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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72화 (772/892)

772화. 손가락으로 검에 맞서다

계연을 비롯한 수선자들은 내내 그들의 기운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후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운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강설릉과 함께 서 있는 이들은 마치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고, 오직 강설릉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기운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서는 대요괴나 다른 요마들 외에도 총 7명의 요왕이 멀리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뿜는 요기(妖氣)는 다른 요물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해서 하늘 저편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다. 비록 그 7명의 요왕은 실력 차이가 크게 났으나,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상황을 압도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묘운과 황고를 제외하고, 다른 5명의 요왕은 각자 편한 위치를 점하고 서서, 자신의 수하에 있는 대요와 둔갑 요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고작 반경 10리 안에 도행이 높은 요괴들이 이토록 많이 몰려있으니 이는 남황 땅에서도 무척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물며 그들이 모여든 중앙에는 산맥만큼 거대한 선수(仙獸)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맹호(猛虎) 요왕은 체격이 건장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이마 위에는 여전히 호랑이처럼 ‘왕(王)’ 자가 남아있었다. 그는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거대한 탄천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의 곁에 어두운 빛 두 줄기가 나타나더니 두 명의 남자로 변했다.

이 두 남자 중 하나는 구름무늬의 황색 장삼을 입은 준수하고 온화한 얼굴의 서생이었다. 다른 하나는 화려한 비단옷에, 준수하다 못해 요사해 보이기까지 한 남자였다.

“하하하, 두 분 사자(使者)께서 오셨군! 보게, 저게 바로 천하에서 희귀하기로 이름난 탄천수라는 선수라네. 위미종이라는 선문에서 기르는 보배인데,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계역 나룻배 중 하나이기도 하지. 그런데 지금 저것이 미쳤는지 감히 우리 남황에 쳐들어왔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신을 탓해야겠지!”

요염한 미색을 가진 청년이 미간을 모으더니, 황색 장삼을 입은 서생을 한번 쓱 쳐다본 뒤 다시 요왕에게 물었다.

“탄천수? 그럼 저 위에 있는 자들이 위미종의 선인들입니까?”

요왕이 씩 웃자 날카로운 송곳니가 섬뜩하게 빛났다.

“당연한 말일세, 저 위에는 위미종 계집들이 타고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서 도망치기 쉽지 않을 거야. 하하, 형제, 자네들에게 선인의 피 맛을 보여준다면 접대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겠지?”

맹호 요왕이 ‘형제’라고 부른 것은 아름다운 외모의 청년이 아니라, 황색 장삼을 입은 서생이었다. 그 말에 서생이 요왕을 한번 쳐다보더니, 멀리 탄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미종은 저도 들어본 적이 있으니, 저들 종문에는 필시 고인(高人)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탄천수에 탄 여선(女仙)들도 필시 도행이 높겠지요. 지금 다른 요왕들 모두가 합심한 듯이 보이나 실은 각기 이득만 따지는 자들이라, 본인의 원기를 상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공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희도 일단 사태를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자 아름다운 용모의 청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이 일은 아예 나서지 않든가, 아니면 우레처럼 신속하게 해치워야 하는 일입니다. 늦으면 또 무슨 변고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남황 한복판에 탄천수가 떨어지다니, 이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호광(虎狂) 요왕, 어서 저 탄천수를 공격해야 합니다! 육형, 어찌 생각하오?”

황색 장삼을 입은 남자는 바로 육 산군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육오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준수한 청년의 말에, 육 산군의 눈에 한 줄기 흉악한 요광(妖光)이 스쳤다가 가라앉았다.

“물론 그 말도 틀리진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호 형님께서 공격을 주도한다면, 반드시 큰 손해를 보게 될 겁니다. 조금 전에 이미 대요괴 하나가 죽었으니, 다른 요왕들도 보나 마나 먼저 상황을 관망할 겁니다.”

“그렇지! 형제의 말이 옳다! 본왕의 힘이 크게 상하고, 그 덕에 다른 이들이 이득을 본다면 이는 수지가 맞지 않지. 게다가 머리끈 하나로 묘운을 상처 입힌 것만 봐도, 위미종 수사들은 절대 낮잡아 볼 수 없다. 묘운의 안색이 창백한 걸 보니, 절대 가볍게 당한 상처가 아니야. 우리도 잠시 사태를 관망하는 게 좋겠다!”

요왕이 내린 결론에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육 산군에게 전음을 보냈다.

“육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얼른 이 무식한 호랑이를 공격에 나서게 해야지! 밤이 길면 꿈이 많다(夜長夢多: 일을 길게 끌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뜻)는 말도 있지 않나! 탄천수는 위미종에게 무척 중요한 보배이니,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걸세. 게다가 저 위에 백 장(丈)까지 맑은 기운이 뒤덮은 걸 보니, 절대 그저 그런 선인이 아니야. 반드시 저 위미종 수사를 꺾어야 해.”

그러자 육 산군이 고개를 저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위미종 선인들이 너무 침착한 듯합니다. 게다가 탄천수처럼 중요한 존재가, 돌연 이성을 잃고 남황으로 쳐들어오다니요? 위미종 수사들이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를 자들입니까? 호 형님께서 나섰다가 뜻대로 되면 물론 다행이지만, 만일…….”

그러자 맹호 요왕이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미종은 나조차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선도(仙道)의 명문이지. 게다가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분명 누군가 나서는 이가 있을 거야. 보게, 저기 묘운이 벌써 인내심을 잃은 듯하군.”

그때, 정북방 하늘에서 묘운 요왕 수하의 대요괴 다섯 중 하나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돌기가 가득 돋아난 거대한 두꺼비였는데, 다른 대요괴 네 명을 머리 위에 태우고서 탄천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각기 다른 방향에 있던 요왕들도 각자 2명 이상의 대요괴를 내보냈다.

묘운 요왕은 심지어 스스로 다시 한번 공격에 나섰다. 그의 얼굴과 몸은 어느새 푸른 비늘로 온통 뒤덮여 있었는데, 이때 그는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빛을 내뿜는 요검을 들고 강설릉을 향해 돌진했다.

묘운은 마침 이런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미종 수사들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싸운 터라 비록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꽤 많은 법력을 소진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절호의 기회만을 노리며, 내내 쉬면서 힘을 축적하고 있었다.

“망할 계집, 다시 나와 높고 낮음을 겨뤄보자꾸나!”

묘운이 검을 들고 공격하는 순간, 마침 계연을 비롯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원자가 옥회산의 태허장형법으로 위미종 제자들을 은닉했기 때문에, 이때 탄천수의 머리 위에는 강설릉과 계연을 비롯한 네 사람뿐이었다.

“음?”

이에 묘운은 경계심이 들었으나, 지금 검을 거두면 뭇 요괴들의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그래서 아예 전보다 더욱 맹렬한 기세로 탄천수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찔렀다.

계연을 비롯한 네 사람은 마침 이때 짧은 대화를 끝낸 터라, 자신들을 습격해오는 요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설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계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이 검술에 무척 신통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한마디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또한, 계연도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넝쿨검이 스스로 그의 오른손을 향해 날아왔으나, 계연은 검을 뽑지 않고 오른손으로 검 자루를 쥐고는 뒷짐을 졌다. 곧이어 한 줄기 검의(劍意)와 검기(劍氣)가 파도처럼 계연의 몸을 훑고 지나더니, 이내 계연의 왼손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계연이 소매를 떨치며, 하늘을 향해 검지를 곧게 뻗어 들어 올렸다.

검술와 검결은 계연이 가장 잘 다루는 묘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수행의 첫 단계부터 지금까지 그가 의탁해온 술법이었다. 이때 검의는 이미 그의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에 녹아들어 의식 세계에 섞인 뒤였다.

계연의 검지는 비록 무궁무진한 검기를 뿜어내지는 못했지만, 검의만은 극도로 순수하고 강력했다. 게다가 무심코 수리건곤에 의해 계연의 의식 세계가 펼쳐지자, 그 힘은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비할 데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법안으로 한번 쓱 보자마자, 계연은 묘운의 공격을 읽어낼 수 있었다. 묘운은 강대한 요력(妖力)을 지닌 데다 검세(劍勢)가 신속하고 맹렬했다. 하지만 강한 와중에 그 힘이 하나로 모이지 못해, 계연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수준에 가까웠다.

비록 신령한 빛이나 검광(劍光) 또는 대단한 검기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묘운은 계연이 검지를 뻗은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이 색을 잃은 듯이 보였다. 심지어 그는 저도 모르게 강설릉에게서 칼끝을 돌려 계연을 가리켰다.

마치 어떤 신묘한 힘이 강제로 자신의 검세와 주의력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이에 묘운은 당연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으나, 더욱 정신을 번쩍 차리려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러나서도 안 된다는 압박감과 긴장감에 짓눌렸다.

“크릉, 죽어라!”

크게 포효한 묘운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요력을 끌어올려 계속해서 검으로 그 힘을 밀어 넣었다. 그가 이렇게 흥분할수록, 계연의 눈에 묘운의 일검은 더욱 순수하지 못하게 변하였다. 이에 계연은 저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술이 정묘했는데, 가면 갈수록 수준이 떨어지는군.’

계연의 그런 모습에서는 그를 향한 경시가 느껴져, 묘운이 채 분노와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그의 요검과 계연의 검지가 서로 부딪혔다.

파앗-!

그 둘이 닿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빛이 살짝 어두워지더니 거의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가 났다. 마치 기포가 톡 터질 때 나는 듯한 소리였다.

다음 순간.

콰앙……!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이 들리더니 그 충격이 사방팔방으로 전해졌다.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찌를 정도로 밝은 빛이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대며, 한 줄기 희미한 검광이 요광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묘운 요왕은 이때 요검을 쥔 손이 저릿해 감각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고, 조금 전 폭발이 일어나던 충격에 수백 장(丈) 뒤로 휙 날아갔다.

이렇게 되자, 막 공세를 퍼부으려던 대요괴들이 모두 동작을 멈췄다. 엄청난 요력이 담긴 검기와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검의가 부딪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자, 탄천수와 가까이 있던 이들은 요력을 운용해 본인을 보호했다.

이미 묘운의 오른팔 부근은 옷이 다 찢겨나가 푸른 비늘이 돋아난 팔이 드러나 있었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가 이어진 곳에 돋아난 비늘은 이미 떨어져 나가 피가 배어 나왔다. 요괴 특유의 회복력에도 금방 아물지 않을 정도였다.

묘운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와중에도, 왼손으로 오른팔을 부여잡은 채 경악한 얼굴로 탄천수 머리 위의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지로 그의 검을 막아낸 그 선인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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