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66화 (766/892)

766화. 배가 고파 흙을 파먹는다

계연이 깊은 잠에 빠짐에 따라 소삼은 반대로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이 함께 있던 꿈속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생겨났다. 탄천수의 몸은 점점 더 작아지고 형체가 희미해졌으며, 계연은 그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지만 대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령한 빛이 더욱 밝아졌다.

탄천수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그가 조금 전에 계연의 위세를 빌려 고도를 낮춰 괴이한 용과 한바탕 맞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용은 계연이 꺼려졌던 탓인지, 두려워 잘 맞서지 못하다가 결국 소삼에게 삼켜지고 말았다.

이치대로라면 꿈속의 모든 것은 허상이어야 했으나, 그때 탄천수는 모종의 암시를 얻은 것처럼 흥분하더니 점점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계연은 소삼이 깨어나려 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꿈이 흩어지려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꿈을 흩어지도록 둘 수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법력을 펼쳐 원래 소삼에게 속했던 꿈을 자신의 힘으로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 속에서 탄천수는 마침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물고기로 변하더니, 꼬리를 흔들어 기류가 파문을 일으키며 계연의 발치에서부터 위로 헤엄쳐 올라왔다. 그러더니 탄천수가 계연의 가슴팍에 쿵 하고 부딪치자 주위로 물결 같은 파문이 번져나갔다. 파문이 흩어진 뒤로는 별이 총총한 하늘만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었고, 어느새 탄천수는 사라지고 계연만 홀로 남게 되었다.

이는 꿈속의 세계가 치환되었다는 뜻으로, 계연은 탄천수가 깨어나는 속도를 조절해 이렇게 천천히 꿈속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지난번 탄천수의 꿈에서 보았던 망망대해보다는, 육지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들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계연은 이 꿈이 흩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꿈속의 세계가 변화하면서 계연의 존재감도 더욱 강해져, 그는 방관자의 시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계연은 온몸에 법력이 솟구치는 걸 느끼며 음양의 기운이 흐르는 법안을 떴다.

그러자 어두컴컴하던 산하(山河)도 더욱 또렷하게 보였고 아래에서 들리는 괴물들의 포효도 더욱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주위의 공기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깨끗하다고 할 수 없었고, 오히려 각종 기운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 기운은 간단히 사기(邪氣)나 요기(妖氣)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혼잡하게 섞인 폭풍과도 같았다. 그중 몇몇 강력하고 특수한 기운만이 이 혼돈 속에서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계연이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발아래나 저 앞이나 이곳에 하늘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저 여러 혼잡한 기운이 한데 섞인 것뿐으로, 조금 전에 그가 느낀 빗방울도 정상적으로 구름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주위에 불어닥치는 폭풍처럼 갑자기 생겨난 것이었다. 게다가 빛이 흐릿한 태양을 제외하면, 주위에 뜬 별들은 계연의 법안으로 볼 때 아주 낮게 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꿈 특유의 황당무계함이 섞여 있긴 하지만, 현실의 반영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군.”

계연이 전방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그의 뒤로는 신령한 빛이 눈에 띄게 뿜어져 나오며 맑은 기운이 주위를 뒤덮었다. 그러자 계연의 주위에는 혼탁한 기운들이 모두 깨끗이 정화되었고, 그가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그것이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한편, 현실 속 탄천수 등 위의 관성대에서는 탁자 위에 팔꿈치를 받치고서 잠이 든 계연이 한쪽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한 빛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더니, 방석과 관성대의 돌바닥을 통과하여 탄천수의 몸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우우-!”

탄천수가 다시 한번 전보다 더욱 또렷하고 큰 소리로 길게 울었다.

이때 강설릉은 최전방이자 그녀가 자주 서 있는 위치인 탄천수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 이곳은 탄천수의 눈과 아주 가까웠다.

강설릉은 탄천수의 한쪽 눈앞에 떠올라, 약간 몽롱한 듯한 그의 두 눈을 세심히 관찰했다. 소삼의 거대한 두 눈에서는 흐릿한 안개가 천천히 흩어지고, 언제나 안구를 뒤덮고 있던 한 겹의 막조차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소삼, 정말로 깨어나려 하는 거니?”

엄숙한 얼굴로 묻는 강설릉의 표정은 마치 탄천수가 깨어난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히 긴장해야 하는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자 관성대에서 내내 계연을 주시하고 있던 거원자와 연백평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위미종 수사들이 진법을 이용해 올라오거나, 탄천수의 기공 속에서 솟아올라 거대한 탄천수의 곳곳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심지어 그들과 함께 있는 주섬도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주 도우, 탄천수가 깨어나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이오? 강 도우와 위미종 수사들이 어째 긴장한 듯 보이는구려?”

연백평은 천기각의 장수옹이었으나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탄천수의 특징이나 내력은 위미종에서만 아는 비밀이었으므로, 결코 외부 사람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앉은 거원자도 마찬가지로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섬은 불안한 듯이 주위를 관찰하다가, 연백평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주위의 상황을 둘러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잠시 후면, 선배님들께서도 직접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저희 종문(宗門)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주섬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무의식적으로 계연을 한번 흘낏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이전에 사조께서 말씀하시길, 탄천수가 깨어나면 반드시 변화가 뒤따른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정확히 말씀해주시지 않은 것이 있는데……. 탄천수가 깨어나면, 그 공복감이 엄청나서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먹을 것을 찾아다니게 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놀란 거원자와 연백평이 눈썹꼬리를 쓱 들어 올리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곧이어 거원자가 먼저 이렇게 물었다.

“이성을 잃은 듯이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고? 모든 이지(理智)를 잃는다는 말이오?”

그러자 주섬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탄천수는 저희 위미종에서 길러낸 선수(仙獸)입니다. 더욱이 소삼은 저희 사조께서 어릴 때부터 가르친 아이라 교육이 잘 되어있어, 함부로 큰일을 벌이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일반 백성들이 사는 곳을 공격하는 일 같은 것 말이지요. 하지만 그 배고픔은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소삼은 이미 2백 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탄천수는 식탐이 강한 데다 깨어날 때마다 변화를 겪으니 영양을 보충해야 할 때이긴 합니다…….”

2백 년간 천지 간의 영기와 해와 달의 정화만 흡수하던 거대한 먹보가 꿈에서 막 배불리 먹은 참에 돌연 깨어난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위미종에서 전문적으로 설치한 진법이 있는 구역도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연백평은 조금 전에 꺼냈던 귀각(*龜殼: 거북의 등 껍데기)에 동전을 넣고 흔들다가 탁자 위로 쏟았다. 그런 뒤 손가락을 접어 점을 쳐보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남황!”

그러자 주섬이 무언가 깨달은 듯이 소리쳤다.

“아, 남황이 있었죠! 그곳은 온갖 이매망량과 요마(妖魔)들이 사는 곳이고요……. 두 분 선배님, 계 선생님을 잘 지켜봐 주세요. 혹 사조께서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얼른 가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어서 가보시오. 계 선생님은 우리가 잘 지키고 있겠소.”

거원자의 대답을 들은 주섬은 예를 올린 뒤, 서둘러 탄천수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막 전방에 도착했을 때, 앞을 바라보고 서 있던 강설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강풍 위에 올라와 있어 아래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남황주의 경계에 들어선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소삼은 아마 남황대산(南荒大山)으로 가겠지.”

“사조, 이미 알고 계셨군요?”

“굳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지. 그곳의 요마들이 지닌 강력한 기운이 소삼에게는 무척 구미가 당길 테니까. 다만 이로 인해 남황 요괴들 사이에 큰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보다는 소삼을 보호하는 것이 먼저겠지.

휴우, 일단은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준비부터 하자꾸나. 소삼은 잠에서 깨면 짜증을 부리니 그것부터 생각하자.”

주섬은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군말 없이 “네.”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탄천수 위에는 위미종 수사들의 수가 적긴 했지만, 사조도 있고 계 선생님을 포함한 고인(高人) 몇 분도 타고 계셨다. 그러니 만약 정말로 큰일이 벌어지면, 그분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조, 저 고인분들은……?”

강설릉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섬을 바라보더니, 웃음기 띤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함께 우리 배에 타고 있는데 설마 수수방관할 리가 있겠느냐?”

* * *

반나절 뒤, 탄천수의 주위를 감돌던 안개가 완전히 흩어지며, 탄천수의 거대한 두 눈에서 혼탁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 위에 탄 위미종 수사들은 진법을 펼쳐 만반의 준비를 한 채였다.

“우우-!”

우르르르…….

탄천수의 안팎에 세워진 여러 건축물은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진동마저 차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삼의 주위에 부는 강풍은 진법에 의해 깎이고 부서져, 사람들은 따스한 햇볕과 잔잔한 바람만을 느낄 수 있었다.

촤아앗-!

그때, 탄천수가 돌연 속도를 높이더니 전방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바람을 뚫고 하강하는 소리가 마치 물살을 가르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휘익- 휙-!

탄천수는 강풍이 부는 층은 이미 통과했으나, 몸체가 너무 크고 속도도 너무 빨라 온몸에 회오리바람이 감겨 있는 듯이 보였다. 마치 이대로 아래에 솟은 험준한 산을 들이받을 것 같은 태세였다.

그때 아래쪽 산의 한 정상 위에서는 기류가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낀 노인 모습의 정괴 하나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정괴는 마치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느껴져, 무슨 일인지 살펴보려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산맥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짐승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이곳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어이쿠!”

정괴는 얼른 지면 아래로 모습을 감추고는 재빨리 도망쳤다.

“소삼아!”

강설릉이 가볍게 일갈하자 탄천수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소삼의 기세는 그대로여서 곧이어 탄천수는 아래쪽의 높은 산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앙……!

우르르르……!

그러자 거대한 쟁기가 산맥을 갈고 지나간 것처럼, 탄천수가 지나는 곳마다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나무며 동물 등이 흙과 돌에 섞여 탄천수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거원자가 잽싸게 한 손으로 탁자를 고정했다.

반면 바깥 세계에 일어나는 소동과 상관없이 계연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탁자 위에 기대고 앉아 자고 있었다. 연백평과 거원자는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며 대화를 나눴다.

“탄천수가 지금 흙을 먹는 겁니까?”

거원자가 놀라 멍한 얼굴로 묻자, 연백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은 그렇소. 하지만 좀 더 깨어나면 필시 이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다 소삼이 만약 남황대산에 쳐들어간다면, 그곳에 자리 잡은 요왕(妖王)들이 기회를 틈타 일을 벌이려 할 수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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