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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73화 (773/892)

773화. 함정을 파는 육산군

계연이 웃으며 흘낏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검기와 검의 모두 수준급이니, 요족 중에서는 보기 드물군요. 다만 당신은 검을 ‘쓸’ 뿐이지,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고 있어요.”

이는 계연이 기세등등해서 묘운을 낮잡아 보는 게 아니라, 실제 느낀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묘운은 이제야 계연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흰 장삼을 입고 있었는데, 두 눈이 희뿌연 회백색이었다. 등 뒤로는 여전히 검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저자는 방금 검을 쓰지도 않았어. 게다가 고작 왼손만을 사용했지.’

“당신은 누구요? 위미종에는 사내가 없다고 들었으니, 당신 같은 검선이 있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디서 왔소? 장검산? 아니지, 장검산에는 당신 같은 인물이 없어. 절대로 없어!”

묘운은 두려운 와중에도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요괴들은 모두 놀라서 이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연의 검이 나타난 순간, 맹호 요왕의 곁에 있던 수려한 청년의 동공은 순간적으로 수축한 상태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육오를 바라보니, 상대의 안색도 그와 마찬가지로 일변한 채였다.

“북목(北木), 저자가 바로 계연인가?”

“입 다물어!”

북목이 얼른 육오의 말을 끊으려 했으나, 육오가 한발 빨랐다. 이에 심장이 철렁한 북목이 얼른 탄천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묘운 요왕을 보고 있던 계연이 그의 예상대로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10여 리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북목은 상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계연의 도행은 현묘하기 이를 데 없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으니 그도 자연히 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망했다!’

계연이 감응을 느끼고 그 감각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한눈에 육 산군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바둑돌에 대한 기묘한 감응이 즉시 몇 배는 강해졌다. 계연은 육산군을 발견한 뒤, 곧장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비록 거리가 가깝지는 않았지만, 계연은 법안을 이용해 아주 또렷하게 상대를 볼 수 있었다. 육 산군의 곁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하나는 비단 장포를 입은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고, 다른 하나는 이마에 ‘왕(王)’ 자가 새겨진 요괴였다. 그 포악한 요기(妖氣)를 보니 요왕 중 하나인 듯했다.

‘여기 천계맹이 있구나!’

계연이 이를 알아차린 순간, 검이 내는 가벼운 울음소리가 그의 생각을 끊었다.

우웅-!

등 뒤에 있던 넝쿨검이 맑은 소리를 내자, 크지 않은 소리가 주변 이들의 뇌리를 파고들며 요마가 날뛰는 상황을 단번에 제압했다. 검명이 탄천수 주위에 퍼져나가자 사위가 단번에 고요해졌다. 한창 흥분해 있던 묘운 요왕도 넝쿨검이 내뿜는 한기를 느끼고서 의식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넝쿨검은 조금 전에 주동적으로 계연의 손을 향해 날아왔다. 원래는 계연이 자신을 뽑아 쓸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부분적인 검기와 검의만 움직인 게 다였다. 하지만 넝쿨검은 만약 자기가 나선다면, 일검에 저 요물을 벨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넝쿨검은 계연에게 어떤 원망도 품지 않았고, 그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검의를 전할 뿐이었다.

“침착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네가 나설 때가 있을 거야.”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왼손으로 뒷짐을 졌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있던 검을 왼손으로 넘기며, 오른손으로 검 자루를 쥐었다.

강설릉, 연백평 그리고 거원자 세 사람은 조금 전 계연의 손가락만으로 이미 경악한 상태였다. 그러니 당연히 저 넝쿨검을 검집에서 뺀 모습도 보고 싶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을 보면, 어쩌면 계 선생님의 그 유명한 천경검세를 목도할 수도 있을 듯했다.

반면, 묘운 요왕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듯 비늘이 단단히 일어선 것을 느꼈다.

조금 전에 저 선인은 한 손가락만으로 가볍게 자신의 일검을 막아냈다. 이제는 저 검으로 자신을 베려 하는 것일까?

하지만 보아하니 계연의 목표는 묘운 요왕이 아닌 듯했다. 그는 긴장한 게 역력한 묘운 요왕을 흘끗 본 게 다였다.

계연이 육산군을 발견하고서 뒷짐 진 한 손으로는 검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 자루를 쥐기까지,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마두(魔頭)인 북목의 머릿속에는 이제 온통 큰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북목이 동료인 육오를 바라보니, 그도 이미 말을 뱉은 순간 후회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북목이 그에게 미처 화를 내기도 전에, 북목은 즉시 본능적인 경계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계연은 왼손으로 검집을 받치고서 오른손으로 가볍게 검 자루를 당겼다.

챙-!

검명은 무척 낮고 가벼웠으나, 소리의 규칙을 무시하듯 순식간에 모든 이의 귓가로 퍼져나갔다. 검에서 소리가 나는 동시에 탄천수와 북목 일행 사이의 공간에 은은한 은빛 안개가 인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거의 환각처럼 보일 정도의 속도로 계연이 검을 뽑아 앞으로 휙 내밀었다. 그러자 지켜보는 이의 시각과 감각에 괴이한 편차가 일어났는데, 그 동작은 무척 가볍고 느릿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검광이 반짝하고 빛나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들이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돌연 공중에 나타난 은빛 안개가 마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착각을 일으키며 한순간에 밝아졌다.

안개 속에서 환상 같기도 한 희미한 검광이 비쳤다. 그것은 심지어 직선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빛이 퍼진 순간, 이미 그 날카로운 기세를 막기란 늦었다. 혹은 아예 막아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솨앗-!

치잇- 칙- 치익-.

마치 바람이 빠진 듯한 소리가 나더니, 검광 끝에서 핏빛이 번져나갔다.

계연의 일검은 보이는 속도와 실제 속도에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상대가 계연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했을 때 더욱 그러했다. 다른 요왕들과 대요괴들은 한발 늦게 계연이 일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였다.

이때, 원래 육산군과 북목, 그리고 맹호 요왕이 서 있던 곳에는 핏빛 안개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세 사람이 뜻은 충만하지만, 힘이 다 담기지 않은 계연의 일검에 곧장 목숨을 잃을 리가 없었다.

두 요괴와 마두 하나가 서 있던 곳에서 수십 장(丈) 떨어진 상공에서, 북목은 두려움을 억누르며 가쁜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배 근처의 옷자락은 크게 찢겨나갔는데, 이때 이미 천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만 그가 입은 상처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마두가 아무리 변화에 능하다지만, 그가 마기를 아무리 움직여도 상처 위의 검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한편, 원래 오만한 기세를 뽐내던 맹호 요왕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곳에 기다란 상처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는 아주 얕아서 손톱 두께만큼도 깊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부터 쉴새 없이 핏빛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최대한의 요기를 끌어올려 계연이 날린 일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이때 그는 귀문관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일검에 담긴 검의는 그 정도로 무시무시했고 압박감 또한 대단했다. 마치 사형수가 목에 칼을 맞기 직전의 공포와 비슷했다.

육산군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안색이 무척 나빴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보니 어두운 빛을 내뿜는 날카로운 손톱 중, 검지와 중지의 손톱이 완전히 잘려나간 상태라 아주 휑해 보였다. 그는 손톱이 잘려나간 곳을 꽉 붙들며 고통에 차 중얼거렸다.

“윽……. 내 손톱……!”

육산군의 목소리에는 절대 꾸며내지 못할 고통이 담겨 있었다. 넝쿨검의 검광은 그에게 미치기 전에 이미 검기가 거둬진 후였지만, 검의에 살짝 닿아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손톱 정도는 다시 얼마든지 회복해낼 수 있었다.

육오가 손톱이 아프다고 말하자 북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는 호랑이 요왕이 운 나쁘게도 육오 대신 적지 않은 검기를 맞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운 좋은 자식!’

“대단한 검결이군. 저 선인이 대체 누구요? 위미종 사람인가?”

“컥……! 커흑……!”

북목이 검은 피를 몇 번 내뱉자, 핏속에 소량의 검기가 담겨 있었다. 그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못했으나, 전보다는 조금 고통이 덜했다.

“하, 대왕, 조금 전에 그것은 무슨 검결이 아니라, 그저 저 선생이 검을 이쪽으로 살짝 뻗은 것에 불과할 겁니다. 그의 검결은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군요……. 대왕, 저 사람과는 맞설 수 없습니다. 다른 요왕들이 나서게 하시고, 대왕께서는 물러나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육형, 나는 먼저 가보겠소, 하하하…….”

북목이 창백한 얼굴로 미소 짓더니, 육오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그의 몸 위로 옅은 검은색의 마기가 떠올랐다. 그의 형체가 이리저리 비틀어지며 변하더니 마침내 그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진정한 마두는 형체를 갖출 수도 있었고 형태를 없앨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북목이 사라진 것도, 그가 둔술을 이용해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 근처에 숨어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육산군은 북목이 자신의 사부님에게서 그리 쉽게 도망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계연은 곧장 넝쿨검을 다시 검집 안에 넣고서, 먼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웃음기 띤 얼굴로 뭇 요괴들을 바라보며, 힘 있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조금 전에 누군가 제 이름을 입에 담았으니, 저를 안다는 뜻이겠군요. 오늘 탄천수가 남황에 들어와 소동을 부렸으니, 저희에게 먼저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산맥은 법력을 이용해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고, 삼켜진 요마들도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누군가를 죽일 생각이 없지만, 위미종 도우들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으니 이만 싸움을 멈추고 협상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계연은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맹호 요왕이 있는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초리를 가늘게 뜬 채, 저 요왕에 대해 간단히 점을 쳐보았다. 그는 사라진 마두도 그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낮은 소리로 연백평에게 말했다.

“연 도우, 그 마두의 종적을 놓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배가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그때, 맹호 요왕이 돌연 분노를 담아 포효했다.

“으르렁-!”

그의 포효에 주위에 광풍이 일며 광활한 하늘과 대지를 뒤덮었다. 안색이 창백한 맹호 요왕은 이때 분노로 두 눈이 핏빛처럼 빨개져 있었다. 그는 공격을 당해 화가 났고, 그보다도 자신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났다.

육산군이 얼른 팔을 들어 맹호 요왕을 제지했다.

“호 형님, 충동적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높은 도행을 지닌 고인(高人)이니, 겁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크르릉! 내가 겁을 냈다니!”

육산군이 일부러 과장을 더해 그를 말리자, 맹호 요왕의 분노가 즉시 폭발했다.

“비열한 놈! 감히 검술을 믿고 본 대왕을 습격하다니! 이 남황 땅에 요마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너처럼 방자한 수선자를 봐줬다간 앞으로 각계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설령 네가 진선(眞仙)이라 해도, 죽이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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