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69화 (769/892)

769화. 맞붙다

탄천수는 빛으로 둘러싸인 지각 아래에 눌려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무척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거꾸로 떨어진 지각에는 높이 솟은 산봉우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날카로운 장창처럼 보였다.

소삼은 굶주린 상태였으나 다행히 이성을 모두 잃지는 않았으므로, 산봉우리가 매달린 지각이 떨어져 내리던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날카로운 산봉우리를 피했다. 이에 소삼은 몸이 꿰뚫리지는 않았지만, 단단한 지각에 짓눌려 지면 아래로 파고든 상태였다.

“우우-!”

쿠구구구……!

콰르릉……!

지면에 깔린 탄천수는 있는 힘껏 몸을 비틀고 꼬리를 움직여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위로 떨어져 내린 지각들이 위아래로 들쑥날쑥 움직였고 어떤 지각은 위에 균열이 가기도 했다.

두 요왕(妖王)은 공중에 뜬 채 이를 지켜보다가, 족히 수천은 되는 토행(土行) 술법에 능한 정괴와 요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문을 외며 온 힘을 다해 법력을 펼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등이 온통 땀으로 젖었으며, 어떤 이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검은 날개가 달린 요괴 하나가 비단 장포를 입은 청년 모습의 요왕 앞으로 날아가 이렇게 보고했다.

“대왕, 저들은 곧 버티지 못할 듯싶습니다.”

“그래, 저 쓸모없는 것들이 무슨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는 나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맹수 가죽으로 옷을 지어서 입은 남자를 향해 말했다.

“위미종 계집들이 먼저 남황에 쳐들어왔으니, 이는 우리 잘못이 아니오. 위미종이 선수(仙獸)를 부려 먼저 우리 요족(妖族)을 도살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오!”

가죽옷을 입은 남자는 겉모습은 거칠고 흉포해 보였으나, 그 말에 가만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묘운(妙雲) 요왕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구려.”

그러자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눈초리를 가늘게 뜨더니, 가죽으로 옷을 지어서 입은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 말은, 당신은 나서지 않겠다는 소리요?”

“탄천수는 아직 어려 자제력이 없고, 위미종 수사들은 홀로 남황에 깊이 들어왔으니 묘운 요왕이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이 몸이 나서서 굳이 부끄러운 꼴을 보일 필요가 없지 않겠소?”

“흥, 그럼 여기 서서 지켜보기나 하시오!”

묘운 요왕이라 불린 비단옷의 청년은 더 말을 잇지 않고, 곧바로 요사한 바람을 일으켜 탄천수를 내리눌러 끊임없이 진동하는 지각판을 향해 날아갔다.

“참, 탄천수 머리 위의 그 여인은 절대 만만한 자가 아니니, 묘운 요왕은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그러자 청년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공중에 떠올라 있는 가죽옷을 입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런 뒤 더욱 속도를 높여, 몇 초 만에 지각 위에 올라섰다.

그의 발끝이 지면에 닿자마자 파문이 번져나가더니, 그것은 점차 범위를 넓혀 거친 폭풍이 되었다.

콰앙!

곧이어 골짜기의 지면이 거대한 망치에 짓눌리기라도 듯이 반경 몇 리 안이 모두 수 장(丈) 깊이로 가라앉았다. 흙먼지와 돌가루도 비단옷을 입은 청년의 발을 중심으로 점차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조금 전에 균열이 생겼던 지각판도 다시 감쪽같이 붙어버렸다.

“아오오……!”

탄천수가 처음으로 고통에 차 소리를 내자, 등 위에 세워진 수많은 건축물에서 나던 법광이 산산이 깨지더니 누각과 정자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강설릉은 탄천수의 이마 위에 서서 한 손으로 인을 맺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을 향해 불진을 몇 번 흔들었다. 그러자 그들을 짓누르던 지각의 기세가 조금 약해졌지만, 소삼은 여전히 고통을 느꼈다.

한편, 탄천수 등 위의 관성대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주위의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관성대 쪽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탁자 위에 놓인 찻물에는 파문조차 일지 않을 정도였다.

“요왕은 오직 힘으로 얻어내는 지위라더니, 심경(*心境: 마음의 경지)은 비록 수선자들에 비할 수 없겠지만, 공격력은 얕잡아볼 수 없겠습니다!”

거원자가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짓누르는 지각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계연은 마침 탄천수의 머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뗐다.

“요왕인 만큼 필시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이 정도의 위세를 보이지 못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남황은 요족과 정괴들의 근거지이고, 이곳에 자리 잡은 마족도 적지 않으니, 비록 흑황처럼 혼란스럽진 않을지라도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닐 거예요. 그러니 언제라도 나설 수 있게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연백평과 거원자도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다 연백평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계 선생님, 탄천수가 변화를 겪으려면 겁(*劫: 화, 재난)을 겪고 잠재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탄천수가 겪어야 하는 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희는 너무 조급히 나서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그럼 일단 지켜보도록 합시다.”

연백평의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었고,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반면 강설릉이 나선 건 상황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탄천수가 성공적으로 변화를 겪는 걸 더 어렵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제 계연의 일행은 더욱 쉽게 나설 수가 없었다.

한편, 요왕은 자신이 나선 후에도 탄천수가 고통에 차서 울 뿐, 비명을 지르지는 않자 공중에 들고 있던 다른 발 한쪽도 아래로 내리눌렀다.

콰앙-!

그러자 골짜기의 가장자리와 몇 조각의 지각이 맞닿은 틈새에서 또다시 무수한 돌가루와 흙먼지가 치솟았다.

“우어어어-!”

탄천수의 목소리에는 고통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분노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의 이마를 밟고 선 강설릉은 불진을 두어 번 흔들어 압력을 조금 낮춰주고는 맑고 냉랭한 목소리로 이렇게 일깨웠다.

“소삼, 저들이 너를 아주 평평하게 짓누르려 하는구나. 만약 저 지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면 너는 곧장 땅 아래로 처박히게 될 것이다. 물론 죽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야 나올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되면 당연히 뭘 먹지도 못하겠지.”

“우우-!”

쾅……!

쿠구구구……!

탄천수가 온몸을 격렬히 움직이자, 계연의 일행이 앉은 관성대에도 드디어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 거원자가 지면을 한번 내리치자, 관성대 전체가 탄천수 등 위의 지대(*地臺: 건축물의 기반이 되는 평면)에서 1척(약 30cm) 높이로 떠올랐다. 곧이어 균열이 간 부분도 말끔히 이어 붙더니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면 아래의 격렬한 진동은 당연히 위쪽에도 전해졌다. 그 거대한 진동 때문에 요왕은 두 다리가 다 저릿할 정도였다. 그의 얼굴 위로 탄천수의 힘에 놀라 경악한 표정이 드러났다.

“너희 정괴들은 어서 화이술(*化泥術: 진흙으로 만드는 술법)을 써라!”

“대왕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존명!”

요왕이 전음을 보내자 골짜기 안팎의 정괴와 요물들이 즉시 그의 명을 따라 법력을 펼쳤다.

곧이어 날카롭고 괴이쩍은 요물들의 목소리가 중얼중얼 섞이더니, 지각의 아래쪽, 특히 탄천수 아래의 흙이 부드러워지며 진흙탕으로 변해버렸다.

“하하하, 이제 힘을 받쳐줄 단단한 땅이 없으니, 어찌 나오는지 보자!”

요왕이 지각 위에 올라선 채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한번 발을 내려 강하게 짓눌렀다.

쿠웅……!

그러자 지각이 다시 한번 지면 아래 수 장(丈) 깊이로 파고들더니, 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괴들이 입을 모아 주문을 외고 법력을 펼치자 그 과정이 더욱 빨라졌다. 지각 위로는 돌과 흙이 단단히 맞붙으며 산맥을 형성하여 진산법과 비슷하게 변했는데, 그 모습은 더욱 거칠고 강력해 보였다.

그런데도 강설릉의 기운은 여전히 평온했다.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도 유유자적 차를 마시며 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내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탄천수가 산맥처럼 거대하긴 하지만, 결국은 물고기를 닮았기 때문에 지면이 진흙탕이 되면 탄천수는 오히려 더욱 힘을 얻게 될 텐데!”

“그래서 이르기를, 요물은 힘은 셀지 모르나, 도(道)를 깨닫긴 힘들다는 말이 있지요!”

연백평도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와 동시에 탄천수가 진흙탕으로 변한 지면 아래로 더욱 깊이 내려갔다. 이에 지각 바깥에 발을 디디고 서 있던 요왕은 기우뚱하고 중심을 잃을 뻔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가 어리둥절하던 순간, 급류가 흐르는 소리가 지하에서부터 들려왔다. 곧이어 엄청난 힘이 지면 아래에서부터 폭발했다.

쿠구구구-.

촤아앗-!

그 폭발력에 지각이 산산이 부서졌고, 진흙탕과 뒤섞인 돌덩이들이 반구 형태를 그리며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곧이어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진흙탕 속에서 꿈틀대며 올라오더니, 하늘마저 삼킬듯한 입을 쩍 벌리고 단번에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따로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요왕은 심상치 않다 느낀 순간 이미 하늘로 날아오른 상태였다. 어두컴컴한 빛을 내뿜는 탄천수의 쩍 벌린 입에서는 그를 끌어당기는 괴이한 힘이 느껴졌으나, 다행히 힘도 쓰지 못하고 끌려갈 정도로 강력하진 않았다.

하지만 묘운 요왕은 탄천수가 지닌 힘에 간담이 다 서늘할 정도였다. 아래로 고개를 내려보니, 제때 도망치지 못한 정괴와 요괴들이 회오리치는 물살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탄천수의 입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대왕, 구해주십시오!”

“대왕!”

“아악!”

요괴들의 비명과 도움을 청하는 소리는 탄천수와 요왕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 없는 잡음일 뿐이었다. 비록 요괴들이 먹히는 장면은 요왕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지만, 탄천수가 자신의 공격을 벗어나 버린 것만은 그를 무척 화나게 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상공에 떠올라 있는 가죽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니, 상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왜인지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미종 당신들은 우리 요족의 땅인 남황을 침범하고, 수많은 요족을 도살했는데도 아무런 할 말이 없소?”

탄천수의 몸에 묻은 진흙이 아래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며 상공으로 높이 떠올랐다. 동시에 표피에 난 그리 깊지 않은 상처들도 저절로 아물었다.

그러자 강설릉이 이마 위에 선 채 큰소리로 대꾸했다.

“우리 선도(仙道)와 너희 요마는 본래가 대립하는 관계다.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지. 요왕씩이나 되어서 입씨름을 할 생각인가?”

강설릉의 말에 계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선요불양립(*仙妖不兩立: 선인과 요마는 양립하지 않는다)’의 개념은 선도를 닦는 많은 수선자들이 지닌 전형적인 사상이었다. 이는 강설릉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의 태도는 마치 바꿀 수 없는 하늘의 도리를 말하는 듯했다.

“감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황고(黃古) 요왕, 아직도 나서지 않을 생각인가? 선인들이 우리 요족에 인물이 없다고 비웃겠소!”

황고라 불린 가죽옷을 입은 요왕도 수수방관하던 태도를 버리고 광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하……. 위미종은 선도에서도 인정(人情)이 없기로 이름났다던데, 보아하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 그리 죽고 싶다면 내 소원을 이뤄주지.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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