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화. 남황의 요왕(妖王)
“저게 대체 뭐야?”
“선인이다!”
도행이 높은 요괴들은 처음에는 탄천수의 위용에 놀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곧이어 그 위에 정자며 누각이 세워진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그 위에 올라선 강설릉이 법력을 펼치자 이것이 선수(仙獸)라는 걸 알아차렸다.
“흥, 선인도 보물이 세상에 나온 걸 알아차리고 손에 넣으러 왔나 보군. 어느 선문의 제자냐?”
한 요괴가 이렇게 성난 소리를 지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적지 않은 요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하나같이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짠 것처럼 강설릉을 향해 돌진했다.
어떤 요괴는 한 줄기 요사한 빛으로 변해 그 안에서 희미한 형체만 남기고 있었고, 어떤 요괴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강설릉에게 덤벼들었다.
강설릉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가볍게 소매를 휘두르자, 선인의 기운이 어린 한 줄기 빛이 부드러운 구름처럼 요물들을 향해 뻗어 나가더니, 거대한 끈으로 변했다.
펑- 퍼엉!
펑! 치익-!
요괴들은 날아오는 끈에 맞서려 했으나, 조금도 반격하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중 도행이 꽤 높은 극소수만이 그 끈을 찢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자 뒤이어 은빛이 번쩍이더니, 표창이 스치고 지나가며 핏빛 안개가 번졌다.
“크르릉!”
“이런, 저 계집의 도행이 보통이 아니야!”
“일단 후퇴하자!”
요마들은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느꼈다. 저 선녀가 거의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가볍게 휘날린 끈에는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도행이 무척 높은 게 분명해 보이자 요마들은 혼란을 틈타 도망치려 했다.
강설릉의 공격에 맞아 우수수 날아간 요물들은 머리가 어질어질해, 아직 몸의 중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요마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힘을 느낀 요마들이 고개를 내려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새까맣고 거대한 입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억!”
“도망쳐!”
곧이어 요기(妖氣)가 하늘로 솟구치며, 그들이 순간적으로 요력(妖力)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그들 주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것이 소용돌이치며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요물들이 아무리 법력을 끌어올려 날아가려 해봐도, 탄천수의 거대한 입 근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저 가장 위에 있었던 몇몇만이 요행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싸우자! 이렇게 된 이상 저 선수의 입을 다 함께 공격해야 해!”
“맞아, 어디 얼마나 단단한지 보자고!”
요괴들은 아예 방향을 바꿔 탄천수의 거대한 입을 조준했다. 어떤 이들은 원거리에서 법력을 펼쳐 공격했고, 어떤 이들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더니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탄천수의 입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의 발톱과 이빨은 탄천수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거나, 단단한 물체끼리 맞닿았을 때의 불꽃이나 빛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렇게 근거리에서 직접 공격하던 요괴들은 단번에 탄천수의 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를 본 요괴들은 모골이 송연해져 젖 먹던 힘을 짜내 탄천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탄천수의 위아래와 입 바깥쪽에서 공격을 막고자 법술을 쓰다가 빛만 일으켰을 뿐이었다. 그 거대한 입의 일정 범위에 들어가기만 하면, 요괴들은 마치 괴이한 진법에 갇힌 것처럼 힘없이 빨려 들어갔다.
도망도 칠 수 없고 공격도 먹히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요괴들은 마침내 탄천수의 입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우우-!”
그렇게 탄천수가 삼켜버린 요마는 최소 수십여 명이었으나, 이 산 안팎에 머무는 요마의 수는 여전히 적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미 도망치기 시작했으나,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이 거대한 선수와는 겨룰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 시시때때로 위치를 바꾸면서 누군가 먼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의 밤을 줍기를(火中取栗: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하고 남에게 이용당하다, 죽 쑤어 개에게 준다는 뜻)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어느 정괴는 둔술을 써서 몰래 지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였다. 그러다 보물이 있는 산봉우리 근처에 이르자, 앞쪽에 있는 흙과 돌멩이가 빛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선단이면 한두 알만 챙겨서 도망가야지. 그러나 만약 보물인데 내가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면 최소한 구경이라도 해야겠어!’
그러다 마침내 산 중심에 이른 정괴는 불타고 있는 향 한 대를 발견했다. 그는 섭요향이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게 보물도 아니고 선단도 아니라는 건 확실했기 때문에 곧장 경계심이 들었다.
잠시 후, 정괴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끝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섭요향을 잡아 법력을 펼친 뒤 힘껏 위로 던져올리고서 자신은 밖으로 도망쳤다.
섭요향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요마의 시선이 그윽한 향기와 빛을 내뿜는 섭요향으로 향했다.
“저게 뭐지?”
“일종의 미신향(*迷神香: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향초)이군, 당했구나!”
그러자 요마들은 경악하여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강설릉과 탄천수는 계속해서 요마들을 공격하거나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편 관성대 위에서는 거원자와 연백평이 바깥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든 요마 중에는 도행이 꽤 높은 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강설릉은 높은 경지에 이른 수선자였으므로 저 요마들은 그녀의 상대도 되지 못했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탄천수도 함께 있었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도망쳐봐야 늦었지.”
거원자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연백평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었다니요?”
계연의 목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단번에 계연에게 떨어졌다. 이때 계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소삼의 꿈 탓에 정신력 소모가 심했던 것 같았다.
“계 선생님, 깨어나셨습니까? 남황의 요물들이 지금 강 도우와 탄천수에게 덤비고 있어,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천기각에 가던 중인데 어쩌다 남황의 요물들과 맞붙게 된 거지?’
그러다 계연도 마침내 요물들이 내지르는 포효와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법력이 펼쳐지며 나는 우레와 바람 소리도 들렸다. 이에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요기(妖氣)와 선광(仙光)이 격렬히 맞부딪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요괴들이 도망치는 것으로 끝났고, 뒤이어 소삼이 그 뒤를 좇아 요괴들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탄천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선생님께서 모르시는 일이 있습니다. 위미종 수사의 말에 따르면, 탄천수가 깨어나면 반드시 변화가 뒤따르고, 이성을 잃은 듯 마구 먹을거리를 찾아다닌다더군요. 남황은 요마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니, 탄천수도 자연스레 이곳으로 이끌려온 것입니다. 강 도우조차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계연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조금 전 꿈속에서 본 광경은 잠시 제쳐두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관성대 가장자리로 걸어가자, 거원자와 연백평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강설릉과 탄천수가 함께 여러 요물과 맞서 싸우는 게 보였다. 그러나 싸운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요물들을 짓이기는 것에 가까웠다.
탄천수는 마치 작은 물고기로 가득 찬 연못 속에 거대한 그물을 던진 것처럼 계속해서 이리저리 입을 쩍 벌리고 움직였다. 그러자 작은 물고기들은 아무리 젖 먹던 힘을 짜내 도망치려 해도, 그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곧이어 이쪽 산간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강설릉이 일부러 놓아준 것이든, 아니면 실수로 빠뜨린 것이든 도망칠 수 있는 요괴들은 이미 모두 도망친 후였다. 하지만 요괴 대부분은 이미 탄천수의 뱃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자 계연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는 곧이어 저 멀리 공중에 뜬 채로 아직 타오르고 있는 향을 발견했다.
“저건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섭요향이라는 향이네요. 저 향이 내뿜는 향기와 기이한 빛은 요괴들이 선단이나 보물로 착각하도록 만들기 쉽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탄천수는 아직도 우렁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요괴를 먹어 치웠지만, 소삼은 전혀 성이 차지 않는 것 같았다. 곧이어 소삼은 강설릉의 조종에 따라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렸고, 그 방향에는 위미종 제자들이 또 다른 요괴들을 끌어들이려고 준비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강설릉은 탄천수의 머리 위에 서서, 고개를 돌려 후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법력과 신성한 빛을 갈무리했다. 조금 전에 먹은 양은 소삼에게 있어 그저 구미를 돋구는 전채요리쯤에 불과했다.
“강 도우, 소삼은 어디로 가려 하는 겁니까?”
강설릉이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계연이 거원자와 연백평을 이끌고 어느새 옆에 와있었다.
“휴우, 소삼은 지금 배가 무척 고픈 상태이기 때문에, 어디든 요괴가 많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겁니다. 저희는 그저 피해 범위를 줄이고 소삼이 이성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최대한 대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쉽지 않겠네요.”
계연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소삼은 꿈속에서 내키는 대로 거리낌 없이 배를 채웠는데, 깨어나 보니 이토록 배가 텅 비어있다니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느껴질 터였다.
* * *
탄천수가 남황대산으로 들어선 후부터 이틀 동안 위미종 수사들은 7차례나 섭요향을 이용해 요마들을 끌어들였다. 탄천수는 그렇게 모여든 수백 명의 요마를 차례로 집어삼켰고, 그 과정에서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게 전부였다. 그는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흥분했고, 여전히 배가 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셋째 날, 탄천수는 남황대산 깊은 곳의 한 골짜기를 유유자적 날아다니고 있었다. 강설릉은 탄천수의 머리 위에 서서, 미간을 굳게 모으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섭요향도 없고, 위미종 제자들도 없다니?”
여기는 원래대로라면 위미종 제자 몇몇이 함정을 설치해,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요마들을 모아 놨어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리가 기이할 정도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계연과 거원자는 관성대 위에 앉아 바둑을 두었고, 연백평은 한쪽에서 이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연백평은 손가락을 접어 점을 치기 시작했고, 계연도 법안을 열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귀찮은 일이 생겼군요.”
“하긴, 남황에서 계속 이렇게 순조롭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계모(某)도 곧 남황 요왕(妖王)들의 실력을 볼 수 있겠네요.”
세 사람은 이미 탄천수가 곧 직면하게 될 문제가 뭔지 알아낸 후였다. 반면 강설릉은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수를 더 잘 읽는다’는 말처럼, 아직 어찌 된 일인지 몰라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돌연 골짜기 외곽의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산맥이 솟은 사방의 지각(地殼)이 치솟아 올랐다.
쿠구구…… 콰광……!
우르르르……!
다섯 조각으로 나뉜 지각이 동시에 솟아올랐고, 그중 가장 큰 땅 위에는 아직도 십여 좌가 넘는 산봉우리가 있었다. 지각은 소삼을 둘러싸고 그 위로 짙은 음영을 드리웠다. 계연이 법안으로 관찰해보니, 그 산봉우리와 지각에서는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이는 그저 단순히 뒤집히기만 한 지각이 아니었다.
지각들은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엄청난 속도로 소삼을 덮쳐왔다.
“소삼!”
“우우우-!”
탄천수가 꼬리를 흔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지각을 때렸다.
콰앙……!
그러자 탄천수의 꼬리에 맞은 지각이 뒤쪽으로 휙 날아갔으나, 부수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다른 네 조각의 지각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광, 쾅! 콰앙!
흙먼지가 부옇게 일고 돌가루가 비처럼 흩날리는 와중, 골짜기 위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나는 맹수의 가죽으로 조잡하게 만든 옷을 걸친 거한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단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거꾸로 뒤집혀 떨어진 지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뒤로는 골짜기 외곽을 둘러싸고 서 있는 수많은 정괴와 요물이 보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누구도 그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었다.
“저건 탄천수 아닌가?”
“흥, 위미종 계집들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