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62화 (762/892)

762화. 건곤을 손에 쥐다

백약은 그들의 인사를 듣고도 내내 종이가 날아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그 종이는 이미 멀리 사라져 시야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계 선생님!’

백약은 ‘복’ 자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자신에게 인사한 이들에게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여러분을 뵙습니다.”

백약에게 인사를 건넨 이들은 모두 대정국의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나눈 뒤, 그중 한 노인이 떠보듯 이렇게 물었다.

“백 부인, 조금 전에 그건 무슨 진귀한 보물입니까?”

그러자 백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요. 하지만 수행자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겁니다. 만약 뒤쫓고 싶으시거든 어서 가보세요. 백약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백약은 치마를 펄럭이며 아래로 날아갔다. 뒤에 남은 몇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도 물론 저 보물이 무엇일지 궁금했지만, 사실 조금 전에 그들은 보물의 존재를 느낀 것이 아니라, 백약이 재빨리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뒤쫓아온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자신들이 어찌 그 보물의 행방을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저 높이 부는 강풍(*罡風: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으므로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 * *

한편, 탄천수 체내의 섬 위에서는 계연의 객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연백평이 뜰 안에 앉아 눈을 감고 수행을 쌓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무언가를 느낀 듯 돌연 눈을 뜨더니 점괘를 치기 시작했다.

“휴우, 보아하니 진 씨 가족들이 ‘복’ 자를 손에 넣지 못한 모양이로군.”

연백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을 열더니, 계연이 머무는 객사를 바라보았다. 점괘를 친 그는 그 글씨가 계 선생님 곁으로 돌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 씨 집안사람들을 위해 더 점을 쳐볼 필요가 없었다.

계연이 머무는 곳을 잠시 바라본 연백평은 점을 치는 손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에 걸린 진법과 층층이 깔린 허상과 실체 사이의 안개를 통과해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달빛은 그다지 밝지 않았고 오히려 별빛이 휘황찬란했다.

“오늘 밤에는 길성(吉星)이 떴군.”

이렇게 중얼거린 순간 연백평은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 다시 계연의 머무는 객사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원래도 진법을 가동하지 않았고, 별다른 동정도 없었으나 시종일관 느껴질 듯 말 듯한 오묘한 도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그 기운이 빠른 속도로 옅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그는 굳이 점을 쳐보지 않아도 곧 계 선생님께서 폐관 수행을 마치고 나올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심오한 도의 기운은 급속도로 옅어졌지만, 그렇다고 계연이 연구를 끝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연은 지금 관건이 되는 부분에 접어든 상태였다.

계연이 들고 있던 낭호필이 움직임을 멈추자, 보일 듯 말 듯 심오한 도의 기운이 각종 형상을 띄기 시작하더니,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 빛은 천천히 수축하며 낭호필의 붓끝에 모여들었다.

그 모든 기운이 사라지자 계연이 다시 붓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지를 펼치니(形展天地), 건곤을 손에 쥐다(乾坤在握: 어떤 것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음을 뜻함).’

계연이 마지막 획을 긋자, 탁자 위에 놓인 선지가 희미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수리건곤>은 그가 연서법(*衍書法: 글로 써서 술법을 추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으로 적어낸 글일 뿐 서책으로 엮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깔끔하지 않고 무척 혼란스럽게도 보였으나, 계연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신통력을 진정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적은 글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자 계연은 자신이 술법의 진리를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온몸의 법력에는 파동이 느껴졌고, 의식 세계 안의 단로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는 삼매진화가 일반적으로 내뿜는 것처럼 기세등등하지는 않았고, 외려 붉은 잿빛을 띠고서 부드럽게 흩날리는 표대(*飄帶: 옷 등에 달아서 멋을 내는 띠 또는 댕기)처럼 느껴졌다. 그 연기의 주위로는 흑(黑), 백(白), 홍(紅)의 세 가지 색이 감돌았으며, 하늘로 둥실 떠올라 천천히 금교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계연은 온몸에 살짝 열이 오르더니, 등에서부터 기이한 감각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붉은 잿빛의 표대는 계연의 몸에서 새어 나올 듯 말 듯했지만 어떤 형체를 빚어내지는 못했다. 그저 흑, 백, 홍 세 가지 색깔의 빛이 은은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계연은 몸 안팎에 일어나는 변화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놓인 글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글 위로는 희뿌연 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계연의 시선이 움직임에 따라 종이 위의 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숨었다가 했다. 이를 지켜보던 계연은 수리건곤술에 대한 깨달음이 점차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 글자의 색이 변하더니 종이마저 잿빛으로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글자가 점차 빛으로 변하며 종이는 아예 재가 되어버렸다. 글자들은 빛을 내뿜으며 형체를 유지하다가, 마침내 미약한 빛을 내는 연기로 변해 계연을 향해 차례로 날아갔다.

그 연기는 한 줄기, 한 줄기 모두 계연에게 들어오더니 그 안에 녹아들었다.

“휴……. 내 수리건곤이 드디어 조금 특이한 수납 목적의 신통력이 아니게 되었구나!”

홀가분하게 긴 한숨을 내뱉은 계연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수리건곤술을 보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그간 여러 고민을 해왔고,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으나 남들 앞에서 쉬이 드러내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마침내 이 술법이 완성된 것이다.

이 술법이 과연 다른 이들의 비슷한 술법보다 강할지는 어떨지는 일단 제쳐두고, 계연은 이 술법을 쓸 때 막대한 법력이 소모된다는 점도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이 술법은 이제 자신이 생각해왔던 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고개를 내려보니 이미 타버려 재가 된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계연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그것이 완벽한 가루가 되더니, 뜰 안의 흙과 완벽히 섞여들었다.

“잘됐네, 겨우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어. 아직 남황주(*南荒洲: 양 황주(两荒洲)의 하나, 일명 남황)에 이르지도 않았고.”

계연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대문을 열자,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연백평이 계연을 향해 읍하며 허리를 숙였다.

“어쩐지 오늘 길성이 높이 떴더라니, 선생님께서 출관하시는 날이라 그랬나 봅니다! 후배가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선생님이 나오시는 걸 보았으니, 이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겠지요!”

계연은 사실 이 장수옹이 밖에서 최소한 반각은 기다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차마 웃는 얼굴을 앞에 두고 그 사실을 들춰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정도의 시간은 사실 수행자들에게 있어 정말로 우연이라고 할 만도 했다.

“연 도우, 제게 그리 예를 차리실 필요 없어요. 계모가 그간 약간의 깨달음을 얻어, 이제야 몸을 좀 풀어보려고 나온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폐관 수행을 하신 연유를 살짝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혹 새로운 도(道)라도 깨우치신 것인지…….”

연백평은 계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대놓고 물어봐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그러자 예상대로 계연도 가볍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계모에게 한 가지 신통한 묘법(妙法)이 있는데, 내내 그 부족한 점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기연이 닿아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었지요. 다행히 그 덕분에 묘법 완성을 할 수 있었고요.”

“아…….”

연백평은 사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묘법이냐고도 묻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지나친 것 같아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때, 거원자도 계연이 출관한 것을 느끼고는 대문 밖으로 나와 그에게 예를 올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세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탄천수 등 위로 올라가 별을 보러 움직였다.

* * *

계연이 그들과 함께 밤하늘에 뜬 별을 감상하고 있을 때, 대정국 영안현의 거안소각 안에서는 조낭이 책을 읽고 있다가 돌연 감응을 느꼈다.

“어?”

이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은은한 빛 한 줄기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잠시 후, ‘복(福)’ 자가 적힌 종이가 뜰 안에 흔들흔들 떨어져 내렸다.

“이건 선생님의 글씨잖아!”

조낭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복’ 자를 바라보다가, 곧 새해이니 마침 대문 앞에 붙이면 알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연, 거원자 그리고 연백평이 탄천수의 등 위로 오르는 동안, 그들은 누구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었다. 20명이 채 안 되는 위미종 제자들을 제외하면 현재 이 탄천수 안에는 계연과 그들 두 사람을 포함한 7, 8명의 승객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 광활한 공간에 고작 이 정도의 사람만 있다 보니, 무척 고요하고 한산했다.

세 사람은 유유자적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은 안개 속에 떠 있는 섬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따라 마침내 탄천수의 기공(*氣孔: 숨구멍)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계연이 천천히 관찰해보니 그들이 서 있는 깊은 구멍 아래쪽에서부터, 나선형의 계단이 저 위의 기공까지 이어져 있었다. 계단의 개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개 이상은 될 것처럼 보였다.

“이 탄천수에 탑승한 이들은 만약 비거술을 하지 못한다면, 걸어서 올라가야만 하겠군요…….”

계연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거원자가 웃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미종의 진법을 빌려 타고 이동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자 연백평이 즉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진법은 위미종의 수선자들이 지키고 있는데,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듣자 하니, 탄천수에 탄 평범한 사람들은 그 진법을 단 한 번밖에 이용할 수 없다더군요. 만약 그 기회를 쓴 후에 다시 위아래로 이동하려면 계단을 쓸 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탄천수는 비교적 성질이 특이했고, 위미종 수사들도 다른 이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탄천수에는 상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특히 소삼의 몸에는 상주하는 평범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곧이어 세 사람의 발아래에 안개가 모여들더니, 세 사람을 받쳐 들고 천천히 위쪽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탄천수의 체외로 나오게 된 세 사람은 탄천수의 등 위에 지어진 한 평대(*平臺: 테라스) 위에 올랐다.

탄천수의 등 위쪽 공간은 무척 넓었지만, 그저 한 줄로 나란히 건물이 세워진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물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계연의 일행이 오른 평대는 중앙의 한 관성대(*觀星臺: 별을 관찰하는 곳)와 이어져 있었다.

관성대 위에 오르자 거원자와 연백평은 계연의 시선을 따라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요한 밤에 별을 관찰하니,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구나.”

연백평이 이렇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아무런 술법을 펼치지 않았지만, 실처럼 가느다란 별빛 한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이내 그가 그것을 손에 쥐자, 별빛은 실처럼 아래로 축 늘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