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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75화 (775/892)

775화. 바람은 불길을 더욱 거세게 할 뿐 (2)

계연은 이쯤이면 충분하다 싶어, 다시 자신을 공격해오는 맹호 요왕을 향해 미소 지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온화하기만 한 미소였지만, 맹호 요왕은 어쩐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에 그는 날리려던 공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두고는, 둔술을 이용해 광풍 속으로 사라져 뒤로 물러났다. 보아하니 저 검선이 드디어 검을 뽑을 모양이었다.

“사실 요괴임을 고려하고 봐도 당신은 꽤 대단한 실력을 지녔어요. 다만 계모에게 마침 당신을 수습할 만한 수단이 있군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다시 사방을 향해 소리쳤다.

“공격을 멈추지 않을 건가요?”

당연히 누구도 계연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요괴들은 그를 아예 상대하지 않았고, 강설릉을 비롯한 이들은 지금 요괴에게서 본인을 보호하느라 바빴다.

계연은 일찍이 이럴 거라 예상했고 경고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오더니, 입에서 잿빛을 띤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맹호 요왕의 둔술은 아주 특수해서, 종적을 찾을 수도 없었고 재빠르기 그지없었다. 만약 계연이 검을 썼다면 그의 기운을 찾아내 특정할 수 없었을 테지만, 삼매진화를 이용하면 달랐다.

“바람은 불길을 더욱 거세게 할 뿐이니(風漲火勢), 이는 당신이 죽음을 자초한 겁니다.”

계연의 어조는 무척 가벼웠다. 말이 끝나자마자 계연이 내뿜은 화염은 바람을 받아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더니 폭풍 속의 맹호 요왕을 뒤덮었다. 바람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불길이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러자 계연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자신들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공포를 느꼈다. 이는 탄천수와 세 수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화술?’

맹호 요왕은 이미 한발 먼저 뒤로 바짝 물러난 후였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전후좌우가 모두 불바다가 되었다.

‘이런, 어서 도망쳐야 해!’

위험을 느낀 맹호 요왕은 이를 꽉 물고 불길 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곧이어 그의 발아래에 광풍이 생겨나자 기류로 인해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그가 불바다를 뚫고 솟구치는 순간, 그의 의식이 격렬한 고통에 잠식되었다.

“아악-! 아아아!”

화앗……!

강력한 요기와 요력을 양분으로 삼은 덕분인지, 삼매진화는 더욱 폭발적으로 사방팔방으로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인식한 요마들은 전부 이 불바다에서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계연은 이제 삼매진화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삼매진화는 여전히 무척이나 위험한 수단이었지만, 계연 본인에게 있어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요마가 불길을 피해 도망쳤지만, 수많은 상처를 입은 탄천수는 삼매진화의 불길 속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고 제때 반응을 보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계연이 공중에 서서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맹렬한 진화(眞火)의 불길은 탄천수에 가까워지자마자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더니 탄천수의 주위를 빙 돌아 계속해서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맹호 요왕은 여태까지 쌓은 수행 덕분에, 삼매진화의 불길 속에서도 곧바로 타오르지 않고 고통에 차서 몸을 구를 수 있었다. 그는 강대한 요괴의 몸과 요력을 바탕으로 진화 속에서 벗어나려 시도했다.

쿠웅……!

산봉우리 하나가 맹호 요왕의 발길에 산산이 부서져 내리며, 흙먼지와 돌가루가 사방에 일었다. 요왕은 그 폭발적인 반동을 이용해 둔술을 펼쳐 마침내 삼매진화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악……! 불, 불……! 타 죽겠네! 아악……!”

우르릉!

이미 먹구름이 몰려있던 하늘에서 요마들이 법력을 펼치자 번개가 내리치며 장대비가 솨아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무수한 빗방울이 떨어져 내려도, 맹호 요왕의 몸에 닿기도 전에 수증기가 되어 날아갔다.

쿵……! 쿠궁……! 쾅!

요왕은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어, 연속으로 산봉우리 몇 개를 부수고 있었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이리저리 부딪혔다.

계연은 요왕이 진화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그저 삼매진화의 중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불바다 한가운데에는 역설적으로 맑은 기운이 가득했다.

계연이 담담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산봉우리를 부수고 있는 맹호 요왕을 바라보았다. 한편 멀리 도망친 요마들은 신선이 재림한 듯 불바다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서 있는 계연과 고통에 차 비명을 내지르는 요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요마는 저마다 법력을 펼쳐 어떻게든 맹호 요왕을 구하려고 해봤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심지어는 반작용을 일으킨 것들도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맹호 요왕은 이리저리 부딪치는 와중에, 하마터면 몇 번이고 다른 요마들과 닿을 뻔했다. 그 짧은 순간, 요마들은 죽음이 목전에 있다는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계연은 맹호 요왕을 바라보면서, 뒷짐을 진 손으로는 각각 검신(檢身)과 검 자루를 받쳐 들고서 언제든 검을 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아래쪽 산맥에서는 고통에 차 포효하는 사람 형체의 화염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연은 저 요왕의 요법(妖法)이 저토록 강력하니, 어떤 대가를 치러 삼매진화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은 선검을 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굳이 넝쿨검이 나서지 않아도 될 듯했다.

맹호 요왕은 마침내 산맥 사이로 흐르는 어느 강줄기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강물에 풍덩 빠진 후에도, 그의 몸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고통은 그의 혼백에까지 스며들어 뼈를 녹이는 듯했다.

곧이어 강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삼매진화는 음양을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때 진화는 방식을 바꿔 더욱 뜨겁게 그를 태웠다.

“흐아아악!”

펄펄 끓는 물 속에서 맹호의 요혼(妖魂)이 요괴의 육체를 벗어나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의 요혼도 맹렬한 화염에 잠식된 것이 보였다.

저 맹호 요왕은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특별한 보물을 지니지 못했던지, 아니면 있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건지, 어쨌든 그는 삼매진화에 의해 완전히 타버렸다. 맹호 요왕은 삼매진화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는 진화에 맞설 만한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오히려 몇 번이나 불길을 거세게 만들기만 했다. 그렇게 결과적으로 요괴의 육체와 요혼이 모두 연소되어 버렸다.

그가 산골짜기에 흐르는 강물 속으로 뛰어들자, 강물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불빛에 잠식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불빛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켜보는 이들 모두 요왕이 그 불길로 인해 소멸해 버렸음을 깨달았다.

잠시 후, 까맣게 탄 호랑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장대비에 의해 불어난 물길을 타고 저 멀리 둥둥 뜬 채로 멀어져갔다.

맹호 요왕은 그리 길게 고통을 느꼈다고 볼 순 없었지만, 이전에 삼매진화에 의해 불탄 요마들보다는 좀 더 오랜 고통을 받았다. 그가 목숨을 구하려고 각종 방법을 시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고통만 더욱 길어졌을 뿐이었다. 이를 목도한 요마들은 밀려오는 공포에 가슴이 철렁했다.

계연이 살짝 입을 열자, 천지를 뒤덮은 삼매진화가 한 줄기씩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이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대지에 원활히 떨어져 내릴 수 있었다.

삼매진화가 지나간 하늘은 더욱 맑고 푸르러 보였다. 모든 요사한 기운이 사라지자, 빗물에 씻겨 내려간 유리창 같았다. 계연이 서 있는 공중에서는 맑은 기운이 회전하며 빗물과 섞였다. 이 비는 원래 요법으로 인해 내리게 된 비였으나, 지금은 무척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 다들 멈추시겠죠? 아, 계모(某)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그가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이, 이때 요마와 정괴들은 탄천수와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계연은 천천히 탄천수의 머리 위로 돌아왔다. 이때 탄천수는 여전히 공중에 떠올라 있었는데, 더는 전처럼 이성을 잃은 상태가 아니었다. 상처에서는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지만, 깊이 파인 수많은 상처가 보기만 해도 심각해 보였다. 심지어 안개로 뒤덮인 어느 상처에는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계연이 탄천수를 관찰해보니, 이때 탄천수는 잠이 들지도 않았고 혼미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의식이 흐릿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탄천수의 정신이 허약해서라기보다는, 수행자가 수행에 든 듯한 상태와 가까웠다.

계연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요마들을 바라보니, 원래 요기가 하늘까지 솟구치던 요왕들은 모두 기운을 거둬들인 후였다. 이에 주위에 있는 요괴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계연은 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여전히 알아볼 수 있었고, 마침내 묘운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러 요왕, 그리고 남황의 요족 분들, 오늘 저희는 일부러 싸움을 걸고자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탄천수가 돌연 이성을 잃어 통제를 벗어나 남황으로 오게 된 겁니다. 하지만 섭요향으로 요마들을 모이게 한 것에는 확실히 위미종 수사들의 잘못이 있습니다. 이 일은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자 강설릉은 계연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계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탄천수에 삼켜진 이들은 사실 죽은 게 아니라, 원기(元氣)가 깎여나갔을 뿐입니다. 탄천수에게 그 요족들을 뱉어내게 하고, 위미종 도우들께서 그들에게 한 사람당 하나씩 원기를 더해주는 단약을 드리겠습니다. 약효는 그들이 잃은 원기를 보상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실종된 위미종 제자들을 돌려주시고, 이렇게 휴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계연은 그러다 삼매진화에 타버린 맹호 요왕을 떠올린 듯이 산골짜기의 강물을 바라보았다.

“저 맹수에 대해서는, 그가 제 충고를 듣지 않았으니 이번 재난도 그의 운명이자 천의(天意)라 생각합니다.”

계연의 어조는 무척 평온하여 조금도 조롱하는 듯한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를 듣던 요마들은 ‘저 요왕은 이미 죽었으니, 당신이 천의라고 하면 천의인가 보지.’라고 생각했다.

다만 누구도 소리 내어 계연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고, 강설릉을 비롯한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요마들은 아직도 조금 전의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계연은 어느 요괴도 대표로 나서서 말을 하려 하지 않자, 묘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각하가 바로 묘운 요왕이군요. 검술의 정묘함이 계모조차 잊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검을 맞댔으니 이렇게 안면을 튼 셈이지요. 그러니 조금 전 제 제의를 잘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다른 요구사항이 있다면, 너무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다른 요마들을 쭉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다시 싸워야 한다면, 남황을 벗어나기까지 필연적으로 몇 번은 더 싸워야 할 텐데, 그중에 얌전히 수행을 닦는 이들이 얼마나 목숨을 잃을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계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지 않았으나, 요마들은 모두 이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원래 그들은 저 선인이 검선인 줄 알았는데, 조금 전에 본 어화술의 신통함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한 정도였다. ‘진선’을 마주한 공포를 느낀 요마들은 이제 그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자 묘운이 심호흡하더니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제가 나서서 잘 상의해 보겠습니다. 선장의 검묘운이 말이 떨어지자, 뭇 요괴들이 요광을 내뿜으며 저 멀리 함께 모여들었다.결이 이토록 현묘하고 법력은 신통하니, 묘운도 깊이 탄복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관대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황대산에는 요마가 많았으므로 그중에 강자도 부지기수였다. 이에 내부는 무척 혼란한 상태로 가까스로 세력의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맹호 요왕은 실력도 고강하고 위명도 높았으나, 이제 죽었으니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묘운이 말이 떨어지자, 뭇 요괴들이 요광을 내뿜으며 저 멀리 함께 모여들었다.

이를 본 강설릉을 비롯한 이들은 이제 이 난관이 끝났음을 알았다. 강설릉은 계연을 향해 정중히 허리 굽혀 예를 올렸다.

“소삼을 위해 나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삼은 이제 전화위복하였으니, 위미종 역대 탄천수 중 처음으로 변화에 성공할지도 모르겠군요.”

“강 도우와 위미종 수사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남황 요족들과 협상한 것을 책망하지 않으시니 다행입니다.”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자, 강설릉도 미소 지으며 끝이 닳은 머리끈이 달린 머리카락을 검지로 빙빙 돌렸다.

“만약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정도야 별것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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