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화. 덫을 놓다
강설릉과 연백평이 예상했던 대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산맥을 무너뜨린 탄천수는 흙과 식물 등을 먹어 치웠으나 당연히 그 맛에 만족하지 못했다.
산간을 온통 뒤집어놓은 탄천수는 다시 길게 울며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그러자 남황주를 뒤덮은 각양각색의 기운이 탄천수의 눈앞에 낱낱이 펼쳐졌다. 그 혼탁하고 복잡하게 뒤섞인 기운 속에서, 탄천수는 남황대산이 있는 방향이 제일 구미가 당겼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배를 곯은 사람이 저 멀리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았다.
“우우우-!”
우르르릉……!
산맥은 여전히 가볍게 진동하고 있었고, 공중에 오른 탄천수의 몸에서부터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소삼이 먹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이제 불가능했다. 오히려 그러다가는 서로 간에 감정만 상하게 될 터였다. 강설릉과 위미종 수사들은 그저 최대한 소삼을 다독여, 그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뒤 보통 백성들이 사는 곳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탄천수가 날아간 뒤, 수많은 산이 무너져내린 산맥의 한 정상에서는 노인의 모습을 한 정괴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는 두려움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멀리 날아가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괴물 위에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라, 그럼 선수(仙獸)인가?”
정괴가 고개를 내려 주위의 산을 둘러보니, 대략 열일고여덟 좌의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린 데다가 깊고 거대한 골짜기가 한 줄기 생겨나 있었다.
한편 산속의 동물들은 여전히 놀라 두려워하며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정괴는 자신과 산세(山勢)며 지맥(地脈)의 연결이 그리 깊지 않아, 놀란 것 빼곤 해를 입지 않았으니 무척 다행이라고 여겼다.
남황주는 그곳에 사는 요괴의 수가 가장 많은 땅이었으며, 양황(*兩荒: 남황과 흑황의 통칭)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는 남황주 전체를 일컫는 게 아니라 주로 광활한 남황대산을 가리켰다.
요마들의 밀집도는 흑황을 제외하면 남황이 가장 높았지만, 남황에서도 진정으로 요마들이 포진한 위험 지역은 남황대산이었다. 그리고 소삼이 현재 속도를 높여 향하는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강설릉은 탄천수에게서 주의를 돌려, 눈을 가늘게 뜬 채 멀리 보이는 남황대산을 바라보았다. 아직 수만 리 정도 남아있었지만, 법안 덕분에 저 위를 뒤덮은 요마들의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사조, 이미 종문(宗門)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람을 보낸다고 해도 최소 수개월은 걸릴 듯합니다. 사조, 이건 소삼을 데리고 남황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주섬은 이미 수행의 길에 들어선 지 2백 년이 다 되어갔지만, 이번 일에는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자 강설릉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게 아닐 테니까. 그저 소삼이 자제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길 바랄 수밖에.”
탄천수의 속도는 이미 최대치에 도달해 있어, 그가 지나는 상공의 아래쪽의 백성들은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우르릉 몰려왔다 다시 멀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 *
며칠 뒤, 전방이 어두컴컴해지더니 아래에 펼쳐진 대지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몇 시진을 날아가니, 모래바람을 뚫고 지난 것처럼 전방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탄천수와 그 위에 선 사람들의 눈에 광활히 펼쳐진 아름다운 산수가 눈에 들어왔다.
장엄한 산은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었는데, 곳곳에 높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고 초목은 울창하고 푸르렀다. 그 광경은 이곳을 ‘황(*荒: 거칠다, 황량하다는 뜻)’이라는 글자와 연결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우우-!”
탄천수가 흥분해 크게 울부짖더니,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 눈앞의 산을 향해 날아갔다. 아직 남황대산 외곽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 안에서 수많은 요기(妖氣)가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소삼아, 여기서 천 리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형산(衡山)이 있다. 그러니 아무리 배고파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형산의 산신은 득도한 진신(眞神)이니까, 너도…….”
강설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탄천수는 이미 전방의 산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자신의 식욕을 전혀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휴우…….”
강설릉은 깊이 탄식을 내뱉은 뒤, 몸을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스무 명 정도의 위미종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위미종 제자들은 명을 들어라. 남황 깊이 포진해 섭요향(攝妖香)을 깔아야 한다. 최대한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하고, 요물들과는 교전하지 마라.”
“예!”
주섬을 포함한 위미종 제자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 뒤, 둔광(*遁光: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둔술을 부릴 때 나는 빛)을 일으키며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주섬은 최대한의 속도로 가장 앞장서 움직였는데, 그녀가 팔을 몇 번 흔들자 손안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작은 향이 하나씩 나타났다. 그녀가 법력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곧이어 그중 하나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가라.”
그녀가 손가락을 구부렸다가 튕기자, 불이 붙은 섭요향이 전광석화처럼 날아가 전방에 있는 높은 산 중앙에 박혔다.
한편 탄천수의 머리 위에서는 강설릉이 머리끈을 만지작거리다가, 위미종 제자들이 멀리 날아가자 엄숙한 표정으로 인(印)을 맺으며 법력을 펼쳤다. 그러자 희미한 빛무리가 그녀의 몸 위로 솟구쳐 올라오더니, 다시 그녀에 의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지금 최선을 다해 소삼을 천기(*天機: 모든 조화를 꾸미는 하늘의 기밀)로부터 가리려 하는 중이었다.
저 멀리, 섭요향이 박힌 산 위에서는 연기가 아롱아롱 솟아오르더니 기이한 향이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상등급의 선단(*仙丹: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영약)이 화로에서 갓 나온 듯한 향기 같기도 했고, 잘 익은 선과(仙果)가 내뿜는 향기 같기도 했으며, 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육신이 내뿜는 향기 같기도 했다.
그렇게 각종 신기한 향기가 솟아올랐으나, 향기들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 향기는 수많은 요마(妖魔)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특히나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 심지가 흔들린 요마에게는 더욱 큰 힘을 발휘했다.
곧이어 요기가 차례로 치솟으며, 불온한 생각을 품은 요마들이 섭요향의 향기를 맡고 움직였다. 그들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차마 그 향기를 무시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때, 산의 한 깊숙한 골짜기에서는 여자 요괴 다섯 명이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었다. 가운데 앉은 이는 우아한 풍채를 지니고 있었고, 좌우로 나란히 앉은 네 사람은 비교적 젊어 보였다. 그중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 얼굴도 있었으나, 다섯 명 모두 둔갑에 성공한 요물들이었다.
곧이어 깊은 골짜기의 금제를 뚫고 섭요향의 향기가 침투해 들어오자, 다섯 명의 여인들이 단번에 눈을 번쩍 떴다.
“어머니! 지금 무슨 향기 나지 않나요?”
“정말 향기롭다!”
“무슨 진귀한 보물이라도 나타난 건가?”
가장 나이 어린 여인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저희도 어서 보러 가요!”
중간에 앉은 여인도 사실 마음이 동요하고 있었으나, 법력을 펼쳐 점을 쳐보니 그 결과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가만, 우리는 가지 않을 것이다!”
“크르릉-!”
그때 같은 산에 머무는 한 요괴의 포효가 들렸다. 보아하니 그는 이미 향기를 따라 날아간 것 같았다.
“어머니, 대체 왜요?”
“맞아, 저 늑대 요괴도 이미 갔잖아요. 어쩌면 보물이 여기서 멀지 않을지도 몰라요. 서두른다면 지금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중년의 여인은 마음이 심란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발짝 걷다가 다시 앉더니, 네 명의 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예전에 일어났던 도단(*盜丹: 단약을 훔치다)의 난을 잊었느냐? 한 무리의 요왕(妖王)이 일으킨 소동인데, 그들은 멀쩡했으나 오히려 수많은 도우가 죽고 다쳤었지. 수행의 길은 고되고 느리지만, 본인의 힘만으로도 도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늑대 요괴도…….”
“그놈은 악업(惡業)이 뿌리 깊이 쌓인 놈인데, 어찌 우리와 같겠느냐? 앉아라, 오늘은 기운이 어지러워 길흉을 점칠 수가 없으니, 밖으로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
네 명의 여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달갑지 않은 표정을 드러냈지만, 모친의 명에 거역할 수 없어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후에도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지 못했다.
섭요향 하나가 박힌 산봉우리 주위에서는 강력하거나 최대한 기척을 숨긴 여러 요괴의 기운들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요괴들은 곧장 속도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관찰하거나 바로 물러나는 이들도 있었다.
잠시 후, 섭요향이 있는 산봉우리 근처에는 수많은 요마가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흉악한 기운을 내뿜는 산귀신과 각종 삿된 존재들도 있었다.
반 정도의 요마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섭요향이 박힌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보물은 언제나 힘 있는 자가 손에 넣는 법이니, 여기서 실력을 겨루면 되겠군. 하지만 보물이 숨겨진 산봉우리가 아무래도 미심쩍으니, 원하면 먼저들 가서 살펴보시게.”
이렇게 말한 이는 거대한 백랑(*白狼: 흰 털을 지닌 늑대)이었다. 이때 다른 요물들은 대부분 호시탐탐 산봉우리를 주시하면서, 아무런 말 없이 온몸에서 요기를 내뿜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누군가 보물을 발견한다면, 그들 모두 여기서 한바탕 혈투가 벌어지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쿠구구구…….
그때 주위의 나뭇가지가 덜덜 떨리더니 먹구름이 엄청난 속도로 공중을 뒤덮었다.
‘천둥인가? 아니, 뭔가 이상해!’
하늘을 날고 있던 요괴들이 고개를 돌려 먹구름을 바라보니, 거대한 그림자가 상공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동시에 천위(*天威: 하늘의 위엄)와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우우-!”
탄천수의 포효와 함께 요마들의 눈에 먹구름의 형체가 점점 더 또렷해지더니 음영(陰影)이 산맥을 뒤덮었다. 곧이어 연기가 감도는 쩍 벌린 거대한 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에 떠 있던 요괴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탄천수의 입안으로 꿀꺽 삼켜졌다. 탄천수는 한 번도 입을 다문 적이 없었지만, 요마들은 마치 깊은 골짜기에 떨어진 평범한 인간처럼, 어떻게 해도 그 안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크르릉……!”
“저게 대체 뭐야!”
“도망쳐!”
강설릉은 탄천수의 이마 위에 선 채로 법안을 열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나 그녀는 혼탁한 요기와 악한 기운을 내뿜는 이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곧이어 그녀의 손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은빛 표창 하나가 나타났다.
‘내가 좀 남겨줘야지!’
휘익-!
곧이어 은빛이 번쩍 빛나더니 요괴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동시에 그들이 둔술을 펼치며 내뿜던 빛이 사라져버렸다.
“우우우-!”
그러자 탄천수가 어둑한 하늘 아래로 도망치는 요물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탄천수의 눈빛을 마주 본 요마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