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63화 (763/892)

763화. 실을 뽑기 위해 수리건곤을 펼치다

계연은 연백평의 솜씨에 마음이 움직여, 그가 쥐고 있는 은빛 실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연백평이 별빛을 실처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보자, 계연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연백평이야말로 성력(星力)을 가장 세밀하게 운용할 수 있는 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연이 막 감탄을 하려던 순간 연백평에 손에 있던 별빛 실이 흩어져 버렸다. 그것이 형체를 유지한 시간은 고작 2, 3초밖에 되지 않았다.

“연 도우, 어찌하여 그 별빛을 좀 더 오래 유지하지 않습니까?”

계연이 이렇게 묻자 연백평이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조금 전의 그것은 수면 위에 뜬 달에 불과합니다. 그림자는 있지만, 실체는 없지요. 물론 진짜 실을 이용해 별빛을 끌어온 다음, 성력을 그 위에 모이게 하면 성사(*星絲: 별빛을 모아 만든 실)를 제련해낼 수 있긴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원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탄식했다.

“그렇다면 만약 그 실을 제련해내더라도, 진정한 성사라고 부를 수는 없겠군요! 자, 계 선생님, 연 도우, 이리 앉으십시오.”

거원자는 연백평이 별빛을 이용해 가느다란 실을 만들어낼 동안, 탁자와 방석 네 개를 준비해놓은 참이었다. 그의 말에 계연과 연백평이 방석을 하나씩 골라 앉았지만, 그들은 왜 방석을 하나 더 놓았냐고 묻지 않았다.

“차 좀 드십시오.”

“고맙습니다!”

탁자 위에는 맑은 차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거원자가 직접 찻주전자를 들고 그들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계연이 찻잔에 코를 대고 향을 음미하니, 찻물에서 은은한 영험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약간의 영기가 섞인 걸로 선과(仙果)라고 표현하는 과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차네요!”

계연이 이렇게 감탄하자 연백평도 차를 한입 마시더니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좋은 차군요. 옥회산에 이렇게 좋은 영차(靈茶)가 날 줄은 몰랐습니다. 영기가 좀 들어있다고 영차라고 일컫는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이 찻물은 그 자체로 순수하고 청아했으므로, 계연도 굳이 꿀을 넣어 ‘뱀을 그리는 데 다리를 그려 넣는 짓(畵蛇添足: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뜻)’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 차에 이름이 있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거원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이 차는 이름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아마 선생님께서도 이미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계주에서 이름난 봄차입니다. 계주 시정에서는 명전춘(*明前春: 청명절(淸明節) 전에 딴 부드러운 잎으로 만든 녹차)과 우전춘(*雨前春: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穀雨)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녹차)으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옥회산에서는 그리 세세히 따지지 않습니다.”

“예?”

그러자 계연의 얼굴에 의혹에 서렸다. 명전춘과 우전춘은 당연히 그도 알고 있었다. 단순히 이름만 아는 게 아니라, 그가 거안소각에 머물면 위씨 집안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찻잎들을 골라 영안현에 보내주기까지 했다.

“사실 지금 계주에서 나는 봄차는 일찍이 저희 옥회산에서 퍼져나간 찻잎 품종입니다. 수백 년간 재배를 거듭하며 마침내 계주 각지에서 길러낼 수 있게 되었지요. 그것도 말하자면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말에 계연과 연백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한 여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내막이 있었군요. 저도 함께 앉아 차를 마셔도 될까요?”

목소리의 주인은 강설릉이었는데 그녀의 뒤로는 주섬이 따르고 있었다. 바람은 그녀들의 발밑에서 한 줄기 명주 끈처럼 부드럽게 움직여, 그녀들을 농구장만 한 크기의 관성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이 예를 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거원자는 이 자리를 만든 사람으로서 먼저 나서 그녀를 초청했다.

“앉으시지요.”

거원자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방석이 하나뿐이었으나, 그는 새로 하나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보기에 오늘 밤은 분명 향긋한 차와 밤하늘을 감상하는 것 외에도 도를 논하게 될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주섬으로서는 그들 옆에 서서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얻기 쉽지 않은 기회였다. 그녀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앉는다고 하더라도 오래 앉아있지 못할것이었다.

거원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주섬을 한번 쳐다보았다. 만약 그녀가 방석을 요청하면 그도 당연히 내줄 생각이었다.

한쪽에 앉은 연백평도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주섬을 바라보았다. 설령 주섬이 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그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가 길고 심오해짐에 따라 곧 잠이 들고 말 것이다.

주섬도 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후배는 앉지 않겠습니다. 사조 뒤에 서 있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녀는 얼른 강설릉의 뒤에 가서 선 뒤,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자, 두 분도 차를 좀 맛보시지요!”

거원자가 직접 차를 따라 강설릉과 주섬에게 한 잔씩 건넸다. 강설릉은 차향을 맡기만 할 뿐 차를 마시지는 않고 계연을 바라보았다. 주섬도 살짝 맛을 보며 몰래 계연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거원자가 웃으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차를 마시러 왔다더니, 실은 차를 마시러 온 게 아니군요.”

그의 목소리는 무척 작았으나,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보통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강설릉은 보기 드물게도 거원자를 향해 미소 지은 뒤 대담하게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님, 전에 저와 법기를 제련하는 도(道)에 관해 논하자고 약속하셨었지요. 오늘 수행을 마치고 출관도 하신 데다, 설령 제가 소삼에게 속도를 이보다 더 늦추라 하더라도 이제는 남황주가 그리 머지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더 기다리게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다음에 다시 뵈려면 최소한 수십 년은 흘러야 할 테니까요.”

그러자 연백평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탄천수의 속도가 너무 느리더라니, 위미종에서 손을 쓴 것이었군.’

그러자 계연이 겸연쩍은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강 도우를 오래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지요. 하지만 도를 논한다고 하기는 거창하니, 그저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하는 거라 여겨주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연백평을 바라보았다. 그가 별빛을 끌어와 실선으로 만든 장면은, 비록 그의 말대로 수중지월에 경중지화(鏡中之花: 거울 속의 꽃. 실체 없이 헛되다는 뜻)였으나 그래도 계연은 그 광경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수리건곤은 이제 완성되었으나 그 신통력을 발휘하려면 알맞은 기물(器物)이 있어야 했다. 최소한 그 소매가 보통의 소재여서는 안 됐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 힘에 파손될 수가 있었다.

“마침, 계모(某)도 법기를 제련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일단 벽돌을 던져서 구슬을 끌어들인다(抛磚引玉: 남의 훌륭한 의견을 듣기 위해 먼저 자기의 미숙한 의견을 내놓는다는 뜻)는 말처럼, 제 미숙한 실력을 먼저 보이겠습니다.”

계연은 다시 차를 한 입 마신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는 진정한 수리건곤을 내보이는 첫 순간이었으므로 그도 내심 흥분하고 있었다.

흥분을 잠재우고 마음을 평온하게 한 다음, 계연은 온 하늘에 흩뿌려진 별을 바라보았다. 그런 뒤 뒷짐을 지고 있던 오른팔을 들어 올려 하늘을 향해 소매를 펼쳤다.

다음 순간, 자리한 네 사람은 별빛이 일순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들은 어렴풋이 계연의 넓은 소맷자락이 무한대로 늘어나더니 하늘을 뒤덮는 것을 보았다. 계연은 곧 소매를 내렸으나 별빛은 금방 다시 밝아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한 줄기 한 줄기씩 무궁무진한 별빛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별빛은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니라 마치 자력에 이끌린 것처럼 아래로 모여들었다. 별빛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끊임없이 회전하고 수축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 엉망진창으로 꼬인 실선들이 끊임없이 회전하다 서로 엉겨 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점점 더 가늘어지고 점점 더 환히 빛났다.

그 일련의 과정은 아주 느렸으나 일종의 규칙성이 느껴졌다. 계연이 다시 오른팔을 아래로 내렸을 때, 가느다란 별빛 실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그 찬란한 별빛에 관성대에 앉은 이들 위로 몽롱한 은빛 광채가 뒤덮였다.

계연은 수리건곤으로 셀 수없이 많은 별빛을 거둔 다음, 묘화천서의 기도(*器道: 법기를 제련하는 방식, 이치)를 보조 삼아 순식간에 실체를 갖춘 별빛 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단번에 여유롭게 실을 뽑아내게 되자 계연도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예측하지 못한 신기한 광경에 놀란 이들은 경탄을 내리누르며 계연이 든 실선을 바라보았다. 실의 다른 한 끝은 소매 안에 있는 듯했고, 계연은 다른 한쪽 끝을 손에 쥔 채 밖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연백평은 경악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실을 만져보았다. 그가 계연의 소매 밖으로 늘어진 그 성사(*星絲: 별빛을 모아 뽑은 실)를 만지자, 그 찬란한 광채가 사람을 미혹했고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성사는 무척 가늘었지만 직접 만지면 두툼한 촉감이 느껴져, 결코 물속의 달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주섬도 경악하여 입을 벌린 채, 넋을 놓은 것처럼 그 성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성사는 그녀가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계모는 이 실로 법의(法衣)를 지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 양으로는 아직 부족하니, 아무래도 고도를 좀 높여야겠군요.”

계연은 자리한 이들을 바라본 뒤 낭랑한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가 부른 것은 탄천수였다.

“소삼아, 좀 더 높이, 저 위에 강풍이 부는 곳보다 위로 올라갈 수 있겠느냐?”

그러자 다시 정신을 다잡은 강설릉이 웃으며 말했다.

“계 선생님, 소삼에게 지시를 내리고 싶으시다면, 그런…….”

“우우-!”

탄천수의 기쁜 듯한 울음소리에 강설릉은 너무 놀라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탄천수는 꼬리를 한번 세차게 흔들어 밤하늘에 파문을 그려낸 뒤, 고공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탄천수의 반응에 강설릉과 주섬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언제나 담담한 표정을 짓던 강설릉의 얼굴에도 한순간 경악이 스칠 정도였다. 소삼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돌봐온 아이였으므로 서로 무척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탄천수는 그 성격이 종잡을 수 없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진정으로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이들이 몇 안 된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들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에 더해 탄천수들은 깨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꾸는 꿈은 자기들이 아무렇게나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위미종에서는 오랜 노력을 통해 긴 세월 동안 탄천수를 돌보며 천천히 그들과 신뢰 관계를 쌓아올 수 있었다.

반면 계연은 이번에 처음으로 탄천수에 탑승한 것인데다, 내내 폐관 수행을 했었으므로 탄천수와는 친밀한 접촉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한 마디에 탄천수가 곧장 그 말을 따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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