈앞에 떨어진 것이었다. 기원천은 이렇게 분노하다가 곧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장형. 실은 그 돈주머니 안에…… 1문짜리 동전 두 닢이 있는데, 그게 내겐 의의가 좀 깊어서 말이오. 어느 어른께서 내게 주신 것이오. 조금 전에는 글씨를 빨리 손에 넣겠다는 생각에, 그걸 꺼내는 걸 잊었소. 혹시 그것만 꺼내 갈 수 있겠소?”

“하하, 그래봐야 겨우 2문 아닙니까, 별일도 아닌데요. 기 선생께서 직접 꺼내 가시지요.”

장솔은 이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돈주머니를 열어 주었다.

기원천은 기뻐하며 얼른 주머니 안을 뒤지더니, 특이한 동전 두 닢을 발견하고는 밖으로 꺼내 들었다.

“이 동전들이오. 고맙소. 이제 다 됐소!”

기원천이 동전 두 닢을 손에 쥐자, 들고 있던 종이가 쓸려 하마터면 귀중한 글씨가 떨어질 뻔했다. 이에 철렁한 기원천이 종이를 꽉 쥐자, 이번에는 동전이 그 사이로 떨어질락 말락 했다.

휘이잉-.

그때, 돌연 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동전이 떨어져 버렸다. 이에 기원천이 얼른 두 손을 뻗어 동전을 주우려 하자, 이번에는 손 틈에 끼워진 종이가 떨어져 바람에 날아갔다.

휘이이- 휘이이-!

그 순간 바람이 거세지더니 ‘복’ 자가 적힌 종이가 바람을 타고 더욱 높이 솟구쳤다.

“아, 내 글씨! 내 글씨!”

기원천은 마음이 급해 공중에 뜬 종이를 뒤쫓으며 소리쳤다. 활짝 펼쳐진 종이는 바람을 타고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 * *

천산만수(*千山萬水: 수없이 많은 산과 강) 밖, 탄천수 체내의 객사 안에 있던 계연의 붓을 든 손이 멈칫했다. 뒤이어 그의 입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가더니, 그는 계속해서 글씨를 써 내려갔다.

“하하…….”

해평성 관아의 고방이 있는 뜰에서는 기원천이 고뇌하는 얼굴로 ‘복’ 자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여나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종이는 점점 더 높게 날아오르더니, 아예 종적을 감춰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한편 기원천 옆에 서 있던 장솔은 종이가 하늘 높이 떠올라 사라지자,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거둬가신 거야……. 다시 거둬가신 게 분명해…….”

장솔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손에 든 무거운 은자가 이때는 그토록 눈에 거슬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손으로 은자를 꽉 힘주어 잡았다.

그때 다시 정신을 차린 기원천은 장솔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복’ 자가 날아가 버렸으니 자신이 은자를 돌려달라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거라 여겼다. 이에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위로했다.

“장형,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거래는 이미 성사되었고, 글씨가 날아간 것은 내가 잘 쥐고 있지 못했던 탓이니, 장형의 탓이 아니오. 도박장에 관한 일도 내가 잘 처리하겠소.”

장솔의 미소는 기원천보다 더욱 억지스러워 보였다.

“예, 고맙습니다, 기 선생…….”

기원천은 다시 고개를 들어 종이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 천천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 모든 일이 너무 공교로웠다. 이에 그는 그 글씨가 정말로 어느 고인(高人)이 남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내려 동전 두 닢을 바라본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품 안에 잘 넣은 뒤, 도박장에 관한 일을 처리하러 갔다. 대가가 남긴 글씨를 산 것은 문인으로서의 취미일 뿐이나, 이번 일은 모든 문인이 바라는 공명을 얻기 위한 일이었으니 비할 데 없이 중요했다.

이 일에서 가장 억울한 이는 아마 진수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며칠 내내 떠올리던 그 보물이 이미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 * *

약 반 시진(1시간) 뒤, 기원천과 장솔은 옛 관아를 나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멀리서 장솔을 감시하던 도박장 호위들은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았다. 다만 그들은 대정군 군영에서 병사들이 소집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는 찬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복’ 자가 적힌 종이는 점점 더 높이 날아올라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이는 점차 타고 있던 바람보다 속도를 높였다.

그때, 흘러가던 빛 몇 줄기가 지면에서 솟구치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호위들이 상공을 올려다보니, 종이는 이미 저 높이 강풍이 불어오는 기류에 올라탄 뒤였다.

하늘로 떠오른 빛 속에서 흰빛 한 줄기가 하얀 장포를 입은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자 다른 빛들도 여인 근처에 속도를 늦추고는 각기 제 모습을 드러낸 뒤, 여인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올렸다.

“백 부인을 뵙습니다!”

“백 부인을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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