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82화 (782/892)

782화. 새장

계연은 하늘을 향해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하고 있는 그림 속 흉수와 신수들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별자리 깃발 위에 그려진 하늘의 별들이 계연의 시선을 따라 그림 속 화면 위에 겹쳐졌다. 그러자 별이 비어있는 곳과 각종 기이한 동물들이 하늘을 공격하는 위치가 딱 맞아떨어졌다.

더불어 그가 수행을 닦으며 언뜻 보았던 각종 광경이 천기각 안의 그림과 중첩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 계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일 뿐이었는데도, 곧 천기전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다시 한번 사방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천기전의 벽이 무한대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림 속 구유(*九幽: 땅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 지옥)와 천궁의 중간에, 선(仙), 불(佛), 요(妖), 마(魔), 귀(鬼), 괴(怪), 사람(人), 즉 오늘날의 중생이 나타났다.

‘천지의 경계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넓구나. 그야말로 재겁(災劫), 재앙이며 위기로다. 지금의 천지는…… 도원(*桃園: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이기도 하고 새장이기도 하구나…….’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계연이 천기각 수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대부분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한편 계연과 가장 가까이 서 있던 현기자는 멍하니 눈앞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가 보는 것은 바로 상공에 높이 걸린 태양이었다. 만 장(丈)에 이르는 빛을 뿜는 태양 안에는 자세히 보면 날개를 활짝 펼쳐진 거대한 삼족오(三足烏) 한 마리가 있었다.

“이건 태양이 틀림없어. 태양인데…….”

현기자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계연이 옆으로 다가가 설명해주었다.

“태양 안에 있는 게 바로 삼족금오(三足金烏)예요. 태양의 진령(眞靈)이죠.”

“삼족금오요?”

현기자가 계연을 향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계연은 이때 다시 마음을 진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현기자가 보기에 계 선생님의 얼굴은 무척 담담하고 초연해 보였다.

“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을 둘러보다 곳곳에 세워진 기둥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이었다.

기둥 위에도 전부 무언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건 일종의 상징에 가까워 보였다. 어떤 기둥은 금빛이 휘황찬란했고, 어떤 기둥은 아주 오래되어 보였는데, 그 대부분이 균열이 있는 상태였다.

약 한 시진 뒤, 계연과 천기각 수사들은 함께 천기전을 나왔다.

그들이 모두 나오자, 대문이 다시 끼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혔다. 문 위의 두 문신은 여전히 근엄한 태도로, 그림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었다.

계연을 비롯한 수사들이 천기전의 축대를 모두 내려가자, 문신들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붉은 대문만이 남았다.

계연의 안색은 천기전에 들어가기 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천기각의 모든 수사는 들어가기 전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현기자나 연백평 같은 장수옹은 물론이고, 다른 수사들도 모두 우려하는 기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는 깊은 수심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담겨 있었다.

계연은 이들의 이런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고 느꼈지만, 드러내 웃을 수는 없었다. 사실 천기각 수사들은 천기전의 그림을 보긴 했지만, 천지의 겁수(劫數)에 대한 일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상황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그림 속에 그렇게나 많은 ‘요수(妖獸)’들이 있는 걸 봤으니 어찌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계 선생님께서는 오늘 일에 대해 혹 무슨 견해가 있으신지요?”

현기자는 재차 주저하다 결국 계연을 향해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계연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계모(某)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몇 배는 더 나쁜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 일은 너무 큰 일이라 저도 명확히 말할 수가 없겠군요.”

계연의 목소리는 무척 작았지만, 전음을 보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수사들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현기자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하여 얼른 그의 말에 대답했다.

“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저희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천기는 절대 누설하면 안 된다는 이치는 저희 천기각 수사들이 아마 제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선생님,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원래부터 천기각 측에서는 계연에 대해 품은 기대가 무척 높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 계 선생님이 자신들이 예측하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들 모두가 저 엄청난 ‘천지의 진상(眞相)’ 목격한 후로, 어찌할 바를 몰랐으므로 이제는 그저 계연에게 답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시던 대로 열심히 수행을 닦고 준비하고 있으면 됩니다. 아, 천기각 도우들께서는 혹 싸움에 능한 편이신지요?”

“그것이…… 저희도 물론 자신을 보호하는 신통력은 가졌지만, 우리 천기각 수사들은 대부분 천기를 추측하고 대도(大道)를 엿보려는 데에 주력하여, 그 깨달음을 단로에 녹여내는 데에 능합니다. 그러니 상대를 공격할 때의 위력은 그리 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현기자는 돌연 어조를 바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저희 천기각은 다른 정도(正道)의 수선자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왔으니, 만약 무슨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각계의 도우들이 나서서 도와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충분하죠.”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수사들이 모두 주위에 멈춰선 걸 보고 화제를 바꿔 물었다.

“조금 피곤하네요, 만약 다른 일이 없다면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요?”

“아, 저희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형, 제가 계 선생님을 휴식처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무나.”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선생님!”

연백평은 현기자와 짧은 말을 나눈 뒤, 계연을 이끌고 천기각 범위를 벗어났다. 가는 길에 계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현기자를 비롯한 천기각 수사들은 제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그들은 계연이 떠나는 방향을 향해 살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천기각 내부에서는 응당 이 일에 대해 상의하려 할 테니, 계연도 눈치 없이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연백평을 따라 떠났다.

여러 개의 진법을 통과해 천기전을 나오고 나니 계연도 마음이 가벼워졌고, 연백평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휴우, 그나저나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분이시군요. 아니,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하다고 해야 옳겠지요.”

“하하.”

계연은 별말 없이 가볍게 웃으며 쉬러 돌아갔다.

* * *

이때, 남황주의 어느 번화한 속세의 도시에는 회색 장삼을 입은 문아(文雅)한 서생 하나가 길가의 노점에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다. 그는 노점에 있는 문구와 서화, 서적 등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마치 보통의 서생처럼 꽤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좋은 물건을 발견하면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그 서생이 그림 하나를 집어 자세히 감상하고 있을 때, 흰 비단옷을 입은 수려한 공자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여전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서생을 향해 말했다.

“자네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군. 여기에 숨어있을 줄이야.”

그러자 서생이 그림을 내려놓더니 그 공자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여기는 인파가 많아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지. 오히려 자네가 돌아올 줄은 몰랐는걸. 나는 틀림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지.”

“흥! 어째, 웬일로 가장 좋아하던 그 황색 옷을 안 입었나?”

그의 물음에 서생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런 속세에서 황색은 제왕의 색이야. 서민이 어찌 감히 그런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있겠나?”

그때 노점 주인이 얼른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물었다.

“이쪽 서생, 구경도 실컷 했으니 이제 그걸 살 겁니까, 말 겁니까? 그리고, 새로 오신 손님, 이쪽 물건들을 한번 보십시오. 정말 값이 뛰어난 물건들입니다. 몇 개 사서 가시지요?”

그 말에 수려한 외모의 공자는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옆에 있던 서생은 도리어 조금 전 집었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포장해 주시오, 사겠소.”

“오, 손님께서 안목이 있으시군요! 이건 전조(前朝)의 대가인 조환(趙喚)이 남긴 진품입니다. 정직하게 딱 은자 5냥만 받겠습니다!”

노점 주인은 손을 빠르게 놀려 그림을 잘 포장한 뒤, 서생이 건네는 은자를 받았다. 그는 손에 들고 은자의 무게를 대충 가늠해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손님을 배웅했다.

수려한 외모의 공자와 서생은 바로 북목과 현재는 육오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육 산군이었다. 그때 북목이 육 산군이 손에 든 그림을 보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은자 5냥이라, 정말 진품인가?”

“음, 진품일세.”

“하하…….”

북목은 가볍게 웃으며, 속으로는 얼른 무슨 수단을 써서 저 노점 주인에게 자신이 진품을 헐값에 팔았다는 걸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북목과 육 산군, 이 마두와 요괴는 서로를 무척 마뜩잖게 여겼지만, 혼잡한 시정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꽤 정다운 친우처럼 보였다.

북목은 육 산군이 든 서화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무척 애지중지하며 조심스럽게 서화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두인 그는 육오가 그 서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육오, 이런 서책과 서화를 사서 어디다 쓰려고? 이런 게 정말로 좋다고?”

그러자 육 산군이 손에 든 그림을 툭툭 치며 곁눈질로 북목을 본 다음 그다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미소로 말했다.

“좋네.”

북목은 코웃음을 치며, 육오가 평소에 서생의 모습으로 다니니 그런 척을 하는 것뿐이라 여겼다. 게다가 육오는 이런 쓸모없는 일까지 신경 쓸 정도로 그 서생 같은 모습을 꾸며내는 데에 몹시 진지했다. 그리고 이런 성정을 지닌 자일수록 모든 일에 끈질기고 진지하게 임했으며, 원한을 잘 기억하며 수단이 모질었다. 맹호 요왕에게 일어난 일만 봐도 이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느긋한 걸음으로 성안의 인적 드문 곳에 도착하자, 북목은 그제야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육오, 자네 그 호랑이 형님은 이미 죽었네. 듣자 하니 그 선생의 삼매진화에 당해, 육신과 혼백이 모두 소멸했다는군.”

그들 주위에는 행인이 없었으므로, 육 산군은 이때 입을 쩍 벌려 손에 든 서화를 곧장 입안으로 삼켜버렸다. 그러자 이를 보던 북목이 입가를 씰룩였다. 물건을 잘 숨긴 육 산군은 북목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호 형님께서 참으로 끔찍하게 죽었군. 현제(*賢弟: 아우뻘 되는 이를 일컫는 말)로서 형님을 대신해 복수할 수도 없으니……. 그나저나, 자네는 그때 누구보다 먼저 몸을 내빼던데, 다시 거기로 돌아가서 소식을 알아 올 정도의 담은 있었군?”

“흥, 나는 마두니 당연히 자신을 지킬 방법이 따로 있지. 그나저나 자네는 형제라면서 그 요왕의 죽음에도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군?”

“자네 어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나? 호 형님이 그렇게 돌아가셨다니, 육모(某)도 참으로 마음이 아프군. 게다가 형님이 죽었으니, 그간 우리가 했던 일도 모두 쓸모가 없게 되었잖나. 사실 나는 그가 무슨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말일세.”

두 사람은 각자 한껏 상대를 비꼬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동료였으므로 드러내놓고 상대를 욕하진 못했다.

0