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1화. 천기전 안에 숨겨진 천기
현기자가 고개를 끄덕인 뒤, 무슨 일이 생기면 재빨리 대비할 수 있도록 온몸의 법력을 움직이며 천기전의 붉은 대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내내 공중에 떠 있던 그의 한 발이 마침내 계단 위에 닿자, 잔뜩 긴장했던 몸이 일시에 풀어졌다.
“별일 없다!”
“사형, 벌써 긴장을 푸시면 안 됩니다. 대문 앞에 가야 성공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 사제 네 말이 맞구나. 다들 기다려라, 먼저 올라가 보마!”
원래대로라면 계단도 쉽게 밟지 못했을 터라, 현기자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가 가벼운 걸음으로 올라가 마침내 대문 앞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디디려던 순간, 깜짝 놀라 우뚝 섰다. 대문 위의 두 문신(門神)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현기자는 다급한 마음에 기지를 발휘하여 천기전 내부를 향해 소리쳤다.
“계 선생님, 후배 현기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선생님!”
계연은 거대한 천기전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가, 현기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문가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도우도 참, 여긴 천기각의 공간이니 도우께서 편하신 대로 하세요.”
현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마음을 가라앉힌 뒤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문신들은 가만히 그를 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현기자가 다시 고개를 돌려 계단 아래를 바라보니, 천기각 수사들이 하나같이 흥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기자는 자신의 사제들을 향해 전음을 보내 알렸다.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천천히 올라와라. 한 번에 몰려들어서도 안 되고,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된다. 참,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 전에는 꼭 안쪽을 향해 내가 했듯 계 선생님께 고하고 들어와라.”
말을 마친 현기자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오백 년 동안 수행해오면서 천기전 안에 발을 들이는 건 그로서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천기전 계단 아래에서는 천기각 수사들이 몇 마디 상의를 나눈 뒤, 현기자의 말에 따라 둘씩 짝을 지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뒤 마지막 계단 앞에 이르자, 천기전 안에 대고 정중히 물었다.
“계 선생님, 후배 성양자(成陽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계 선생님, 후배 연백평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계연은 살짝 미간을 모은 채 다시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 현기자는 이미 안으로 들어왔으나, 바깥에 있는 수사들은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그에게 허락을 구했다. 보아하니 이는 그들이 과도히 예를 차리는 것일 수도 있었고, 뭔가 숨겨진 사정이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저 대문 위의 두 문신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이에 계연은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고 일일이 대답해주었다.
잠시 후, 천기각의 모든 수사가 천기전 안으로 들어왔다. 현기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천기전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빛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장수옹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현기자 도우, 보아하니 평소에는 천기전에 들어오기가 무척 힘든가 보죠?”
이들의 모습을 본 계연은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 그러자 현기자도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계 선생님께 아룁니다. 선생님의 추측대로 천기전에 드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천기각에 내려오는 기록에 따르면 그간 천기전에 들어왔던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그들 모두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죽거나, 천기각을 떠난 후로 다시는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놀란 계연이 현기자를 바라본 뒤, 다시 주위의 천기각 수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들의 감격에 찬 표정은 현기자가 했던 말과 그다지 부합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위험한데도 모두 들어온 건가요?”
그러자 현기자가 미소 띤 얼굴로 기둥에 감도는 빛을 아련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계 선생님께서도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朝聞道, 夕死可矣: <논어(論語)>의 한 구절)’라는 말을 들어보셨겠지요. 천기각 수사들이라면 모두 천기전에 들어 진정한 천수(天數)를 엿볼 수 있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 수사들이 도를 구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를 구하는 수행자로서 그들의 이런 마음가짐은 무척 귀한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눈앞의 거대한 벽을 바라보았다. 이 벽 위의 빛은 대전 안에서 가장 환히 빛나는 동시에 형체도 가장 모호했다. 마치 벽 위에 유리로 된 가루가 한 겹 뿌려져 있는 것 같았다.
“계모(某)는 원래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천기각에 온 것인데, 정말로 이런 놀라운 소득을 얻게 될 줄은 몰랐네요. 부디 천기각 도우분들께서 제가 이 벽 위에 담긴 내용을 살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선생님이야말로 저희를 대표하여 천기를 엿볼 수 있는 분이시니, 저희도 응당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현기자가 말을 마친 뒤 여러 수사들을 향해 말했다.
“마침내 때가 왔다. 모두 나를 따라 법력을 펼쳐 천기륜(天機輪)을 청해 오자!”
천기각 수사들이 대전 곳곳으로 흩어지자, 계연은 그제야 바닥에 팔괘가 새겨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천기각 수사들은 8개로 나뉜 방위(方位)로 흩어져,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천기각 수사들은 천장을 향해 각기 법광(法光)을 한 줄기씩 쏘아 보내, 하나의 커다란 광점(光點)을 만들었다. 뒤이어 천기전 내의 흑백 두 기운이 모여들더니, 광점을 둘러싸고 회전하며 음양어(*陰陽魚: 음과 양이 서로 휘감기듯, 물고기 두 마리가 태극 모양으로 맞물린 형상)의 형태를 만들었다.
“천기륜을 삼가 청하나이다!”
천기각 수사들이 입을 모아 소리치자, 천장 위쪽에서부터 강렬한 파동이 전해져 왔다. 뒤이어 천기각의 기와 사이로 여러 갈래의 빛줄기가 내려왔다.
그 빛은 천기전 상공에 모여, 천천히 천기각 수사들이 앉은 자리 위로 내려왔다. 빛 그림자는 천천히 회전하다가 마침내 천간(*天干: 갑·을·병·정 등 육십갑자의 위 단위를 이루는 요소)과 지지(*地支: 자·축·인·묘 등 육십갑자의 아래 단위를 이루는 요소) 등의 도형과 문자가 새겨진 맷돌 크기의 원반이 나타났다.
우웅-!
그 순간 계연의 등 뒤에 있던 넝쿨검이 희미한 검명을 내자, 계연은 스스로의 추측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천기륜은 진정한 선기(仙器)였다. 게다가 보통 선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시련을 거쳐, 형체 없는 대도(大道)를 품은 강대한 선기였다. 어떻게 보자면, 진선(眞仙)이라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천기륜이 회전하니, 도(道)를 드러내리라(天機輪轉, 方顯我道)!”
천기각의 수사들이 천기륜을 향해 자신의 법력을 쏘아 보내자, 빛을 뿜는 천기륜은 대전 안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벽과 기둥 사이를 날아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계연의 앞에 멈춰 섰다.
계연은 정중한 태도로 천기륜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취했다. 그의 눈에 천기륜은 단순한 선기가 아니라, 수천 년, 어쩌면 만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선배였다.
그러자 천기륜이 흑백의 두 가지 기운을 뿜어내면서 곧장 천기전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그 기운들이 대전의 벽과 기둥에 섞여들자, 다채로운 색깔의 빛이 천천히 희미해졌다. 하지만 겉면의 유리 같은 질감은 오히려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한 부, 한 장, 한 조각…….
사방의 벽과 기둥, 바닥, 심지어는 둥근 천장 위에도 조각인 듯 그림인 듯한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기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했고, 어떤 곳은 도안이 밀집되어 있었고 어떤 곳은 드문드문했으며, 산수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사람이나 동물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풍부하고 생생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 위에는 신인(神人)이 금빛 망치로 벼락을 내리고, 갑주를 차려입은 빽빽한 병사들이 구름을 밟고 서 있었으며, 하늘에는 궁궐이 있었고 유명(*幽冥: 저승)에는 황천이 흘렀다…….
놀라운 정보로 가득한 그 그림은 수많은 그림 중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믿기 힘들 정도로 생생한 그림들이 많았다.
뭇 용들이 구천에서 서로 싸우고, 신성한 소가 한 발로 천둥을 내리며, 깃털 하나로 바람과 구름이 몰려오고, 해와 달이 이러한 광경을 드러내며 환한 빛을 내뿜었다. 그렇게 각종 기운이 뒤얽혀 천지가 어지러워지며 풍운이 불어닥쳤다.
천기각 수사들은 이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들을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그들 모두가 천기각 안에서 지위가 높고 수행이 경지에 오른 장수옹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천기각의 가르침에 정통한 이들인 만큼, 이해가 빨라 많은 것들을 추측해낼 수 있었다.
반면 장수옹처럼 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른 수사들은 그림을 보기만 해도 자동으로 그 화면이 두루마리 족자처럼 머릿속에 천천히 펼쳐졌다.
계연은 그 어떤 천기각 수사들보다 훨씬 깊고 생생하게 그림을 체험하고 있었다. 그는 천기각의 수사는 아니었지만, 이 그림들을 보자마자 곧장 연상되는 게 있어서 법안으로 보면 그림이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 위의 궁전과 함께 그려진 신인(神人)의 모습은 분명 진정한 의미의 천궁(*天宮: 천제(天帝)가 사는 궁궐)을 나타내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 천궁은 지난 생 계연이 알던 천궁과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갑주를 차려입은 신인들은 비록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머리 부분은 모두 요괴라는 사실이었다. 설령 머리까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인이 있다고 해도, 계연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요기(妖氣)를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한쪽, 그가 알던 저승과 이곳에 그려진 저승의 차이는 천궁보다 훨씬 컸다. 그림 속의 저승에는 염라대왕이 다스린다는 소위 지부(地府)라는 게 없었고, 그저 여러 갈래의 샘물이 모여 거대한 하류(河流)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유혼(*幽魂: 죽은 사람의 넋)이 물살에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천궁과 지부의 풍경이 많이 그려져 있긴 했지만, 계연은 그 위에 더 눈길을 주지 않고 더욱 위압감 넘치고 생생한 그림들로 시선을 옮겼다.
각종 그림에는 여러 형태의 괴물이 등장했다. 계연은 자신이 아는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하여, 그들이 강대한 힘을 지닌 상고 시대의 짐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중에는 그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신수(神獸)와 흉수(凶獸)도 있었고, 모습은 익숙하지만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 것들도 있었으며, 아예 알지 못하는 괴물도 적지 않았다.
어떤 괴물들은 아주 신성해 보이기도 했고, 어떤 괴물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앞발을 휘두르고 있기도 했으며, 한데 모여 싸우는 괴물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림 바깥으로도 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 괴물도 있었다.
계연은 잠시도 벽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서 유심히 그림들을 관찰했다. 그는 때로 놀란 얼굴을 하기도 했는데, 사실 속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욱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림 대부분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단편만으로도 비교적 완벽하게 역사의 어느 장면, 혹은 역사가 변해온 과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이 중에 어떤 그림은, 예전에 그가 멀리 떨어진 별자리 깃발 두 개를 서로 만나게 했을 때 언뜻 보았던 것도 있었다.
‘과연 이 세계에도 태곳적에는 수많은 기이한 동물이 살았었구나.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