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화. 싸움을 멈추고 협상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묘운이 몇몇 요왕들과 함께 탄천수 가까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계 선장, 상의를 마쳤습니다. 위미종 측에서 저희에게도 단약을 한 병씩 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희 같은 요왕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요. 그에 더해 탄천수에 삼켜진 요족들도 이 조건에 동의한다면, 저희도 여기서 끝맺기로 하겠습니다.”
남황대산이 절대 그렇게 민주적인 곳이 아니었다. 이는 그저 이 사태를 보기 좋게 넘기기 위한 말에 불과했으니, 계연도 물론 흡족한 얼굴로 동의했다.
곧이어 탄천수의 입에서 안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공중에 둥둥 뜬 채 의식이 혼미한 요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산중의 영기를 흡수하고는 차례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조건을 말하자마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이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저 선인들과 다시 한바탕 붙겠는가? 당연히 선단을 받고 일을 끝내는 편이 나았다. 어쩌면 선단을 먹고 수행에 큰 진전을 이룰 수도 있었다.
탄천수의 입에서 요마들이 콩알처럼 쏟아져 나오던 때, 묘운 요왕은 조심스럽게 탄천수의 머리 가까이 다가갔다. 강설릉을 비롯한 이들은 그에게 시선조차 던지지 않았지만, 계연만은 그에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묘운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는 저 선인들이 계연을 선생이라 부르는 걸 들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입을 뗐다.
“계 선생님, 대체 어떻게 손가락 하나만으로 제 일검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겁니까? 위세로 따지자면…….”
“위세만 놓고 따지자면 요왕의 일검과 제 손가락은 당연히 비교할 수 없었지요. 다만 요왕은 검을 다루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요족 중에서는 무척 드문 실력자이긴 하나, 뜻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신의 검술은 대부분 계모가 보기에도 무척 뛰어났어요.”
“순수하지 못했다고요?”
묘운이 의혹에 서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검술을 연마하기 위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도 순수하지 않다니?
그러자 계연이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요족으로서, 또 남황의 요왕으로서, 삿된 기운과 욕망에 잠식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렇게 악업이 쌓이고, 마(魔)를 따르고, 영혼이 깨끗하지 못하니 아무리 검을 수련해도 마음이 깨끗할 수 없는 겁니다…….”
계연은 그의 심금을 자극하기 위해, 칙령을 머금은 채 물었다.
“계모가 묻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검을 수련하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묘운은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꼬집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살짝 몸을 떨며,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하지만 그의 마음이 거세게 진동하며 원령(*元靈: 원신에서 비롯된 에너지체로, 신식(*神識: 의식을 초월한 것으로, 사고력과 감각이 고도로 높음)과 기억 일부를 담고 있음)이 맑아지자, 그의 사고가 가장 순수한 본심에 닿았다. 묘운은 돌연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요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요괴가 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위해서? 대체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 검술을 닦았지?’
“대체 무엇을 위해서지?”
묘운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계연은 묘운에게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장 입을 열었다.
“만약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당신이 처음에 세웠던 목표에 이미 다다랐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온갖 잡다하고 복잡한 생각은 버리고, 그냥 순수하게 검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하도록 하세요.”
계연은 묘운 요왕과 더 대화하지 않고, 멀리 시선을 돌렸다.
탄천수가 삼킨 요마들을 토해내고 있을 때, 요괴들은 일전에 잡아갔던 위미종 제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녀들을 잡아갔던 황고 요왕은 자기가 그들을 곧장 먹어 치우지 않은 것에 깊이 안도했다. 원래 그는 저들과 선도(仙道)의 이치를 따져보거나, 천천히 정기를 흡수하려 했었다.
돌아온 위미종 제자들은 총 6명으로, 깊진 않지만 저마다 상처를 입고 있었다. 다만 전에 사용했던 법보(法寶)는 이미 사라졌고, 걸치고 있던 법의(法衣)도 저들이 빼앗아 간 터라 납물술을 이용해 소매 안에 숨겨뒀던 물건들은 돌려받지 못할 듯했다.
강설릉을 비롯한 이들은 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실종된 제자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와 기쁨을 느꼈다.
평소에 그녀들은 모두 차갑고 오만해 보였으나, 무사히 돌아오게 되자 감격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제자들은 허약한 몸으로도 요마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서둘러 탄천수 위로 날아왔다.
“사조!”
“사조, 사조!”
“돌아왔으니 되었다. 천천히 상처부터 치료하렴.”
돌아온 위미종 제자들은 당연히 탄천수의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때는 그리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탄천수의 등 위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건물인 관성대 위로 돌아가 원기를 회복했다. 탄천수가 중상을 입어 봉쇄했기 때문에, 당분간 체내의 섬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안에 아무도 없던 것이 다행이었다.
위미종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 사람도 모자라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반면 남황 요족들은 누구도 이를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탄천수가 요마들을 토해낸 후에도, 그들은 몇 명이 사라졌는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숫자를 세거나 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누군가 모자라더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차피 원만히 상황을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원기가 상한 요마와 정괴들은 밖으로 나온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모두 탄천수의 널찍한 머리 부근에 서 있었다. 그들은 요왕과 몇몇 대요들을 앞에 두고 모두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하하하, 무얼 두려워하느냐? 큰 재난을 당한 후에도 죽지 않았으니, 너희는 복을 받은 셈이다. 저 선인들께서 곧 너희에게 원기를 북돋울 수 있는 단약을 줄 테니, 수행에도 아무런 손해를 입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건 너희들은 한평생 살아도 얻지 못할 정도의 단약일 것이다.”
대요괴 하나가 차가운 말투로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그의 입이 길게 쭉 찢어져 있는 데다 어조까지 음산하여, 주위의 요괴들은 모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고는 곧 기대에 차기 시작했다.
몇몇 요왕은 계연의 일행 앞에 서 있었다. 그중 눈이 길고 가느다란 요왕 하나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강설릉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럼 위미종의 제자도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왔으니, 약속한 일을 시행해주셔야겠소. 어서 단약을 주시오. 물론, 우리에게도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이오.”
“그렇소. 만약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인정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효과도 없는 단약으로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요왕은 그저 호칭일 뿐, 수행의 경지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왕이라 불릴 수 있는 자는 다른 대요보다 확실히 출중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남달리 강성한 요체(妖體)를 지녀, 선인이 제련한 단약이라 할지라도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이에 강설릉이 연백평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하자, 연백평은 요왕들을 향해 코웃음 친 다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소매 속에서 작은 옥병 몇 개를 꺼내 강설릉에게 건넸다. 그러자 강설릉이 연백평을 향해 정중히 감사 인사를 올렸다.
“단약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연 도우. 돌아가면 이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찾아, 도우의 손실을 보상해드리겠습니다.”
“괜찮소, 괜찮아. 이 일은 어찌 보면 나로 인해 발생한 일이니, 내가 나서는 게 당연하오.”
그 말에 강설릉이 가볍게 웃은 뒤, 계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요왕들에게 다가가 옥병을 건넸다.
옥병을 받은 어느 요왕은 곧장 마개를 뽑아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그리 농후하지 않은 은은하고 맑은 향기가 느껴졌다. 그 향기는 대단한 선약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마개를 닫은 후에도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
“이건 무슨 단약입니까? 정말 효과가 있습니까?”
황고 요왕이 이렇게 묻자, 연백평은 기분이 언짢아져 한껏 멸시하는 태도로 대꾸했다.
“무식하기는. 이건 이 몸이 직접 제련한 명령단(明靈丹)이오. 이름만 들어도 알겠지만, 이건 원령(*元靈: 원신(元神)에서 비롯된 에너지체로, 신식(*神識: 의식을 초월한 것으로, 고도로 높은 사고력과 감각을 일컬음)과 기억의 일부를 담고 있음)에 좋은 단약으로, 당신들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요. 효과가 있고 없고는, 요왕씩이나 돼서 냄새만 맡고도 모르는 것이오?”
요왕들은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흥분해 있었다. 옥병을 가볍게 흔들어 보니, 그 안에 대략 십여 개의 단약이 들어있는 듯했다. 선인이 만든 이런 단약은 그들에게는 무척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음, 크흠! 그렇군, 과연 아주 좋은 단약이오. 그럼 볼일도 끝났으니, 이만 가보시오!”
한 요왕이 기쁨에 들떠 말하자, 어느 대요가 이렇게 일깨웠다.
“대왕, 소인들은 아직 원기를 보충해주는 단약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지.”
요왕들은 하나같이 그 일에 마음 쓰는 이가 없었다. 그들보다는 오히려 수선자들이 그 점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기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설릉도 일찌감치 10여 병의 단약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강설릉이 병마개 하나를 뽑아 입구에 대고 손부채질을 하자, 짙은 단향(丹香)이 뭇 요괴들에게 전해졌다. 이에 요괴들이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보자면, 이 단약의 약효는 명령단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대신 그보다 더 넓은 방면을 보하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나 양기와 원기를 돋우는 데에 탁월했고, 실력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요마들에게 적당했다.
“이것의 이름은 고생단(固生丹)으로, 위미종 제자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약입니다. 이것으로 피해를 보상할 테니, 한 알씩 받으십시오.”
강설릉이 이렇게 설명한 뒤 소매를 흔들자, 공중에 떠올라 있는 십여 개의 병마개가 동시에 뽑히더니 단약들이 현묘한 빛을 내뿜으며 후방에 있는 요마들을 향해 날아갔다. 붉은빛이 나는 단약을 받아든 요마들은 마치 타오르는 숯불을 손으로 받아든 느낌이었으나,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단한 보배로구나!’
단약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된 요물들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요왕 중에도 속으로 감탄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좋소, 양측 모두 협의한 내용을 이행했소.”
“그럼, 요족 여러분, 오늘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죠. 약속대로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계연의 말에 요왕들은 내심 두려움을 느끼면서 정중하게 예를 행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모두 가셔도 됩니다.”
묘운도 계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저희도 이만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요왕들은 공중으로 떠올라 탄천수 주위를 떠났고, 대요괴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한편 탄천수에게 삼켜졌다가 고생단을 받아든 요마들은 한발 늦게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탄천수의 위에서 아래로 곧장 뛰어내리는 이들도 있었고, 요풍(妖風)을 일으켜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